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355화 (355/803)

355====================

미리 보는 롤드컵, LCF.

빅 게이밍즈와의 두 번째 세트.

경기의 내용은 요약할 건덕지도 없는 완승이다.

그럼에도 굳이 정리를 해보자면 이러한 느낌일까.

'그냥 다 때려 부숴버렸지.'

MVP를 받기 위한 처절한 사투.

빅 게이밍즈는 복날 개 패듯 두들겨 맞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통받은 건 원딜러.

예은의 리심이 미쳐 발광하며 한타때마다 아웃섹킥을 차날렸다.

선수실의 부스 안에 있는 의자에서 관전했기에 해설 내용은 들을 수 없었지만 내용은 뻔하다.

원딜러 불쌍하다고 탄식이 쏟아졌겠지.

그런 생각이 절로 날 정도로 빅 게이밍즈의 원딜러는 동네 조기 축구회의 축구공마냥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고 난리가 났다.

그렇게 토스한 원딜러를 아군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미드라인이 개통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빅 게이밍즈와의 32강 경기는 당연히 승리.

이윽고 나와 예은은 같은 자리에 올라올 수 있었다.

올라온 자리라 함은 MVP의 인터뷰를 하기 위한 좌석이다.

더불어 두 사람 더 존재했다.

우리 CLC의 코치인 라이로와 그 덤같은 사람이.

"구단주가 덤이야?"

"하하, 딱히 한 거 없잖아요 핫숏은."

하지만 어처구니 없게도 이번 인터뷰에서 가장 많은 질문을 받을 사람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게 팬들은 상당히 궁금해 할 테니까.

오지랖 넓은 핫숏이 래딧에 글을 썼다고는 하지만 직접 입에서 나오는 것과는 임펙트가 다르다.

모든 로브 오브 로드 유저가 래딧같은 커뮤니티 사이트를 하는 게 아니니만큼 더더욱이다.

첫 번째 세트의 MVP인 나부터 시작해 인터뷰는 빠르게 진행됐고 무난하게 끝마쳤다.

어떻게 우콩을 정글로 꺼낼 생각을 했냐느니.

이런 질문도 처음 받았을 때나 당황했지 이제는 나도 프로다.

어지간한 수준은 술술 넘긴다.

예은도 인터뷰에 슬슬 익숙해지자 이미지 관리에 힘을 쏟았다.

북미에서 보는 팬들이 고개를 갸우뚱할 정도.

아나운서의 물음에 상쾌한 미소로 화답하며 누님이라기 보단 누나같은 이미지를 굳히려는 생각이 빤히 보인다.

래딧을 포함한 커뮤니티 사이트엔 물음표가 도배되고 있을 게 분명하다.

그렇게 MVP 인터뷰는 마쳤지만 기분이 약간 불쾌하다.

'홈그라운드 느낌이라는 게 조금 거슬렸어.'

이곳은 북미가 아니라 유럽.

그리고 유럽 문화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파리다.

프랑스는 자국에 대한 애국심과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물론 중계진들까지 프랑스인들이라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북미와 유럽은 경쟁 관계.

유럽 쪽 팀들에게 편파까지는 아니여도 힘이 실리기 마련이다.

내 플레이에 대해서 어떻게 우콩을 꺼낼 생각을 했냐? 라는 질문은 던져도.

우콩의 슈퍼플레이가 너무나도 대단했다, 식으로 띄워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 겨우 32강.

기차로 따지면 첫 번째 역을 출발했을 뿐이다.

외지라 할 수 있는 유럽에서 이르게 고평가를 받을 거란 생각따위 한 적도 없다.

언제나 그러했듯 실력으로 증명해나가면 될 일.

이제 남은 것은 메인 이벤트다.

"MVP에 선정되었던 두 선수분의 인터뷰, 잘 들었습니다. 다음으로 CLC 선수들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두 사람. 코치님과, 특이하게도 구단주가 오셨습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구단주가 대회에 오는 일은 기껏해야 행사다.

구단주 뿐만 아니라 감독도 대부분 참석하지 않는다.

하지만 핫숏디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프로게이머였던 그는 이곳 경기장이 참으로 익숙하다.

MVP 인터뷰 또한 수도 없이 진행해봤음은 물론이다.

"제가 MVP가 아닌 다른 자격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될 날이 오리라고는.. 이렇게 까지 빠를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요."

핫숏의 장난스런 헛소리가 의외로 빠르게 끝나고 본론이 이어진다.

그 본론이라 함은 차마 커뮤니티 사이트같은 장소에가 가볍게 밝히지 못한 내용.

어째서 은퇴를 마음먹게 되었나 하는 것이다.

아무리 구단주라는 자리를 매혹적이라 해도 한창 때다.

선수로서 차기 시즌을 재패할 욕심이 없을 만한 남자가 아니다.

핫숏디디는 1,2 시즌에서 가장 유명했던 프로게이머.

어떻게 마음을 접을 수 있었는지 그 속사정이 궁금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가장 선두에 있었던 사람이 물러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평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뭇 진지하다.

잠깐 머릿속에서 다음 말을 다듬던 핫숏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하나는 추월 당할 때,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톤을 넘겨줄 때. 저는 이 어느 쪽도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쪽에도 해당된다.

핫숏은 자신의 선수생활이 길게 남지 않았다.

냉정하게도 스스로를 그렇게 평했다.

그리고 CLC의 주장으로 오랫동안 역임했던 자신의 능력을 선수들을 매니지 하는데 쓰고 싶다, 핫숏은 그렇게 이야기했다.

더욱이 다른 하나의 이유.

아직 바톤을 잇지는 못했지만 이을 것이다.

잇는 사람이 오직 나 하나만이 아닌 현재 진행형으로 탄생하게 될 것이라며 말을 꺼냈다.

"우리 CLC의 귀여운 막내 Error 선수, 물론 훌륭하지만 저는 나머지 새싹들도 충분히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은퇴를 아쉬워 해주는 팬 여러분 정말 송구스럽지만 저 이상의 선수들이 앞으로도 CLC에서 탄생하리라는 사실을 약속드립니다."

끝이 아니라 시작.

아직 시즌3의 CLC는 선보이지 않았다.

발전 가도를 밟고 있는 팀이고 앞으로도 더욱 더 성장하리라.

방금 전 핫숏의 발언은 곰곰이 곱씹어볼 여지가 있다.

"차기 시즌의 선두주자가 되시겠다는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 CLC가 이어나갈 행보가 정말로 기대가 되네요. 진행 관계 상 인터뷰는 여기서 끝을 마쳐야만 할 것 같습니다."

답지 않을 정도로 함축해서 이야기를 했음에도 핫숏의 인터뷰는 상당히 오랜 시간을 소요했다.

하지만 핫숏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팬들이 적지 않은만큼 시간은 최대치로 할애되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담긴 의미를 모두가 경청했다.

이로써 우리 CLC의 32강 승리를 장식하는 인터뷰가 종료되었고 무대를 나갔다.

그리고 우리의 뒤를 이어 다음 경기를 진행할 선수들이 입장한다.

우리도 이전 팀과 했었던 인수인계.

경기 부스 안에서 철수하고 다음에 이곳 부스에서 경기를 치르는 팀에게 자리를 옮겨준다.

일련의 작업은 몇 번씩이나 행해봤고 익숙하지만 기분 탓인지 무언가가 걸린다.

'저 선수를 내가 어디서 봤었던가?'

우리와도 한 번 스크림을 가졌던 팀AOA.

매너도 그렇고 꽤나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던 팀이다.

그러니만큼 스쳐 지나가면서 간이하게 인사를 나눴고 상대도 기분 좋게 받아줬다.

서로 간에 덕담까지 오가자 분위기는 훈훈하기 그지 없었는데도, 맛있게 먹던 생선 가시에 목이 턱 막혀버린 느낌이다.

'낯이.. 익은 것도 같은데.'

팀AOA의 팀원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따라오던 남자.

유럽 프로팀 중에서는 드물게도 동양인이었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야 흔한 경우지만 유럽에서는 비교적 수가 적다.

'놀랄 일까진 아니겠지만 어째서 일까.'

물론 적을 뿐이지 동양인이 없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충분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이상하게도 왜인지 신경 쓰인다.

한 번 본듯한 애매한 기억이 채 삼키지 못한 가시처럼 빠지지 않는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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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파이널.

LCF가 개최된지도 벌써 사흘이다.

당연하게도 수많은 팀들이 이미 경기를 치렀다.

─앞으로 몇 팀 남았지?

하루에 두 팀씩 하니까..

음, 손가락이 부족하네.

└32강만 8일 걸리니까 5일 남았잖아. 이 바보야!

└어느 나라 살길래 공교육도 못받냐.

[운영자]-타국가 비하 발언 IP202.128,**.**님 차단되었습니다.

현재 래딧은 LCF의 여파로 인해 지나칠 정도로 뜨겁게 달궈졌다.

LCF는 북미와 유럽의 대립 구도를 띄고 있긴 하지만 그 뿐만이 아니다.

작게나마 각 국가 대항전의 느낌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유럽의 강호 모스코5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팀이다.

러시아의 국민들로서는 어지간하면 모스코5를 응원할 수밖에.

이런 느낌으로 각 팀마다 국가 단위의 팬층이 존재한다.

순기능으로 작용한다면 팬들을 더욱 달아오르게 만들겠지만 여느 집단에나 미꾸라지는 한 마리씩 존재하는 법.

이로 인해 가끔 분쟁이 생기기도 한다.

운영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칼같이 제재를 때리고 있지만 한동안은 래딧 자체가 아비규환을 이룰 수밖에 없다.

LCF에서 연달아 각국의 팀들이 맞붙으고 있으니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

하지만 이는 그만큼이나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LCF가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반증하기도 한다.

북미와 유럽 각국의 32개 팀이 출전한 국제 규모급 대회.

풀 토너먼트로 개최되는 LCF의 경기 방식은 가차가 없다.

그렇기에 더더욱 팬들 간에 시비가 교차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보는 입장에서 재미가 찰지다는 사실.

하루에 네 팀씩 총 8일에 걸쳐 치러지는 32강은 로드 오브 로드 팬들로 하여금 하루하루를 즐겁게 만들어준다.

오늘까지 포함하면 총 열두 팀이 경기를 치렀고 앞으로도 5일은 성화를 이룰 터.

게다가 8강 4강 결승전까지 생각하면 치킨이 남아나지 않는다.

아직 긴 여정의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이상하게 오늘 래딧은 유난스럽다.

─개인적으로 모스코5 빠돌이긴 하지만 CLC는 정말 기대해봄직 한 것 같다.

우콩으로 정글을 가는 것도 신기하지만 진짜 연구를 많이 했다는 느낌이 들더라.

탑라인 수풀을 은신으로 건너 뛰는 건 정말 기발했음.

└난 우콩이 신짜장 삼연창 분신으로 피할 때 들고 있던 치킨 뼈까지 삼켜 버림.

└북미쪽 게시판 보니까 요즘 TSL은 약세인 것 같고 CLC 밀어주더라.

└TSL은 미드 바뀐 후에 아직 제자리를 못 잡은 듯한 느낌. 길게 가야 8강에서 떨어질듯?

TSL은 전통적인 북미의 강호.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명문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TSL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게 대진운도 너무한 데다 검증이 되지 않았다.

오래도록 TSL의 미드를 맡고 있던 맥도날드 선수가 코치로 전향했다.

그 자리에 2군팀의 미드라이너였던 미역슨 선수가 대신 올라왔다.

이미 경기 또한 둘째 날에 치렀지만 엄청나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에 비해 CLC는 성공적으로 리빌딩을 마쳤고 실력 또한 증명을 마쳤다.

더욱이 우콩 정글이라는 의외의 픽을 꺼내 팬들에게 재미까지 선사했다.

북미와 유럽으로 나뉘기 이전에 로드 오브 로드의 진성 유저로서 새로운 픽, 맛깔난 챔피언을 싫어할 이는 아무도 없다.

현재 대진표를 본다면 모스코5와 CLC는 결승전에서 가야 만날 수 있다.

벌써부터 둘의 결승전을 점찍어 놓고 작은 내기를 하는 팬들까지 있을 정도.

그러나 아직 큰 그림을 그리기에 이른 시기다.

주머니 속에 송곳을 숨겨둔 팀은 부지기수.

그 중 하나가 오늘 발굴됐다.

지난 EU롤챔스 윈터시즌을 4위의 성적을 자랑하는 팀AOA.

하지만 팀의 리빌딩이 하도 잦아 팬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감출 수 없게 하던 AOA에서 기대할만한 신인 선수가 나왔다.

ChadoRE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신진 미드라이너가 대활약을 펼쳤다.

─근데 진짜 놀랍기는 하다.

AOA의 ChadoRE 선수 한국인이라더라.

중국계 아시아인들은 많이 봤는데 벌써부터 한국인이라니.

역시 한국 사람들이 게임을 잘하게 태어나는 건가..

└뭐야, 원래 한국 프로였던 거? 자국 리그에서 잘하던 선수야? 내가 거기 리그는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NO NO. 자세한 건 모르겠는데 한국인이나봐. 검색해봤는데 다른 정보는 없더라.

└벌써부터 선수를 수출하나. 한국 리그 자체도 그다지 안 돌아갈 텐데.

래딧에도 소수나마 한국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한인들이 한두 명이 아닌만큼 당연한다면 당연하다.

ChadoRE 선수의 이름 석자가 정상근이라 소개되자 이야기가 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뛰어난 경기력을 선보이며 MVP까지 받았으니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한국 로드 오브 로드 커뮤니티 사이트인 잉벤과 롤갤등에는 화제가 되었다.

로크도그와 비슷하게 미국계 한국인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관심이 가는 일.

본인이 속시원히 밝혀준다면 오죽 좋겠건만 어째선지 그는 인터뷰 자리에서 자신의 신상 관련된 내용을 답하길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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