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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예은을 미드라이너로 키우는 개인교습과 더불어 팀단위 연습 또한 부단히 진행되고 있다.
그렇게 일주일 가량 연습기간을 가지니 다행스럽게도 윤곽은 잡혔다.
오늘 있을 스크림부터는 형태를 다듬어볼 작정이다.
'말 그대로 윤곽이고 아직 한참은 멀었지만.'
어느 쪽도 만만치가 않다.
정글이야 예은이 어느 정도 하던 라인이고 챔프 몇 개만 다뤄도 충분했지만 미드는 아니다.
미드는 챔프폭 자체가 곧 경쟁력인 라인.
상대가 어떤 조합을 꺼내는지에 따라 다른 챔피언을 선택해야 한다.
더욱이 각 챔피언마다 플레이 방식이 상이하다는 것 또한 한몫한다.
정글 중에서 리심과 탈리반 3세는 약간의 차이점이 있을 뿐 뼈대 자체는 비슷하다.
하지만 미드 챔피언은 트와이스 페이크도 그렇고 각각이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특성을 제대로 녹여내지 못한다면 반푼이가 돼버리고 만다.
예를 들어 볼까.
산다라로 라인전 압박없이 파밍만 한다던지.
코리아나로 로밍 위주의 게임을 한다던지.
챔피언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면 가진 바 특색을 백분 살릴 수 없다.
어째서 그 챔피언을 픽한 건지조차 잊어버린다.
더욱이 미드에 오는 수많은 챔피언들.
그 챔피언들 하나하나의 상대법 또한 알아야만 한다.
예은의 교습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거라 생각된다.
'팀 연습도 빡세긴 매한가지고 말이야.'
예은의 조교, 아니 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가정 하에 계획을 세웠다.
그나마도 대략적인 수준이긴 하다.
각 팀원들의 성향에 따라 내가 할 수 있는 전략의 폭.
그리고 예은을 서브미드로 세우는 것까지 감안해 나올 수 있는 조합의 가짓수.
그 둘을 기준으로 게임의 양상을 머릿속으로 그려낸다.
성과가 적다고도 생각될 수 있다.
하지만 도착 지점이 어디쯤인지 알게 된 것만 해도 혁혁한 공훈이 아닐 수 없다.
방향조차 모른 채 헤매는 것과 얼마나 가야 할지 아는 것의 차이.
명절 쇠러 시골에 내려갈 때 충분히 경험해봤다.
부모님의 입에서 '거의 다 왔어' 가 열 번쯤 재생되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차멀미가 심한 사람들은 더욱 강렬하게 느껴봤으리라.
"핫숏이 나가고 메인 오더를 누가 맡아야 되나 걱정이었는데, 그 자리를 신입이 해내다니 참 믿기지가 않아."
"실력도 실력이지만.. 이 정도 능력이면 코치로도 떼돈을 벌겠는 걸?"
빅풋, 그리고 트리플리프트가 장난스런 어조로 이야기를 던져온다.
오늘 첫 스크림을 가지기 직전.
스크림에서 해나갈 전략의 구색에 대해 팀원들과 토의를 나누고 있는 와중이다.
토의의 중심이 되는 사람은 다름아닌 나다.
내가 핫숏을 대신해 CLC의 구심점을 맡게 되었다.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일인지라 함부로 말을 내뱉을 수는 없어 잠시 사색에 잠겨버렸다.
한 마디, 한 마디 고려한 다음에 밝혀야만 하는 막중한 임무다.
신입인 내가 팀원들한테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건 절반 이상, 아니 대부분은 핫숏 덕분이다.
CLC를 맡았던 과거의 주장, 이제는 감독과 구단주를 겸하고 있는 핫숏이 내 입장을 대변해주지 않았다면 기회조차 잡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최근 롤챔스에서 우승을 하고 기세를 타고 있다고 한들 애송이는 애송이.
로드 오브 로드 초창기부터 맹활약을 펼쳐온 명문 CLC의 일원인 그들이 보기에 나는 아직 새파랗다.
이는 부심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입장, 지위를 생각한다면 당연하다.
그렇게 핫숏이 나를 푸쉬해 주었음에도 지난 일주일간 조금은 의심과 불안의 눈초리가 있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결국 해낼 수 있었다.
핫숏이 만들어준 계기를 살려서 팀원들에게 일정 이상의 신임을 얻는데 성공했다.
인정받기 위해서 정말로 노력했고 팀원들도 최대한 맞춰 주었다.
"그런데 오늘 어디랑 한다고 했더라?"
"두 곳이지. 하나는 알고 있을 팀 쿼스트,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유럽 쪽 강팀이야."
바이바이의 질문에 코치인 라이로가 대답한다.
2군에서는 정말 스크림 팀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는데 완전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속된 말로 골라 잡으면 상대 쪽에서 스케줄을 알아서 맞춰준다.
핫숏이 일구어낸 CLC의 이름값이 어느 정도인지 처음으로 실감을 할 수 있던 순간이었다.
'골라잡는다고 해도 아직은 강팀들이랑 하기 애매하긴 하지만은.'
CLC는 높은 명성만큼이나 스크림 상대도 신중히 구해야 한다.
현재 CLC가 제 컨디션이 아니니만큼 더욱이다.
이전의 포스를 뽐내려면 시간이 꽤나 필요하다.
그 전까지는 조금 격이 떨어지는 팀과 연습 기간을 가져야만 했다.
그렇기에 코치인 라이로는 오늘의 첫 번째 스크림 상대로 팀 쿼스트를 선택했다.
팀 쿼스트는 창단된지 아직 1년이 안된 신생팀.
물론 CLC이나 TSL같은 팀에 비해서 그렇다는 거고 전체적으로 따지면 중견 정도의 팀은 된다.
지난 윈터시즌에서 팀 쿼스트는 16강으로 끝마쳤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못나지도 않은 정말 딱 중간 정도 가는 팀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하룻강아지가 따로 없지만 안타깝게도 난적이다.
요 일주일 사이 팀 쿼스트와 비슷한 수준의 팀들을 상대해 온 CLC는 상대 전적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그만큼이나 현재 CLC가 재정비를 완료하기엔 한참은 남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래도 개개인의 스펙이 좋으니 자리만 잡으면, 그리고 내가 제 역할만 해낼 수 있다면 이전의 포스를 금새 되찾을 수 있겠지.'
스크림이라는 게 대회 게임의 축소판이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연습 무대.
CLC가 아직 전열을 가다듬는 와중이라는 사실을 상대도 당연 감안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대패했을 경우에 쪽이 팔리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과거의 영광에 심취해 있어서야 쓸까.
"오늘은 전승을 목표로 해보자고!"
"그래그래, 1주일 정도 간 봤으면 슬슬 컨디션 찾을 때 되었어.'
사기 또한 왕성하다.
오늘은 왠지 될 것도 같은 기분.
실제로 전략 또한 대략적으로 완성이 되었으니 실전에서 녹여낼 수만 있다면 가능하다.
이전의 포스를 절반 정도는 회복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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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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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팀 쿼스트와의 스크림 게임.
일단은 식스맨을 자처하는 나이기에 첫 판부터 참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번 게임은 필히 집중해서 관전해야만 한다.
어젯밤 내내 구상했던 전략을 처음으로 선보일 시간이다.
전략이라고는 했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거창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녹여낸 내 수고까지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탱탱볼이 어디로 어떻게 튀는지 계산하는 것. 남들이 보기에 정말 별 게 아니라고는 생각할 수는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말이야.'
한두 번도 아니고 게임 내내 어디로 튈지, 어떤 규칙성을 가지는지 파악해야 한다.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것.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해낼 수 있었다.
아직은 시행착오와 과도기를 넘겨야 하겠지만 말이다.
꾸드득!
쿠러렁!
아군 탑라이너 바이바이의 네네톤이 일방적인 딜교환을 해낸 후 빠져나온다.
공격성과 생존기를 두루 갖춘 얼마 안되는 탑 챔피언 중 하나.
네네톤이야 말로 바이바이의 성향에 정말 잘 맞는 챔피언이다.
'설득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그도 그럴 게 바이바이는 자신만의 독특한 게임 철학을 가지고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주류 챔피언들을 꺼리는 타입.
조금 까놓고 말해서 자기 자신에게 재밌으면서 효율도 좋은 챔피언을 원한다.
프로게이머면서 현실과 타협을 거부하는 바이바이.
하지만 나에게 걸리면 얄짤없다.
타박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뉴메타는 나 또한 일가견이 있는 분야니까.
'템트리에 따라 네네톤도 충분히 재밌는 챔피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줬지.'
현재 네네톤 유저들은 아이템 트리를 탱탱하게 간다.
그나마 하나 딜템을 가는 것이 새까만 양날도끼.
나머지는 워울프의 심장을 포함한 탱템을 주로 두른다.
이러한 템트리를 가면 팀한테는 도움이 될지언정 플레이어 자신은 정말 답답하다.
라인전이 강한 네네톤은 시간이 갈수록 고기탱커 이상도 이하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바이바이와 같은 캐리형 탑솔러들은 네네톤을 꺼려한다.
무난한 픽인 건 알지만 영 손이 안 간다는 게 그 이유.
'하지만 티아매트를 올리는 순간 테크니컬한 챔피언이 탄생한다.'
네네톤이 딜템을 잘 안 올리는 이유는 스킬 구조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네네톤 자체가 뿜을 수 있는 폭딜에 한계가 있는데다 지속딜과도 거리가 멀다.
한 마디로 효율성이 좋지가 않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영락한 기사검과 아예 맞지 않는다.
그 외에 피를 마시는 칼이라던지 유령의 영혼검과도 동 떨어져 있다.
그런데 티아매트를 올리니 이게 참 물건이다.
퍼엉!
탑라인의 주도권을 바탕으로 티아매트를 완성해온 바이바이의 네네톤이 딜교환을 시도한다.
상대 탑라이너 쇈 또한 방어력 아이템인 사슬 갑옷을 사왔음에도 이상하게 더 아프다.
티아매트 덕에 네네톤의 풀콤보가 성립됐기 때문이다.
할퀴고 채썰기로 달려들어 스턴을 걸고 천참만륙으로 크게 긁어버린다.
그것이 네네톤의 기본적인 딜교환 방식.
하지만 티아매트가 완성되면 액티브는 물론 평타까지 한 번 더 긁어버릴 수 있다.
W스킬, 참혹한 난도질의 딜레이를 캔슬시킨 여파다.
네네톤의 유일한 CC기인 참혹한 난도질은 상대에게 확정 스턴을 먹일 수 있지만, 그 자신이 바보가 된다는 뚜렷한 단점이 존재한다.
한 마디로 스턴을 건 동안 네네톤도 공격을 할 수가 없다.
그러한 딜레이를 티아매트의 액티브를 발동해 캔슬시키는 게 가능하다.
그렇게 얻은 여유시간동안 네네톤은 한 번 더 평타를 때리고 빠진다.
티아매트가 나오기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순간폭딜.
이 파괴적인 콤보에 한 번 매료되면 빠져나오기가 힘들 정도다.
"이거 진짜 재밌다. 액티브 하나 보고 가기에는 애매한데 평타캔슬 후에 한 번 더 때리고 빠지니까 데미지가 진짜 괴랄해."
좋다가 아니라 재밌다라로 받아치는 것 보면 바이바이도 어지간한 괴짜다.
내가 바이바이에게 네네톤을 해보는 것이 어떻냐고 추천해줬을 때 처음에는 질색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티아매트와 네네톤의 상승효과.
커스텀 게임에서 시험해본 후로는 실전에서 쓰고 싶다며 난리가 났다.
본래 네네톤을 하지 않는 바이바이는 였지만 익숙해지는데엔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네네톤이 난이도가 상당히 낮은 덕분.
재미가 없어서 안 했을 뿐이지 챔프 성향도 바이바이와 적합하다.
지극히 공격인 챔피언이라 상대를 쉴 새 없이 몰아붙인다.
그런 주제에 생존기도 좋아 갱회피율도 좋은 편에 속한다.
'설사 라인전이 망해도 네네톤은 1인분 가까이 할 수 있으니.. 한시름 놓은 셈이야.'
바이바이의 플레이 성향상 탑을 봐주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탑위주로 풀어야 하는 게임이 따로 있고, 그렇지 않은 게임이 있는 법.
더욱이 CLC의 봇라인은 트리플리프트다.
성장을 잘한 바이바이의 캐리력은 준수한 편이지만 트리플리프트를 포기할 정도로 이득 보는 장사라 할 수 없다.
어차피 컨트롤하기 힘든 공이라면 공 자체가 어디에 튀겨도 상관없게 만들면 된다.
내가 바이바이에게 네네톤을 전수해줌으로서 탑라인은 해결을 봤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미드는 스왑, 탑라인은 걸맞는 챔피언. 방향성은 잡은 셈이라고 볼 수 있겠군.'
공템인 티아매트를 올린 탓에 까딱 잘못하면 갱킹에 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바이바이에게 달려있다.
나는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을 해줬다.
그리고 바이바이의 기량이면 충분 극복해낼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탑 곧 다이브각 나올 것 같아."
"적 정글 오기 전에 무조건 딸 수 있으니까 가자!"
탑신병자와 정글병자의 만남.
바이바이가 라인전의 강세를 바탕으로 기회를 만들면 예은이 받아먹는다.
내가 직접 지도를 해준만큼 어디를 찔러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다.
'트와이스 페이크를 했을 때 복습까지 했으니 잊으면 곤란하지.'
적팀의 탑라이너 쇈은 트와이스 페이크와 비슷하게 궁극기가 글로벌 이동기다.
하지만 초반 라인전이 트페처럼 약하지도 않고 생존기도 있어 대처법이 까다롭다.
그런 쇈을 상대하는 정성적인 방법은 6레벨 이후의 탑싸움.
쇈의 궁극기는 라인전에서 하등 쓸모가 없어 탑&정글 교전에서 약한 면모를 보인다.
더욱이 라인푸쉬가 한없이 느린 쇈의 고질적인 약점.
티아매트를 든 네네톤이 라인을 쭉쭉 밀면 딜교환 쿨마다 체력을 깎아 놓는 것으로 다이브 각은 계속해서 성립한다.
그러다가 적 정글러가 탑을 봐주지 못하는 순간, 예은이 플레이하는 리심의 칼같은 다이브에서 쇈이 빠져나갈 길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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