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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299화 (299/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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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이런데 와서 롤챔스 보니까 너무 좋다, 그치이~?"

내 어깨에 머리를 살포시 기댄 예은이 속삭이듯 이야기를 건네온다.

다리를 꼬고 앉아 내 어깨를 슬그머니 만지는 게 정말로 오해받기 쉬운 상황이다.

심지어 장소는 DVD방.

연인들끼리 그렇게나 자주 간다는 그곳에서 말이다.

그렇다고 딱히 무드있는 영화를 보고 있는 건 아니고.

시청하는 건 오늘의 롤챔스, 독나타스 대 TSK의 경기를 보고 있지만 겁나 부담되게 치근덕거린다.

이 녀석이 평소 그대로 였다면 꿀밤이라도 먹였겠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다.

나에게 쌓이고 쌓였던 감정을 조금 악의적으로 풀고 있다.

"그니까 좀 떨어져서 이야기.. 하자?"

"흐응, 나 여자로 안 보는 거 아니었어?"

딱 잘라 말해서 안 본다.

이전에 이 녀석이 내가 알던 리뮤인 걸 몰랐던 때는 그렇다 치고.

알게 된 이후로는 여자취급을 하지 않기 이래 봬도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노력이다.

가끔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넋을 잃을 때가 있을 정도로 한 폭의 그림같은 외모를 가진 예은이다.

성격이란 스테이터스를 완전히 포기한만큼 반비례하게 외모 하나는 출중하다.

그 한 폭의 그림에서 비속어가 재생되기 시작하면 확 깨기는 하지만, 다물고 있을 때는 웬만한 걸그룹보다 낫다고 생각될 정도다.

폄하하고 싶어도 솔직히 내 인생 이 녀석보다 나은 여자사람은 본 적이 없다.

"항복,  항복할 테니까 장난은 그만치지 좀..?"

"히히, 장난이 아니면 어떡할 건데?"

배시시 웃으며 눈웃음 치는 게 완전 암여우다.

이게 그 흉폭한 예은이라고 이야기 한다면 누가 믿어주겠는가?

그 불가능한 현실이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평소였다면 이런 장난 받아주지 않겠지만 상황이 조금 다르다.

밥 먹으러 가자던 밥순이가 1시간동안 방에서 몸단장을 하고 나왔다.

지금껏 몇 번인가 치마를 입은 적은 있지만 역시 예쁘긴 예쁘다.

솔직히 조금 혹했을 정도로 펑퍼짐한 츄리닝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나타났다.

'차려입지 않아도 눈에 띄는 녀석이 왜 이러는 거야 대체.'

데이트라도 하러 가는 듯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접근해오는데 어떻게 꺼낼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꾸미고 치장한다 해도 예은은 예은.

조금 상기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평소처럼 대하려 했지만 이 녀석이 삐딱하게 나와 버렸다.

"자기랑 DVD방에 와서 롤. 챔. 스같은 거나 쳐보니까 너~무 좋다, 그치이?"

"자기는 사기그릇 볼 때나 하는 말이고.. 롤챔스 보는 건 왜 또 불만인데?"

오는 길에서부터 이 녀석 상태가 묘해서 일부러 코스를 선회했다.

적당히 포장음식을 사서 지난 번에 갔던 DVD방을 향했다.

그 덕분에 늦지 않고 오늘 롤챔스를 시청할 수 있게 됐지만 난감하다.

밖에서는 그나마 덜했던 녀식이 이곳에 온 후로는 조금씩 선을 넘고 있다.

내 어깨에 살짝 기댄 예은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향긋한 내음이 코를 찔러온다.

아무리 연기인 걸 알아도 포장이 훌륭하니 속아 넘어갈 것만 같다.

이 녀석이 치는 장난을 받아들이는 내 입장은 가시방석이다.

정말 고역이 따로 없다.

"그러니까 나 너무 무시하지 말라고 짜샤. 이보다 더한 꼴 당하기 싫으면 알아서 뫼셔라?"

"우리 누님이 평소에 불만 많으셨.. 아, 그래 차라리 때려라 때려."

지난 번에 핫숏을 만났을 때도 그렇고 이 녀석 은근히 내숭 9단이다.

털털하기를 넘어 호쾌하기 까지 한 녀석이 다른 사람 앞에선 속이 느글거릴 정도로  태도가 돌변한다.

그래도 지금껏 나한테 이랬던 적은 없었는데.

외모도 그렇고 몸매도 그렇고, 겉모습만큼은 빼어난 녀석이 가면을 쓰자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아무리 남녀관계에 친구가 없다는 말이 있다지만 이 녀석과 내 사이다.

어지간한 일은 스스럼없이 다 받아주지만 방금의 상황은 정말로 난처했다.

요즘 들어 때려도 별로 안 아플 때가 많아서 솔직히 조금 만만히 보고 있었는데.

이런 수를 써올 작정이라면 조금 사려야할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은 화가 풀린 것 같아 다행이지만.

"빨리 척척 안 뜯어? 또 한 번 된통 당해 볼래?"

화가 풀린 건 좋은데 너무 우두루급 태세전환이다.

내가 이 녀석의 내숭때문에 뒤집어진 속을 가라앉히고 있던 사이.

어느새 평소의 모습으로 급변한 예은이 사왔던 음식의 포장지를 뜯고 있다.

떡볶이와 튀김종류, 그리고 순대까지.

한인타운이라 그런지 맛깔난 한국음식을 팔길래 이걸로 사왔었다.

곱상한 아가씨의 가면을 망설임없이 벗어던진 예은이 순대와 간을 젓가락으로 한 번에 집어서 떡볶이 소스에 찍어먹는다.

여자는 정말로 무서운 생물이다, 라는 말이 있지만 이 녀석을 보면 무서운 정도가 아니다.

이렇게 태도가 돌변할 정도라면 볼 밑에 점 하나 찍고 나타나도 주위 사람들이 못 알아볼 지도 모르겠다.

"빨리 안 먹으면 내가 다 먹는다?"

"먹는 건 좋은데 간만 먹지 마라.. 나도 간 좋아하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더욱 더 열심히 간만 쏙쏙 빼먹는다.

이 얄미운 녀석.

하지만 내가 이 녀석 하루 이틀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미안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는 귀다.

"귀? 내 뱃속에 있는데? 키킥."

이 녀석 딱 한 번만 줘패고 천국가는 게 소원이다.

사후세계에 가기도 전에 법조계의 힘을 휘둘러 나를 평생 깜방에 살게 할 지도 모른다는 게 문제.

부글거리는 속을 가까스로 식힌 나는 오징어튀김을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었다.

이 자식 김말이도 지가 다 쳐먹었다.

"어? 자드네. 저거 니가 준비하던 카드 아니었어?"

떡복이를 와구와구 복스럽게 먹고 있는 예은이 나를 쿡쿡 찌르며 묻는다.

이 녀석이 내 속에 깽판을 쳐놓은 동안에도 롤챔스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첫 번째, 두 번째 세트가 끝나고 마지막 세트.

현재 1:1로 독나타스와 TSK가 주고받은 가운데 이번 판으로 승패가 결정된다.

그런데 그 마지막 판에서 TSK가 아주 도박적인 수를 선보였다.

출시된 지 아직 2주밖에 되지 않은 자드라는 챔피언.

솔랭에서도 간간히 정글로 쓰이지만 리심보다 훨씬 못하다는 말이 있는 자드를 TSK에서 픽해버렸다.

'자드라..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

아직 자드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연구가 되지 않은 시점이다

사용법을 알고 있냐, 모르고 있냐의 차이는 명명백백하다.

내가 리심으로 와드방로를 알린 후에야 리심이 주류 챔피언이 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

자드는 리심만큼이나, 어떤 면에서는 리심 이상으로 난이도가 높다.

사용할 줄 모른다면 탤런의 하위호환이나 다를 바 없다.

"근데 저 자드 뭔가 어색하지 않냐?"

예은이 떡볶이 소스를 입가에 묻힌 채 순대를 질겅거리며 물어온다.

곱상한 아가씨는 개뿔이 확 깬다.

뭐, 이 녀석이 남자들의 환상을 가뿐히 즈려밟는 건 둘째 치고.

확실히 자드의 움직임은 군더더기가 많다.

챔피언의 특색을 전부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드는 캐리 중이다.

<자드! 궁극기 쓰고 표창을 다 맞혔어요! 이러면 궁데미지가 어마어마 합니다! 게다가 그림자로 카서트의 딱콩을 반 이상 피했어요!>

중계진은 완전히 신이 나서 떠들고 있었다.

신챔프인 자드가 화려한 움직임으로 카서트를 솔킬 내는데 성공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림자로 카서트의 딱콩을 피하면서 자기 자신의 스킬은 다 맞히자 관중석에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경기장의 분위기는 상당히 달아오른 듯해 보이지만.

'아이고, 저거 한참은 멀었는데.'

솔직히 말해서 내 입장에선 심드렁한 플레이다.

옆에서 떡볶이를 격하게 흡입하고 있는 예은 또한 별 감흥이 없어 보인다.

그도 그럴 게 이 녀석.

나랑 한두 판 같이 게임을 한 게 아니니까.

"음, 취소. 자드에 한해서는 니가 쟤보다 잘하네."

"너.. 나를 인정해주는 게 그렇게 싫냐?"

자드의 플레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예은이 한 소리 내뱉더니 다시 먹는데 집중한다.

혹시 남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많이 사왔는데 음식물 쓰레기 버릴 일은 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잘 먹는 거야 좋은 일이니 그렇다 치고.

이 녀석의 말마따나 내가 보기에도 미역슨의 자드는 미숙함이 엿보인다.

"쟤는 새까만 양날도끼 가네? 넌 딴 거 가지 않았냐?"

"그랬지. 나야 뭐 워낙 독보적이니까."

예은이 내 허벅지를 세게 꼬집는다.

태클을 기대하긴 했지만 꼬집는 건 정말 반칙인데.

특히 허벅지는 아무리 단련해도 진짜 더럽게 아프다.

사람을 아프게 때리는데 도가 튼 녀석이다.

"그런데 넌 왜 새까만 양날도끼 안 가고? 요즘 새까만 양날도끼 좋잖아?"

음료수를 꼴깍꼴깍 마시면서도 말할 건 다 말한다.

확실히 예은의 의문따나 궁금할 수밖에 없는 사항이다.

그리고 이는 자드라는 챔피언의 성능이 그렇게나 좋았음에도 쓰이지 않았던 이유기도 하다.

자드의 난이도가 괜히 로드 오브 로드의 전 챔피언들 중에서 손꼽히는 게 아니니까.

자드는 정말로 신경 쓸 부분이 많은 챔피언이다.

마지막 세트를 TSK가 챙기게 된다면 우리 CLC와 4강에서 맞붙게 된다.

그렇게 되면 나와 미역슨은 미드에서 자웅을 겨루게 될 터.

참으로 기대되는 흐름이 아닐 수 없다.

나도 모르게 내심 TSK의 승리를 바래버릴 정도로.

"...히죽히죽 기분 나쁘게."

들뜬 마음이 얼굴에 나타나 버린 걸까.

내 음료수캔까지 뜯어서 반쯤 마셔버린 예은이 눈치를 주며 나무란다.

남을 나무라기 전에 내 몫, 니 몫 구분은 확실히 해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나는 예은에게서 빼앗은 음료수를 목에 넘기며 생각에 잠겼다.

미역슨을 어떻게 상대할 지에 대한 구상을 슬슬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경기의 흐름이 이를 대변해준다.

.

.

.

* * *

팀 독나타스 대 TSK의 세 번째 세트.

준결승 진출자를 결정 짓는 마지막 한타에서 자드의 맹활약이 눈부셨다.

수호 악마까지 나와버린 자드가 독나타스의 원딜러, 싼티나가 플레이하는 미포를 따낸 후 산화했다.

중계를 맡은 도리아와 몬테소리의 해설이 터져나왔다.

<자드! 자드를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궁쓰면 무조건 원딜이 죽고 시작해요!>

<미스터 포텐을 고른 게 최악의 한 수가 됐습니다. 생존기가 있는 원딜러를 골라야 했는데 말이죠.>

흔히 AD미드는 한타에서 유통기한이 있다는 말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탤런.

스킬쿨을 한 번 돌린 후에 집중포화를 맞고 사망해 버린다.

물론 Unknown Error같은 장인도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는 예외.

마법사 챔피언들과 달리 조냐의 물시계같은 생존템이 없는 AD챔피언들은 한타에서 점사를 맞고 사망해버리기 일쑤다.

그 이유 하나때문에라도 AD미드는 꺼려지곤 하지만 잘 성장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방금 한타에서 자드는 우월한 폭딜로 원딜러를 녹여버린 후에 자신은 수호 악마를 통해 부활했다.

라인전에서 완전 흥해버린 자드가 부활의 효과가 있는 수호 악마를 구입했기 때문.

물론 이 뿐이라면 라인전 흥한 르풀랑이나 산다라와 다를 바가 없겠지만 AD미드는 AD미드만의 장점이 있다.

부활한 자드가 카서트에게 평타를 쑤셔박자 체력이 깎아내는 건 순식간이었다.

<자드의 패시브가 카서트에게 터졌습니다! 체력이 반절 이하인 적에게 추가 피해를 입히는 효과! 카서트가 더 버티지 못하고 조냐를 사용합니다.>

현재 한타에서 자드는 혼자 2인분을 해낸 셈이다.

원딜러 죽이고 카서트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게다가 어지간한 스킬들을 몸으로 받아내기까지 했다.

카서트의 궁이 남아있기는 해도 이만한 결과를 뒤집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번 한타를 내주게 되면 독나타스에겐 뒤가 없다.

초중반에 자드때문에 크게 말렸던 독나타스는 억제탑을 내준 상황이다.

대신 그 이후의 한타에서 크게 선전해 어느 정도 게임의 흐름을 따라갈 수는 있었지만 그것도 여기까진가 보다.

<승자도 패자도 부끄럽지 않은 명경기였습니다. 승부를 가릴 수 있었던 건 역시 미역슨 선수의 자드겠죠.>

CLC의 Error 선수가 8강에서 노텀과 발렐리아를 선보이며 현 메타의 모범답안을 제시했다면.

미역슨 선수는 그것을 개량해 훌륭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규 챔피언 자드.

지금껏 그 용도가 애매해 탑이나 정글로나 간간히 쓰이던 자드를 미드로 사용해 마지막 세트에 종지부를 찍었다.

라인전에서부터 카서트를 솔킬내며 한타에서도 뒤지지 않는 멋진 활약을 해 보였다.

미역슨 선수의 자드로 인해 TSK가 준결승 진출을 확정지으면서 기대해봄직한 매치가 성사됐다.

어쩌면 CLC의 Error 선수의 노텀, 혹은 발렐리아와 미역슨 선수의 자드가 맞붙게 될 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롤챔스의, 아니 로드 오브 로드의 유저라면 가질 수밖에 없는 흥분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아나운서는 첫 번째 세트와 마지막 세트의 MVP로 선정된 미역슨 선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과 Unknown Error, 누가 이길 것 같냐고.

아나운서의 넉살스러운 질문에 미역슨 선수는 충격적인 발언으로 되받아쳤다.

============================ 작품 후기 ============================

귀찮으심에도 잊지 않고 눌러 주시는 추천 정말 감사합니다.

부족한 작가 힘내라고 쿠폰 보내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고맙습니다.

*크리스마스 때 12월 내에 3연참 한 번 한다고 약속 드렸는데 그게 아마 내일이 될 것 같습니다. 별 일없으면 내일 세 개분 올리겠습니다.

항상 재밌게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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