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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에도 겨울이 찾아왔다
미드 베루가를 보여주는 척하며 서폿으로 전환한다.
다섯 번째 세트는 귤선장과 마찬가지로 결승전을 위해 사전에 준비해온 조합 중 하나였다.
이를 행하기 위해 우리 CLC의 서포터 데이비드 리는 베루가를 부단히 연습했다.
하지만 연습을 했다고 반드시 상응하는 결과가 나오리란 보장은 없었다.
팽팽하게 이끌어 가던 다섯 번째 세트.
중요한 실수에서 터진 수 번의 실수는 게임의 패배로 연결되었다.
특히 마지막 한타에서 점멸 불허의 장벽을 빗맞혔던 건 상당히 아쉬운 플레이였다.
"미안하다. 연습때는 정말 8할 이상 맞혔는데.."
정말로 고개를 들 면목이 없다는 듯 진중한 어조로 사과를 해온다.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도 싶지만 리는 책임감이 무거운 성격이다.
연습때 보여줬던 플레이를 실전에서 살리지 못한 자기 자신에 대한 책망이 막심한 듯했다.
'2대2 상황에서 한 세트를 내줘 버렸으니.. 부담이 심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전에 프릭도 플레이 패턴을 읽혀 팀에게 패배를 안겨줬던 적이 있다.
바로 얼마 전 TSK와의 준결승의 첫 번째 세트에서 있었던 일.
그때 프릭은 한 번 사과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깔끔하게 잊었다.
프릭처럼 철따서니없이 굴라는 건 아니지만 이미 해버린 실수는 잊고 빠르게 멘탈을 회복하는 편이 팀에게는 좋다.
리는 프릭과 달리 대체할 인력이 없으니까.
'연습기간이 부족한 것 치고 상당히 잘 따라와 줬는데. 역시 실전에서 쓰기엔 난이도가 높은가.'
베루가의 E스킬 불허의 장벽을 그 끄트머리에 정확하게 맞히는 훈련.
데이비드 리는 상당한 시간을 쏟아 연습했고 숙련도는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회무대의 긴장감이 발목을 잡으며 실전에서 실수를 연발하고 말았다.
자기 자신의 플레이만 녹이기에도 벅찬 TSL과의 결승전이다.
불허의 장벽의 명중률까지 신경 쓰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부하였을 지도 모르겠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을 감안하지 못하고 베루가를 연습시킨 내 잘못도 있고.
하지만 일단 그 건에 대해선 입을 다물도록 하자.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지금까지 잘하다가 딱 한 번 실수한 거잖아?"
"후우.. 네 말이 맞아. 다음 경기는 정말 중요한 고비니까. 정신.. 차려야겠어.'
나의 정성어린 위로에 데이비드 리가 자신의 볼을 팡팡 치며 진탕되었던 마음을 가다듬는다.
대회 측에 연락해 휴식 시간을 조금 달라고도 했으니 그 안에 진정할 수 있겠지.
우리의 듬직한 서포터 리의 마인드 컨트롤 능력을 믿는다.
'이러면 아무래도 꺼내 놓아야 하려나….'
다섯 번째 세트를 패배함으로서 2 대 3.
수세에 몰렸다는 건 부정할 수는 현실이다.
한 번 더 경기를 내준다면 이대로 결승전이 끝나버리고 만다.
블라인드 픽으로 치뤄지는 마지막 세트.
지금껏 저격밴으로 고통받고 있던 우리 CLC에게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진다.
마지막 세트까지 닿기 위해서라도 여섯 번째 세트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여기까지 오지 않는 한 꺼낼 생각이 없었던 전략.
비장의 카드를 꺼내 놓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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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North America 윈터 시즌.
막바지에 다다른 결승전은 그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요리로 치자면 메인디쉬.
어쩌면 블라인드 픽으로 치뤄지는 마지막 세트가 메인디쉬를 겸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모른다.
이번 여섯 번째 세트에서 CLC가 패배하고 만다면 말짱 도루묵이 되니까.
CLC가 이겨야만 일곱 번째 세트가 치뤄지고, 그러지 못한다면 TSL이 이번 윈터시즌의 우승을 확정짓는다.
CLC에서 이번 여섯 번째 세트를 위해 아주 큰 준비를 해왔나 보죠?>
<저도 기대가 됩니다. 사실 서폿 베루가도 그 의도 자체는 정말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픽같았거든요.>
여섯 번째 경기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는 CLC.
한 팀에 한 번씩만 가질 수 있는 작전 시간을 대회 측에 요청했다.
CLC는 최대 15분까지 연장할 수 있는 작전 시간을 최대치까지 활용해 무언가 결론을 내린 듯했다.
확실한 정보는 아니고 유리벽 너머로 언뜻 보이는 부스 안에서 그런 액션이 보였기 때문.
가장 활발하게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다름아닌 Unknown Error였기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어떤 기묘한 픽을 준비해왔을까?
시작하는 여섯 번째 세트의 밴픽창에서 CLC가 첫 번째로 가져간 챔피언은 과연 관중석을 떠들썩하게 만들만했다.
<카지트! 드디어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Error선수 본인의 픽은 아닌 것 같죠?>
몬테소리가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짚어줬다.
CLC가 두 번째 세트와 세 번째 세트를 고전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바로 팀의 에이스인 Unknown Error가 집중 마크를 받은 탓이다.
다른 라인이 반반을 해주지 못하니 제아무리 에러갓이라 불리는 그라도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네 번째 세트에서 꺼낸 귤선장이란 카드.
Error선수 본인도 미드 이즈레알이라는 의외의 픽을 꺼내 TSL을 크게 압도했다.
가히 일방적인 경기력으로 한 세트를 따냈다.
다섯 번째 세트는 데이비드 리 선수의 베루가가 실수를 거듭하면서 말리긴 했어도 충분 선전했다고는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CLC는 Error선수만이 주인공인 팀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낸 것과 다름이 없다.
네 번째 세트에선 탑의 헤일커드, 다섯 번째 세트에선 서폿의 데이비드 리 선수였다.
그러니만큼 이번 여섯 번째 세트에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건 MyumMyum선수가 아닐까.
중계진의 예측은 당연한 흐름이었다.
<제가 알기로는 탑도 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헤일커드 선수가 수비적인 성향인만큼 말씀하신 대로 정글 카지트가 맞을 것 같습니다.>
아리따운 여성 선수가 징그럽게 생긴 벌레 챔피언, 카지트를 플레이 한다니.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몬테소리는 굳이 입밖으로 내지 않았다.
이전에 한 번 아프게 찔려버린 야생장미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다.
하지만 TSL이라고 카지트에 대한 대비를 안 한 게 아니었다.
다른 챔프면 몰라도 카지트는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다.
Unknown Error가 솔랭에서 행한 카지트의 플레이 방식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번 결승전을 위해 TSL이 쏟은 수고. 알 수밖에 없는 카운터 픽입니다. 과연 스캐너라면 카지트를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거라 사료되네요.>
어째서 Unknown Error의 카지트가 그렇게나 유명세를 탈 수 있었을까?
이유야 여러가지 있겠지만 한 가지로 일축하자면 화끈한 카정이다.
상대가 혼자 있으면 추가 피해를 주는 카지트의 고독이란 특성.
초반부터 상대팀의 정글로 침입해 1:1을 압도해버린다.
만약 킬로 연결된다면 거기서 게임이 끝난다.
6레벨이 되어 Q스킬을 진화시키면 안 그래도 쎈 카지트의 갈고리 찍기가 입이 떡 벌어진다.
길가다 만나면 그대로 사망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정글 카지트가 사기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카지트의 치명적인 단점.
바로 정글링이 너무 느리다는 점이다.
즉, 카정으로 이득을 못 보면 파리 목숨의 메뚜기가 돼버리고 만다.
<스캐너는 1:1 상황에서 엄청나게 강력한 챔피언입니다. 카지트에 꿇리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타겟팅 제압기인 궁극기 또한 카지트를 마크하기에 최적화돼 있습니다.>
<카지트가 CC기에 약하긴 하죠! 몬테소리 해설위원이 정말 날카롭게 지적하셨네요.>
프리시즌에 들어오면서 스캐너는 궁극기의 판정이 너프됐다.
그 이후로 픽률이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제압이라는 강력한 CC기를 보유한 스캐너다.
아무리 날고 기는 카지트라 한들 1:1 상황에서 스캐너를 잘못 만나면 역관광 내지 배달이다.
스캐너의 궁극기, 꼬리 끌기는 상대 챔피언을 타겟팅으로 잡아 아군에게 배달할 수 있다.
TSL는 Unknown Error의 주요 픽들을 아주 제대로 분석해왔다는 걸 밴픽싸움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밴픽싸움은 어디까지나 밴픽싸움일 뿐이다.
실상 게임에서는 카지트가 킬을 쓸어담아 스캐너를 압도할 지도 모른다.
성장기대치가 높은 카지트는 킬을 먹기 시작하면 상성이고 나발이고 무시해 버리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예상된 픽이고 상대가 이를 받아쳤다는 건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
그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는 다른 카드를 CLC에서 꺼내왔다.
다름아닌 끠들스톡이었다.
<역시 Error갓입니다. 재밌는 챔프 하나 보여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호오.. 정말 흥미로운 픽이네요. 그럼에도 굳이 따지고 넘어가자면! 솔로랭크에선 종종 보이긴 합니다. 물론 대회무대에 나오는 건 처음이니만큼 어떠한 활약상을 펼칠 수 있을지 눈여겨봐야겠습니다.>
CLC에서 새로이 선보인 챔피언인 끠들스톡.
비주류라고 할 수 있는 끠들스톡은 미드 아니면 정글이다.
그러나 카지트가 이미 픽된 상황이니 아무래도 미드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흐름.
결정적으로 정글 끠들스톡은 잘 쓰이지 않는다.
<제가 알기로도 정글 끠들스톡은 단점이 명확한 걸로 기억해요. 정글링도 느린 편에 속할 뿐더러 6레벨 이전의 갱킹이 힘들다는 점이 치명적이죠.>
<게다가 잘못 물리면 그대로 끔살을 당하는 물몸 챔피언입니다. 정글러로 쓰기에는 부적합한 챔피언이 아닐까. 실제로 솔로랭크에서도 미드 승률이 더욱 준수한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끠들스톡이 잘 픽되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소수나마 장인들이 존재한다.
3초간이나 지속되는 끠들스톡의 Q스킬 공포.
미드라인에서 갱호응 좋기로 이만한 스킬이 또 없다.
Unknown Error도 그 점을 착안해 미드끠들을 연습해왔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혹시 미드 카지트에 정글 끠들스톡은 아닐까 조마조마 했는데 역시 아니네요. 뮴뮴 선수와 Error선수가 마지막까지 서로 챔피언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예, 아무래도 미드 카지트는 이전에 보여주었던 자드와 노텀과는 달리 돌진기가 하나 뿐이라.. 아니, 설마!>
발렐리아처럼 명확한 CC기도 없지 않느냐.
말을 이으려더 몬테소리는 순간 숨이 멎었다.
뮴뮴 선수와 Error선수가 시작 직전에 픽을 바꿨기 때문이 아니다.
뮴뮴 선수는 카지트를, Error 선수는 끠들스톡을 들고 게임을 시작했다.
시작해버린 이상 무르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동네 기원에서 두는 바둑이 아니니만큼 당연한 소리.
하지만 만약에, 만에 하나.
몬테소리는 두 눈으로 화면을 직시하고 있었지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중계 과정에서 생긴 오류가 아닐까 오히려 그점을 의심하고 있다.
이미 사람을 보내 카메라측에 확인을 요청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오류가 아니었다.
Unknown Error는 정말로 단타를 들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전략인 건 맞습니다. 그런데 전례가.. 있었던가요?>
이번 윈터시즌이 첫 해설인 몬테소리가 조심스럽게 캐스터인 도리아를 향해 말을 묻는다.
미드라이너가 정글을 잡는다.
그리고 정글러가 미드를 잡는다.
상식적으로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규정 상으로 가능하긴 한 건지 그조차 알지 못한다.
몬테소리는 해설 준비를 꽤나 빠듯하게 해오는 편이지만 이번 경우는 상식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났다.
<게임사가 주최하는 모든 로드 오브 로드 대회는 기본적으로 같은 규칙을 따릅니다. 현지 상황에 따라 조정이 되기는 하지만 큰 틀에서는 같아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일단 됩니다.>
도리아 캐스터는 몬테소리와 달리 경력이 길다.
해설자가 아닌 캐스터인만큼 게임 내적인 지식은 얕아도 규정같은 것은 칼같이 외우고 있다.
그런 도리아 캐스터의 입에서 확답이 떨어졌다.
<최근 봇라인과 탑이 스왑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미드라고 정글에 못 갈건 없겠죠. 하나 확실할 건 경기가 중지되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대회 진행팀에서는 혹시 CLC 측에서 실수를 한 게 아니냐.
부스 안에 들어가 확인절차를 밟았고 이 때문에 대회는 잠시 중단됐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잠시.
경기는 무르는 일없이 이대로 속행된다.
─Welcome to Summoner's field.
이윽고 열 명의 선수들이 소환자의 전장에 발을 디뎠다.
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TSL의 선수들은 어리둥절하리라.
그 속사정은 CLC의 팀원들만이 알고 있다.
잠깐의 소동이 있긴 했지만 지체없이 시작되는 여섯 번째 세트.
코스요리의 메인디쉬가 어떠한 양상을 보일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침 넘어가는 소리.
진짜로 들리는 건 아니지만 경기장이 떠나가라 들리던 환호성이 줄어든 것만 봐도 명확하다.
너무나도 들뜬 기대에 차마 벌리지 못하는 입, 그리고 두 눈이 경기장의 메인 화면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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