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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347화 (347/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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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핫숏이 나를 호출했던 까닭은 구단주실에 도착하자마자 알 수 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

한 마디로 구단주실에서 작업을 하는 게 겁나 심심했던가 보다.

"그딴 이유로 팀원 오라가라 하지 말라고요. 이 막장 구단주야."

"여기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심심하단 말이야.."

핫숏이 나를 향해 징징대 오지만 내 알 바가 아니다.

하지만 구단주실이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이유 정도는 알고 있다.

저래 봬도 구단주는 프로게임단 내에서 지고무상한 존재.

허투루 대하다간 그 자체만으로 방출 사유, 혹은 연봉 협상이 재조정될지 모른다.

게이머들 입장에서 대하기 힘든만큼 구단주실의 위치선정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구단주실은 연습실이나 취식실과는 꽤나 동떨어진, 그러면서도 볕이 잘 들고 통풍이 용이한 장소에 위치한다.

비유가 조금 뭐하긴 해도 학교로 따지면 교장실같은 느낌.

그리고 구단주 입장에서도 이 정도 거리감이 좋다.

게임을 좋아하는 구단주는 있을지 몰라도 지식이 깊은 구단주는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아니라고? 내가 우리 선수들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슬퍼."

"그건 댁 사정이고요.. 그래서 저는 왜 부른 겁니까? 정말 그 이유 하나만으로 부른 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만.."

이러한 이유로 멀리 떨어져 있는 구단주실의 위치선정이 핫숏에게는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역 프로게이머였으니만큼 일반적인 구단주는 아니긴 하다.

아무래도 사람의 체취를 느끼고 싶은 듯 진심으로 외로워 보인다.

"5초 안에 대답 안 하면 저 나갑니다?"

"아니 잠깐만…. 아! 내가 생각을 해봤는데 이제 슬슬 현지 적응을 목표로 개최지에 가보는 건 어때?"

지금 막 떠올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핫숏의 말은 듣고 있자니 나름 타당했다.

정말로 고심해서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

핫숏은 나와 예은의 적응 기간을 고려해서 이르게 유럽을 갈 것을 권유해왔다.

"확실히 좋은 생각이긴 합니다만, 팀원들이 맞춰줘야 하잖아요?"

"우리 애들이 그렇게 쪼잔하지 않다고? 아직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그럴 거야."

근거없는 자신감이 불안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보다는 핫숏이 잘 알만한 부분이 맞다.

하루이틀 같이 지내온 게 아닐 테니 친밀할 테다.

쓸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구단주로서 강제력도 발휘할 수 있고 말이다.

'프랑스.. 그것도 파리라.'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이번 LCF의 개최지는 다름아닌 프랑스가 됐다.

그 수도인 파리, 에펠탑으로 상징되는 낭만의 도시에서 대회가 열릴 예정이라는 사실은 나 또한 알고 있다.

"핫숏도 은근히 팀에 신경쓰긴 하네요?"

"섭섭한 소리를! CLC에 가장 많은 관심을 쏟고 있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나야 나."

여느 때처럼 장난스런 어투지만 틀린 소리는 아니다.

어느 프로게이머가 자신이 입단한 게임단에 모든 것을 올인할 생각을 하겠는가.

구단주란 자리가 출세한 것도 맞지만 그만큼 CLC에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핫숏이 그에 비례한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뭐.. 알겠습니다. 긍정적으로 검토해보죠."

"그건 보통 구단주가 해야 하는 소리아닌가? 이거 참 벌써부터 잡아먹힌 기분이야."

그렇게 핫숏과 농담따먹기를 하며 조금 더 말상대를 해주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 구단주님이 외로움을 타신다는데 잠깐 정도 어울려 주는 거야 어려운 일은 아니니.

그리고 이제 슬슬 퇴근할 시간이기도 하다.

'내일이면 주말이니 푹 쉴 수 있겠지.'

더욱이 오늘은 불금.

내일이면 주말이라 마음가짐부터가 널널하다.

조금 정도 농땡이를 부려도 괜찮다.

그렇게 핫숏과 조금 더 노닥거리던 나는 시간에 맞춰 연습실로 돌아갔다.

.

.

.

* * *

구단주실에 죽인 시간은 대략 30분 가량.

이 정도면 여섯 번째 경기가 끝났거나 마무리되는 도중일 터다.

설사 20분 전에 끝났다고 해도 아직 피드백을 주고 받고 있겠지.

삼척동자도 할 수 있는 너무나도 당연한 예상이다.

그런데 그게 틀려버릴 거라 어떻게 내가 상상을 할 수 있었겠는가.

'게임이야 질수도 있지. 그런데 왜 이렇게 분위기가 다운돼 있어?'

연습실 문을 다시 열고 들어갔을 때 처음 느낀 감상이었다.

순간 방을 착각했나 싶었을 정도로 공기의 온도가 다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상대 쪽에서도 생각없이 막판에 미드를 바꾸진 않았을 테니 고전하리란 것은 예상하고 있었지만..'

AOA는 여섯 경기를 모두 같은 멤버로 치렀다.

그러다가 막판에 미드를 바꿔 게임을 진행했다.

그말인 즉, 새로운 미드라이너는 주목할만한 존재.

눈치채지 못할 내가 아니기에 살짝 걸렸지만 큰 차이는 아니리라 생각하며 자리를 비웠다.

어차피 한 판 진다고 해도 5승 2패.

총 스코어는 우리 CLC가 압도적이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고작 한 게임 져버린 여파가 상당히 많이 남아있는 듯한 연습실의 분위기다.

특히 미드라이너인 빅풋의 안색은 심각하게 어두웠다.

"게임이 대체 어떻길래 그래? 일단 나도 관전은 해보겠지만 이렇게까지 상심할 정도야?"

"하, 말도 마라. 미드가 완전히 떡발렸어. 괜찮다고 했는데도 위로도 안 받는다 쟤."

대체 어느 정도길래 저렇게 충격을 받은 걸까.

얼굴을 보아하건데 본인에게 대답을 듣긴 글렀다고 판단한 나는 의자에 앉았다.

리플레이가 남아있을 테니 직접 확인하는 편이 빠를 터다.

'아무래도 라인전에서 꽤나 고통을 받았나 본데..'

설마 미드에서 퍼블이라도 따이고 시작한 걸까.

그렇게 스노우볼이 굴러서 계속해서 죽었다면 빅풋에게는 신선한 경험일 테다.

탑신병자인 바이바이에겐 적을 터는 것도, 털리는 것도 다반사지만 빅풋의 경우 안정적인 라인전을 지향하는 편이니까.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죽었다면 멘탈이 나갈 만도 하다.

하지만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

적당한 자극은 선수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

주말이니만큼 휴식 시간도 넉넉히 있고 다음주까진 충분 재충전이 되겠지.

여러 생각을 가지며 보기 시작한 리플레이는 의외로 싱거웠다.

'뭐야, 별거 없잖아?'

말 그대로의 의미다.

퍼블은 커녕 라인전은 무난무난 하기만 하다.

AOA에서 교체된 미드라이너는 누군지 몰라도 빅풋만큼이나 신중한 타입.

그러면서도 CS수급과 딜교환에서 조금씩 이득을 벌려나간다.

'이렇게 수비까지 신경쓰다면 킬로 연결시키기는 힘들겠지.'

로드 오브 로드의 프로게이머들은 각자 장기로 삼는 분야가 여럿 있다.

한 마디로 스테이터스의 분배.

일례로 빅풋은 수비적인 부분에 올인하듯이 했다.

이는 단순히 솔킬을 따이지 않는다같은 저급한 해석이 아니다.

라인전을 하다보면 당연히 갱킹이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무작정 사리면 놓치는 CS가 생기고 만다.

빅풋은 그 두 가지를 적절하게 잡아낸 선수다.

대신 적팀의 로밍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이는 어쩔 수가 없는 부분.

'예은이 인성을 포기하고 외모를 얻은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물론 예은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지만 선수마다 지향하는 플레이 스타일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플레이 스타일마다 뚜렷한 약점이 최소한 하나씩은 있다.

그렇기에 선수들은 자신의 약점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일정 부분을 조금씩 포기하고 중심점을 찾는다.

당연한 소리지만 중심점을 잡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행위.

한 번 익숙해지면 다른 중심점으로 옮기기 어렵다.

차라리 라인을 옮기는 편이 낫다고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AOA의 새 미드라이너는.. 혼합형인가.'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가 적절하다.

적당히 사리면서 적당히 공격한다.

치우침이 없는 중간 단계의 플레이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이도 저도 아닌 타입은 프로 무대에 한해서는 많이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가자면 솔로랭크 유저들은 대부분 혼합형이다.

정확히는 자신의 성향에 대해 갈피를 못 잡았다고 표현이 맞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상관이 없는 게 솔로랭크에서 죽자고 한 라인만 노려오는 경우가 자주 있겠는가.

예를 들어 볼까.

솔로랭크에서 라이너와 정글이 쌍으로 점멸 써서 갱킹을 성공시키는 것.

혹시라도 나온다면 <이걸 점멸까지 써서 들어오네. 점멸 안 아깝냐?>라는 채팅이 백이면 아흔 아홉은 터진다.

자신도 모르게 나올 정도로 미치고 팔딱 뛰어서 억울해 돌아갈 일이다.

'그러나 프로 레벨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갱킹이지.'

각이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갈 수 있는 것이 바로 프로 레벨의 정글러.

점멸 두 개 써서 킬을 따내는 갱킹각은 당연히 계산할 수 있고 이는 충분히 해볼만한 장사다.

프로 무대에서 그런 식으로 한 번 킬을 따기 시작하면 스노우볼을 계속해서 굴릴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상대 정글러의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한 갱킹각은 어차피 무조건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애매하게 혼합형을 지향하느니 한 쪽에 치우치는 편이 옳다.

바이바이처럼 지나치게 공격에 올인해 라인전 딜교환을 유리하게 이끌어 놓거나.

빅풋처럼 수비적인 성향으로 갱킹을 당하지 않으며 안전하게 파밍을 하는 것이 프로 무대에서는 오히려 알맞다.

'나 또한 혼합형이긴 해도 일반적으로는 시도할 부류가 아니야.'

불안하기 짝이 없는 혼합형을 조금이라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선수 각자가 가진 재능을 사용해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한다.

이를 테면 피지컬이라던지를 말이다.

트리플리프트급의 피지컬이라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괴물이나 해볼 법한 행위니 꿈도 꾸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하지만.'

나같은 경우 이론에 빠삭하다.

적이 어떤 경로로 어떻게 나를 노릴지 빤히 예상하고 있다.

그러니만큼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당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웬만한 수준으로는 매 순간 아찔한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느낌으로 라인전이 진행될 것이다.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아 조금만 어긋나도 틈이 생기고 만다.

솔로랭크에서는 그냥저냥 넘어갈 수 있는 작은 틈새.

프로 무대에서는 집요하게 파고들어 해당 라인을 맛집으로 만들어버린다.

과연 이 AOA의 미드라이너는 성공작일지 실패작일지.

빅풋을 곤란하게 했을 정도면 의외로 제대로 해낸 걸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게임을 지켜본 나는 이윽고 결론을 내렸다.

'잔머리가.. 제법인데?'

빠른 속도로 돌려본 리플레이는 10분 초반대.

빅풋의 코리아나와 AOA의 미드인 트와이스 페이크는 무난한 라인전을 가져가고 있다.

라고 착각할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저 트와이스 페이크를 하는 선수는 보통내기가 아니다.

실질적으로 궁극기를 사용해 킬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에 준하는 이득을 보았다.

다름아닌 무빙을 통해서.

'봇에 가는 척, 탑에 가는 척. 아군의 와드가 어디에 깔렸는지도 감안한 움직임이야.'

CLC의 시야로만 보자면 완전히 로밍을 가는 듯한 움직임이다.

그렇게 액션만 취해놓고 정작 트페는 더티파밍을 한다.

아주 교묘하기 짝이 없는 잔머리.

트페의 움직임에 코리아나는 완전히 휘둘리고 있다.

그것을 계속해서 반복하니 어느새 트페는 코리아나를 상대로 CS를 앞섰다..

'그리고 멘탈이 나간 건 이 부분인가.'

당연하게도 빅풋 또한 학습한다.

아싸리 라인전을 압박해서 트페가 어딜 갈 생각 자체를 못하게 하려 했다.

하지만 그것 자체가 노림수.

자신도 모르게 평소 안 하던 공격적인 라인전을 해버린 코리아나는 갱킹의 위협에 노출되고 말았다.

여기서 한 번 킬을 먹은 트페로 인해 스노우볼은 빠른 속도로 굴러갔다.

다른 챔피언도 아닌 트와이스 페이크.

글로벌 이동기인 궁극기로 종횡무진 맵을 들쑤신다.

반박의 여지가 없는 미드차이로 게임은 끝이 났다.

'빅풋의 입장에선 완전히 놀아났다는 느낌이었겠지.'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최선이었을지 고민에 잠길 수밖에 없다.

해답은 빅풋 자신이 찾아나가야 할 문제.

이는 의외로 좋은 자극이라고 생각한다.

가끔가다 라인전 한 번 탈탈 털리는 건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킨다.

솔직히 빅풋이 살짝 나사 빠진 느낌으로 게임에 임했던 것도 사실이니까.

'그런데 왠지 근래에 한 번 본 듯한 플레이 스타일이네.. 기분 탓이려나?'

알고 있는 선수라고 보기에는 아이디가 낯설다.

AOA의 신진 미드라이너 ChadoRE 선수.

혹시 몰라 물어도 봤지만 아직 데뷔하지도 않은 신인이라고.

최근에 하도 연습을 많이 하다 보니 알고 있는 기억에 혼선이 있던 모양이다.

'AOA의 ChadoRE 선수라…. 기억해두는 편이 좋겠어.'

신인이라곤 하지만 그 기량은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수준이다.

어쩌면 LCF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상대.

이번 대회, 생각 이상으로 재밌을 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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