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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329화 (329/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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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내가 솔로랭크에서 발렐리아를 주로 플레이하고 있는 이유.

딱히 암살자 챔피언을 카운터치기 좋아서가 아니다.

오히려 간단하게 생각하면 알기 편하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Unknown Error님이 학살 중입니다!

발렐리아만큼 솔킬을 따기에 최적화된 챔피언이 몇 없다.

너무한 말일 수도 있지만 서로 간에 실력차가 나는 경우, 라인전 우위를 확실하게 가져올 수 있는 챔피언이다.

스킬 구조 자체가 눈치 싸움을 요하는데, 이 눈치 싸움에서 무조건 이기니 당연히 이길 수밖에.

발렐리아는 스노우볼을 굴리기에 정말 효율적인 챔피언이다.

사실 라인전에서 솔킬 한 번 딴 것은 그렇게 까지 큰 차이가 아니다.

하지만 발렐리아는 그 약간의 차이를 기반으로 다음 킬을 쉽게 따낼 수 있다.

상대가 무작정 사려도 스킬 눈치 싸움에서 패배한 이상 답안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칼날 질주로 어떻게 미니언을 타고 들어갈지 예측하는 것 부터가 힘이 빠진다.

그리고 이게 과연 들어가는 건지, 아니면 다시 빠져 나오는 건지.

이 눈치 싸움에서 서로의 실력.

즉, 격의 차이가 여실히 나타난다

한 마디로 발렐리아는 양학이 용이하다.

더욱이 상대가 실수를 하는 경우도 많이 나온다.

방금 나는 자드를 솔킬 내고 포탑을 밀었다.

그러는 동안 꽤나 얻어 맞아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다.

쿠! 챠앙!

내가 딸피라는 걸 캐치한 상대팀의 정글러, 탈리반 3세가 갱킹을 왔다.

그리고 아군 정글러 누님은 탑에서 나이즈를 패고 계신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상황.

그렇게 생각하기 쉽지만 충분 극복할 만하다.

촤랏!

미니언을 타서 깃창을 간발의 차이로 피해낸다.

그리고 평형의 판결을 탈리반에게 때려박는다.

스킬레벨이 5까지 오른 평형의 판결의 기절 시간은 2초.

반피 이상 남았던 탈리반의 체력바가 사각사각 깎여나간다.

차랑!

차랑!

아무리 탈리반의 방어력이 높은 편이라 해도 버텨내지 못한다.

평형의 판결은 순수한 마법 데미지.

그리고 W스킬 파천살검류를 키면 평타에 고정 피해가 묻어난다.

결정적으로 순간 누킹력에 힘을 보태주는 광채의 칼.

평형의 판결의 스턴이 끝나마자 한 번 더 터지며 탈리반을 마무리한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Unknown Error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체력 낮다고 잘못 덤비면 역관광 당하기 십상이다.

그렇게 더블 킬에 타워까지 부수고 귀환을 하자 완성되는 삼종신기.

삼종신기가 나옴으로서 조금 더 빠르게 오픈을 받아낼 수 있게 되었다.

촤랏!

촤랏!

대회무대에서도 한 번 보여줬지만 미니언을 타고 가는 로밍은 알고도 대처하기가 힘들다.

설사 내가 대회에서 발렐리아를 하는 것을 봤다고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대처하기 힘들어진다.

라인전에 이렇게까지 흥해버리는 건 대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지나치게 잘 성장해 10분 초반대에 나와버린 삼종신기의 위력은 입이 닫아지지 않을 정도다.

철컹!

일단 평형의 판결에 맞은 순간 스턴이든 둔화든 간에 죽은 목숨이다.

봇에서 얌전히 파밍을 하고 있던 이즈레알은 방금 죽음이 정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점수대가 점수대.

쉽게 목숨을 내주지는 않겠다는 듯 필사적으로 대응해온다.

터엉!

적팀의 서포터 루나가 점멸 방패치기로 나를 후려쳤다.

원딜러를 지켜내겠다는 의지.

훌륭하지만 발렐리아의 패시브는 CC기의 지속시간을 줄여주는 강인함이다.

주위에 적이 두 명밖에 없어 그 효과는 최대치가 아님에도 충분하다.

나를 빠르게 잡지 못하면 이즈레알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

타앗!

타앗!

비전 점프를 사용해 뒤로 빠진 이즈레알이 카이팅을 하며 나에게 화살을 꽂아넣는다.

루나와의 연계를 생각하면 무시할 수 없는 데미지지만 여의치가 않다.

아무리 방템을 두르지 않았다고 해도 성장의 격차.

기본 체력과 방어력, 마법 저항력 등에서 현저한 차이가 난다.

구체적으로 3레벨이 벌어져 있다.

챵!

챵!

챵!

궁극기 이기어검을 쏘아내자 그나마 있었던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진다.

루나와 이즈레알을 동시에 긁어버리는 칼날은 상대에겐 데미지를 입히고 나의 체력은 회복시킨다.

그 칼날 하나하나의 데미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총 네 자루 쏘아 버리는 칼날을 전부 맞히면 원딜러는 반피가 훌쩍 넘게 까인다.

나를 부단히 때려대고 있는 이즈레알을 향해 질주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Unknown Error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이즈레알을 따내고 점멸을 비롯한 모든 스킬이 빠진 루나를 아군과 함께 추격한다.

따라가서 쿨타임이 돌아온 평형의 일격을 박아주자 나머지는 아군 봇듀오가 마무리한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렉이 걸려 두 번 울린 게 아니다.

내가 봇을 터트리고 있는 사이, 예은은 탑라인에 고속도로를 뚫어버렸다.

이미 전의를 잃고 반항도 멍하니 서있는 나이즈를 마주칠 때마다 죽이며 2차 포탑까지 철거했다.

적 정글도 막고 싶지만 저 성난 송아지의 뿔에 꿰여버리면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모양.

그저 멀리서 제발 억제 포탑까지만 오지 말라고 빌고 있을 뿐이다.

[전체]-미드 밀어주세요. 안 막습니다.

[전체]-GG. 한 수 배웠습니다. 역시 에러갓님 잘하시네요. 뮴뮴 누님도요.

미드, 정글, 탑, 봇라인까지 전부 터트려 스무스하게 항복 선언을 받아냈다.

오늘 나와 예은이 한 게임은 대부분 이런 느낌으로 진행되었다.

서렌을 치는 20분까지 기다리지 못하겠다고 미드를 오픈한다.

"잠깐, 너 그거 엔터 누르지 마라. 진짜로…."

<밀어줄 거 같냐? 우물에서 튀어 나와 색히들아..!>

라고 채팅을 쳤던 예은의 손을 가까스로 제지했다.

혹시라도 쳤다간 래딧에 뜨고 상대 게임단에서 항의가 들어오고 죄송하단 말로 끝나지 않는다.

기껏 쌓아놨던 예은의 이미지도 한순간에 무너지고 만다.

그걸 모를 만큼 바보인 녀석이 아닌데 정말로 치려고 했던 건 아니겠지.

"장난이야 장난. 내가 그런 험한 말을 할 리가 없잖아?"

"내가 알기로 얼마 전까진 실화였던 걸로 아는데 말이지."

예은은 결국 백스페이스키를 주르륵 눌러 채팅창에 올려두었던 욕설을 삭제했다.

그러고선 재밌는 게임을 했다며 채팅 내용을 바꿔 인사한다.

성격이 근본부터 배배 꼬여 있는 녀석이다.

"나 한 내숭 하지?"

"..그거 자랑 아니다. 이 자슥아.."

배시시 짓궂은 미소로 웃어오는 게 참 악질도 이런 악질이 없다.

굳이 내가 걱정 안 해도 알아서 잘 내숭 떨면서 이미지 관리하겠지.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자면 얼굴 반반한 기센 누님, 그 정도의 이미지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예은의 본성을 나 혼자 알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기도 하다.

딱히 친분을 자랑한다거나 하는 건 아니고 그저 순수한 감탄이다.

이 녀석에게 이런 모습이 있었구나.

알아간다는 것이 꽤 보람차고 재미진 부분이다.

'이전 생에서는 이때 뭐하고 지냈을까.'

예은과의 사이는 꽤나 가까워져 이제 서로에게 비밀이 많지 않다.

직업도, 목표도, 취미 생활도, 하다 못해 밥먹는 습관까지 공유하고 있다.

아마 예은은 이맘때쯤 유학 생활을 하고 있거나 대학을 다니는 등.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겠지.

그렇기에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나는 옳았던 걸까.'

프로게이머를 하자고 예은을 꼬드겼던 것.

분명 예은이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 권유하기도 했고 실제로 좋은 결과를 낳았지만 아직까지도 불안하다.

내 인생이 소중한 것처럼 이 녀석 또한 마찬가지니까.

어쩌면 내가 이 녀석의 인생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진다.

"뭘 그리 빤히 바라보고 있어?"

"아니 뭐…. 가끔 진지한 표정 지을 때는.. 나쁘지 않아서."

예은이 나를 지긋이 쳐다보더니 알 수 없는 소리를 해온다.

그러고 보면 너무 진지하게 생각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이 녀석이 어디 가서 손해보고 살 성격도 아니고 말이다.

.

.

.

* * *

그렇게 쭈욱 하루 온종일 듀오랭크를 돌린 결과.

24연승이라는 기염을 토해냈다.

배치고사의 10연승은 양학에 지나지 않았다 해도 놀랍기 그지없는 성과다.

배치운빨로 올라온 꽁승판도 제법 많았지만.

프로게이머나 그에 준하는 듀오도 제법 만나 고전을 면치 못한 판도 존재했다.

아무리 나와 예은의 듀오라고는 해도 롤은 5:5 팀플레이 게임이니까.

그리고 게임을 하다보면 말리는 판도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결과는 모든 것을 증명해준다.

'확실히 혼자서는 불가능했겠지.'

로드 오브 로드는 개인이 무쌍을 찍는다 해도 힘든 판이 존재한다.

듀오가 그만큼이나 빠듯하게 굴렀고 운도 조금 따라줬다.

정작 유명 프로게이머들은 아직 솔로랭크를 돌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한 부분을 감안한다 해도 말도 안되는 과업.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커뮤니티 사이트 등에선 아주 난리가 났을 테다.

그 놀라운 연승에 혁혁한 공훈을 세운 한 사람, 예은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쉬러 갔다기 보단 잠깐 준비가 필요하단다.

밤에 놀기로 한 약속.

기어코 받아낼 요량인듯 절대 자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했다.

'내 준비는 대략 마쳤는데.. 언제가 돼야 오려나.'

예은이 하도 늦게 오는 바람에 나 혼자 준비를 끝마치고 말았다.

그 준비라 함은 음식들.

나와 예은의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함이다.

아무래도 CLC 전원이 일주일 간 휴가 상태인 지라 대부분 숙소에서 자리를 비웠다.

고향에 갔거나 애인을 만나거나 하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와 예은이 고향을 가기엔 너무 멀다.

간다고 해도 딱히 할 게 없다.

나는 나와서 산지 오래라 친가에 가도 감흥이랄 게 없고.

예은은 오히려 가는 게 싫단다.

이전에 사정을 대강 들어 알고 있지만 사이가 썩 좋지 않다고 한다.

정확히는 예은 쪽에서 꺼리는 모양이지만 결과야 매한가지다.

이러한 뒷사정이 있어 오늘은 나와 예은만의 파티가 성립됐다.

똑.

똑.

문 쪽에서 조심스러운 노크소리가 들려온다.

평소의 예은이라면 이 열다섯 배는 호쾌하다.

가끔은 문을 뻥뻥 차버리기도 하니 호쾌하기를 넘어서 파격적이다.

솔로랭크를 연달아 스물 네 번이나 돌린 탓에 피곤한 걸까.

혹시 예은이 아닐지도 몰라 조심스레 방문자를 확인해 봤지만 역시 예은이었다.

"..늦어."

준비를 하고 온다더니 딱히 신경을 썼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굳이 변화점을 찾자면 샤워를 하고 왔는지 볼에 살짝 띤 홍조.

피부에도 무언가 발랐는지 묘하게 뽀얗다.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옷차림이 얇아 은근히 호리호리해 보인다는 점이다.

속된 말로 몸매가 드러난다.

무슨 심경의 변화인지 평소에 하지도 않던 옷차림을 입고 왔다.

아주 나를 만만히 보고 있는 모양.

저렇게 입고 내 방까지 온 이상 그냥 보내줄 생각은 없다.

"자, 들어오시게나."

"뭐야, 그 할아버지같은 말투는."

틱틱대는 목소리로 쏘아붙이더니 나를 툭 밀고 지나친다.

이 순간을 기다렸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오면 끝이다.

나는 예은이 들어오자마자 문을 살며시 닫아버린 후 문고리를 전부 걸어 잠궜다.

"..왜 안전고리까지 잠그는 거야?"

"글쎄, 왜 일까?"

내 행동이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예은의 얼굴에 불안감과 초조함이 어린다.

그래, 불안해 해야지.

자신이 지금 어떤 처지에 처한 건지 머리를 빠릿하게 돌려야 할 거다.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해 나는 과감히 밀어재꼈다.

"짠, 네가 좋아하는 거 다 사왔다아..? 왜 그래 얼굴이?"

예은이 방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틀어박힌 사이.

나는 택시를 타고 이 근처 거리를 쭉 돌아 포장음식들은 보이는 족족 쓸어 담아왔다.

아무리 얘가 밥순이라도 다 못 먹을 정도로 잔뜩 사왔으니 양이 부족할 걱정은 없다.

하지만 예은 너는 걱정해야 할 거다.

저렇게 얇은 옷을 입고 평소처럼 먹다간 배가 툭 튀어나올 수도 있을 테니까!

정말 내가 생각해도 예은이 좋아할만한 이벤트인데.

분명 그래야 할 텐데.

예은의 표정이 생각만큼 좋지가 않다.

심드렁하기를 넘어서 질렸다는 표정.

지금의 상황에 무언가 불만이 있어 보인다.

대체 어떤 부분이?

"니가 그럼 그렇지…."

"야야, 여기 조리기구까지 빌려왔다. 즉석에서 뎁혀 먹을 수도 있다고?"

내가 이전에 사왔던 전기냄비와 더불어 몰래 휴대용 버너까지 반입했다.

당연하게도 숙소에서 쓰면 안되는 물건이지만 사고만 안 치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몰라도 깐깐하기 그지없는 이 녀석 성격에 사고 칠 일은 없고 말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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