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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바늘 갑옷.
순수하게 방어력만을 올려주는 이 아이템은 블러디체리같은 마법사들에게 큰 효율을 보이지 못한다.
아니, 까놓고 말해 넝마짝에도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방어력이 아무리 높아도 마법 피해는 단 1%도 줄어주지 않으니 당연한다면 당연한 소리.
하지만 콩머스가 바늘 갑옷을 가는 이유가 비단 방어력을 올리기 위함이라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
콩머스에게 있어 바늘 갑옷은 하나의 딜템.
바늘 갑옷이 나온 콩머스는 실질적인 딜링 능력이 상당히 올라간다.
'공격력부터가 가시적으로 올라가지.'
2100 골드에 지나지 않은 저렴한 바늘 갑옷으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너무도 많다.
콩머스의 패시브는 방어력 25%를 공격력으로 치환하는 효과.
즉, 롱소드 두 자루가 넘는 공격력을 공짜로 얻을 수 있다.
더욱이 답답하기 그지 없는 콩머스의 정글링 속도.
바늘 갑옷은 적이 준 기본 공격의 3할을 되돌려준다.
안 그래도 가시껍질로 뒤덮힌 콩머스가 더욱 더 까칠하게 변한다.
티링! 팅! 팅!
유령 캠프의 정글몹들이 순식간에 녹아난다.
가시껍질과 바늘 갑옷이 중첩되자 육식 정글러 못지 않은 정글링 속도를 자랑하는 콩머스.
적 탑과 미드가 AP인만큼 마법 저항력이 필요한 건 사실이지만 이 정도로 흥한 상태에선 괜찮다.
차라리 내 딜링 능력을 올리는 것이 여러모로 좋다.
'최소한의 마법 저항력은 이미 확보되어 있고 말이야.'
콩머스의 W스킬, 가시껍질은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을 큰 폭 올려준다.
별다른 아이템을 두르지 않아도 콩머스는 그 자체만으로 타고난 탱커.
체력이 조금 아쉬운 노릇이지만 갱킹을 통해 한 번 더 이득을 내면 그만이다.
챵! 챵! 타앙!
영락한 기사의 검이 완성된 트리플리프트의 배인이 날아다닌다.
헤이클린은 초반 라인전때처럼 강렬한 견제는 꿈도 꾸지 못한다.
멀리서 최대한 CS만을 챙기는 것만이 고작인 상황.
퍼스트 블러드 이후에도 봇라인은 한 차례 교전이 있었다.
그 때 한 번 더 킬을 챙긴 트리플리프트의 배인은 오히려 헤이클린보다 CS를 앞서고 있다.
무빙만으로 상대에게 압박감을 주어 디나이를 해댄 결과다.
'역시 트리플리프트인가. 움직임이 날카로워.'
트리플리프트의 무빙 하나하나에 남다른 위협이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 내 눈에는 보인다.
한 발자국만 더 나오면 킬각을 잡아버리겠다고 헤이클린에게 으름장을 놓는다.
영락검이 나온 배인은 기회만 생기면 상대를 지옥 끝까지 따라가 추살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헤이클리 ㄴ또한 이를 모를 리 없어 철저하게 사리며 먹을 수 있는 CS만 챙기고 있다.
답답하게 흘러가는 라인전 양상.
퀴이이잉..!
이득을 보고 싶은데 좀처럼 상대가 각을 내주지 않는다.
이러한 난관을 돌파시켜 주는 것이 바로 정글러의 존재 이유다.
봇라인의 다이브를 노리기 위해 나는 빠르게 굴러갔다.
그것도 적 정글을 뺑 둘러 뒤에서 덮치는 강제 다이브다.
챠라랑!
적팀의 서포터 랄라는 아까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나에게 요정을 붙인 후에 보라색 창을 날렸다.
그 효과로 나는 느려지지만 이미 뒤를 잡아둔 상태.
궁극기를 발동한 배인이 무서운 기세로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다.
하지만 다이브의 성공을 기뻐하기엔 아직 이르다.
적팀의 정글러, 리심이 와드방로를 사용해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혀왔다.
하아!
나에게 음파를 맞힌 리심이 돌격한다.
포탑 안에서 숨을 죽이고 있던 헤이클린과 랄라 또한 나에게 공격을 퍼붓는다.
그럼에도 나는 지체하지 않고 다이브를 실행했다.
쿠웅! 쿠웅!
콩머스의 궁극기 지각변동이 발동되며 주위의 적에게 마법피해를 가한다.
한 방, 한 방의 데미지는 높지 않아도 8초에 걸쳐 천천히 적을 녹인다.
그 전에 내가 죽는다면 말짱 헛것이겠지만 그러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방어력이 200을 훨씬 넘는데 어림 반 푼 어치도 없지.'
콩머스의 기본 방어력에 더불어 두 개의 등껍질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보호한다.
서포터인 랄라를 제외한다면 거진 순수한 물리 데미지.
포탑의 공격 또한 예외일 수 없다.
방어력이 300에 가까운 나에게 유효타를 먹이려면 한참은 때려야 한다.
그런데 때린다고 다가 아니다.
챵! 챵! 타앙!
궁극기를 쓰고 굴러온 배인이 헤이클린에게 벽꿍을 박고 정확히 3타를 꽂아 넣는다.
랄라가 궁극기를 사용해 생명연장의 꿈을 펼쳤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녹아난다.
잘 성장한 배인의 데미지는 물론 막대하지만 이미 내가 체력을 깎아놓았다는 것이 크다.
가시껍질과 바늘 갑옷을 두른 나를 치고 있던 헤이클린은 자기 자신이 더 큰 피해를 입었다.
이는 리심과 랄라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쿠웅! 쿠웅!
도망가려는 랄라에게 도발을 걸어버린다.
의지를 상실한 채 무작정 나를 공격하는 랄라의 체력바가 무서운 속도로 깎여나간다.
지각변동의 지속피해에 더불어 반사 데미지, 그리고 내 무시할 수 없는 평타가 중첩된 결과다.
이 정도로 커버린 콩머스는 상황만 받혀주면 딜러진 못지 않은 데미지를 뽐낼 수 있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CLC TRIPLELIFT님이 학살 중입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리심은 살려 보내줄 수밖에 없었지만 포탑이 부숴진다.
나 또한 어처구니 없는 수준의 방어력 덕에 목숨을 부지했다.
여기에 더해 용까지 챙기자 게임의 승기는 의외로 손쉽게 넘어왔다.
'생각보다.. 싱거운데?'
아무리 내가 간만에 전력을 발휘했다고 해도 이 수준이라니.
어쩌면 AOA를 너무 높이 평가한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5분쯤 더 게임을 진행하자 AOA는 항복의 의사를 비춰왔다.
서렌을 할 수 있는 시간대를 넘었지만 스크림 경기는 솔로랭크가 아니다.
20분 이전에도 양 팀의 합의 하에 게임을 종료할 수 있다.
역으로 20분이 넘어도 양 팀의 합의 하에만 게임을 끝마칠 수 있다.
프로팀으로서의 기본적인 예의라 할 수 있는 부분.
이전에 로얄 CN이라는 팀이 우리와 팀랭에서 만났을 때 말도 없이 서렌을 치고 나갔던 일.
당시 나를 비롯한 CLC의 팀원들이 화를 냈던 것도 이러한 까닭이 있었다.
프로 세계의 기본적인 룰을 지키지 않았으니 당연한 반응이다.
북미나 유럽팀이었으면 정식으로 까지는 아니여도 개인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항의가 들어갔을 것이다.
'중국팀은 조금 따로 노는 느낌이 있는.. 치외법권같은 곳이라 불가능하겠지만.'
이래 봬도 중국 프로게임단의 코치를 지망하려 했던 만큼 좋게 생각하고 싶다.
하지만 알면 알 수록 막가파의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 나라다.
솔직히 돈이 아니었다면 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겠지.
중국 선수들이 한국 와서 하는 꼴도 그렇고 여러모로 정을 붙이기가 힘들다.
물론 괜찮은 팀들도 여럿 있고 좋은 사람들도 많다.
비율적으로 따졌을 때 너무 적은 수준일 뿐.
하지만 이런 일이 반복될 수록 선입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어쨌든 간에 지금은 AOA와의 스크림만을 생각하자.'
첫 번째 세트는 완승.
생각 이상의 좋은 결과를 낳았다.
오전의 스크림 이후로 CLC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감을 찾고 있다.
'이 한 걸음에 만족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걸 잊어서는 안되겠지만.'
아직 오후의 스크림은 많이도 남았다.
그 사이에 생각지도 못한 CLC의 약점.
분명히 나올 것이고 자칫 지나쳐서야 곤란하다.
나 또한 탁상공론만 하지 않고 같이 게임을 진행하며 발을 맞춰야 한다.
오늘의 하루는 아직 남았다는 사실.
잊지 않고 정진해 조금이라도 나은 결과를 만들어낸다.
.
.
.
* * *
AOA와의 스크림은 총 여섯 차례 진행됐다.
팀 쿼스트와 같은 숫자.
균형을 맞히기 위함이라기 보단 팀단위로 스케줄을 맞히는 만큼 너무 많이는 할 수 없다.
특히나 미국과 유럽이 시차가 난다는 사실을 잊어서야 안된다.
'유럽은 현재 시각이 열두 시를 넘었다고 했지.'
아무리 겜돌이들이 밤을 새는 게 일상이라고 해도 팀단위라는 걸 생각한다면 쉬운 문제가 아니다.
선수도 선수지만 코치 또한 퇴근을 못하고 있을 테니까.
상대 팀에선 우리 CLC의 편의를 꽤나 봐주면서 스크림을 진행했다.
그만큼이나 우리 CLC와 스크림을 하고 싶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고마운 일이라는 걸 간과해서는 안된다.
과연 유럽의 명가 중 하나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AOA.
이전에 안 좋은 기억을 만들었던 로얄 CN과는 정말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그러한 AOA와의 스크림 경기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여섯 번째 세트가 마지막이다.
이번 세트를 끝으로 AOA를 상대로 한 스크림은 종료된다.
'우리 CLC는 약간 여유가 있는데 아쉽기는 이 이상은 힘들어 보이니까.'
로스앤젤레스의 시간으로는 아직 퇴근을 논하기엔 이른 시간대.
하지만 성과가 제법 넉넉했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해산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빅풋이 꽤나 툴툴 댔었나.'
나와 예은이 온 이후로 연습시간이 늘어났다고 종종 투덜대는 모습이 보인다.
물론 빅풋을 포함해서 다들 알고는 있다.
몸이 힘드니 반사적으로 불평이 나올 뿐.
휴식기간을 가진만큼 더욱 더 빡세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불금이니 일찍 끝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솔직히 나로 인해 연습 시간이 늘어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CLC 2군 때도 그랬지만 연습에 대한 시간 투자에 있어 내 입장은 완고하니까.
당연하게도 그러한 입장은 1군에 와서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내 고집대로만 밀어붙여서야 불만이 생길 수 있으니 쉴 때는 확실하게 쉬어줘야 한다.
'팀 쿼스트와 4승 2패.. 그리고 AOA와 4승 1패인가. 마지막 게임도 승기를 굳히고 있으니 아주 좋아.'
현재 진행되고 있는 AOA와의 마지막 여섯 번째 스크림.
변수가 없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거진 8할은 굳혔다.
이대로 미드에 진격하면 AOA는 입롤 한타 이외엔 별다른 방도가 없어 보인다.
이~쿠우!
안 그래도 유리하기 짝이 없는 한타에서 CLC의 슈퍼플레이가 터졌다.
예은의 리심이 음파를 맞혔고 돌격했다.
날아가는 도중 와드 방로를 사용해 순간적으로 경로를 바꾼 리심이 점멸까지 사용해 매미비아를 후려 찬 것.
각도가 조금 애매했는데 그게 역으로 로또가 터졌다.
꼬치 꿰이듯 두 명의 적이 당구를 당했다.
"이거 이대로 넥서스까지 갈 수 있지 않나?"
"그러게 오늘 연습 드디어 끝이다아~!"
AOA와의 스크림에서 나는 첫 번째 부터 세 번째 게임까지 들어갔다.
그 이후의 경기는 예은과 교체했다.
관전의 입장에서 쭈욱 살펴 보니 내가 빠지더라도 현 CLC는 확실히 팀의 색깔을 굳혔다.
역시는 명문팀은 명문팀.
실력이 인증된 프로게이머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방향만 지정해주니 조금 이탈했던 경로는 알아서들 척척 맞춰간다.
"적팀이 항복 의사를 밝히면서 한 판만 더 해달라고 요청하는데?"
"크크, 이대로 끝나는 게 어지간히 아쉬운가 보지. 예비 주장, 우리끼리 한 판 더 달린다?"
예비 주장이라 함은 다름아닌 나를 가리키는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이것저것 팀 내적으로 참견을 많이 하다 보니 붙어버린 별명.
실제로 CLC의 주장 자리는 현재 공석이기도 하다.
팀원들이 인정해준다면 LCF에서 나는 정말 CLC의 주장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이로, 핫숏이 저를 불러 가지고 잠깐 나가봐야 할 것 같은데 그래도 될까요?"
"음.. 적 미드가 교체되는 것 같긴 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야. 뭐, 맡겨 두라고."
우리 CLC에서도 나와 예은이 번갈아가며 정글을 했던만큼 선수 교체는 특이할 게 없다.
하필이면 지금 타이밍이라는 게 걸리긴 하지만 이해를 해줘야 하는 부분.
자정을 넘어 진행한 스크림의 결과가 4승 1패이니 이대로 끝내면 잠을 못 이룰 만도 하다.
조금 신경이 쓰이긴 하지만 겨우 미드 한 명 바뀌는 것으로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겠지.
"경기는 필히 녹화해 주시고요. 전 먼저 가봅니다?"
"아아, 핫숏 자식한테 구단주실에 짱 박혀서 놀지 말라고 전해주고."
일반적으로 프로게임단에서 구단주는 봉급을 주는 높디 높으신 존재.
하지만 우리 CLC의 구단주는 다름아닌 핫숏이다.
구단주가 됐다고는 해도 관계는 이전과 하나 변하지 않았다.
이런 친근함도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같은 7층에 있는 구단주실을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주말에는 또 뭐하며 지내야 할까.
예은을 어떻게 조교.. 아니 갈궈야 할까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웠다.
그렇게 내가 핫숏과 이야기를 끝내고 다시 연습실로 돌아왔을 때.
순간 다른 방이라 착각해버렸을 정도로 연습실 내의 공기는 이전과 달라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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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LCF이전까지는 팀의 색을 맞춰나가는 단계라 주인공 비중이 조금 적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수고를 한만큼 차후 있을 대회에서는 주인공 위주로 포커싱이 될 거에요.
간이하게 말씀드리자면 주인공 혼자서 깽판을 쳐도 될만큼 팀의 안정도를 더하는 작업입니다.
#최근 연습파트의 흥미도가 떨어지는 것 죄송합니다….
하지만 솔직히 필요한 것도 맞아서 빠르게 연참으로 넘겨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