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326화 (326/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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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핫숏과의 이야기는 대략적으로 끝이 났다.

그 후에 예은과 핫숏의 빚청산에 어울려준 나는 뜨거운 국밥을 한 숟갈 뜨러 갔다.

잠을 푹 잤음에도 띵한 머리.

딱히 술을 마신 건 아니라지만 어제 무리한 결과다.

'근 한 달간 빡세게 달려온 여파기도 하지.'

그 보상이라는 건 아니지만 일주일 정도 휴가가 나왔다.

대회도 끝났고 차후 있을 LCF까지도 한 달 반이나 남았으니 지금이 적기는 적기다.

푹 쉬는 것도 일 잘하는 요령 중 하나라고 아주 잠깐 정도는 쉬어도 괜찮겠지.

물론 일주일이나 허비할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너, 알고는 있냐?"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국밥집에는 예은과 함께 왔다.

국밥을 뜨던 나는 의미심장한 어조로 질문을 던졌다.

내 물음에 예은은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국밥을 마저 우겨 넣는다.

이 녀석이 그럼 그렇지.

"내일 무슨 날인지 정말 몰라?"

1년의 마지막 번째 달인 12월

그것도 네 번째 주는 의미가 상당히 깊다.

특히 나와 예은 사이에는 더더욱이다.

24일이라고 한다면 알아들으련지 모르겠다.

"근데.. 왜?"

입술 사이로 삐죽이 튀어나온 콩나물을 쪼옥 빨아먹은 예은이 수저를 놓고 다소곳 대답한다.

이제서야 사태의 중요성을 입감한 모양.

오늘이 바로 23일이다.

그리고 내일 24일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날이다.

"내일 시간 있지?"

"있기는.. 하지만…."

시간이 없다거나 둘러댈 수는 없을 거다.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지만 예은도 일주일 가량의 휴일을 약속받았다.

하지만 쉬는 날이라고 마냥 한가하게 보내서야 쓸까.

"그런데 일주일이나 쉬어도 돼? CLC 너무 한가한 거 아니야?"

"이곳 북미 팀들 기준으로 더 노는데도 많아. 이래 봬도 꽤 빡센 편이라고 핫숏이 그러더라. 그리고 말 돌리지 마."

얼렁뚱땅 말을 돌리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놓아줄 생각이 없다.

어떻게든 내일 단판을 짓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다.

"어떤 거.. 할 건데?"

예은이 국밥을 세 스푼 정도 우겨 넣어 부풀었던 볼을 가라앉힌다.

어느샌가 입 주변도 티슈를 사용해 깨끗이 닦았다.

이렇게 보면 정말 요조숙녀가 따로 없지만 그 놀라운 태세변환에 새삼 놀랄 내가 아니다.

"내일 오전 11시 30분까지 내 방으로 오도록 해."

"가는 거야 상관 없지만.. 왜 굳이 11시 30분이야? 니 방엔 왜 가야 해?"

궁금한듯 시시콜콜 물어오지만 대답해줄 이유는 없다.

너는 그저 잠자코 오면 된다.

여느때처럼 준비는 내가 할 테니까.

"흐응, 일단 알겠지만은.."

마지 못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예은이 국밥을 마저 먹는다.

어째선지 아까보다 먹는 게 시원찮다.

그냥 푹푹 퍼서 퍽퍽 넣으면 되지 왜 답지 않게 오물오물 대고 있을까.

모를 일이지만 약속에 대한 확답을 받은 이상 신경쓰지 않도록 했다.

'계획대로 잘 흘러가는 구나.'

만약 거부했다면 강제로 끌고 갔을 테니 좋은 선택한 거다.

바야흐로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내일, 24일은 일분일초도 낭비할 시간이 없다.

누구보다 빠르게 결착을 지어야 한다.

로드 오브 로드의 새로운 시즌.

최정상의 자리를 가장 빠르게 노릴 수 있는, 그러면서도 가장 주목받기 좋은 나날이다.

아주 약간만 시간을 투자한다면 분명 가능하다.

나와 예은의 듀오라면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

.

* * *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윈터시즌이 끝났다.

아주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이게 또 그렇지 만도 않다.

이 롤챔스라는 건 굳이 북미에서만 열리는 게 아니니까.

─어휴, 북미는 TSL이 몰락하고 난리가 났네.

유럽은 모스코5가 최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TSL도 한물 갔고 내가 보기에 북미는 이제 끝장났다.

LCF고 뭐고 더 치를 것도 없어.

이미 롤드컵에서 끝물 다 빠졌다는 게 증명된 마당이야.

└니네 게시판 가라. 그리고 발전없는 유럽보다 북미가 낫지.

글쓴이-헛소리! 그 누구도 넘보지 못할 정도로 오롯하게 왕좌를 지키는 거다. TSL처럼 고꾸라 나자빠질 일이 없어.

└그러니까 그게 발전이 없는 거래도? 픽만 봐도 메타 변화에서 유럽이 북미 못 따라오고 있잖아.

글쓴이-압도적인 강팀은 다소의 변화구따위 힘으로 찍어누른다. 굳이 잔머리를 굴릴 필요가 없지.

로드 오브 로드 커뮤니티 사이트 래딧.

래딧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미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영어권 사람들이 사용하는 게시판.

다른 하나는 유럽쪽 사람들의 게시판.

본디 유럽쪽은 메인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정말로 어쩌다 보니 소규모 게시판이었던 유럽쪽이 크게 활성화되었다.

굳이 이유를 따진다면 생뚱맞게도 언어 때문이다.

독일이면 독일, 프랑스면 프랑스 당연히 자국의 커뮤니티가 하나씩은 존재하다.

하지만 그 규모가 래딧에 비하자면 너무나도 작았다.

작은만큼 노는 맛도 없고 이렇다 할 정보도 올라오지 않는다.

이렇게 나눠져 바에야 이미 활성화돼 있는 북미의 래딧 사이트를 이용하자.

일단은 영어가 같은 알파벳을 쓰는만큼 이용하는데에 크게 불편이 없더라.

유럽사람들 입장에선 한국인이 영어 배우는 것 마냥, 그렇게 어렵지도 않았거니와 번역 프로그램만 써도 알아볼만큼은 굴러간다.

이러한 이유로 현재는 북미와 유럽의 로드 오브 로드 유저들은 래딧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하나.

아무래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다.

그들끼리 작게 분파도 있을 뿐더러 모인다 해도 북미쪽과는 약간 감정싸움,  특히 부심같은 게 부딪힌다.

지금도 지금이지만 시즌2에는 더할 수밖에 없었다.

북미와 유럽, 과연 어느 쪽이 로드 오브 로드의 최강자일까?

이 논제는 끝나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았다.

실제로 래딧 안에서도 분쟁이 꽤나 잦았을 정도다.

시간이 흘러 서로 간에 어느 정도 넘지 않을 선같은 것이 그어지고, 대형사고가 터지는 일까진 없어졌지만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다.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파이널, LCF의 시즌.

북미와 유럽의 팀들이 전부 참가하는 국제 대회가 열릴 날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북미 롤챔스 나도 봤지만 수준이 쪼오금~

잡기술로 연명하는 거 같은데 아무래도 실력 싸움 들어가면 쨉이 안되지.

LCF 우승도 준우승도 우리 유럽이 차지한다.

└응 올해도 지난해처럼 탈탈 털리게 돼있어.

글쓴이-지난 번에 뽀록 한 번 터졌다고 오래도 우려먹네.

└그리고 잡기술이 아니라 메타 적응력. 말은 똑바로 해라.

이러한 느낌으로 자잘하게 싸워댄다.

조금 글로벌틱한 느낌이긴 해도 커뮤니티라는 곳이 으레 그렇다.

서로 치고 박고 싸우고, 욕하고 감정싸움하고.

그 본질은 어딜 가나 크게 다르지가 않다.

가장 재미난 볼거리던 롤챔스가 끝난 마당이니 서로가 심심하기까지 하다.

LCF의 시즌이 다가올수록 마찰은 더욱 더 거칠어 지리라.

그리고 이기게 되는 쪽은 거진 1년 가까이 우려먹으며 진 쪽을 갈구게 되리라.

팀간의 신경전을 넘어서 연합 단위다.

미국과 캐나나등이 포함된 N.A.

유럽 전역의 국가들이 포함된 E.U.

불꽃 튀는 신경전의 도화선은 이미 붙어진지 오래다.

.

.

.

* * *

예은과 약속을 잡은 날은 내일이지만.

오늘이라고 딱히 일이 없었던 건 아니다.

나는 예은과 밥 먹고 쇼핑하고 영화보고 돌아다녔다.

꽤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거 데이트..같은 거 아니야?"

예은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의심스런 눈초리로 따라오던 예은이 슬슬 목 위쪽으로 혈액을 보낼 여유가 생긴 듯하다.

"아닌데?"

"흐응, 아닌가?"

고개를 갸우뚱하는 척 하면서도 음흉한 미소를 지어온다.

뭐, 남녀 사이에 웃고 떠들고 밥먹고 영화보면 데이트라는 말.

분명 오해를 살만한 일을 한 건 맞지만 평소 하던 일의 연장선상일 뿐이다.

영화 대신 롤챔스를 봤을 뿐 여느 때의 일과와 별 다를 바가 없다.

생략된 게 있다면 게임을 하지 않은 정도.

이 흉폭한 여우와 데이트라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오늘 나름 재밌었어."

눈을 가늘게 뜬 예은이 속삭이듯 작은 어조로 이야기해 온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늘 이 녀석 데리고 돌아다닌 게 데이트는 아니더라도 스트레스 풀이정도의 목적은 있었다.

이 녀석, 대회 준비에 있어 CLC의 누구보다 열심이었으니까.

그 보상이라고 하긴 뭣하지만 하루 정도는 어울려주는 건 어렵지 않은 수고다.

녀석의 말마따나 데이트 비스무리했던 오늘 하루.

내가 그동안 게임을 코칭해준답시고 갈궜던 몫을 톡톡히 돌려주려는 듯 아주 제멋대로였다.

본디 성깔도 시꺼먼 녀석이 고의적으로 틱틱대는 바람에 꽤나 고생했다.

다행히도 지금은 무언가 마음속 응어리가 풀린 모양.

표정부터가 많이 펴졌다.

'얼마 전만 해도 정말 얼음공주가 따로 없었는데 말이지.'

칠공주파의 일각이나 차지할 법한 진부한 표현이지만서도, 그만큼이나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싸늘했던 얼굴이 조금씩 풀어지더니 최근에 와서는 조금이나마 귀염상도 지을 줄 안다.

대부분의 경우는 맛있는 음식이 입에 들어갈 때긴 하지만 가끔은 별거 아닌 일에도 표정이 바뀐다.

그것만으로도 이 녀석에겐 있어 아주 큰 변화다.

앞으로도 더욱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며 폭력적인 부분도 사그라들길 기원한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내 몸이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때릴 일 없게 좀 잘하던가."

"이보다 얼마나 더 잘해?"

솔직히 요즘의 내가 못난 구석이 어디 있단 말인가.

예전처럼 방구석에 쳐박혀 게임만 하는 것도 아니고.

TV출연도 하는만큼 외모에도 특히 옷에도 많이 신경을 쓴다.

물론 이 녀석과 다닐 때는 평범하게 입지만 어디서 꿇리지 않게 근육도 제법 많이 붙었다.

옷걸이 자체가 제법 괜찮아졌다고 자부한다.

'이 녀석은 너무 사기캐니까 제외하고.'

츄리닝만 걸쳐도 존재감이 넘쳐나는 예은 기준이 아닌, 어디까지나 일반인 시점이다.

일반인 기준에서 나도 나름 훈남정도는 되지 않을까.

이곳이 한국이 아니라 증명을 할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훈남? 넌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찌질아."

"너 그 말 안 한지 꽤 된 것 같은데…. 그러고 보면  독설도 많이 줄었고. 무슨 심경 변화냐?"

예은이 대답은 안 하고 배시시 웃는다.

나를 보며 웃기만 할 뿐 한참을 침묵으로 일관하던 예은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반가운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내왔다.

그 내용이라 함은 언제나와 다를 게 없었다.

"밥 먹고 갈 거지?"

"내 그 말 안 나오나 했다."

오늘 하루 있었던 일과.

점심을 먹고 근처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죽이고.

심심해지자 영화를 봤다.

그러자 다시 배가 고파졌다.

정말 예은다운 반응이고 이 하나만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변하지를 않는다.

앞으로도 쭉 이렇게 있어줬으면 하는 바람.

어쩌면 이 녀석과 함께 하는 일상이 소중해진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대하고 있을게."

"뭐를, 메뉴를?"

이 녀석 먹이 고르는 것도 꽤나 일인데.

오늘은 어째선지 메뉴에 한해선 평소처럼 칭얼거리지 않았다.

주는 대로 묵묵히 잘 받아 먹고 있다.

그랬던 녀석이 저녁은 좀 챙겨 먹고 싶은 모양인 걸까?

"아니, 내일 말이야. 내일."

아주 살짝 눈가에 웃음이 지어진다.

예은의 표정 변화에 민감한 내가 아니라면 알아채지도 못했을 미묘한 웃음.

그 외에는 무미건조한 평소의 모습이다.

나만 알 수 있을 정도의 미약한 표정변화지만 무언가 기대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뭐, 확실히 기대 될 만도 하지.'

내일은 아주 특별한 날이다.

실망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대부분 해결이 된 모양이지만 그래도 있는 편이 확실히 나을 테니까.'

예은의 실력에 대해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커뮤니티 유저들.

솔로랭크에서 증명한다면 이견이 달릴 수가 없다.

가장 알아보기 쉬운 직관적인 잣대니 말이다.

듀오로 부려 먹을 속셈이 솔직히 있기는 하지만 그 해명을 함께 해주기 위함도 분명히 있다.

'그러고 보면 상당히 오랜만이야.'

예은과의 솔로랭크 듀오.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같아서 내심 설렌다.

이 녀석도 그 이후로 나름 성장했는데 또 막말을 내뱉고 사고를 치진 않겠지.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대비책을 강구하던 와중에 조금 신난듯한 느낌의 예은이 내 옆구리를 찔러왔다.

"가자, 찌질아. 오늘 저녁밥은 내가 쏠게."

"니가 웬일이냐?"

분명 미국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예은과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한식만 먹게 된다.

나라고 딱히 레스토랑에서 두꺼운 고기 써는 것이 입맛에 맞는 건 아니라 오히려 다행이긴 하다.

만날 때마다 느끼한 파스타를 먹어야 했다면 예은과 자주 돌아다니지도 않았겠지.

생각해 보면, 이 녀석과는 입맛부터 시작해서 은근히 잘 맞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이 가끔씩은 들곤 한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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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진도는.. 분명 나갈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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