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323화 (32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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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북미의 롤챔스.

그 결승전의 우승을 확정 지었다.

기나길었던 고생의 여정은 보람찬 수확의 순간을 맞이했다.

기뻐하고 싶다.

하지만 몸이 받쳐주지 않는다.

결승전 내내 단 한 경기도 빼놓지 않고 빠릿하게 서있던 오감.

단 한 순간의 실수도 허용하지 않기 위해서 머리 속을 계속 쪼아대던 긴장감이 역류해온다.

쌓이고 쌓였던 피로와 함께 내 육체와 정신을 흐트러뜨린다.

상대팀인 TSL과 좋은 경기를 했다는 의미의 악수를 마치고.

올라오지 않는 목소리를 가까스로 짜내 인터뷰를 끝내고.

팬들 사이를 지나쳐 경기장을 빠져나오는 순간까지.

어떻게든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곧바로 무너져 내렸다.

"야, 무겁잖아."

휘청 기울어진 방향은 오른쪽.

예은의 어깨에 기대는 모양새가 되었다.

푹신하게 느껴지는 감촉이 잠을 솔솔 불러일으킨다.

"무겁다고 했..잖아..!"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예은이 옆구리를 쿠욱 찌르자 정신이 살짝 돌아온다.

이대로 잠에 빠졌다면 그 이상의 소망이 없었을 텐데.

냉혹한 현실은 작디 작은 소망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예은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몸을 일으킬 기력이 없다.

"곧 라이로가 밴을 끌고 올 테니 조금만 참아봐. 그렇게 알콩달콩 껴안고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키킥, 둘이 신혼살림 차리면 볼만하겠다."

플레이 스타일이 분석 당한 탓에 지난 TSK와의 경기 이후로 출전할 기회가 없던 프릭.

팀원 중에 가장 팔팔한 녀석이 깐죽거리는데도 어떻게 제지할 방안이 없다.

예은도 힘이 없긴 마찬가지인지 째려만 볼 뿐 제재를 가하진 못한다.

천 너머로 느껴지는 예은의 보들보들한 피부가 기분좋게도 느껴질 무렵.

내 몸이 무게가 슬슬 부담이 되는지 나를 예은이 나를 떼어 놓으려고 한다.

나는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지만 이 녀석도 나만큼이나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계속 기대있기도 뭣하다.

아쉬움을 무릅쓰고 내 힘으로 일어서려던 찰나, 검은색 밴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CLC의 팀마크가 떡하니 박혀있는 밴.

그런데 운전석 창문이 내려지며 보인 얼굴은 라이로가 아니었다.

"이야~ 다들 수고 많았어. 피곤한 것 같은데 타서 몸 눕히고 있어 바래다 줄 테니까."

라이로는 아니지만 그 이상으로 기억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반가우면서도 정말 이제 와서라는 느낌이 드는 못마땅한 남자였다.

"핫숏.., 해줄 말은 무지하게 많지만.. 일단 전 자렵니다."

"타이밍을 제대로 잡았는데? 자고 일어나면 난 또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나를 북미로 끌고 온 장본인인 핫숏디디가 밉살스럽게 이죽거린다.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많다.

그동안 어디서 뭘 했는지, 지금의 타이밍에 등장한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쩔 예정인지.

질문은 산처럼 쌓였지만 나는 무척이나 피곤하다.

어울려주기 힘들 정도로 내 몸은 잠을 원한다.

밴에 타자마자 거부할 수 없는 졸음이 쏟아진다.

내 옆에 탄 예은도 꽤나 피곤한지 눈을 감는다.

그렇게 기억이 끊기기 직전.

밴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밤하늘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듯 아름답게 느껴졌다.

.

.

.

* * *

선수들의 게임은 끝났지만 솔로랭크는 이제야 불이 붙는다.

해는 진작에 졌고 평소라면 잠에 들었어야 할 시간임에도 여느 때 이상으로 불타오르고 있다.

바로 조금 전에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North America 윈터 시즌, 그 결승전이 끝나버린 여파다.

1세대 E스포츠, 갤럭시 크래프트에선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팬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로드 오브 로드는 보는 맛 이상으로 하는 맛도 제법이다.

그래서인지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보면 따라하고 싶어지게 된다.

물론 그 이유 하나만이 아니다.

솔직히 갤럭시 크래프트는 일반인과 프로게이머 간의 피지컬 차이가 넘사벽이라 시늉조차 내기 힘들었다.

기껏해야 새로운 빌드가 나오면 따라쓰는 정도.

그런데 새로운 빌드라는 개념이 로드 오브 로드로 따지면 꿀챔, 혹은 꿀템트리다.

갤럭시 크래프트처럼 종족이 겨우 세 개 아니기 때문에 대회게임을 관전보다 보면 꽤나 자주 나온다.

그렇게 딱 보면 왠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느낌이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솔로랭크의 큐를 돌리고 만다.

더욱이 이번 롤챔스 윈터 시즌.

흥미를 돋굴 만한 픽들이 나와도 너무 많이 나왔다.

특히 결승전은 완전히 미쳐 날뛰었다.

탑도, 서포터도, 정글도, 미드도, 심지어 원딜까지도 지금껏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픽이 하나씩은 존재한다.

현재 솔로랭크의 접속률이 두 배 이상 치솟은 것은 확실히 이상이 아니었다.

그 쟁쟁한 꿀챔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이즈레알.

대부분 무극의 대검을 기반으로 치명타 템트리를 가던 원딜러들에게 있어 믿을 수 없는 템트리였다.

정글템인 도마뱀 장군의 영혼에 마나바라기, 탱커들이나 가끔 가는 얼음 장갑까지.

치명타 템이라곤 하나 안 가는 이색적인 원딜러다.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흐름이었다.

─서폿하는데 아군 이즈레알때문에 혈압 터지고 왔다.

내가 블츠로 그랩 야무지게 댕겨서 이즈레알한테 퍼블 먹여놨거든?

귀환하고 또 땡겨서 올타쿠나 했는데 이즈 딜이 하나도 안 나와서 역으로 터지더라.

영문을 모르겠어서 템창 보니까 이즈가 여제의 눈물방울 들고 있다.

대체 저걸 왜 사는 거야? 왜? 왜? 왜?

└후반가면 좋아요.

글쓴이-후반 가기 전에 라인전 터지는데?"

└몰라 암튼 좋음. Unknown Error가 썼으니까! LOL~

└원딜 이즈면 양반이지. 미드 이즈충들 아직 안 만나봤구나?

이즈레알은 프리시즌에 오면서 W스킬 빛의 파동의 공격속도 디버프가 사라졌고 그 탓에 픽률이 급감했었다.

하지만 현재 솔로랭크에서 이즈레알의 픽밴률은 거진 100%에 수렴한다.

결승전에서 Unknown Error가 썼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그는 미드로 사용했지만 본디 원딜 챔프인지라 미드 유저도, 원딜 유저도 한 번씩은 건드려보고 있었다.

시즌2에 주류 챔프였던 만큼 이즈레알의 숙련도가 높은 유저들은 많기에 어찌 보면 다행인 일.

자드충들처럼 되도 않는 피지컬로 적에게 킬을 선물하는 유저들보단 낫다.

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즈 여제의 눈물방울이 쓰레기인 이유!

마나소드가 마나바라기로 변할라면 25분 이상 걸리는데 문제는 게임이 그 전에 터진다고.

여눈 이즈충들이 하도 노딜이라!!

그니까 좀 사지 말라고!

사지 말라면 좀 사지 마!

└스킬 쿨 계속 돌리면 20분 정도에 띄울 수 있음.

글쓴이-띄우면 뭐 하는데? 그 전에 터진다고!

└스킬쿨 계속 뿅뿅 돌리고 있으면 재밌음 LOOOL

글쓴이-윗놈 전번 까라. 형이랑 이야기 좀 나누자.

결승전이 끝난지 이제 겨우 반나절 정도다.

그럼에도 래딧을 포함한 로드 오브 로드 팬사이트들에선 낮 시간 이상으로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에 관심을 가지고 눈팅하는 사람들 또한 정말 많았다.

꿀챔의 사용법에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꿀챔이라는 건 남들이 하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빨아야 한다.

그래야만 랭크 점수를 1점이라도 더 올릴 수 있다.

어린 시절 동네 문방구 오락기에서 왕 고르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

챔피언의 기본 스펙이 우월한 것을 해야 다른 이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는 법이다.

─여눈 이즈는 암만 봐도 대회용이다.

누가 글 썼던 것처럼 솔랭에서 아군 이즈가 롱스워드 두 자루 대신 여제의 눈물방울 사오면 혈압터진다.

대회는 솔랭처럼 교전이 자주 안 일어나니까 후반 캐리 생각해서 쓸 수 있는 것 같아.

└명답입니다만 어차피 말귀 알아들을 사람 거의 없을 테니 일단 이즈는 밴하고 봅시다.

└그래도 정말 후반가면 좋긴 하더라. 마법 화살 뿅뿅 쏴대면 적들이 접근을 못해서 꿀잼.

└아싸리 극후반 가버리면 치명타템 올린 원딜러보다 약하던데? 내가 보기에도 글쓴이 말마따나 대회 전용 픽같다.

물론 이즈레알 뿐만 아니라 다른 챔프들도 관심을 끌고 있다.

개중에 가장 재밌는 것은 역시나 귤선장.

귤선장의 선입견은 빠르게 벗겨지고 있었다.

거미여왕의 카운터로서 인정을 받았다.

─귤선장 이거 의외로 괜찮네 LOLOL

솔랭하다 아군 1픽이 정줄 놔가지고 상대 거미여왕 살고 그러면 멱살 잡고 난리가 났었는데 이제는 그럴 일 없겠다.

귤선장하니까 궁으로 다른 라인 지원하는 것도 재밌고 라인전 버티기도 좋다.

거미여왕이 돌아가지고 1렙에 덤비면 가끔 솔킬도 땀. LOLOLOL

└1렙 최강 귤선장!

└얼음 장갑이랑 탱템 두르면 한타도 제법 괜찮더라. 딱 1인분 해주는 느낌?

글쓴이-난 이제 거미여왕 살리고 귤선장으로 꿀 빨라고 LOLOLOL

난이도가 가장 낮다고 할 수 있는 귤선장은 벌써부터 이목이 모아진다.

하지만 파랑템을 가는 이즈레알도 그렇고 CLC가 대회에서 썼던 픽들은 대부분 숙련도를 요구한다.

MyumMyum 선수가 사용했던 미드 카지트가 대표적이다.

─뮴뮴 누님이 사용했던 미드 카지트 이거 물건이긴 한데.

이즈레알처럼 후반 갈 필요없이 중반만 돼도 한타에서 미쳐 날뛰는데 그게 꽤나 어렵네.

근접 챔프라서 라인전도 버티는 것도 힘들고 한타서 진입 타이밍 보는 것도 까다롭고.

잘못 들어가면 점사 받고 녹더라.

└REAL 근데 확실히 챔프 스펙 좋은 거 같아.

└뮴뮴 누님처럼 2렙 솔킬 화끈하게 딸 수 있으면 풀리고 시작할 텐데 그건 힘들지.

└우리 뮴뮴 누님 미쳐….

카지트는 벌써부터 차후 대세픽이 될 거라 전망을 받고 있다.

연구가 이루어진지 이제 겨우 반나절이니만큼 설레발일 수도 있겠지만 상당한 호평인 건 사실이다.

라인전이 고되긴 해도 신규 아이템 크리스탈 유리병 덕에 버틸 만하다.

더욱이 카지트의 W스킬 침뱉기에는 체력회복 옵션이 달려 있어 라인유지력에 도움을 준다.

이즈레알과 비슷하게 마나소드를 올리기는 하지만 챔피언 자체 딜량이 꽤 준수하다는 것 또한 한몫한다.

굳이 마나바라기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11레벨을 찍어 날개진화만 마치면 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한다.

─에러갓이 사용했던 정글 끠들스톡은..

솔직히 잘 모르겠는데 3초 공포 하나는 좋더라.

그래도 고질적인 정글링 속도라던지 물몸이라던지..

연구가 좀 많이 필요한 듯.

└정글링이 느려? 에러갓은 6분대에 궁극기 배우던데?

└그러게 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궁을 배운 거지? 밀린 라인 먹은 것도 아니고.

└대놓고 경기로 보여줘도 알 수 없는 에러갓.. 그야 말로 알 수 없는 오류 그 자체시다..!

마지막으로 베루가 서폿.

베루가 서폿은 한 마디로 묻힌 분위기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거니와 애초에 난이도가 너무 높다.

써본 사람이 분명 있을 텐데도 성공담이 올라오지 않는다.

언젠가 데이비드 리 선수가 대회 무대에서 베루가 서폿으로 대활약을 하는 날이 온다면 또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선 베루가 서폿에 관심을 보일 이는 없으리라.

대회 무대에서 나온 특이한 픽이 베루가 서폿 하나면 몰라도 재밌는 챔프가 너무나도 많이 나왔다.

─Unknown Error때문에 새벽 다섯 시가 돼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결승전만 딱 보고 잘라 그랬는데 막상 보니까 롤하고 싶어졌어.

저렇게 꿀챔프를 뿌려 버리면 솔직히 할 수 밖에 없잖아?

이거 내 잘못 아닌 거 맞지?

└그렇습니다. 이게 다 Unknown Error 때문이니 에러갓을 탓합시다.

└내일 여덟 시에 출근인데 에라 모르겠다. 난 한 판 더 돌리러 간다.

└나 말고도 밤샌 사람 엄청 많구나.

이번 롤챔스 윈터 시즌의 결승전.

북미 굴지의 강호 TSL을 신생팀에 불과한 CLC 2군이 잡고 우승한 것만으로도 최소 한 달은 떠들석한 화젯거리다.

그런데 게임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끼친 영향이 적지가 않다.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잠 못 이룬 팬들은 그냥 자업자득이지만서도, 그 외만 따져도 상당히 많다.

지난 시즌에 선전하지 못했던 팀들도 새로운 전략과 픽을 잘 활용한다면 기존의 강팀들을 충분 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더욱이 조별 리그부터 결승전까지 선보인 수많은 꿀챔들.

이는 솔로랭크에 그야말로 대격변을 불러일으킬 사건이다.

어쩌면 이로 인해 차후 로드 오브 로드의 패치 사항에 영향이 가는 일이 생길 지도 모른다.

이미 한 번 흘러갔던 로드 오브 로드의 역사는 조금씩 눈치채지 못하게 바뀌어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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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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