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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미안해 정말로!"
평소 가볍기 그지없는 그 프릭이 진지한 어조로 팀원들을 향해 사과해온다.
준결승전의 첫 번째 경기.
가장 큰 패인이 프릭 자신의 동선을 읽혔기 때문이었다는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지는 듯하다.
"하아.. 그 타이밍에 설마 찌를 줄은 몰랐어.. 진짜 그 타이밍만 넘기면 정글링이 엄청 무난해지는데.."
"그러니까 찔렀겠지만.. 아무래도 읽힌 것 같다."
프릭이 리심에게 퍼스트 블러드를 내주게 된 이후로 경기는 처참하게 흘러갔다.
질질 끌려 다니다가 오브젝트 내주고 한타에서 터지고.
퍼블을 먹은 리심과 초중반이 강한 산다라를 어떻게 말릴 수가 없었다.
탱커진이 잘 성장하지 못한 터라 산다라를 어떻게 물 수도 없다.
물다가 오히려 역으로 죽어버리기가 일쑤.
깔끔하게 한 세트를 내주게 되었다.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으니 너무 괘념치 마. 그런데.. 잘도 그런 도박수를 뒀단 말이야."
코치인 라이로가 무언가 석연치 않다는 어조로 중얼거린다.
나 또한 걸리는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대체 얼마나 되는 시간을 투자했는지는 몰라도 적팀이 조금 지나칠 정도로 준비를 잘해왔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에 연연해서야 될 것도 안되는 법.
멘탈이 나간 듯한 프릭을 위해서라도 한 마디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프릭이 실수를 했다기보다는 적팀이 정말 프릭의 플레이를 잘 분석해온 것 같네요."
"그래, 내 실수 아닌 거 맞지?"
편을 들어주고 할 말은 아니지만 프로게이머가 단순한 카정에 당하는 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프릭이 눈치없이 떠들자 부스의 기온이 조금 내려갔다.
찌릿하고 째려보는 예은의 눈초리는 정말 익숙해지지를 않는다.
하지만 어쨌던 간에 선수교체가 필요한 것 또한 사실.
성향이 분석된 듯한 프릭을 한 번 더 기용하기엔 불안요소가 크다.
"그러니까 나를 쓰라니까?"
"알았으니 재촉 좀 하지 말고, 꼬집지도 말고!"
5전 3선승제다.
단판제, 혹은 3전 2선승제와 달리 첫 판의 중요는 비교적 떨어진다.
오히려 첫 판의 패배는 워밍업을 한 셈 쳐도 된다.
그리고 같은 수를 또다시 취해오지 못하게 예은의 말마따나 교체를 하는 것이 확실한 수가 맞다.
이번만큼은 네가 이겼다.
"마음껏 날뛰어 봐라."
"진작 그럴 것이지. 주장 나으리 비위 맞추기 정말 힘드네."
예은이 투덜투덜 프릭의 자리를 뺏어 앉는다.
그러고서 곧바로 셋팅작업을 시작한다.
태도가 조금 뻣뻣하긴 해도 할 때는 하는 녀석.
이 녀석의 성깔만큼이나 반격의 봉화는 격하게 불이 붙을 것 같다.
.
.
.
* * *
─Welcome to Summoner's field.
두 번째 세트의 밴픽에서 상대는 르풀랑을 가져갔다.
그 하나의 수만으로도 TSK가 면밀하게 준비를 해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모르긴 몰라도 첫 세트에서의 산다라는 프릭의 스타일을 생각한 픽이었을 것이다.
'산다라가 갱킹에 취약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어.'
수비적인 정글러인 프릭은 초반 갱킹을 지양한다.
때문에 산다라를 픽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두 번째 세트는 다르다.
다름아닌 예은이 정글러다.
예은이 공격적인 성향을 가졌다는 걸 알고 있는 상대는 생존기가 탁월한 르풀랑을 픽했다.
이는 TSK의 머리를 맡고 있는 사람의 기량이 출중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확실히 까다로운 게임이 될 것이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해줄까?>
아직 미니언도 채 생성되지도 않은 초반.
예은이 삐딱한 어조로 물어온다.
딱히 화가 나있다기 보단 긴장이 되는 모양이다.
첫 번째 세트를 내주게 된만큼 바톤을 연이은 예은의 부담이 분명 있다.
그리고 이왕 게임을 뛰게 된 거 어떻게 해서든 이기고 싶겠지.
설욕을 하고 싶은 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나는 이번 판에서 가장 적절하다고 할 수 있는 챔피언을 꺼냈다.
바로 미역슨이 플레이했던 산다라를 역으로 뺏어왔다.
'산다라 장인 미역슨이라.. 내 산다라가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는데.'
나 또한 산다라에는 일가견이 있다.
미역슨의 산다라보다 못한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는다.
더욱이 공격적인 예은의 플레이에 맞춰주기에 산다라만한 챔프가 또 없다.
"마음대로 날뛰어 보자고 너답게."
<하, 그 말 후회하지 말라고?>
라인에 미니언이 도착하는 것으로 대화의 흐름은 끊어진다.
긴장이 되는 승부의 시작이다.
1패를 껴안고 가야 하는 나도 마찬가지지만 미역슨 또한 기분이 영 언짢을 거다.
자신이 플레이했던 산다라를 뺏어 오다니?
특히나 산다라 장인인 그로서는 찜찜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그 찜찜함을 떨쳐내기 위해서라도 전력으로 맞붙어 올 터.
서로가 봐주지 않는다.
콰득!
산다라는 1레벨에 가장 강한 챔피언 중 하나다.
깡뎀도 계수도 높은 Q스킬, 검은 구체를 4초마다 쥐어뜯는 게 가능하기 때문.
그에 비해 르풀랑은 스킬쿨이 긴 이동스킬, 날조 하나 뿐이다.
그렇다고 녹록하다는 소린 아니다.
콰득!
검은 구체를 사용하는 순간은 극히 한정된다.
아무리 두란링에 의해 어느 정도 마나관리가 된다고 쳐도 난사하는 건 부담이 된다.
적이 CS를 먹으려는 순간만을 노려 잡아뜯는다.
그 덕에 벌써 두 개나 되는 CS를 놓치게 했다.
'이 별 거 아닌 손해를 누적시키다 보면.'
이렇게 CS를 15개 정도 손실시키면 1킬에 준한다.
지루하다면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씩 격차를 벌리는 게 프로의 라인전.
물론 마냥 압박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파앗!
내 검은 구체가 쿨타임을 기다리는 그 잠깐의 시간.
미역슨의 르풀랑이 날조로 돌진함과 동시에 평타를 한 방 날려온다.
눈치 싸움의 시작이기도 하다.
'반 박자 느리게.'
르풀랑은 날조를 한 번 더 사용하면 처음 이동했던 위치로 되돌아올 수 있다.
그렇기에 신중해야 한다.
이동한 르풀랑에게 검은 구체를 뜯을 것이냐.
아니면 르풀랑이 날조를 돌아갈 위치에 검은 구체를 뜯을 것이냐.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고 만다.
챔피언의 기본 스펙 차이가 있어 르풀랑의 평타는 산다라보다 조금 강력하다.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져 검은 구체를 섣불리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서로 주고 받는 평타 데미지의 차이는 크지 않다.
그렇게 주고 받는 사이에 르풀랑은 원위치에 돌아갈 수 있는 3초의 시간이 지나가 버린다.
그 순간을 반박자 느리게 노려 검은 구체를 잡아뜯는다.
콰득!
빗맞힐 수가 없다.
르풀랑은 나를 노렸던 대가를 고스란히 되돌려 받는다.
거기에서 끝나면 안된다.
콰득!
앞으로 르풀랑은 미니언을 먹을 때마다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
르풀랑은 한 번 더 내 검은 구체를 허용해야만 했다.
겨우 1레벨임에도 불꽃 튀는 라인전이다.
치열한 공방전을 주고 받는 사이에 서로가 2레벨을 달성했다.
'실력이 조금 모자란 상대였다면 E스킬을 찍었을 테지만.'
산다라의 E스킬, 검은 파동은 르풀랑에게 있어 곤욕스러운 스킬이다.
하지만 그 만큼이나 섣불리 사용하기 어렵다.
수비적인 용도로 찍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몰아붙일 예정이다.
그를 위해 W스킬, 구체 투척을 두 번째 스킬로 선택했다.
토옹!
검은 구체에 비하면 한층 더 긴 사거리.
나에게 콤보를 박기 위해 접근하던 르풀랑이 투척된 구체를 맞고 둔화된다.
그렇게 둔화된 르풀랑에게 다가가 검은 구체를 잡아뜯는다.
파앗!
더 이상 맞는다면 위험하다는 생각에 르풀랑은 날조를 사용해 도망가지만 이렇게 되면 또다시 내 시간이다.
날조의 쿨타임동안 나는 프리하게 견제를 우겨 넣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유리하게 라인전을 이끌고 있다고 해도 방심은 허용되지 않는다.
'한 순간이야.'
초반 라인전은 산다라를 플레이하는 내가 조금 더 편하다.
그런 데다 이렇게 초반의 눈치 싸움에서 승리하기까지 하면 얼핏 일방적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이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어디까지나 CS차이.
킬로 연결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
이 이상 라인을 벗어나 르풀랑을 견제한다면 산다라의 약점인 갱킹을 허용해버리고 만다.
<리심 미드에 가는데.. 함 뜰까?!>
"그니까 너무 과격하다고 너."
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어차피 리심은 그다지 싸울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저 내가 미드라인을 과하게 압박하지 못하도록 커버를 온 셈이다.
그러면서 만약 욕심을 낸다면 어떻게 칼같은 킬각을 노려볼 속셈이겠지.
은근한 눈치를 주고 있다.
'마냥 적의 의도대로 놀아주지는 않겠지만.'
미드라인에서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이를 통해 스노우볼을 굴릴 여건도 실력도 된다.
다만 조금 기다릴 뿐.
아군 정글러 예은의 말카림은 아직 성장이 필요하다.
콰라락!
내가 방에 가둬놓고 쫑알쫑알 연습시킨 챔피언이다.
예은의 스타일 알맞기도 하거니와 팀파이트에서 말카림만한 챔피언은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6레벨 이전까지는 성장이 필수.
예은의 말카림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부단히 정글을 돌며 6레벨을 목표로 하고 있다.
티링!
나 또한 라인주도권을 바탕으로 르풀랑보다 빠르게 궁극기를 배우는 6레벨을 달성했다.
산다라의 궁극기, 검은 급습은 압도적인 순간누킹을 자랑한다.
그 대신에 단일 타겟팅 스킬이라 변수를 만들기 힘들다는 단점.
이번 게임의 흐름은 도가 나오든 모가 나오든 과격해져야 한다.
예은이 바라는 대로 화끈하게 가준다.
찰칵!
아테나의 부패한 술잔, 그 하위템을 가지 않는다.
마법 관통력의 신발과 두란링을 하나 더.
한마디로 극딜과 기동성을 동시에 노린다.
아군 말카림과 호흡을 맞추기 위함이다.
그것도 두 가지 의미로.
띠리리리링~!
유령화와 멸망의 질주를 발동한 말카림이 봇라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봇라인은 핫플레이스다.
광우스타처럼 공수전환에 능하지 않은 루나는 몰아칠 땐 화끈하지만, 반대로 당할 땐 허무할 정도로 맥없이 죽어버린다.
그 탓에 필히 봐줘야 하는 타이밍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지금이다.
첫 블루를 먹은 르풀랑과 이를 리시해준 리심이 동시에 봇라인을 덮친다.
치이잉..! 키잉!
르풀랑의 금빛 사슬이 루나를 옭아맨 후 터져버린다.
그 효과로 1.5초간 제자리에 속박돼 버리는 루나.
아무리 서포터치고 단단한 편에 속하는 루나라지만 일점사를 당하면 견딜 수 없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루나가 그 목숨을 다하기 직전, 말카림이 도착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온 말카림이 적팀의 원딜러 헤이클린을 들이박는다.
하지만 이미 3:4의 상황.
아직 5레벨이라 궁극기는 없어도 초중반이 강력한 리심이다.
여기에 더해 탈력까지 걸린 말카림은 꼼짝없이 샌드백처럼 두둘겨 맞는다.
그렇게 맞으면서 까지 벌어낸 시간.
헛되이 하지 않는다.
토옹!
이래 봬도 최대한 빨리 걸어온 거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과감하게 점멸 후 검은 구체를 소환해 리심을 잡아뜯었다.
미리 들고 있던 검은 구체 또한 던져서 데미지를 추가했다.
이로써 주위에 있는 검은 구체는 총 다섯 개.
최대치는 아니여도 만족할 만한 딜링이 박힐 것 같다.
파바바바밧!
산다라의 궁극기, 검은 급습은 주위에 있는 검은 구체의 수에 따라 데미지가 증폭된다.
기본적으로 날리는 구체가 세 개.
그리고 내가 방금 소환하고 던진 구체가 한 개씩.
이렇게 다섯 개나 던져버리면 리심은 끔살이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하지만 고작 리심 하나 따려고 귀하디 귀한 점멸을 낭비할만큼 나는 바보가 아니다.
방금 내가 풀피에 가까운 리심을 녹여버린 탓에 말카림의 체력이 차올랐다.
말카림의 W스킬, 흡수하는 원혼은 적이 받는 피해량의 2할만큼 자신의 체력을 회복시키기 때문.
내가 마관신과 두란링이라는 공격아이템을 선택한 덕에 말카림은 녹아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점멸을 쓴 이유는 그 하나 뿐만이 아니다.
파아아아앙!
산다라가 자랑하는 광역 스턴기인 검은 파동은 주위에 있는 검은 구체를 굴려서 적을 스턴시킨다.
그런데 방금 내가 궁극기를 사용한 탓에 내 앞에는 구체가 다섯 개나 존재한다.
쏘냐가 쏘아내는 파워센도처럼 성가신 적들을 전부 스턴 상태에 빠트릴 수 있었다.
기절한 적들 중 가장 먼저 노리는 것은 당연 르풀랑.
로크도그의 크레이브즈가 선봉에 선다.
콰앙!
아직 6레벨을 찍지 못한 크레이브즈지만 코앞에서 분사시키는 세 갈래의 산탄은 화끈하다.
가까이서 맞히면 곱빼기로 추가되는 데미지는 방어력 아이템이 없는 르풀랑에게 소름끼치는 피해를 선사한다.
결정타가 끼얹어진다.
쿠워어어어어!
리심의 죽음으로 6레벨을 달성한 말카림.
말카림의 궁극기가 르풀랑과 헤이클린을 동시에 덮친다.
아직 유령화가 발동돼 있는 말카림이 빠른 속도로 앞장서 적들을 갈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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