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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AOA와의 첫 번째 스크림 경기가 시작한다.
연습무대라고는 하지만 조금은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게 북미와 유럽, 현 로드 오브 로드의 최강자들이다.
각자의 지역에서 한 손에 꼽히는 두 팀.
신경전부터가 날카로운 건 당연한 흐름이었다.
챵! 챵! 타앙!
트리플리프트의 배인이 헤이클린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크레이브즈의 산탄세례를 피해내 상성을 뒤집는 트리플리프트라지만 헤이클린은 다르다.
이리 구르고 저리 굴러도 타겟팅으로 박히는 평타는 피할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거리 차이 또한 압도적.
안 그래도 라인전 지약챔이라 평받는 배인은 고전을 면치 못한다.
아무리 트리플리프트라 해도 버티는 게 고작인 수준.
'배인을 선픽박는 패기를 보여주면.. 라인전을 고전할 수밖에 없지.'
듣기로 대회에서까진 이러지 않는다지만 아무래도 스크림 게임, 연습 경기에서는 일부러 배인을 주로 한단다.
그 편이 연습 효율이 좋다는 까닭.
트리플리프트는 광오한 발언을 때리며 설명을 이었다.
<내가 라인전 강챔을 하면 무조건 이기잖아? 그러면 당연히 연습이 안되지.>
어설픈 프로가 내뱉었다면 사과 한 마디로 끝날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
하지만 트리플리프트.
전세계의 로드 오브 로드 팬들 중 그 누구도 실력에 토를 달지 않는 톱클래스의 프로 원딜러다.
그가 말하는 순간 그것은 사실이고 아니냐를 나눌 의미가 사라진다.
퀴리릭!
헤이클린이 Q스킬 대탄환을 발사해 배인을 노린다.
평타 짤짤이를 넣으면서 간간히 스킬견제를 날리는 헤이클린의 라인전 방식.
평이하고 단순하지만 압도적인 사거리는 그 하나만으로 충분히 까다롭다지만.
데구르..!
땅을 굴러 피하면서 역으로 헤이클린에게 평타를 때려박는다.
대탄환은 사거리도 길고 장애물을 관통한다는 장점에 비례해 단점 또한 상당하다.
투사체가 적을 지나칠수록 데미지가 감소함은 물론 아주 잠깐 시전자의 움직임이 멎는다.
트리플리프트는 상대의 견제를 역으로 이용해 헤이클린의 체력을 크게 깎아냈다.
챵! 투웅! 챵! 타앙!
굴러서 평타 그리고 다음 평타 이후에 판결을 날리면서 날아가는 헤이클린에게 또다시 평타.
평E평의 딜교환 방식은 배인이 헤이클린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이다.
순식간에 3타가 터지며 헤이클린은 반격을 할 수 없는 저 멀리로 밀쳐지기까지 했다.
'확실히.. 맞기만 하면 밑도 끝도 없으니.'
대탄환 견제를 피하기만 했다면 고통이 연장될 뿐이다.
하지만 방금 트리플리프트처럼 간간히 반격을 해대면 헤이클린도 움츠려 들기 마련.
견제의 빈도가 이전보다 낮아질 수밖에 없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던가.
입롤이라고도 생각될 수 있는 플레이를 트리플리프트는 인게임에서 실현하고 있다.
라인의 상황은 전체적으로 비등비등하다.
가장 불안했던 봇라인이 버텨주고 있는 걸 확인한 이상.
게임의 승패는 이제 정글러의 향방에 달려있다.
바로 내가 활약할 시기다.
팅! 팅!
뾰족한 가시가 정글몹의 공격을 튕겨낸다.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며 공격하는 대상에게 반사 피해를 가하는 고슴도치.
내가 이번 게임에서 선택한 콩머스가 가진 특징이다.
'가끔은 노말한 챔피언도 괜찮겠지. 사실 콩머스는 내가 좋아하는 챔피언이기도 하고.'
정글을 하는 이라면 한 번씩은 건드려봤을 흔하디 흔한 초식 정글러인 콩머스.
하지만 이 콩머스는 초식 정글러치고 운전수의 기량 빨을 상당히 받는 편이다.
피지컬적인 의미가 아니라 운영적인 부분에서 그 활용 방법이 가지각색이다.
퀴이이잉..!
콩머스의 Q스킬, 회전 구르기가 발동된다.
그 효과는 콩머스의 이동속도를 대폭 상승시킨다.
로드 오브 로드에서 가장 빠른 챔피언이라는 이명이 붙었을 정도.
말카림과도 자주 비교가 되지만 속도만 따지면 콩머스가 압도적이다.
'당연히 단점도 있지만.'
콩머스는 회전 구르기 사용 중 적을 만나면 무조건 박는다.
말카림처럼 무시하고 지나간다던지 하는 선택지가 없다.
더욱이 회전 구르기를 사용하면 지나칠 정도로 빨라지기에 제 자신의 속도에 휘둘리는 경우가 생긴다.
그렇기에 여기서 한 번 운전수의 기량을 필요로 한다.
현재 내가 갱킹을 가고 있는 위치는 봇라인.
헤이클린이 라인을 쭉쭉 푸쉬하며 배인을 견제하고 있던 탓에 한 번 갱각이 나왔다.
적 정글의 역갱 가능성도 낮은 이 황금같은 타이밍을 놓쳐서야 곤란하다.
'그만큼 갱킹의 성공 확률도 높지는 않지만.'
적팀이 과연 바보라서 라인을 밀고 있었을까.
온다고 해도 피해낼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갱킹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 요소가 너무 많다.
첫 번째로 정글러가 올 수 있는 루트를 제한시키기 위해 헤이클린이 깔아둔 쇠덫.
만에 하나 실수로라도 이를 밟으면 갱킹은 그대로 무위로 돌아간다.
끼이익..!
나는 콩머스의 빠른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급커브를 틀어 자연스럽게 쇠덫을 피해냈다.
그리고 속도를 죽이지 않은 채 헤이클린을 향해 돌진한다.
탕!
탕!
하지만 헤이클린을 플레이하는 적 AOA의 원딜러가 이러한 상황을 한두 번 경험해봤을까.
그냥 바보같이 일직선으로 빼지 않는다.
나 또한 원딜러를 할 줄 알기에 숙지하고 있는 사실이지만 적 정글이 올 때 그냥 빼면 안된다.
서포터와 함께 정글러를 점사하면서 물러나야 한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말은 로드 오브 로드로의 유저라면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상식.
'그리고 적의 수를 읽는 것 또한 말이야.'
헤이클린은 분명 나를 치다가 투망을 사용해 도망갈 것이다.
그 순간을 노리기 위해서는 하나 더 넘어야 할 벽이 존재한다.
적팀의 서포터 랄라가 나를 둔화시키기 위해 보라색 창을 내뿜는다.
챠라랑!
일직선으로 내뿜어지는 보라색 창은 돌진하는 와중에 피할 수 있는 부류가 아니다.
탄속도 탄속이거니와 내가 적에게 다가가고 있기 때문에 움직임을 읽히기 쉬워진다.
이를 내 화려한 운전 솜씨와 스킬 예측을 통해 가능케 만든다.
회전 구르기가 막바지에 이르러 최고 속도까지 올라간 콩머스가 상식을 비트는 움직임을 보이며 보라색창을 피해낸다.
물론 이 뿐이라면 헤이클린은 투망을 써서 도망가면 그만.
랄라 또한 끽해야 점멸이 빠지는 정도다.
하지만 노린 바가 한 가지 더.
헤이클린의 투망은 적에게 둔화를 걸며 자신은 뒤로 빼는 훌륭한 생존기지만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동작 도중 하드 CC기에 영향을 받으면 이동 효과가 캔슬된다.
탕!
탕!
나를 한계치까지 카이팅하다 닿기 직전 투망을 사용해 도망가려던 헤이클린.
그 판단 자체는 군더더기 없이 훌륭하지만 내 쪽이 한 수 위다.
나는 헤이클린이 투망을 사용하는 타이밍을 정확하게 노려 점멸을 사용했다.
쿠웅!
콩머스의 Q스킬, 회전 구르기에 붙은 효과는 비단 이동속도 상승만이 않다.
회전 구르기는 사용 중 적을 만나면 무조건 박지만 이는 단점임과 동시에 특색이다.
부딪힌 상대를 3초간 둔화시키며 약간 튕겨낸다.
내가 점멸을 사용해 헤이클린의 너머로 이동한 덕에 그 효과가 빛을 발한다.
두웅-!
랄라가 나에게 부랴부랴 탈력을 걸어 둔화시키지만 이미 늦었다.
나와 부딪혀 3초간 발이 느려진 헤이클린.
점멸을 사용해 내뺀다 해도 죽음을 피할 길은 존재하지 않는다.
터엉!
트리플리프트의 배인이 앞으로 구르며 판결을 날린다.
조금 부족했던 사거리를 점멸로 보충한다.
자칫 방생으로 이어질 수 있는 행위.
그럴 텐데도 행동에 망설임이 없다.
판결의 효과로 밀어져버린 헤이클린은 포탑에 정확히 쳐박힌다.
챵! 타앙!
1.5초간의 스턴에 걸린 헤이클린은 샌드백에 지나지 않는다.
배인의 3타가 터지며 한 움큼 체력이 뜯겨나간다.
탈력에 걸렸던 내가 설렁설렁 다가가 도발을 거니 깔끔하게 1킬이 완성된다.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점멸을 두 개나 빼긴 했지만 이 한 번의 킬은 각별한 의미를 가졌다.
배인이 헤이클린을 상대로 라인전이 힘든 건 어디까지나 첫 귀환 전까지.
빌지워터의 해군칼이 나오고부터는 배인도 충분히 피흡을 하며 버틸 만해진다.
보통은 헤이클린이 그 이상으로 디나이를 해서 킬로 연결시키거나 아이템 차이를 벌리지만 이렇게 풀리게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좋았어! 내가 배인으로 퍼블 먹은 판에서 진 기억이 없다고."
"하, 기억을 못하는 거겠지. 촐싹대긴."
카우스터가 트리플리프트의 설레발을 타박하지만 확실히 상황은 웃어주고 있다.
내가 봇갱킹을 간 사이에 적 정글은 탑을 노렸지만 허무한 실패로 끝났다.
바이바이가 플레이하는 네네톤은 생존기가 좋을 뿐더러 결정적으로 타이밍이 너무 뻔했다.
더욱이 게임이 풀린 건 킬을 먹은 트리플리프트만이 아니다.
퀴이이이잉..!
봇라인에서 어시스턴트를 챙기고 상점에 귀환한 나는 기동력의 신발을 구입했다.
여기에 의병대를 업그레이드한다.
의병대의 효과는 빠른 회복과 순간적인 이동속도 증가.
당연 이른 타이밍에 구입할만한 물건도 아닌데다 나는 복귀할 라인도 없다.
정글러이니만큼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
그럼에도 나는 콩머스 정글에게 의병대는 코어 아이템이라 단언한다.
'의병대는 콩머스의 갱킹 루트를 전혀 읽을 수가 없게 만든다.'
한 마디로 동해 번쩍 서해 번쩍 홍길동이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봇라인에 얼굴을 비친 콩머스.
귀환해서 다시 구르는 것만으로 탑라인에 당도해 버린다.
기동력의 신발에 의병대를 업그레이드한 콩머스는 순식간에 맵 절반을 가로지를 수 있다.
탑라인 근처까지 도착한 나는 일단은 기다렸다.
다음 회전 구르기의 쿨타임이 올 때까지, 그리고 네네톤이 라인을 밀어줄 때까지.
적팀은 백이면 백 내가 탑갱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터다.
조금 전, 봇라인에 모습을 비췄던 데다 와드도 깔려있지 않다.
꾸뤄러러럭!
설사 와드가 깔려 있었다고 해도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콩머스의 강제 다이브를 회피할 길은 없다.
궁극기인 앙신강림을 사용한 네네톤이 블러디체리를 향해 대놓고 다가가 시위한다.
블러디체리는 그냥 당하고 있지는 않겠다는 듯 궁극기인 붉은 감염과 발화를 아끼지 않고 쏟아 넣으며 역으로 갱승을 노린다.
포탑을 낀 상황인 데다 네네톤도 체력 관리가 그렇게 좋지 않다는 것을 믿고 있는 듯하다.
꾸드득!
네네톤이 참혹한 난도질로 블러디체리를 기절시켰다.
부랴부랴 급조한 탓에 야성이 모이지 않아 스턴 시간은 고작 0.75초.
내 도발이 연계된다고 해도 블러디체리의 체력을 바닥낼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그 사이에 블러디체리를 완전히 죽이지 못한다면 다이브를 실패로 돌아간다.
운이 안 좋으면 네네톤이 포탑에 맞아 죽게 될지도 모른다.
쿠러렁!
하지만 내가 그런 간단한 딜계산도 못하고 다이브 핑을 찍었을까.
콩머스의 E스킬, 따가운 도발은 상대가 자신을 강제로 공격하게 만드는 도발 상태로 만들며 한 가지 더 숨겨진 효과가 있다.
그것은 바로 방어력 감소.
5레벨에 올라 E스킬을 3개 찍은 나는 블러디체리의 방어력을 20이나 깎아냈다.
거의 순수한 물리딜링을 자랑하는 네네톤의 데미지가 훨씬 더 아프게 들어감은 물론이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콩머스라는 챔피언이 누킹이 되지 않아 킬을 먹기 힘들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곳은 솔로랭크가 아닌 스크림 경기.
팀단위 게임이기에 아군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옳다.
어설픈 팀도 아니고 CLC 1군의 전력인만큼 키워내는 보람도 야무지다.
팅! 팅!
연달아 두 번의 갱킹을 마친 후 정글몹을 잡아 성장을 목표한다.
의병대같은 보조 아이템을 이르게 구입한 바람에 느릴 수밖에 없는 정글링 속도.
안 그래도 정글링이 느린 편에 속하는 콩머스에게는 더욱 와 닿는 문제다.
'이 빨간 장갑이 있는 한 콩머스가 정글링 속도를 걱정할 일은 없겠지만은.'
빨간 장갑은 정글몹에게 추가 데미지를 가하며 방어력까지 올려준다.
계륵과도 같은 방어력이긴 하지만 콩머스는 방어력에 비례해 공격력이 증가하는 패시브를 가지고 있다.
덕분에 룬을 통해 공격 속도만 보충하면 준수한 속도로 정글링을 도는 게 가능하다.
'초반이 상당히 풀렸으니 게임의 속도를 더욱 더 올릴 수 있겠어.'
콩머스와 찰떡궁합같은 상성을 자랑하는 빨간 장갑, 그리고 의병대의 라인복귀 속도.
이 두 가지와 더불어 콩머스에 한해 사기적인 효율을 자랑하는 아이템이 또 하나 있다.
찰칵!
다시 한 번 상점에 귀환한 내가 구입한 아이템은 사슬갑옷과 천옷.
첫 번째로 목표하는 코어 아이템의 하위템들이다.
바늘 갑옷이 나오는 순간 콩머스는 이전까지와 완전히 다른 챔피언이 돼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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