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365화 (36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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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도 에러갓이!

첫 번째 세트를 시작하기 전의 무대 위에서.

세인트조지아가 나에게 속삭여온 말은 딱히 유별난 건 아니었다.

충분히 예상이 갈 수 있는 부류랄까.

나 또한 그럴 마음이 있었지만 정작 하라고 하니 청개구리 본능 조금 튀어나왔다.

'미터스 때처럼 어디 한 번 정글로 나와보라, 그렇게 말했었지.'

나오라고 했으니까 나가지 않았다

한술 더 떠 아예 게임을 생략했다.

세인트조지아가 나에게 선전포고를 한 영향이 분명히 있기는 했지만 이래 봬도 고려 끝에 내린 판단이다.

'첫 세트에서 굳이 강수를 둘 필요가 없으니까.'

우리 CLC는 내가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강력하다.

조급해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결정적으로 5전 3선승제, 급할 수록 돌아가야 하는 법이다.

조금 여유를 두고 세인트조지아의 플레이 스타일을 관찰해보는 게 장기적으로는 낫다고 할 수 있다.

'살짝 자존심이 섞인 결정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겠지만.'

나는 벤치에 앉아 어깨너머로 경기를 지켜보며 세인트조지아가 건넸던 말의 의미를 곱씹어 봤다.

정글로 나오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의도일 뿐 그의 언행을 생각한다면 다분 도발적이었다.

미터스따위 이긴 걸로 우쭐대지 말라고도 했던가.

핫숏도 아니고 나에게 어째서 자칫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도발을 해온 건지.

골똘이 생각을 해볼수록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다.

'나름대로 선은 지키는 사람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시즌1과 2를 장식했던 북미 최정상급 정글러.

오직 두 명만을 곱자면 미터스와 세인트조지아로 좁혀진다.

실력이 있는만큼 자존심도 세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세인트조지아는 조금 오만하다.

미터스한테도 그렇고 모스코5의 에메랄드 프록스한테도 그렇고.

유명한 정글러들을 상대로 트집을 잡아 문제가 생겼던 적이 한 번씩은 존재할 정도다.

그런 독불장군 같은 성격은 팀원과의 마찰도 만들고 여러모로 부정적이게 작용하긴 했지만.

'실력만은 진짜인데다 상식은 있는 사람이 아니었나.'

프로게임판이라는 곳이 최상급의 인재는 상당히 희귀하기 때문에 실력이 좋고 아주 큰 문제만 만들지 않으면 어지간한 선까진 눈감아준다.

그러한 면에서 봤을 때 세인트조지아는 아슬아슬 상식의 기준선을 지키고 있다.

소속 게임단 입장에서야 불안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감안해도 받아들이고 싶은 실력.

실력으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는 점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기까지 했다.

그런 그가 나에게 선을 넘어버린 이유.

무언가 뒷사정있다고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핫숏이 관여돼 있다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데.. 경기 끝나고 반드시 이실직고를 시켜야겠구만.'

실질적으로 꾸미지 않았더라도 필히 무언가 알고 있을 테다.

하지만 지금은 잠깐 미뤄둬야 한다.

벤치에 있는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그 명분을 잊어서야 안된다.

세인트조지아가 과연 얼마나 한 실력을 믿고 나에게 선전포고를 했는지.

그리고 우리 CLC를 상대로 어떤 플레이를 보여줄지.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대응법을 강구해 놓는 것이 목적이다.

'큰 소리 떵떵 거린 것 치고는 아직까지 별 거 없어 보이지만 말이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첫 번째 세트.

독나타스와의 8강 첫 경기는 언뜻 보기에 무난하다.

내가 빠진다고 휘청거릴 수준의 CLC가 아니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노릇이긴 하다.

그래도 나에게 무어라 했을 정도라면 수를 하나 준비해 왔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너무 세인트조지아를 과대평가한 걸지도 모르겠다.

첫 번째 세트는 전적으로 맡긴다고 했으니 천천히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이건 조금 너무 무난하지 않나?'

벤치에 앉아 곁눈질로 살피고 있는 경기의 상황은 지나치게 고요하다.

라인전을 대강 끝낸 양팀이 2분 후즈음 해서 젠이 될 용한타를 대기하고 있다.

원래 이 타이밍이 서로가 잘리지 않게 조심하는 시간대라 이해될 만도 하지만 어째서 일까.

뒷골이 쎄한 게 예감이 좋지 않다.

'아무래도.. 수상해.'

은근하게 격한 시야 싸움 탓일까.

세인트조지아의 신짜장을 포함한 상대팀의 주요 챔피언들이 미니맵에서 들쑥날쑥을 반복한지 수차례다.

상대팀이 자신들 지역을 철저하게 관리하다 보면 생기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이렇게까지 꿍꿍이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건 속셈이 있다고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특정 챔피언이 미니맵에서 눈에 띄지 않고 있다는 것이 내 눈에는 보인다.

크롸라라라-!

이윽고 혹시는 역시가 되어 돌아왔다.

방금 전 괴랄한 괴수의 울음소리는 절대로 용이 아니다.

애초에 용쪽에 시야가 장악돼 있기도 하거니와 소리만 들어도 구분할 수 있다.

적팀이 몰래 바론을 시도했고 목표물을 처치하기까지 했다는 적신호였다.

"뭐야, 바론 먹힌 거야? 이 자식들 더럽게 게임하네."

"일단 28분 07초 바론 리젠이야. 이거 게임 꼬여 버렸는데.."

안전하게 용한타를 목표하려고 했던 것이 도리어 화를 불러왔다.

당황한 듯한 보이스 채팅이 오갔지만 이내 진정되었다.

바론을 내준 정도로 게임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평소에는 냉정하기 그지 없는 트리플리프트의 한 소리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제길, 방심했어. 마르코 이 자식 독나타스에 가서도 바뀌지를 않았다니."

짐작 가는 바라도 있는 것인지 트리플리프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아직 경기가 채 끝나지 않았으니 사정은 듣지 못하겠지만 대략적으로 유추는 된다.

그러고 보면 세인트조지아.

바론성애자로도 유명한 선수였다는 것이 이제야 기억난다.

'떠올렸다고 해도 경기 중이 아닌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았겠지만.'

아군의 입장에선 상당히 아쉽게 흘러가는 게임.

그 뒷수습을 최대한 좋게 하기 위해서 부랴부랴 움직이고는 있지만 여의치 않다.

독나타스의 몰래 바론 성공은 그 여파가 클 수밖에 없었다.

비등비등 진행되던 경기에서 제대로 무게추를 얹은 꼴이었으니까.

바론 버프를 챙긴 독나타스에게 포탑 하나와 용을 내줘야만 했다.

공격력과 주문력, 체력재생력을 올려주는 바론 버프를 믿고 한 번 싸움을 걸어 줬다면 오히려 좋았겠지만 상대는 집요하리만큼 안정적이다.

만약 미터스라면 필히 이니시를 걸었겠다는 생각.

최정상급 정글러로 분류되는 세인트조지아와 미터스의 판단 차이는 완전히 상이한 모습이다.

'다시 뒤집기는.. 힘들어 보이네.'

로드 오브 로드에서 바론이란 오브젝트가 가지는 의미는 깊다.

킬 다섯 개분의 골드도 골드지만 반코어 분량이나 힘을 보태주는 버프.

대치구도에서 이점을 만들어주는 체력재생력까지 활용방법에 따라 이상의 이득을 만들 수 있고, 세인트조지아는 자신의 진가를 증명이라도 하듯 챙길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져갔다.

물론 역으로 바론 트라이가 허무하게 제지됐다면 킬을 내주지 않았더라도 상대는 필히 손해를 봤을 것이다.

포탑이 하나 나간다던지, 용쪽 시야를 뺏기고 한타 주도권을 잃는다던지.

그 기회비용을 투자했기에 독나타스는 현재 게임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는 우연찮게 얻어진 게 아니다.

바론 시도의 정밀도를 더하기 위해 아군이 이리저리 신경 쓸 부분을 만들어 빈틈을 유도해냈다.

사전 작업으로 판단력을 흐리게 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적이지만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제길, 내가 미리 말을 했어야 했는데 다른 부분에 집중을 하다 보니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말았어."

"트리플리프트 네 잘못이 아니야. 그저 상대팀이 조금 운이 좋았을 뿐이지. 어쨌거나 멘탈 잡고 다시 해보자고."

정말 드물게도 자존심 높은 트리플리프트가 사과를 해온다.

이전에 술집에서 들었던 내용이지만 트리플리프트는 세인트조지아와 악연이 상당히 깊다.

무작정 미워하는 것은 아닌 것 같지만 아무래도 독나타스를 반드시 이기고 싶은 모양이다.

분하다는 표정이 얼굴에 대놓고 묻어나고 있었다.

'정글로, 맞붙어보자라.'

결국 몰래 바론은 분기점이 조금씩 차이를 벌렸고 어느샌가 게임은 굳혀졌다.

아쉽게 되긴 했지만 첫 번째 세트는 패배하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 첫 번째 세트.

경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성격과 실력이 반비례 하다니.. 꼭 누구를 보는 것 같기도 하네.'

세인트조지아가 나에게 건넨 말을 충분히 곱씹어본 결과.

그의 성격이 모났다는 것은 충분히 알았다.

그리고 그러한 지인은 항상 내 주위를 맴돌고 계시다.

성격이 까칠한 정도야 예은에 비하면 누구든 약과다.

고작 도발을 한 정도로 내 멘탈이 흔들렸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두 번째 세트의 승리자가 내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

.

.

* * *

북미와 유럽의 수많은 프로게임단들이 발을 내딛었던 곳.

그리고 그중 사분지 일을 제외하고는 다시금 돌아가야 했던 곳.

현재 성황리에 개최되고 LCF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거주하는 이곳 선수촌에는 특별한 보금자리가 단 한 곳 존재한다.

주위의 경치와 자연경관이 가장 빼어난 곳에 세워져 있는 하나의 건물.

선수들의 숙소도 상당히 공을 들이기는 했지만 얼핏 봐도 그 이상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게 만약 호텔이라면 예약을 잡는 일이 심히 꺼려지리라.

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이곳은 흔히 말하는 VIP들만을 위한 장소다.

그곳에서도 개인실로 분류되는 객실 중 한 방을 차지하고 있는 한 남자는, 자신의 위치에 걸맞지 않게 시시껄렁하기 짝이 없는 일을 하고 있었다.

여과없이 표현하자면 텔레비젼을 보며 히죽히죽 실없이 웃고 있었다.

"크크, 그럴 줄 알았어. 마르코 너도, 그리고 트리플리프트 너도 말이야."

나름의 사정으로 구단주가 되어 VIP로 신분 상승을 해버린 핫숏디디.

CLC의 전 주장이기도 한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독나타스와의 8강 경기를 보며 잘난 체하는 듯한 소리를 내뱉었다.

핫숏디디의 성격을 감안해보면 헛소리라 치부하는 게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기에는 언급된 두 사람의 게임 내 지분율이 상당했다.

마르코, 현 독나타스의 에이스라고 봐도 무방한 세인트조지아의 본명이다.

더욱이 트리플리프트는 설명이 필요없는 북미 최고의 원딜러.

그런 두 사람을 아무렇지 언급할 수 있는 사람은 전세계로 따져도 한 손을 셀 수 있는 수준밖에 되지 않으리라.

그 예외에 해당되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인 핫숏은 어디선가 사왔을 감자칩을 바삭거리며 자칫 흉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머릿속으로 흘리듯 생각했다.

'트리플리프트.. 너는 다 좋은데 미니언을 먹을 때 시야가 너무 좁아진다니까. 라인전이 끝난 이후에는 서포터가 하나하나 챙겨줄 수 없다고.'

핫숏은 저 몰래 바론이 어떻게 시도될 수 있었는지 전후사정을 빠르게 파악했다.

피지컬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시야가 조금 좁다는 단점이 있는 트리플리프트.

그런 트리플리프트가 봇라인의 미니언 웨이브에 시선이 쏠린 사이 독나타스는 바론을 시작했다.

팀의 주력 딜러인 트리플리프트가 봇에서 파밍을 하고 있는 이상 나머지 CLC의 팀원들도 뒤를 봐줘야 한다.

설사 중간에 들켰다 해도 독나타스는 바론을 챙기는 게 가능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백이면 백 세인트조지아의 오더이리란 사실을 핫숏은 아주 잘 알고 있다.

'마르코가 성격이 불같기는 해도 틀린 소리는 하지 않으니까.. 둘 사이가 다시 화해하는데에 조금은 도움이 될 수 있으련지.'

역으로 불을 지필 수도 있겠지만 핫숏은 나름대로 생각해둔 흐름이 존재했다.

아군이 아닌 적으로 만났을 때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짜증나는 존재인지.

오늘의 무대에서 그것을 알아갔으면 핫숏은 내심 바라고 있었다.

뭉치지 않으면 낙오된다.

현 로드 오브 로드 판의 물결은 곧 세찬 급류가 돼버린다.

이를 예감하고 있는 핫숏은 필히 과거의 사건에 종지부를 찍고 싶었다.

'뭐.. 그것도 오늘의 경기, 그리고 차후의 결승전까지 봐야 알 수 있겠지만.'

물론 두 번째 세트 이후의 흐름이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다면 말짱 도루묵.

더욱이 CLC가 이대로 우승까지 가지 못한다면 세인트조지아의 재영입은 없던 일이 될 수도 있다.

확률이 지극히 낮다고 할 수 있는 도박.

자신의 근거 없는 감에 묘한 자신이 있는 핫숏디디는 히죽거리며 진행되는 두 번째 세트를 관람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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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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