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98화 (29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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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팀 워터와의 8강 경기가 끝나고 다음 날.

8강 자체가 마무리 지어지지도 않은 지라 시간이 꽤나 남아 있다.

빨리빨리의 한국과 달리 북미는 조금 널널하게 진행되는 감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팀내의 분위기도 여유로운 편이다.

지나치게 연습에 몰두하기 보단 마음 편하게 먹고 편하게 가자.

흔히 말하는 벼락치기 같은 건 없다.

그렇다고 이 녀석처럼 머리를 비우고 있어서야 안되겠지만.

"우리 다음 상대는 뭐하는 팀이냐?"

오늘도 연습시간 이후에 내 방에서 코칭을 받고 있는 이 녀석.

예은이 정말로 모르겠다는 어조로 나를 향해 물어온다.

그리고 실제로 얘 아무것도 모른다.

정말 무슨 생각하고 사는 지도 모르겠다.

"너 요즘 안 맞은지 오래 됐지?"

"일단 멱살은 놓고 얘기하자.."

반쯤 농담으로 던진 소리지만서도, 예은이 대진표에 관심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에도 1:1으로 코칭을 받고 있으니 신경 쓸 여력이 없는 것도 맞다.

솔직히 더 이상 내가 가르칠 건 없고 스스로 연습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본인이 희망해온다.

등 떠민 건 어쨌든 나이니만큼 이제 와서 모른 척 할 수도 없어 매일 어울려주고 있다.

"오늘 경기의 결과를 보면 알겠지. 그런데 갑자기 왜? 딱히 관심 없었잖아?"

"그야.. 뭐. 이유없으면 물어보면 안돼?"

그냥 째려보는 걸로 때우려고는 하지만 알고 있다.

이 녀석이 어째서 이러는지 모를 내가 아니다.

지난 8강 경기에서 두 차례 전부 출전을 못했으니 말이다.

꽤나 손이 근질근질한 모양.

어떻게 자신을 끼어 넣어 달라고 과격하게 표현하는 듯하다.

'그 성깔에 날뛰지를 못했으니 좀이 쑤시겠지. 그래도 정글러는 상대가 어디 쪽인지에 따라 정해지는 부분인 지라..'

토너먼트의 대진표에 따르면 오늘 8강에서 이기는 팀이 우리 CLC의 준결승 상대가 된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오늘 진행되는 경기는 팀 독나타스 대 TSK.

내 입장에서 보자면 어느 팀이 올라와도 껄끄로운 강팀이지만, 지난 조별 리그에서 아쉬운 성과를 냈던 독나타스에겐 희소식이다.

아무리 중요도가 낮은 조별 리그의 경기라곤 하지만 체면이 조금 까였던 건 사실이니까.

독나타스의 입장에선 설욕할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었다.

"니가 보기엔 어디가 이길 것 같아? 여튼 둘 다 잘하는 팀 맞지?"

"여튼으로 표현하기엔 너무 함축적이지 않을까 싶은데.. 뻔하다면 뻔한 대답이지만 솔직히 붙어봐야 알 수 있겠지."

어느 팀이 이긴다.

머리를 굴리기엔 변수가 너무 많다.

TSK가 독나타스를 조별 리그에서 꺾었다곤 하지만 그건 잣대가 될 수 없다.

여유가 있는 팀일수록 조별 리그는 기본기로만 치른다.

특히 이번 윈터시즌처럼 메타가 크게 바꼈을 때.

가용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는 꼭꼭 쟁여두는 게 답이다.

독나타스 또한 북미에서 손에 꼽는 강팀이니만큼 여유가 있는 쪽이다.

즉, 붙어보지 않으면 어느 쪽이 길지는 판가름 내리기 힘들다.

"나 가르칠 땐 잘난 척 하더니 그것도 모르냐?"

"그걸 알면 내가! 돗자리를 폈겠지 이뇬아.."

말 끝마다 정말 빡치게 하는 녀석이다.

어쩌면 내가 언제 한 번 확 폭발해버릴지 내심 기대하며 시비를 거는 걸지도 모른다.

아무리 화나도 롤챔스가 끝난 이후로 미뤄둬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럽다.

이런 녀석도 일단은 팀원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난 언제 나갈 수 있는데?"

"글쎄.. 작전은 오늘 경기 결과를 보고 짜기로 해서. 어느 팀이 올라오냐에 따라서 달라질 거야."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사실 내 생각이 반영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독단적으로 결정하기는 힘든 부분이다.

그럼에도 굳이 예상한다면 이러하다.

독나타스가 올라온다면 솔직히 안정적으로 갈 생각이다.

실력으로 싸움으로 한 세트씩 주고 받다가 의외의 카드 한두 개로 결정타를 먹일 속셈.

"그럼 TSK는? 미역국인가 뭔가가 그렇게 잘 한다며?"

"미역국은 아니고 미역슨이지만 어쨌든.. 정보가 부족해서 오늘 경기를 봐야 알 거 같은데?"

독나타스와 달리 TSK와는 스크림 경기를 가진 전적이 없다.

TSK에 대한 정보는 꽤나 부족한 상태다.

미역슨의 스타일이 공격적이니만큼 나도 받아칠 공산이 크긴 하겠지만.

"쫀 거 아니지? 기왕 할 거라면 나를 팍팍 쓰라고. 네 플레이면 어떤 거든 받아줄 자신이 있으니까."

"그거..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발언인 건 알고 말하냐..?"

예은 말마따나 자기 할 거 위주로 하는 프릭보다 예은이 초반 전투에는 알맞다.

이 녀석이 이렇게나 자신만만히 어필해 오는 데도 나름 이유가 있고 말이다.

"솔직히 너도 나랑 하는 게 좋잖아, 그치?"

"그렇긴 한데 넌.. 워낙 전투적이라 가끔 가다 살 떨려서."

대충 이런 느낌이다.

얼핏 킬각이 보일 때가 있지 않은가?

내가 한 번 해볼까? 생각하면 이 녀석은 이미 달려가는 중이다.

머릿속에서 조금 사고의 과정을 거쳤으면 싶은데 그런 게 없다.

좋게 말하면 호흡이 잘 맞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도박적이라는 느낌이다.

조금은 사양을 해줬으면 한다 이 부담스러운 녀석.

"흐응, 그래도 화끈하게 가는 편이 재밌기도 하고. 너도 싫진 않잖아?"

"솔랭이 아니니까 문제지. 이 자슥아.."

지루한 게임은 나도 사양이지만 확실히 이길 수 있는 게임에서 무리를 하고 싶진 않다.

가짜에어 마냥 1시간 가까이 질질 끄는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괜찮지 않겠는가.

보는 입장에서의 재미도 재미지만 승리를 챙기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리고 솔직히 나는 게임 재밌게 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나도 재미 좀 보자고 짜샤."

"무슨 뜻인진 알겠지만 너 요즘.. 은근히 들이댄다?"

내 멱살을 가볍게 잡은 예은이 옷깃을 흔든다.

그리고 섹드립을 쳐도 내가 쳐야지 왜 니가 치냐.

아무리 가릴 거 없는 친구 사이라지만 이 녀석 간간히 도를 넘어온다.

언제 한 번 본 때를 보여 줘야지.

"풋, 내가 너한테 당할 거 같냐?"

어느새 내 방에 꼭꼭 숨겨둔 막대과자를 찾아 한 입 베어 문 예은이 얄밉게 이죽거린다.

매번 다른 곳에 숨겨 놓는데 밥순이라 그런지 먹을 거 냄새는 귀신같이 잘 맡는다.

솔직히 이제 반쯤 포기하고 이 녀석이 과연 이곳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숨기게 됐다.

뺏어먹다 보면 언젠가 이 녀석한테도 양심이 싹 터서 보은은 하게 될 날이 올 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럼 밥 먹으러 가자."

"그럼은 뭐가 그럼이야. 과자를 그렇게 먹어 놓고 또?"

밥 먹을 배는 따로 있다고 말하는 게 꼭 술주정뱅이들의 헛소리 같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 술주정뱅이기도 하지.

적어도 대회가 끝날 때까지는 금주이니만큼 평소보다 식탐이 조금 많은 것도 이해해줄 만한 노릇이긴 하다.

"흥, 누가 보면 내가 진짜 많이 먹는지 알겠네."

"아니, 진지하게 많이 먹는 편이거든."

저러다 옆구리 살이라도 한 번 부르터야 놀릴 거리가 생길 텐데 안타까운 노릇이다.

로드 오브 로드 게임사도 그렇고 신도 그렇고 벨런스 패치가 너무 치우쳐져 있다.

성격을 조금만 버프시켜 주고 다른 부분을 너프시키는 방안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펑퍼짐한 츄리닝도 잘 어울리는 녀석이니 포동포동한 모습도 괜찮을 것 같은데.

"..너, 여기서 목 씻고 기다리고 있어라."

"어울리지도 않게 무슨. 그냥 가자 가."

뾰루퉁한 어조로 던지듯 말을 내뱉은 예은이 휙 하고 내 방을 나가버렸다.

옷차림 신경 쓴 적이 손에 꼽기도 민망한 녀석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어 저러는 걸까.

과자 부스러기 흘린 정도야 터프하게 팡팡 털어버리는 녀석이 이제 와서 부끄러운 척 하기는 늦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예은을 말리지 않았던 나는 후회해야만 했다.

예은은 그로부터 1시간이나 지난 후에야 다시 돌아왔다.

그 1시간 동안 있었던 변화에 의해 나는 지옥을 맛보게 되었다.

.

.

.

* * *

바로 어제 치뤄졌던 CLC 대 팀 워터의 8강 경기.

정말 과장없이 여느 결승전 이상의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두 가지 의미로 래딧이 완전 발카닥 뒤집혀 버렸다.

─미드 AP메타를 근본부터 뒤집어 버리네;

노텀에 발렐리아 무슨 그런 희한한 픽을 롤챔스에서 꺼내버리냐.

상대가 마법사 챔프할 거라는 거 알고서 카운터픽 준비해왔다는 건데 에러갓 챔프폭 미쳤다 진짜.

└그러니까 Error-GOD이지.

└제우스 뺏어가 놓고 털리던데ㅋㅋ 와전 쌤통이더라~

└카운터의 카운터라니.. 팬티 지릴 뻔했음.

래딧이 뒤집어진 두 가지 의미 중 하나.

첫 번째는 Unknown Error, 이제는 CLC의 Error 선수라 통용되는 선수가 선보인 두 가지 픽이다.

노텀과 발렐리아라는 독특한 챔피언을 꺼내 현 메타를 완벽히 카운터팀으로 화제가 되었다.

Unknown Error는 두란링 스타트를 하는 마법사 챔피언만이 해답은 아니라는 사실을 화끈하게 제시한 것이다.

─제우스로 한참 꿀빨았는데 이젠 선픽 절대 못 박겠더라..

선픽박으면 상대가 십중팔구 노텀 꺼내오는데 어떻게 방법이 없음.

그리고 탑에서 발렐리아하던 애들이 가끔 미드로 오는데 그것도 상대법을 모르겠어.

어쩌다 실수해서 스턴 한 번 걸리면 미드라인전이 그대로 터져버린다..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

└LOOOL 난 미드발렐 덕에 꿀 좀 빠는데. 원래 발렐리아 유저였지만 요즘은 탑보다 미드를 더 많이 서게 됨.

└난 아군이 미드발렐 한다고 설쳐서 꽁패했는데; 잘하는 사람 있긴 있냐?

└요즘 미드에 잭트도 오고 리픈도 오고 그거 카운터친다고 말화이트 오고 난리가 아니야 AMAZING LOL~!

Unknown Error가 8강무대에서 선보인 미드 노텀과 발렐리아로 인해 나비효과가 벌어졌다.

아니, 이게 진짜로 먹혀?

라고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챔피언들이 무려 롤챔스에서 먹히더라.

실제로 해보자 의외로 썩 괜찮기도 했으니 너도나도다.

자기도 한 번 꿀챔프 찾아보겠다는 심정으로 되도 않는 챔프로 솔랭에서 트롤하는 유저들이 늘어났다.

정말 뜬금없는 챔피언들이 미드에 서게 되는 일대 파장을 낳았다.

탑에서도 발렐리아의 카운터였던 말화이트가 미드에 서게 되고, 또 말화이트의 카운터가 탑에서 서게 되고.

현재 북미 솔로랭크는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혼란의 와중이다.

이 모든 것의 시발점이자 시X소리 나오게 만든 선수가 바로 Unknown Error.

그 에러갓이 프로무대에 데뷔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또 자신의 이름값을 북미유저들 가슴 깊숙이 새겨버렸다.

심지어 하나가 더 남아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라며?

또 보여줄 게 산더미 같다던데 에러갓.

인터뷰 건너 뗬는데 다시 봐야 하나.

└정확히는 '아직 보여주지도 않았다' 였지.

└아나운서가 잠깐 얼탔다니까. 혹시 말이 안 통하는 건가 하고.

└NONO. 에러갓 영어 유창해. 아시아계 미국인이잖아.

CLC의 Error 선수.

8강 무대가 끝나고 MVP로서 인터뷰를 가졌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 인터뷰 자리에서 폭탄 발언을 던졌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팀 워터를 상대로 꺼낸 놀라운 전략들.

차후 경기들도 있는데 너무 노출시킨 게 아니냐?

이만한 전략을 앞으로 몇 번 더 보여줄 수 있냐?

익살스럽게 질문을 던져왔다.

이에 Unknown Error는.

<나는 아직 아무것도 보여준 적이 없다. 앞으로의 경기를 기대해달라.>

진지한 어조로 또박또박 받아쳤다.

아나운서는 혹시 이야기가 잘못 전달됐나 재차 물어봤지만 대답은 같았다.

즉, 진심이다.

Unknown Error는 진심으로 자신은 전략을 노출시킨 적이 없다, 그렇게 이야기해 버렸다.

─준결승전에선 대체 얼마나 상대를 찜 쪄 먹으려고..

그런데 정작 까보니 별 거 없으면 그건 또 그거대로 웃기겠다.

솔직히 미드 노텀, 발렐리아급 카드가 또 있으면 그건 사기지.

└그 사기같은 존재가 바로 Error-GOD 이잖아?

└그건 또 그러네. 인정합니다.

└에러갓에게 대적할만한 미드라이너가 과연 있을까?

└있지 왜 없어. 미역슨도 미역슨이지만 기존팀들도 만만치 않은데. Error 솔직히 거품 좀 꼈지.

팬심만으로 부정할 만한 말은 아니다.

아마추어때부터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던 Unknown Error라지만 아직인 것도 맞다.

세계는 넓고 실력있는 미드라이너는 차고 넘친다.

독나타스의 라우드도 그렇고.

TSL의 맥도날드도 그렇고.

최근 떠오르는 스타, 미역슨도 그렇고.

Unknown Error가 자신의 실력을 입증받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 증명할 수 있는 무대가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다가오고 있는 중이지만 말이다.

─방금 미역슨이 라우드 솔킬냈다!

미역슨이 신챔하고 있어 신챔!

자드인가 뭔가 하는 닌자컨셉 챔피언인데 진짜 멋있다.

└자드? 그거 정글 챔프아니었나? CRAZY! 롤챔스 켜러 간다.

└리심 이상으로 피지컬 타던데 성능도 썩.. 근데 그걸 롤챔스에서 쓴다고?

└이번 윈터시즌 미드 라인업 장난아니네. 신인들이 미쳐 날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팀 독나타스 대 TSK의 3전 2선승의 8강 경기.

미역슨의 솔킬을 발판삼아 TSK가 독나타스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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