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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세 자리 수가 넘는 로드 오브 로드의 챔피언들 중에서 오직 알칼리만이 가지는 독특한 요소.
다름아닌 회복력이다.
물론 알칼리를 제외하고도 회복력을 메인으로 삼는 챔피언은 여럿 존재한다.
또도박사 라던지.
블러디체리 라던지.
굳이 다른 챔피언들 언급할 필요 없이 내가 최근 많이 플레이했던 발렐리아만 해도 회복에는 일가견이 있다.
하지만 알칼리는 그 어느 챔피언들과도 상이하다.
한 마디로 회복력이 넘사벽이다.
이게 말이 되냐? 하는 수준으로 체력이 엄청나게 차오른다.
그런 주제에 코어템이 나오기 시작하면 폭딜까지 어마어마하다.
이렇게 놓고 보면 사기 챔피언이 따로 없지만 실상은 또 그렇지가 않다.
라인전이 약하다는 고질적인 문제.
얼마나 심각하냐면 내가 알칼리를 해도 라인전을 말리지 않는 게 고작인 수준이다.
그러면 암살자로서의 능력이라도 탁월해야 하는데 알칼리는 챔피언이 너무 정직하다.
자드처럼 일순간 사라진다던지.
끠즈처럼 재롱잔치를 벌이다던지.
그딴 거 없이 그냥 달려가서 뚜들겨 패는 게 전부다.
그나마 생존기 역할을 하는 W스킬 안개지대는 핑크와드 하나에 무력화된다.
회복력이 암만 좋으면 뭣 하겠는가?
딜템을 올린 시점에서 이미 물몸이다.
회복할 틈도 없이 일점사를 한다면 녹여버리는 게 가능하다.
적팀의 입장에서 대처하는 게 너무나도 용이.
이러한 이유로 알칼리는 잘 커도 유통기한 챔피언이라 취급받는다.
라인전도 약한 주제에 유통기한이라니.
그나마 시즌2에는 포션을 열 개씩 들고 가서 꾸역꾸역 라인전을 진행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프리시즌 이후로 구입할 수 있는 포션의 최대 갯수는 다섯 개.
대신 크리스탈 유리병이라는 아이템이 생겨났지만 기력 코스트인 알칼리에게는 맞지가 않는다.
정말 라인전 버티는 보람도 없는 애물단지.
알칼리는 그렇게 오해받았다.
그 진정한 가치를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파아아앙!
아군의 서포터 쏘냐가 풀리츠크랭커에게 끌려버렸다.
쏘냐의 약점이 약하다는 것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하지만 하나 남기고 간 것이 있다.
파워센도가 풀리츠크랭커와 헤이클린을 동시에 긁어냈다.
쿠! 챠앙!
안타깝게도 쏘냐의 마지막 발버둥이 득점으로 연결되는 일은 없었다.
아군 원딜러 이즈레알이 어떻게 호응을 하려 했지만 적팀의 정글러가 당도했다.
탈리반 3세가 깃창을 박고 돌격해온다.
이즈레알은 비전 점프를 사용해 피해냈지만 부족하다.
탈리반은 깃창에 연이어 궁극기를 때려박았다.
<버거킹!>
3.5초간 흙벽을 일으켜 세워 상대를 가두는 탈리반 3세의 궁극기.
이미 생존기가 빠져버린 이즈레알은 꼼짝없이 갇히고 만다.
그러나 이는 나에게 있어서 기회.
이로써 적팀의 모든 CC기가 빠져버렸다.
안전을 확인한 이후에야 나는 비로소 진입 타이밍을 잡는다.
타항!
이 순간을 위해 우물에서 봇라인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왔다.
적 정글러의 갱킹을 예상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행위.
라인의 상황도 상황이지만 아군 봇듀오는 스펠이 없다.
헤이클린을 딸 때 전부 사용하고 말았다.
더욱이 적팀의 입장에서 기세가 넘어가버린 게임을 뒤집기 위해 필히 봇갱킹을 선택할 거라 생각했다.
막대한 글로벌 골드를 주는 용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니만큼 뻔하다면 뻔한 선택지.
예상은 허무하리만큼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퀴릭!
콰락!
낫을 던지고 보름달 베기로 터트리자 탈리반의 체력이 뜯겨나간다.
여기에 더해 건블레이드의 액티브까지.
그 효과는 상대를 둔화시키며 주문력에 비례한 약간의 마법 피해를 선사한다.
이 모든 게 일순간에 터지자 탈리반은 삭제가 되고 만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Unknown Error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이즈레알의 반항에 체력이 다소 깎여 있던 탈리반 3세.
높은 방어력이 무색하게도 죽음을 맞이했다.
알칼리의 데미지는 대부분 물리 피해가 아니라 마법 피해다.
건블레이드가 완성된 알칼리의 폭딜을 탈리반은 버티지 못한다.
타항!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 머릿속 계산에 따르면 풀리츠크랭커의 핵펀치는 쿨타임은 4초 남았다.
그 안에 헤이클린을 충분 마무리할 수 있는 판단이 떨어졌다.
퀴릭!
궁극기로 돌진해 낫을 던진다.
헤이클린은 당연 투망을 사용해 도망가지만 낫은 타겟팅으로 따라가 표식을 남긴다.
투망에 의해 둔화된 나에게 헤이클린의 총알과 풀리츠크의 주먹이 틀어박힌다.
다음 그림자 박치기의 쿨타임이 돌아오는 2초간 무빙을 하며 데미지를 최소화.
그렇게 2초가 지나면 한 번 더 궁극기를 사용해 따라붙을 수 있다.
타항!
치지직..!
다시 한 번 헤이클린에게 돌진해 평타로 표식을 터트리고 발화를 건다.
뒤를 돌아볼 필요도 없이 깔끔한 딜계산.
풀리츠크랭커의 핵펀치가 뒤늦게 돌아와 나를 띄우지만 헤이클린은 이미 목숨을 마감한 상태다.
─더블 킬!
Unknown Error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생존기가 없는 암살자인 알칼리에게 중요한 건 변수의 계산이다.
상대방에게 무슨 스킬과 스펠이 있는지 완벽하게 계산을 끝마친 후에야 진입을 해야 한다.
교전이 잦았던 봇라인은 서로가 점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아군 봇듀오를 따기 위해 그나마 있던 스킬까지 다 사용했다.
덕분에 나는 안전하게 진입해 내 딜링 능력을 한계치까지 살릴 수 있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몇 년쯤 지나게 되면 프로게이머들에게 당연하듯 요구되는 사항 중 하나다.
상대가 가진 수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실전에서 응용해내는 것.
당연하게도 지금 시점에선 제대로 해내는 이가 없다.
얼핏 무리수라고 생각되는 이니시.
사실 적팀의 스킬쿨이 1초 남았다는 걸 알고서 싸움을 걸은 것이라면 어떨까.
무리수가 아니라 귀신같은 슈퍼플레이라 칭송하며 팬들은 찬사를 보내올 것이다.
상대방의 룬과 특성, 아이템까지 감안한 플레이를 실제 게임에서 녹여내는 것은 입롤에 가깝다.
하지만 프로게이머라 함은 그 입롤을 실현해야 하는 존재.
일반적으로 하지 못하는 걸 해내야만 프로게이머는 자신의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다.
과거 나는 그랜드 마스터도 달성하지 못하는 연습생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하나만은 각별히 잘했다.
올마스터라는 쓰잘데기없는 재능이 빛을 발한 결과물.
스킬 하나하나에 달린 자잘한 효과나 선딜레이라던지를 알고 있었기에 대비와 응용이 가능했다.
결정적인 문제가 발목을 잡았지만 말이다.
'내 스펙이 한참은 미달이었지..'
안 그래도 부족했던 피지컬과 라인전 능력.
20대 중반을 훌쩍 넘기면서 판단력도 예전 같지 않았다.
알고 있으면 뭐하겠는가.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을.
'하지만 이제는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지금까지도 은근하게 녹여오고 있었지만 계기를 통해 확실하게 알게 됐다.
최근 암살자 챔피언 위주로 게임을 하면서 내 판단력에 자신감이 붙었다.
본인인 내가 자각을 하게 된 이후로 더욱 과감한 플레이가 가능해졌다.
방금 헤이클린을 따낸 것은 그 예고편에 지나지 않는다.
─용을 처치했습니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체력이 꽤나 깎여버리긴 했지만 알칼리의 피흡 능력은 용 트라이를 가능케 만들었다.
용이 주는 데미지따위 가볍게 초월해 오히려 체력을 채워낸다.
그렇게 나와 이즈레알이 용을 잡고 있던 사이.
탑에서는 예은의 리심이 성과를 만들었다.
─적팀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적팀의 탑라이너 잭트를 따내고 포탑까지 밀어냈다.
아직 킬스코어는 따라오지 못했지만 분명 글로벌 골드는 이쪽이 우위일 터다.
기세 또한 이미 넘어온지 오래.
게임을 굳히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찰칵!
건블레이드 다음으로 가는 아이템은 당연 조냐의 물시계.
생존기가 없는 알칼리에게 있어 오아시스와 같은 아이템이다.
아직은 하위템인 겁나 쓸데없는 지팡이밖에 살 돈밖에 없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정식 한타를 하려는 알칼리에게 조냐의 물시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잠시 스플릿 운영에 들어간다.
퀴릭!
콰락!
나를 막기 위해 적이 배치한 카드는 역시 잭트였다.
잭트는 1대1에 최적화된 챔피언.
이전에 자드로 잭트를 솔킬낸 적이 있지만 알칼리로는 쉽지가 않다.
그도 그럴 게 잭트는 스킬포식검을 들고 있다.
딱히 나를 마크하기 위해 구입한 아이템은 아니고 아군 탑라이너가 파이어뱃이기 때문.
탑에서 솔킬을 네 번이나 따신 바람에 나보다 성장도가 꿇리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자신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알칼리가 생존기가 없는 반쪽짜리 암살자인 건 맞다.
하지만 스킬이라는 건 정말로 쓰기 나름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재해석같은 말이 나오면서 안 쓰던 챔피언이 쓰이게 되는 데는 당연 이유가 존재한다.
알칼리 또한 여기에 속한다.
퀴릭!
미니언을 사이에 두고 파밍을 하고 있는 잭트에게 낫을 던졌다.
표식을 터트리지 않는다면 미약하디 미약한 낫의 데미지.
영락한 기사검까지 나온 잭트는 금새 피흡해낸다.
그러나 결코 의미가 없진 않다
4초 숨을 죽인 나는 궁극기를 사용해 돌진했다.
타항!
콰락!
그림자 박치기로 달라붙어 보름달 베기를 시전한다.
표식이 터지고 건블레이드의 액티브까지 사용되자 잭트의 체력이 한 움큼 뜯겨나간다.
하지만 내 턴은 여기까지다.
당연하게도 잭트가 반격을 해온다.
1대1 최적화 챔피언인 잭트가 1대1 최적화 아이템인 영락한 기사검을 들었다.
그 상승효과는 잭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충분하다.
구룽!
잭트가 봉을 돌리며 반격을 하자 나는 안개지대를 깔았다.
그 효과로 미니언의 어그로를 풀어낼 수는 있었지만 지체없이 박히는 핑크와드.
사정없이 때려오는 3타가 알칼리의 몸을 묵직하게 후려쳐 온다.
쿵! 쿵! 따!!
물리 데미지 뿐만 아니라 마법 데미지까지.
하이브리드를 자랑하는 잭트는 딜러진따위 한 순간에 찢어발기고 탱커에게조차 유효타를 먹인다.
당연 알칼리라고 성할 수는 없다.
그러나 치명타까지는 되지 않는다.
스킬구조의 재해석.
선마스터하는 스킬을 바꿈으로서 알칼리는 완전히 다른 챔피언이 돼버린다.
퀴릭!
챠캉!
낫을 던지고 평타를 때려 터트린다.
진입 전에 미리 낫을 던져 놓았기에 쿨타임은 바로 돌아왔다.
이렇게 맞딜을 하면 웃어주는 쪽은 당연 잭트.
하지만 내가 안개지대를 선마스터함으로서 서로의 입장이 바뀌었다.
'생각만큼 박히지가 않을 걸?'
안개지대 안에 있을 때 한정으로 알칼리는 은신을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한 가지 더.
스킬 레벨 하나당 10의 추가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을 얻는다.
마스터를 해버리면 무려 50의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이다.
차후 이 사기성이 지목되어 이동속도 증가로 개편됐을 정도.
다른 챔피언도 아닌 알칼리가 방마저를 얻는 것은 의미가 색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피흡의 효율성이 말도 안되게 올라가 버린다.
퀴릭!
챠캉!
맞딜만 따지자면 잭트가 압도적인 게 맞지만 알칼리에겐 피흡이 존재한다.
체력 흡혈과 주문흡혈이 끈덕지게 체력을 회복시켜 준다.
물론 이 피흡이라는 건 결코 만능이 아니다.
원래라면 종잇장같은 알칼리의 몸은 흡혈을 하기 전에 잭트의 공격에 토막이 나야 정상이다.
그런데 안개지대의 효과로 추가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을 얻자 하이브리드인 잭트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흡수해낸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Unknown Error님은 전장의 화신입니다!
마치 탑신병자같은 싸움 방식으로 서로가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때리기만 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서있게 된 쪽은 나.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잭트를 따자마자 미니언을 때려 피흡으로 살 수 있었다.
우월한 회복력은 알칼리의 체력바를 금새 만땅까지 회복시킨다.
"야, 얘네 암걸린단 말이야. 언제까지 데리고 놀아야 해?"
"그래, 슬슬 작전을 실행해도 될 것 같다."
내가 잭트를 따내는 사이 예은이 아군을 데리고 돌아다니며 암에 걸린 모양이다.
이제는 사전에 상정해 놓았던 작전을 실시할 때가 왔다.
작전명 미끼 던지기.
활용가치라고는 한없이 떨어지는 아군을 던져 그 이상을 취한다.
상점에 귀환해 추격자의 손목 보호대를 구입한 나는 봇라인에 핑을 찍었다.
-저 믿고 봇라인을 쭉 푸쉬해주세요."
시즌 초 배치 운빨로 올라온 아군들이라고는 하지만 전 시즌도 그렇게까지 낮지는 않다.
버스를 타기위해서 묵묵히 오더를 따르는 세 아군.
그렇게 아군을 진흙탕에 던져 놓고 나와 예은은 몰래 탑라인을 향한다.
딱히 효율적인 인원분배를 한 게 아니다.
적팀의 시선을 돌려놓고 20분에 갓 태어난 햇바론을 맛보기 위함이랄까.
두 명이서 바론을 잡는다.
말도 안되는 판단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챔프에 따라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다른 챔피언이라면 몰라도 리심과 알칼리는 충분히 가능하다.
운행하고 있는 버스의 액셀을 한계치까지 꾸욱 즈려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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