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344화 (34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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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335화에 언급된 KK게이밍의 팀명이 AOA로 변경되었습니다.

내용 상의 변경점은 없습니다.

팀 쿼스트와의 스크림 경기.

여섯 판을 내리 돌린 결과는 4승 2패.

하지만 중요한 건 승패가 아닌 팀의 성장이다.

"네네톤도 그렇고 정말 간만에 만족스러운 게임 한 것 같아. 이게 다 시현 덕이지."

"뭐라고? 나는 여섯 게임 중 세 판을 파밍만 하다 끝났다고? 개인적으로는 불만이야."

빅풋이 나를 향해 장난스런 농담을 던져 온다.

농담은 농담, 진짜로 불만이 있다는 의사표현이 아니다.

미드가 파밍만 하다 끝났다는 건 그만큼이나 CLC가 팀 쿼스트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였다는 뜻.

한 판은 역으로 털리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결과가 좋다.

'이렇게 차츰 조합의 완성도를 높여 가면 되겠지.'

프릿과 헤일커드가 있던 2군과 달리 CLC 1군은 창립의 역사를 로드 오브 로드와 함께 한다.

선수 개개인도 프로게이머로 지내온 경력이 많다.

그러다 보니 안 하던 챔피언을 손에 익히기 어려워 한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조합을 짤 때 정말 심사숙고 감안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패배한 두 경기도 조합의 완성도가 부족했기 때문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기량이 뛰어나. 아직 한 달 이상 남았으니 이 정도 속도라면 LCF,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어.'

자만은 그 사람의 심장에 비수로 돌아와 꽂힌다.

라는 말이 있지만 솔직히 CLC정도면 나도 설렁설렁 버스타도 되지 않겠는가.

그냥 버스타는 것도 아니고 구심점이다.

비행기로 따지면 메인 조종사다.

고진감래, 지금 빠듯이 고생해 놓으면 나중이 편해진다.

"다음 팀과의 스크림은 1시간 후지? 그런데 어디라고 했더라?"

"AOA잖아 AOA. 형 귀찮게 좀 하지 마라."

빌딩 2층의 공용 식당을 향해 팀원들과 내려가는 길.

라이로가 바이바이의 기억력을 한탄하며 점잖은 어조로 타박한다.

오늘 오전 스크림은 끝났지만 아직 상대할 팀이 하나 더 남아있다.

오히려 후자가 메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AOA는 유럽에서 꽤나 알아주는 팀이니 만만치 않을 거야. 아니, 고전을 면치 못할지도 몰라.'

LCF에서 주목할만한 팀들은 이미 체크를 전부 끝마친지 오래다.

AOA는 이번 EU롤챔스의 윈터시즌에서 준결승까지 간 이력이 있는 팀.

비록 3,4위 전에서 패배해 4위에 머물렀다지만 이전부터 꾸준한 성세를 자랑하는 명실상부 유럽의 강호 중 하나다.

개인적으로 이 정도 위치에 있는 팀과 벌써 스크림을 가지는 건 조금 이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팀원들의 의견도 중요한 법.

나를 제외한 팀원들은 평소 강팀들과의 스크림 경기가 당연했다.

슬슬 몸이 근질근질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의견을 주고받을 때 강팀들과도 한 번 스크림을 잡아보면 어떻겠냐 하는 말이 나왔고, 마침 스케줄이 비어있던 AOA와 스크림 약속을 잡았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바로 맞붙기는 뭐하니 적당한 팀을 상대로 몸부터 풀었다.

솔직히 오전 중 팀 쿼스트와의 스크림은 본격적인 게임을 치르기 전에 워밍업같은 느낌이었다.

팀 쿼스트에게는 미안한 말일 수도 있지만 아무리 재정비 와중이라곤 해도 CLC는 그만한 위치에 있는 팀이다.

"남자들끼리만 살다가 꽃이 한 송이 피니까 분위기가 확 사네."

"정말 우중충하기 짝이 없는 식사였지. 네놈들 말이아 네놈들."

"풋, 넌 그 덥수룩한 수염이나 깎고 말해라 바이바이."

현재 나를 포함한 팀 전원은 2층 공용 식당의 테이블 한 구석에 자리 잡아 끼니를 챙기는 중이다.

전 세계 로드 오브 로드 프로판에서 확고한 입지를 자랑하는 CLC라지만 이런 부분은 어쩔 수가 없다.

프로게이머의 세계가 으레 그렇듯 남자들 뿐인 우중충한 식사 자리.

그런데 그 테이블 가장자리에 한 송이의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다.

"꽃이 말하는 거 봤냐? 비싼 밥 먹으면서 헛소리야."

"..최소한 삼키고 얘기해라."

음식을 볼 안 가득 우겨 넣고 있는 예은이 웅얼거리며 받아친다.

이 녀석과 지내다 보면 여자에 대한 환상.

전부 깨지고 으스러져 가루도 남지 않는다는 생각은 농담으로 치부하기 힘들다.

당연 혐오스럽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동네 부랄친구 마냥 정겹다는 뜻이다.

뷔페 식의 식당에서 퍼온 볶음밥과 토마토 소스 묻힌 미트볼을 흡입하고 있는 예은이다.

식사예절이 없다기보다는 그만큼 먹는 속도가 빠르다.

딱히 묻히면서 먹는 편도 아니고 옆에서 보고 있으면 복스럽게 잘 먹어서 보기 좋다.

'남자들끼리 매끼 같이 먹으면 확실히 조금 부담스럽긴 하겠네.'

어쩔 수 없는 직장 환경!

프로게이머가 나름 전문직에 속하는만큼 여자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다.

게임 잘하는 여자도 정도껏이지 그랜드 마스터급은 찾기가 힘들 지경을 넘어 존재하지 않는다.

프로게이머는 고사하고 코치를 지망할만한 수준이 되는 여성유저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러고 보면 프로게이머라는 직업, 왠지 군대같은 느낌일지도.'

2군 팀원들은 프로게이머로 전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여자사람에 대한 선망같은 건 없었다.

더욱이 예은의 성깔이 하도 드세서 무서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최소 1년 이상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고 있는 1군 팀원들은 보는 것만으로 감탄사가 절로 나오나 보다.

군대로 따지면 2군팀은 막 전입한 이등병 느낌이랄까.

걸그룹이나 연예인 사진을 보여줘도 별다른 감흥이 없을 시기다.

그리고 1군팀은 최소 상병, 심하면 병장 격의 위치.

걸그룹 팀명으로 끝말잇기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이 쌓인 사람들이다.

비유를 하자면 그렇다는 소리.

남자뿐이던 공간에 여자가 한 명 들어오니 공기가 풀리는 것도 맞는 말이다.

아무리 평소 씩씩하기 그지없는 예은이라지만 외모는 눈호강이 된다.

여성틱한 느낌은 떨어져도 있는 것 만으로 분위기 산다.

확실히 남자들이 술자리를 열면 <여자 있냐?> 소리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그 다음 질문인 <예쁘냐?>도 일단 만족은 하고 말이야.'

어떻게 된 게 <성격 좋냐?>하고 묻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설사 성격이 나쁘다고 해도 나 정도 인덕이면 어지간한 건 다 받아주지!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을 표출해올 뿐이다.

내가 만약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예은을 데려가서 사고가 터진다면 그건 외모만 밝히는 속물들의 죗값이겠지.

떠올려 보니 언제 한 번 저지르고 싶어졌다.

"김치 먹고 싶어."

"참아라.. 여기 느그집 안방 아니다."

이런 느낌의 녀석이니 의외로 남자들 사이에서 잘 놀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초기에는 상당히 걱정스러웠지만 서스럼없이 녹아났다.

누님이란 포지션이 없이도 어느새 1군 멤버들과도 잘 지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 나한테만 유난히 틱틱대는 것 같기도 한데.

'뭐, 잘 지내는 것 같으니 됐나.'

이 녀석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나에게 있어 하나의 보람이 되었다.

그러한 보람.

최근에는 조금 싹튼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수확까지야 멀었겠지만 싹이 들이민 것만으로도 가끔 행복한 기분이 들곤 한다.

.

.

.

* * *

오전이라고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시작을 오전에 했다는 의미.

팀 쿼스트와의 스크림은 1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그리고 점심을 겸한 휴식시간이 끝나고 이제는 오후의 연습 차례다.

유럽에서 제법 이름을 날린다는 AOA와 스크림 경기를 가질 예정이다.

"그 전에 한 번 점검에 들어가죠. 호흡이 간만에 좋았지만 다들 한 마디 하고 싶은 말은 있을 거 아니에요?"

아직 여유 시간이 조금 남았다.

오전에 있었던 팀 쿼스트와의 스크림은 몸풀기 이전에 요 일주일간 짜놓았던 팀의 전략.

정확히는 팀원들 각자가 맡을 포지션 배분에 대해 의견 교환을 가지기로 했다.

결과가 좋았다고 좋게 좋게 넘어가도 될만큼 대충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팀의 색깔, 윤곽은 확실하게 잡아 놓아야 한다.

"난 일단 불만 없지만, 네네톤 이상의 카드가 최소한 두 개, 까타레나 말고도 하나 더 있어야 할 것 같아."

바이바이가 굉장히 날카로운 지적을 첫 번째로 던져왔다.

대회 무대에서는 굳이 상대팀의 에이스가 아니더라도 한 명을 집중 견제하는 경우가 왕왕 존재한다.

그만큼 다른 선수들이 활개치게 되기에 자주 쓰이지는 않는다지만 상황에 따라 치명적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이바이의 네네톤과 까타레나가 밴된다던지.

주력 챔피언과의 실력차가 심하면 다른 선수들의 경기력에도 영향이 미친다.

특히 우리 CLC처럼 서로의 개성이 강렬한 팀은 우르르 무너지기 십상이다.

"하, 그냥 타협해서 애꾸사자나 거미여왕같은 거 하라니까? 정말 탑신병자는 이해를 못해주겠네."

"난 흔한 챔피언 하기 싫다고. 그러는 너도 요즘 뜨는 자드나 제임스같은 거 못하잖아?"

빅풋과 바이바이가 티격태격.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탑신병자와 미드 지박령의 싸움이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적으로 힘들다.

애꾸사자나 거미여왕은 바이바이의 성향과 꽤나 잘 맞는 챔피언이 맞지만.

'문제는 너프가 예정돼 있다는 거지.'

대회 무대에서 픽밴률이 지나치게 높았던 챔피언들은 게임사가 칼같이 너프해 버린다.

이 놈의 로드 오브 로드 게임사는 어찌 된 게 깎을 줄만 알지 붙일 줄을 모른다.

지난 한국 롤챔스 이후로 싱나드가 너프를 면치 못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애꾸사자와 거미여왕의 차례다.

1렙부터 오버파밍을 하는 싱나드만큼 심각한 밸런스 붕괴를 초례하진 않았어도 그에 준한다.

테스트 서버에서 얼만큼 혼쭐을 내야 적당할지 조정을 하는 중이다.

그 시기는 빠르면 1주일, 늦으면 이번 달 말까지 갈 수도 있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LCF에서 애꾸사자와 거미여왕이 픽률은 많이 줄어들 거란 사실.

솔로랭크에서 꿀빨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시간 들여 연습할 이유가 없다.

"나는 솔직히 준수하다고 생각하는데? 자드, 제임스같은 거 못 다루긴 하지만 어차피 내 성향에 맞지도 않는 챔피언이야. 쓰던 챔피언들도 딱히 너프먹지 않았고."

바이바이의 차례가 끝나고 이제는 빅풋.

자기 자신의 단점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솔선해서 이야기를 꺼내온다.

그리고 빅풋의 말은 나 또한 긍정한다.

'코리아나와 트와이스 페이크. 그 외에도 파밍형 챔피언들은 잘 다루지. 현재 메타에서 충분 쓸만하기도 하고.'

트와이스 페이크를 상당히 수비적으로 사용하긴 하지만 이 또한 나쁘지 않다.

상대가 무리하게 로밍을 간다면 아주 쉽게 따라갈 수 있으니까.

빅풋이 로밍을 잘 안 간다는 것을 감안해 과감하게 덤비는 상대팀에게 이따끔 의외의 카운터를 먹이기도 한다.

빅풋은 이대로 과거의 실력.

분발해서 조금씩 되찾아주기만 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봇라인이 되었다.

"우리는 그냥 하던 대로만 하면 되지? 솔직히 정글이 교체되고 많이 불안했는데 오히려 더 잘 굴러가는 것 같기도 해."

"크크, 핫숏이 들으면 발광을 하겠군. 카우스터도 은근히 독설가란 말이야."

평소에는 과묵하기 이를 데 없는 카우스터라지만 필요한 순간엔 말할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거기에 트리플리프트의 긍정까지 더해지자 현 CLC의 팀색깔은 굳혀졌다.

이제는 모든 팀원들이 맡은 바 역할에 정진하면 될 일.

앞으로는 이를 가다듬을 일을 남았다.

'본래는 코치와 감독이 행하는 역할이긴 한데.. 나 보너스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내가 이렇게 팀의 색깔을 잡아주는 것.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이미 윈터시즌의 우승을 향해 달려갈 때 해낸 경력이 있다.

당시에도 코치의 역할을 맡았던 라이로는 나에 대한 신뢰가 깊다.

물론 팀전략에 대한 부분은 프로게이머들도 각자 자기 주장을 펼치지만 보통은 맡기고 싶어하기 마련이다.

솔로랭크에서야 오더 한 번 잘못 내려서 게임을 지면 얼굴에 철판 깔고 차단하면 되겠지만 대회 무대에서는 아니니까.

그 책임감은 더없이 막중하다.

그런데 내가 솔선수범 나서주는 데다 결과 또한 좋다.

덕분에 현 CLC에서 입지를 굳히는 데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기세대로 AOA와의 스크림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다면 많이 단축된다.

'한 달을 목표로 했지만 어쩌면 다음 주내로 가능할 지도 모르겠네.'

북미 굴지의 강호 CLC.

잠시 잠을 자고 있던 사자가 이전의 기상을 되찾는 순간 모든 일은 탄탄대로다.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파이널, 이름이 정말 거창하기 짝이 없어 긴장됐는데 의외로 만만히 봐도 될 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나라고 맨날 고생만 하라는 법은 없을 테니까.

'유럽에서 제법 강팀이라 손꼽히는 AOA.. 나부터 나서서 기선제압을 해볼까.'

아직 재정비가 완벽히 이루어지지 않은 마당에서 유럽의 강호 중 하나, AOA를 상대한다.

반반만 가도 만족이겠지만 내가 낀다면 무게추가 조금은 기울어질 터.

내가 그렇게 열혈파는 아니지만 직접 확인해보고 싶다.

현 CLC가 AOA에 부딪힐만한 수준까지 올라왔는지 말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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