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92화 (29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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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어제를 기해 우리 CLC가 속한 A조의 모든 경기가 끝마쳐졌다.

결과는 딱히 이변이라 할 만한 게 없이 순조로웠을까.

북미 최고의 강팀이라 할 수 있는 TSL.

TSL이 4승을 해서 A조 1위로 본선에 진출했다.

그리고 우리 CLC가 3승 1패로 2위.

그외에 2승 2패의 전적을 낸 팀들끼리 투닥거리며 나머지 3,4위를 정했다.

A조의 일곱 팀 중에서 네 팀이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고, 나머지 세 팀은 탈락해서 2부 리그.

탈락한 팀들은 2부 리그에서 재차 실력을 증명해 롤챔스까지 올라와야 한다.

잔인하다면 잔인하지만 차고 넘치는 신생팀들 입장에선 좋은 제도다.

강자 생존의 법칙.

자신들의 가치는 실력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오늘은 B조의 예선이 마저 치뤄지는 중이다.

A조와 마찬가지로 B조에서도 네 팀이 올라올 예정.

그렇게 총 여덟 팀이 토너먼트로 자웅을 가리게 된다.

B조에서 올라온 이들은 경쟁 상대기도 하기에, 우리 CLC팀원들은 바쁜 연습시간을 쪼개 7층에 있는 취식실의 대형TV로 관람하고 있다.

하지만 나와 예은만은 사정이 있어 별개로 떨어졌다.

무슨 사정이 있어서?

우리 예은 누님의 기분이 심각하게 좋지 않아 격리조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 누님은 왜 얼굴을 못생기게 구기고 있을까?"

"..너 그러다 한 대 맞으면 안 아프지?"

스마트폰을 보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예은이 나를 흘깃 쳐다본다.

아이고 무서워라.

예상을 하고 있던 문제였음에도 역시 난감하기 그지없다.

'이러다 팬한테 현피 신청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네, 정말로..'

우리 CLC는 조별 리그에서 매 판 최선의 플레이로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한 판 졌다고는 하지만 무력하게 패배하지도 않았거니와 조 2위다.

예은 또한 출전했던 경기에서 흠잡을 데 없는 플레이를 해냈다고 객관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악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LOOOOOL 탈리반 기가 막히게 버스 타네.

저런 게임은 내가 대신 들어갔어도 이겼겠다.

나도 얼굴 좀 반반했으면 프로게이머 하고 있을 텐데 아쉽~

└니가 뭔데 우리 뮴뮴 누님 욕하냐?

└탈리반 해줄 거 다하고 갱킹까지 계속 성공시켰는데 뭘 보고 까는 거지?

└ㅉㅉ 여자라고 옹호하는 놈들 생길 줄 알았다.

└솔직히 탈리반이 잘했다고 하는 놈들 티어 좀 까고 말하자.

넘어서는 안되는 선을 넘고 말았다.

마침내 참다 못한 성난 예은이 육성으로 터트렸다.

그것도 아주 부담스럽게.

"그랜드 마스터다. 이 개XX#@$%^#$야!!!"

그 광경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는 나에겐 남일이 아니다.

일단 고막이 터질 것처럼 시끄럽다.

은근히 침도 튄다 이 녀석.

욕은 쟤네가 했는데 분풀이는 내가 받게 생겼다.

이 얼마나 불공평한 세상인가.

라고 한탄만 하기에는 내 책임도 분명히 있다.

'이렇게 될 걸 알고 끌고 왔으니까 말이지.'

어차피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다.

나로서는 너무 고된 산을 선택하지 않도록 예은의 출전을 하루 미는 게 한계였다.

실력으로 증명해서 입을 다물게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니가 캐리를 좀 덜했으면 됐잖아? 킬을 나눠서 먹었으면 쟤네가 저렇게 입롤할 일도 없었잖아?"

"아니.. 일단은 내가 미드고 미드가 킬을 먹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데..?"

이성적인 설명이 와닿을 상태라곤 추호도 생각하지 않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변명을 추구해봤다.

이렇게 되면 어차피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어울려줘야 한다.

굳이 예은이 아니더라도 화가 날만한 일이기도 하다.

아까와 같은 글만 수십 개다.

게다가 남자들 커뮤니티에 여자 이야기가 나오게 되면 으레 그렇듯.

예은의 사진까지 올라와서 품평해대고 있으니 짜증이 나지 않으면 성인군자이리라.

심지어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는 몰라도 직촬 사진까지 찍혀 있었다.

"찍을 거면 좀 이쁘게 찍던가. 이 각도로 찍으면 사진빨이 안 산다고오."

"난 충분히 괜찮게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너 이런 거 신경쓰는 타입이었냐?"

직촬로 찍었다는 사진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는 예은이 보였다.

아마추어가 찍는 사진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어떻게 찍기만 했다.

주위는 어두침침하고 얼굴의 윤곽도 제대로 살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미인이라는 사실은 여실히 드러나 있다.

굳이 표현을 하자면 모자를 확 벗겨버리고 싶은 정도.

그 본인이 내 옆에서 투덜투덜 쫑알쫑알 시끄럽게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계신다.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딱히 화가 난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

악성팬들도 적어도 얼굴에 한해서는 별 말이 없다.

혹시 서양인의 시선에서 보자면 이 녀석도 못난 구석이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데 물거품이 됐다.

호불호가 갈리지를 않는다.

그럼에도 이 녀석이 아직까지 성을 내고 있는 이유.

"이 자식들 딜량가지고 입롤하는데 완전 겜알못 아냐? 진짜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놈들이."

"그래, 니 말이 맞다, 맞아. 그래도 간곡히 부탁하건데 팬한테 싸대기만은 날리지 말아줘.."

이 녀석이라면 정말로 해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 불안감을 씻어낼 수가 없다.

만약 CLC 팬사인회같은 게 열린다면 이 녀석은 제외하고 가도록 해야겠다.

"그건 그렇고.. 어쩌다가 아이디를 뮴뮴이로 하게 됐어?"

계속해서 불만을 들어주던 나는 타이밍을 봐서 화제를 전환했다.

얼굴을 보아하니 화도 제법 가라앉은 듯하고, 다른 이야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평소 컨디션으로 돌아오겠지.

그리고 솔직히 궁금하기도 했다.

뮴뮴이라니?

신경이 안 쓰일래야 안 쓰일 수가 없다.

들어본 적이 없는 건 아니다.

끝말잇기에 카드뮴 카운터로 종종 등장하는 단어.

이게 되냐, 안되냐를 묻는다면 애매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설마, 정말로?

"그야, 귀엽잖아? 뮴뮴이."

"아... 역시 그러십니까."

뮴뮴이는 모 옛날 만화에 나오는 몬스터 이름이다.

생긴 거는 귀엽기를 넘어서 깜찍하고 앙증맞은 꽃과 같다.

그 크기가 집 한 채만하고 식물주제에 입까지 달려 있어서 그렇지.

한 마디로 괴물이다 괴물.

"카지트도 그렇고 취향 참 독특하다 너."

"하? 뮴뮴이의 귀여움을 모르는 네가 이상한 거거든?"

내가 이상한지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건지.

그건 둘째 치고 확실히 어울린다면 어울린다.

꽃모양의 괴물이라니 정말 딱 너답다.

"너, 속으로 내 욕했지?"

"안 했어. 안 했으니까 꼬집지 좀 마라 좀.."

눈치는 또 귀신같이 빠르다.

그래, 나 좀 꼬집어서 불편한 심기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가능한 빨리 이 녀석을 진정시키고 롤챔스의 결과를 체크해야 하니 약간 희생하는 셈치자.

오늘 B조의 경기가 끝난 후 8강 토너먼트의 대진표 추첨 또한 진행된다.

어느팀이 걸려도 질 생각은 없지만 전략 구성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봐야 한다.

시간을 보아하니 마지막 경기를 치르는 와중일 터.

예은의 투정을 받아주고 있는 사이에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지났다.

슬슬 속이 풀렸으면 같이 마지막 경기라도 봤으면 어떨까 싶은데.

예은은 아직 꽁해 있는 마음이 덜 풀린듯 얼굴이 뚱하다.

밥순이는 역시 밥으로.

먹을 거라도 사줘야 할까 싶어 메뉴늘 고심하던 와중에 예은 쪽에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들릴듯 안 들릴듯 안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하지만 내 귀에는 똑똑히 들렸다.

"있잖아.. 만약에 우승하면 나한테 뭐 해줄 거야?"

못 들은 척할까.

일단 CLC와 계약도 했고, 액수도 섭섭지 않게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곳에서의 생활도 나름 괜찮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서 뭐가 부족한 걸까?

잠시 고민하던 나는 대답을 하는 쪽으로 마음을 정했다.

"불만이 있는 거라면 언제든 들어줄게."

"..........내 불만을.. 둔탱이인 니가?"

이래 봬도 내가 1시간 넘게 불만사항 다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맞아도 주고.

나 자신이 불쌍하리만큼 희생했는데 뭐가 또 남아있는 걸까.

대답없이 지긋이 째려보고 있는 예은때문에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다.

뭐가 문제인지 알아야 해결이라도 하지.

이 녀석도 나름 여자라고 가끔 가다 이해 못할 부분이 있다.

'뭐.. 나름대로 쌓인 게 있겠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녀석을 프로의 길로 꼬드긴 건 나다.

아무리 4개월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큰 결정이었을 터다.

만약 불안을 느낀다면 그것을 들어주고 해소해주는 것 또한 내 책임.

그러니까.

"그래, 원하는 거 하나정도는 해줄게. 단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한해서."

"..이거, 녹음했다?"

예은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스마트폰의 화면을 내뻗어온다.

그 화면에는 정말로 녹음 표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아까부터 대화 중에 스마트폰을 만지막만지작 하고 있더니.

설마 녹음을 켰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구두로 한 약속이라는 게 으레 그렇듯, 나중에 지킬 때쯤 되면 기억 나지 않는 척 어물쩡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 녀석 치밀하다.

역시 법조계.

만약 예은이 악의 변호사로 활동을 한다면 무고한 시민들의 재산이 법이라는 이름 아래 강탈 당할 지도 모른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걱정된다.

"내가 깐깐한 건 너.. 한정이니까 착각하지 말라고."

"그, 그래.. 근데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한해서다..?"

혹시 몰라 마지막 말을 덧붙이길 잘했다.

내 통장을 내놓으라거나 신체포기각서를 쓰라거나.

농담이지만서도, 이 악독한 녀석이 해올 짓은 착한 나로서는 상상이 안된다.

설마 증거를 조작해서 뒷말을 짤라 버리는 건 아니겠지.

"멍청아, 그렇게까지는 안 해."

"그래.. 믿는다 정말로. 그래서 원하는 건 뭐야?"

솔직히 말해 감이 안 잡힌다.

이 녀석이 나한테 원하는 게 뭐 있을까?

듣기로 집안은 완전 금수저고.

안정된 미래엔 레드카펫이 쫙 깔려 있고.

외모는 어디 하나 손볼 구석이 없어 보일 정도로 아름답다.

오랜 친구 사이이고 흉폭한 본성을 알고 있으니 건드릴 생각이 나지 않는 거지.

아마 보통의 남자였다면 진작에 한 번 일을 내고 말았으리라.

그러고 이 녀석한테 뒤지게 얻어 맞았겠지.

성격 빼고는 완벽에 가까운 녀석이 원하는 거게 뭘까?

있다고 해도 그걸 내가 들어줄 수 있을까?

나는 정말로 모르겠다.

"나중에, 나중에 필요할 때 말할 테니 목 씻고 기다려."

"잠깐, 이거 반년 내라고 유효기간을 정해두면 안될까..?"

묵혀두고 있다간 심장이 조마조마해서 살지를 못할 것 같다.

설마 허락해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불안했지만 다행히 예은은 알겠다며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얼굴을 보아하니 화도 나름 풀리신 모양.

이제 볼 일을 봐도 될 듯하다.

"그럼 이제 TV 킨다? 적어도 결과는 봐야 하니까."

"흥, 어차피 키지 말래도 킬 거면서."

입을 삐죽 내밀면서 눈꼬리가 가라앉은 게 영 불쾌해보이긴 해도, 이게 이 녀석의 평소 모습이다.

불편했던 심기가 많이 풀린 것 같아 다행이다.

나는 내 방에 있는 텔레비전.

구체적으로는 40인치가 조금 안되는 TV의 채널을 돌려 롤챔스를 켰다.

경기의 흐름은 예상대로 일까.

독나타스 대 이번 시즌에 처음 데뷔했다는 TSL 2군, TSK와의 경기였다.

2부 리그를 뚫고 롤챔스까지 왔다고 해봤자 2군은 2군.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경기의 흐름은 일방적이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다.

"독나타스가 빨간색이지?"

예은이 나를 향해 바보같은 물음을 던져왔다.

방송 상단만 봐도 어느 팀이 블루팀이고 어느 팀이 레드팀인지 다 나와있다.

예은이 아무리 화가 머리 끝까지 났었던 상태라고 해도 그걸 구분 못해서 물어보는 게 아니다.

이기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던 쪽이 정반대다.

경기의 승패가 예상과는 완전히 빗나가버렸다.

레드팀이, 독나타스가 밀리고 있다.

이변이 벌어지고 있었다.

<싼티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이러면 한타도 못하고 또 억제탑을….>

독나타스의 원딜러 싼티나.

최고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일류의 실력을 가졌다.

독나타스가 가진 이름값에 부족하지 않다.

그런 그가 한타 대치의 도중에 짤려버렸다.

다름아닌 르풀랑의 슈퍼플레이로 인해 어떻게 반항도 못하고 사망해버렸다.

게다가 몬테소리의 해설에서 들려오는 또 라는 말.

방송을 킨지 얼마 안되어 추측에 불과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르풀랑이 하드캐리를 하고 있다.

이는 KDA만 봐도 얼추 감이 잡힌다.

'설마 이 녀석..'

나는 순간 소름이 끼쳤다.

알고 있는 선수다.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다.

신생팀, 이제 막 데뷔한 주제에 이 정도의 역량을 뿜어낼 수 있는 플레이어.

테이커밖에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조금 다르지만.

'미역슨..!'

현재 진행되고 있는 롤챔스 윈터시즌 조별리그 B조의 경기.

한국에 테이커가 있다면 북미에는 미역슨이 있다.

그 미역슨이 주인공이 된 TSK가 북미 3대 강팀 중 하나인 독나타스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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