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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372화 (37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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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도 에러갓이!

한 의자에 두 사람이 포개지듯 겹쳐 앉는다.

지하철에서 보면 애엄마와 아이가 흔히 앉는 모양새다.

한정된 자리를 아끼기 위함이지만 남녀 사이에서는 이게 또 의미가 다르다.

아무리 전자의 목적을 띄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먹을래..?"

"..됐다. 손도 멀고."

내가 식당에서 퍼오듯 가지고 온 음식들.

아예 접시 째로 든 채 먹고 있던 예은이 나를 향해 넌지시 물어온다.

권해준 건 고맙지만 무릎에 앉아 있는 너 때문에 나는 손을 탁자까지 내리기 힘든 상태다.

예은도 지금의 상황이 어색한 건 아는지 말끝이 살짝 쳐져 있다.

'언제부터 였을까..'

정말 얼마 전만 해도 그다지 신경 쓰진 않았을 상황이다.

무슨 바보같은 장난을 치냐, 그 정도로 웃어 넘겼겠지.

그런데 이게 참.. 요즘따라 쓸데없이 의미부여를 해버리곤 한다.

계기는 이전부터 여러 번 있었던 것 같지만 아무래도 결정적이었던 건 약 한달 전쯤이었던가.

파리에 처음 왔을 때 그날에 있었던 사건이다.

그 이후로 조금씩 예은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이전의 감을 잊어버린 것만 같다.

"너 말이야, 대회 끝나면 어떻게 할 거야..?"

TSL 대 화이트 폭스의 첫 번째 세트가 끝나고 두 번째 세트의 밴픽 싸움이 진행되던 도중.

주위에 흐르는 어색한 공기를 깨고 예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언제 한 번 물었던 내용이지만 대답을 거절했었다.

예은에게도 일단 말은 했지만 우승을 해야 정할 수 있는 입장이다.

"우승하지 않으면 여기에 쭉 남아야 한다고 전에 말했잖아."

"아니 그러니까 하면 말이야 하면. 뭐, 가정도 못하냐?"

흔히 말하는 이 전쟁이 끝나면 결혼할 겁니다랑 다를 바가 없어보이는 시츄에이션같은데.

평소라면 그런 류의 장난을 친다고 타박했을 테지만 그럴 수 없다.

정말로 진심인듯 표정도 목소리도 나직하다.

"확실히 정해둔 일정은 없지만 일단.. 한국에 돌아가서…."

"가서? 바로 한국 게임단 들어갈 거야?"

성격 급한 것은 어디가지 않았는지 예은이 내 말을 자르고 들어온다.

언제나의 모습을 보여주자 무언가 안정된다.

피식, 새어 나온 웃음을 뒤로 하고 나는 말을 이었다.

"일단 좀 쉬어야지? 내가 무슨 철인도 아니고."

"흐응…, 그렇단 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대충 둘러대듯 대답했다.

그럴 텐데도 예은은 그 말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낸듯 골똘이 고심한다.

이윽고 자신 안에서 결론이 난듯한 예은이 나를 향해 툭 쏘아붙여왔다.

"그럼 예전처럼 혼자 살 거야?"

"아마도 그렇.. 근데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 거냐.."

어느새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온 예은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무시한다.

정말로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색했던 공기가 많이 풀렸다는 것.

한 차례의 대화가 끝난 이후로는 여느 때처럼 말장난을 주고 받게 되었다.

진행되고 있는 TSL 대 화이트 폭스의 경기가 누가 지고 누가 이길 것 같다는 둥.

티격태격하며 관전한 경기는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다.

서로가 정확히 2점씩 챙겨간 가운데 마지막 세트만을 남겨두었다.

"맛있냐? 키킥. 등치는 산만해 가지고 애기처럼 받아먹네."

"네가 안 비키니까 어쩔 수 없잖아, 정말로."

예은이 내 위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있는지라 일어나기는 커녕 음식이 있는 탁자 위로 손을 뻗기도 힘들다.

이 녀석과 달리 딱히 식탐이 많지가 않아 안 먹어도 상관은 없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남이 먹으면 자신도 먹고 싶어지는 법이다.

그래서 한입 달라고 했더니 포크로 내 입에 쑤셔 박는다.

조금 부끄러운 행위지만서도 분위기가 한 번 풀리자 거리낌이 없어졌다.

"우쭈쭈, 우리 애기 잘 먹네."

"너 일부러 먹기 싫은 것만 골라서 주는 거 맞지?"

영양배분을 생각해서 가지고 온 야채들.

자기는 고기만 쏙쏙 빼서 골라 먹고 내 입에는 야채만 넣어준다.

얌체도 정말 이런 얌체가 있을까.

하지만 그런 모습이 꼭 밉지만도 않은 것 보면 나도 참 물렁하기 짝이 없는 것 같다.

.

.

.

* * *

한 차례의 폭풍이 들이닥쳤다.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LCF의 8강전이 드디어 끝맺어졌다.

그렇게 준결승전에 올라갈 4강이 정해졌다.

─준결승 멤버 거를 타선이 하나도 없네.

게다가 북미팀, 유럽팀 정확히 두 팀씩 들어갔어.

밸런스가 정말 황금 밸런스다.

└REAL 쩌리팀이 없어서 좋다. 제대로 치킨각 터진 듯?

└이번에도 북미팀이 우승했으면 좋겠는데 LOLOLOL 아무래도 힘드려나.

└모스코5 기세가 등등해서 아주.. 북미팀 중에서 모스코5 잡을만한 팀은 아무래도 CLC밖에 없지 않을까?

준결승전의 A조와 B조.

A조의 경기는 CLC 대 AOA의 구도가 되었다.

B조의 경기는 모스코5 대 TSL.

두 조 모두 북미 대 유럽의 구도로 LCF라는 국제 대회의 특색을 아주 잘 살리고 있다.

TSL은 32강 때만 해도 불안불안 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근 기세가 무르익었다.

적응이 조금 덜 된 게 아니냐, 저평가를 받았던 미역슨.

최근 있었던 8강 화이트 폭스와의 일전에서 프로즌을 잡아내며 TSL의 새로운 간판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그 TSL조차 CLC에 비하면 손색이 있다는 세간의 평가.

미역슨은 종종 Unknown Error와 비교되지만 북미에서는 후자의 손을 들어주는 여론이다.

이는 유럽에 비하면 상이한 판단이지만 그도 그럴 게 당연하다.

Unknown Error는 NA롤챔스 윈터시즌을 상징하는 선수다.

북미팬들 입장에선 자국의 리그라고 할 수 있는 NA롤챔스에서 실력을 증명했으니 이견이 붙을 수 없다.

결정적으로 미역슨은 4강에서 Unknown Error를 상대로 고배를 마셨다.

물론 일부 팬들은 당시 TSL이 아닌 TSK에 소속이 되어 있었다.

이런 식으로 받아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무리수다.

Unknown Error 또한 CLC의 2군에 속해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니까.

사실 미역슨의 입장에선 정말 안타깝고 한숨이 나올 일이다.

하늘은 어째서 자신을 낳고, Unknown Error를 또 낳았는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지 않을까, 팬들조차 한탄스럽다.

─CLC 대 독나타스가 진짜 죽여줬는데.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진행된 LCF에서 가장 재밌는 경기를 꼽자면 이거임.

선수가 잘하는 건 둘째 치고 경기의 스피드감이 진짜 마음에 들더라.

스노우볼을 미친듯이 굴리는데 안 답답해서 정말 좋았어.

└에러갓 경기 한 번 보면 다른 프로팀은 경기는 답답해서 못 보지. 뭘 좀 아네.

└프로리그에서 뒤 안 보고 날뛸 수 있는 배짱 가진 선수는 에러갓 밖에 없다 LOLOLOL

└인터뷰도 꿀잼 사이다였어 LUUUUUUL

그토록 많은 경기가 치러졌음에도 8강의 CLC 대 독나타스를 첫 손으로 꼽겠다.

이 말이 단순한 팬심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경기의 내용도, 인터뷰도 알차기 그지없었다.

이블퀸과 탑 콩머스.

지금껏 알던 로드 오브 로드가 아니었다.

─난 결승전 탑 콩머스가 제일 잼났음.

이블퀸이 은신을 활용해서 게임하는 것도 흥미진진하긴 했는데 박진감은 역시 콩머스지.

거의 스포츠카 수준으로 풀액셀 밟은 채 들이박더라.

이 정도면 거의 콩머르기니라고 불러도 될 듯? LOOOOL

└이탈리아 사냐? 콩르쉐로 바꿔라.

글쓴이-NONO. 이것저것 조합해봤는데 콩머르기니가 가장 어감 좋았어.

└그도 그렇네. 콩머르기니 인정한다!

항시 은신 챔피언이란 특색을 살려 한 명 순삭시키고 한타를 시작한다.

언제, 어느 때 떨어질지 모르는 은신 이니시는 상대가 도망갈 타이밍을 주지 않는다.

그리고 콩머스.

상대가 알고 있든, 대비를 하고 있든 상관없이 텔레포트 이니시를 걸면 그걸로 게임 셋이다.

네 자리 수가 넘어가는 이동속도에는 그 어떤 대비책도 무용지물이다.

최대 3초나 지속되는 콩머스의 도발에 붙잡힌 순간 꼼짝없이 한 명 잘리고 시작한다.

이렇듯 교전을 강제적으로 유도하는 Unknown Error 특유의 플레이 방식.

지루하고 답답한 게임에 진절머리가 났던 로드 오브 로드 팬들에게 있어 취향을 저격하는 향신료다.

단순히 힘과 글로벌 골드의 격차로 찍어누르는 게 아니다.

챔피언이 가진 특색을 활용해 지루함 없게 게임을 이끌어 나간다.

Unknown Error가 아니라면 느낄 수 없는 희열이었다.

─에러갓이 하도 요상한 거 많이 하니까 LOLOLOLOL

요즘 이상한 거 하는 애들 에러갓이 했다고 둘러대더라.

근데 진짜 에러갓은 뭘 해도 이상하지 않아.

탑 콩머스같은 거 정말 누가 상상할 수 있겠냐.

└에러갓 때문에 솔랭이 트롤들로 미여터져욧..!

└선 의병대 좋다고 올린 아군 콩머스가 게임 말리니까 자연스럽게 미드 박더라.. 부활하고 죽는데 10초도 안 걸려.

└챔프가 특이한 것도 특이한 건데 에러갓 특유의 움직임..? 운영이라고 해야 하나 별첨 안 하면 말짱 헛것이야.

솔로랭크에서 한 차례 난리가 났음을 물론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유저들이 제대로 다뤄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장단점이 명확하다.

CC기가 신통치 않은 이블퀸.

라인전에서 CS챙기기 이토록 어려울 수가 없는 콩머스.

못하는 사람이 하니 장점은 퇴색되고 단점만 부각된다.

두 챔피언이 솔로랭크에 녹아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듯 보인다.

필연적으로 아군들의 희생이 동반되어야 하고 말이다.

─세인트조지아가 에러갓 도발하고 털린 것도.

먼저 도발하고 탈탈 털렸으니 고개도 못 들고 다니겠네.

혹시 레슬링판처럼 짜고 치는 포커 같은 건가?

└다른 선수면 모르겠는데 세인트조지아는 본심 맞을듯? LOOOL

└다음 대회에서 만나게 되면 엄청 어색하겠다.

└흑역사 한 줄 제대로 그어진 꼴이지 LOLOLOL

8강 무대가 끝나고 인터뷰 자리.

승리로 장식된 세 경기에서 모두 MVP를 독점한 Unknown Error는 인터뷰 시간을 꽤나 길게 할애받았다.

그 과정에서 당연 세인트조지아와 무슨 이야기를 했냐?

질문이 나오는 건 필연이었다.

<정글에서 한 번 겨뤄보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원하는 대로 해줬죠.>

사람 말투라는 게 참 똑같은 단어를 써도 억양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Unknown Error의 어투가 곱지만은 않았던 걸로 미루어봐 세인트조지아의 말은 다분 도발적이었으리라.

직접적으로 어떤 느낌이었다 말하지 않았어도 늬앙스로 충분 유추가 가능했다.

북미 최정상급 정글러로 손꼽히는 세인트조지아의 실력은 당연히 검증을 받았고 팬층 또한 두텁다.

하지만 평소 언행이 날카롭다는 사실은 항상 문제로 지적됐고.

그렇게 나대다가 한 번 털리니 사이다도 또 이런 사이다가 없다.

8강에서의 사건을 비유하는 유머러스한 게시글들이 한 차례 래딧에 도배됐음은 물론이었다.

─고 세인트조지아의 마지막 사진입니다.

X키를 눌러 JOY를 표하십시오.

└그는 훌륭한 정글러였습니다..

└잊지 않겠어요. 흑흑흑

└그러게 나댈 상대를 잘 보고 골라야지 LUUUUUL

Unknown Error의 귀에 속삭이던 세인트조지아의 사진이 마치 그의 마지막처럼 포장됐다.

만약 세인트조지아가 본다면 열불이 날 일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

그게 싫었으면 이기지는 못해도 반반은 갔어야지.

아주 개박살이 난 상황에서 여론이 온전하길 원한다면 평소 언행이라도 조심했어야 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8강은 어쨌든 간에 끝이 났다.

이제는 준결승전이 치러질 차례.

4강에 안착한 네 팀이 현 로드 오브 로드의 최강을 논한다.

물론 지난 롤드컵 이후로 미리보는 롤드컵이라는 LCF의 의미가 조금은 퇴색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명불허전, 허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까지 진행된 LCF는 지금껏 경험한 적 없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기의 수준이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수준으로 높다.

게다가 각 팀마다 스타성이 있는 선수들이 대두되어 보는 입장에서 포인트를 잡기도 편하다.

지난 롤드컵때의 불명예는 이미 바로 잡은지 오래다, 그렇게까지 말하는 팬들도 있을 정도다.

물론 지금까지가 아무리 흥했다고 해도 준결승전과 결승전이 볼품없게 막을 내린다면 본말전도.

기대를 불러 일으켰으면 뭣하겠는가.

그 끝이 뱀의 꼬리라면 어디가서 이번 LCF 정말 재밌었다, 말을 꺼내지도 못하게 된다.

그럼에도 성황리에 진행 중인 LCF는 북미와 유럽의 팬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게 한다.

현 로드 오브 로드의 중심지가 어디인지 당당하게 외칠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은 잃었던 입지를 되찾게 되자 팬들의 환호는 격렬하다 못해 타오를 지경이다.

래딧은 평소의 배, 아니 배의 배는 될 법한 접속률을 보이며 LCF의 흥행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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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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