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348화 (34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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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는 멈추지 않는다

유럽의 프로게임단 AOA의 거점이 되는 숙소 내부.

오늘 있었던 CLC와의 스크림 경기에 대한 피드백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새벽 3시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선수들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하, 네놈들 아주 엉망이야. 조금 풀어줬더니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2승 5패가 말이나 되는 성적이라고 생각하나?"

아무리 유럽 게임단이 북미보다는 규율이 엄하다고 해도 잠을 뺏을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입을 열 생각을 하지 못한다.

지금 선수들을 질타하고 있는 까칠한 인상의 중년 남자.

이곳 AOA의 감독 메리후드에게 감히 말대꾸를 할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옛날 CLC가 아니야. 지금 CLC는 아주 막장이라고 막장! 그런 CLC를 상대로 너희는 완전히 쳐발렸어. 그나마도 마지막 세트를 챙기지 못했다면 1승 6패였겠네. 내가 네놈들의 감독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지경이야."

독설을 쏟아붓는다.

심하다고 생각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메리후드의 심정도 어떤 면에서는 이해가 간다.

AOA와 스크림 경기를 잡았던 CLC는 거진 두 달 가까이 휴식기간을 가졌다.

근래에 다시 팀을 정비하고 이는 고작해야 1주 가량.

팀 상태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른 팀들과의 스크림 성적이  증명한다.

기본적으로 스크림 성적은 공개를 하지 않기로 합의 되어있지만 기본은 기본일 뿐 공공연하다.

로드 오브 로드의 프로판이 하도 좁다보니 건너건너 다 알게 된다는 느낌이다.

현재 CLC가 재정비때문에 기량이 많이 내려가 있다는 사실.

옛날만한 강호가 아니라는 것은 모르는 팀이 없을 정도다.

물론 시간이 주어진다면 제 기상을 되찾겠지만 고작 1주일이다.

변화가 이루어지기엔 한참은 남았다.

엉망진창인 CLC를 상대로 AOA는 무려 2승 5패.

완전히 떡 발려 버렸으니 메리후드가 노발대발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비싼 돈 주고 계약한 선수들이 이 모양이니 말이다.

물론 선수들 입장에서도 어지간히 불만이 쌓여 있다.

AOA는 급료가 좋은 편도 아닐 뿐더러 선수들을 너무 심하게 굴린다.

이런 오밤 중에 잠도 안 재운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스크림 경기 시간이 늦게 잡힌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지만, 이렇게 한 시간 가까이 감독 제량으로 피드백 시간을 연장하는 건 경우가 없다.

하지만 선수들은 비난의 화살을 감독에게 직접적으로 돌리지 못한다.

막말로 AOA를 박차고 나갈 수도 없는 문제.

독사같은 감독은 자신의 눈에 벗어난 이를 용서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맥을 통해 악소문을 퍼트리고 다닐 정도로 집요하다.

물론 다른 게임단에서 탐을 낼 정도로 유명해진다면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일까.

갤럭시 크래프트와 달리 팀게임인 로드 오브 로드는 한 선수가 두각되는 것이 힘들다.

팀 평가와 선수 개인에 대한 평가가 달리 매겨진다.

그마저도 팀이 유명하지 못하면 평가를 받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AOA의 선수들로서는 좋든 싫든 감독의 말을 따라야만 했다.

그렇기에 비난의 화살은 다른 쪽으로 돌려졌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더니 딱 그 꼴이다.

"그에 비해 새로 들어온 우리 차도리. 네가 들어가자마자 CLC가 아주 박살이 나더군. 차도리가 아니었으면 내가 고개도 들지 못할 뻔했어."

AOA의 서브 미드라이너로 발탁된 ChadoRE.

한국에서 도차란 아이디를 사용하던 그는 AOA에 들어와서 자신의 닉네임을 바꾸었다.

이전에 사용하던 닉네임이 딱히 애착이 없었던 듯 시원시원했다.

그 의도가 궁금해 물으니 '지난 과거에 미련을 갖기 않기 위해서'.

AOA의 감독인 메리후드로서도 썩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타지에서 온 선수들의 경우 향수병에 시달리다 선수 생활을 관두는 경우가 상당히 잦다.

마음가짐부터 새로이 하겠다는 차도리는 메리후드가 바라는 선수의 태도 그 자체였다.

더욱이 실력까지 출중해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차도리임에도 메리후드의 마음에 쏙 들어버렸다.

소문에는 곧 서브에서 메인 미드라이너로 자리를 옮길 예정이라고 하니 굴러온 돌이 박혀있던 돌을 빼내는 격이 됐다.

감독 눈에 든 이상으로 선수들 사이에서는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차도리 선수였다.

"오늘은 이쯤에서 해산해 주겠지만.. 다음에도 비슷한 결과가 나온다면 잠 안 재우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거야. 각자 연습에 더욱 더 매진하도록. 이상!"

메리후드의 말이 떨어지자 눈치를 보던 선수들은 슬금슬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장 마지막으로 일어나는 건 막내라 할 수 있는 차도리 선수.

한국만큼은 아니여도 유럽 또한 꽤나 보수적이다.

더욱이 찍히기까지 한 차도리는 선배 선수들의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게 모든 선수들이 나간 후에야 차도리는 연습실을 나갔다.

'앞으로 조금이다.'

앞서 나간 선수들과 동떨어져 마지막으로 연습실을 나가던 그는 영문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마음 고생이 생각보다 심하지 않다는 걸까.

아니면 선배 선수들의 텃세가 우습기라도 한 걸까.

차도리의 얼굴엔 이해하지 못할 여유가 감돌고 있었다.

.

.

.

* * *

이번 주 행했던 연습은 굉장히 보람찼다.

그만큼이나 빡세기도 했지만 성과가 있었다는 게 중요.

보람찬 성과로 인해 앞으로의 연습 시간은 크게 단축됐다.

그리고 못내 있었던 불안도 사라졌다.

'AOA와의 마지막 스크림 경기는 조금 찝찝하지만 솔직히.. 내가 나서면 끝나는 부분 아니냐?'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이 쑥쑥 솟아나는 주말이다.

그럴 만도 하다.

이번 주말은 평온하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휴식 시간.

다음 주부터는 연습과 현지 적응을 동시에 해내야 한다.

바쁘다 못해 피가 튄다.

"그러니까 좀.. 쉬어도 되지 않을까?"

"닥쳐. 빡연습할 거니까 말 시키지 마."

내가 할 소리를 왜 예은이 하는 건지.

지난주 주말 이후로 이 모양 이 상태다.

그 사건 이후 하루이틀 싱숭생숭 하던 예은은 금새 마음을 잡았다.

마음을 잡은 건 좋지만 너무 방향성이 치우쳐졌다.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너무 심하단 말이지.'

내가 만약 어머니, 혹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면 기꺼이 사과라도 깎아줬을지 모른다.

하지만 친구로서 보자면 걱정이 된다.

가끔은 한숨 돌리는 것도 좋은데.

때마침 날씨도 화창한 게 산책하기 좋은 날씨다.

"야, 파리 가면 엄청 춥고 비도 많이 온데. 습도도 아주 끈적할 걸? 로스앤젤레스에 있을 때 많이 즐겨 놔야지."

"남이사. 신경 끄고 니 볼일이나 보셔."

학교에서 공부를 재밌다며 하는 아이한테 게임하자고 부추기면 이런 느낌일까.

반응이 정말 뚱하기 짝이 없다.

지난 주말에는 귀엽기까지 했는데 그 요요현상이라도 와버린 듯한 태도다.

'그때는 확 보쌈해버릴까도 싶었는데…. 지금은 확 보쌈이나 먹여서 조용히 만들고 싶네.'

그날 하루는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을 정도로 설레버렸다.

애정이든, 우연이든 간에 예은 정도의 미인에게 입맞춤을 받는다면 어느 남자라도 혹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데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니 밉상이 또 이런 밉상이 없다.

여느 때처럼 먹을 거라도 사먹이면 괜찮을까 싶어서 꼬시고 있는데 통 먹히지를 않는다.

'연습이나 하라고 두고 난 내 볼일이나 보러 가야겠다.'

이유야 어찌 됐건 자진해서 연습한다는데 말릴 것 까지야 있을까.

이번 주 평일 내내 바빴던 탓에 할 시간이 별로 없었던 운동이나 보충해야겠다.

운동이라는 게 하다가 안 하면 몸도 뻐근하고 컨디션도 다운되기 마련이다.

'운동을 해온지도 벌써 세 달째인가. 내가 시작을 안 해서 그렇지 한다면 하는 아이지.'

CLC에 입단한 이후로 나는 꾸준하게 운동을 해오고 있다.

그것도 근력 운동 위주로 말이다.

덕분에 체형도 꽤나 보기 좋게 변했고 이는 자신감 상승으로도 이어졌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밖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부터가 다르다.

적어도 방구석에서 겜만하는 겜돌이라고 생각하지 않겠지.

타인의 시선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그러한 이유도 있고 운동 자체가 제법 즐거워 꾸준하게 하는 중이다.

"나갈 생각 정말로 없으면 난 운동 갔다 올 테니까. 혼자 연습하고 있어라?"

별 생각없이 행선지를 내뱉은 나는 뒤를 돌려던 찰나.

무언가 강력한 힘이 내 걸음을 강제로 멈췄다.

그 힘이라 함은 다름아닌 예은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 녀석 정말 놀라우리만큼 힘이 강하다.

예은의 손이 내 상의를 꽉 잡고 있다.

무슨 연유가 있어 나를 멈춰 세우셨을까.

나를 붙잡은 상태로 잠시 뜸을 들이던 예은의 입이 벌려졌다.

그리고 다시 닫혔다가 마음을 먹은 후에야 조그맣게 소근거려 온다.

"운동이라면 같이 해줄 수도 있는데..?"

마지 못하다는 듯한 어조로 중얼거리는 예은이 내 옷을 잡고 있던 손을 더욱 강하게 움켜쥔다.

옷이 아깝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일단은 그만둬줬으면 좋겠다.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옷인데 늘어나면 울상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이 녀석이 운동에 관심이 있었던가?'

어째서 뜬금없이 운동을 하고 싶다고 하는 걸까.

그렇게 먹어대더니 조금 불어나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나는 예은이 운동하는 모습을 살아 생전 본 적이 없다.

예전에 탄천로를 빙빙 조깅 돌 때도 메로나 빨면서 구경만 했지.

이 녀석, 흔하디 흔한 체조조차 한 적이 없던 걸로 기억한다.

나 이상으로 운동과는 인연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계기야 어떻든 건강을 생각해 운동을 한다면 좋은 일이다.

따라올 거면 따라 와라, 무심코 내뱉으려던 나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말을 바로 삼켰다.

'안되지.. 그건 안되지.'

나는 예은이 운동을 하며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을 상상했다.

라인을 드러내는 얇은 옷.

땀에 절어진 옷은 피부에 착 달라붙어 묘한 색기를 뿜는다.

호흡이 가빠지자 뺨이 붉게 상기되기까지 한다.

같은 헛망상은 둘째 치고 예은의 운동을 결사반대해야 할만한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있다.

'이 녀석이 이 이상 강해지면 어떻게 막으라고.'

지금도 어지간한 남정내를 원펀치에 K.O시키는 수준인데 여기서 근육까지 붙는다?

내가 이 녀석과의 생활을 버텨내지 못한다.

지금껏 간신히 유지돼 오던 나와 예은 사이의 밸런스가 무너져 내린다.

막말로 맞고 사는 건 사양이다.

"안돼. 넌 여기서 연습이나 하고 있어."

"하? 그럼 너도 가지 마. 가면.. 이 방 싸그리 엎어 놓을 거니까."

니가 애냐?

한 마디 내뱉으려던 나는 간신히 참았다.

왜 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심기불편해 보인다.

너무나도 막말이지만 이 녀석이라면 정말로 해버릴 지도 모른다.

'베개 털을 싹 다 뽑아 놓을지도 몰라.'

될 지는 모르겠지만 예은과 나 사이에 합의점을 찾아보자.

아주 잠깐 심사숙고 해보자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한국에 있을 때 매일매일 쉬지 않고 했던 조깅.

유산소 운동인 조깅이라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최소한 전투력이 강해지진 않으리라 믿는다.

"서로 반반씩 양보해서 조깅하는 건 어때? 옛날 생각도 나고."

"흥, 찌질이나 할 법한 생각이네. 뭐.. 싫다고는 안 했지만."

최근 안 그러더니 왜 이렇게 또 심술보가 오른 걸까.

그래서인지 오히려 귀엽게도 느껴진다.

이 상태가 오래간다면 아무리 나라도 화내겠지만 아마 곧 풀릴 거라 예상된다.

'데려가서 오뎅이라도 한 꼬치 물려주면 맛있게 잘 먹지 않을까.'

조깅이 덤이고 식사가 메인이라는 느낌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 녀석의 운동에 대한 끈기가 오래 갈 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30분 뛰고 '배고파. 그만하고 밥 먹으러 가자~' 이러겠지.

조금이라도 땀을 빼고 식사를 하면 식욕도 돌아서 기분전환이 될 거다.

"..잠깐 준비하고 올 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그냥 나가도 될 텐데? 그대로 조깅 나가도 괜찮아."

현재 예은이 입고 있는 캐쥬얼한 생활복.

말이 캐쥬얼이지 츄리닝이랑 별반 다를 게 없다.

어차피 오래 뛸 것도 아니니 그 정도 복장이면 충분하다.

"밖에 춥단 말이야. 그리고 나 운동복 사둔 거 있어."

"그래? 그럼 빠르게 입고 와. 나도 준비하고 있을 테니까."

운동 안 하는 사람들이 꼭 복장에 더욱 신경 쓰고 돈도 많이 들인다.

예은이 하는 꼬라지가 딱 그 꼴이다.

그 운동복이라는 것도 큰 마음먹고 샀다가 쟁여둔 거겠지.

속이 아주 빤히 보이지만 달리 할 일도 없으니 일단은 기다려줘 볼까나.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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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내일 4연참해서 LCF 부근까지 당겨 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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