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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도 에러갓이!
8강의 모든 경기가 종결지어진 나흘 후.
슬슬 재발동을 걸기 시작한 LCF는 여느 때보다 극성이다.
팬들로 하여금 몸이 근질근질해서 어떻게 가만있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밥도 맛있게 지으려면 뜸을 들여야 한다고.
힘겹게 달려온 선수들에게도 당연 휴식시간이 주어져야 한다.
그것이 8강 마지막 경기가 끝난 이후의 나흘.
선수들에게는 짧았던, 팬들로서는 길고 길었던 나날이 지나가고 드디어 준결승전 A조의 경기가 치러진다.
북미의 팬들에겐 에러갓이라 칭송받는 게이머.
유럽 팬들에게는 다소 언짢음을 자아내고 있는 커리어.
이제는 Unknown Error가 팀의 중심이 되버린 CLC와 AOA가 일전을 치른다.
이를 상대하는 AOA 또한 당연 만만한 팀이 아니다.
만만하기는 커녕 유럽 로드 오브 로드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히 장식하고 있다.
시즌2 중후반기에 들어 조금씩 쇠퇴하고 있었지만 이게 웬걸?
새로이 들어온 선수가 AOA를 다시 이전의 궤도에 진입시켰다.
현 AOA의 새로운 주전 미드라이너 ChadoRE 선수.
유럽 팬들 사이에선 미드 유망주라며 불리며 띄워주는 분위기다.
그리고 북미 팬들 사이에선 아직은 그다지.
그런 평가가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까놓고 말해 북미와 유럽의 자존심 매치가 성사됐기 때문이다.
오늘만큼은 부디 미드에 서서 개박살을 내줘라.
북미 팬들은 내심 외치고 있다.
과아아아아아-!
시끄러운 함성 소리가 그라운드 안을 가득 메운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해 있는 경기장, <제니스-파리>에 만석을 넘어 입석까지 차있다.
그 중 절반에 해당하는 팬들이 무대에 오르는 CLC를 향해 목청껏 외친 결과다.
쿠와아아아아-!
그리고 나머지 절반의 팬들이 되받아친다.
무대 반대편에서 AOA가 입장하는 것으로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경기 구도가 성립된다.
1만에 가까운 관중들이 둘로 나뉘어 응원하는 북미 대 유럽의 승강질이야 말로 LCF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정말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지난 나흘 간 피를 말렸거든요. 저도 래딧을 눈팅해서 알지만 팬들 간에 시비가 장난이 아니었어요."
"래딧은 저도 자주 확인하기에 알고 있지만 북미쪽 게시판도, 유럽쪽 게시판도 서로 간에 할 말 엄청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끝으로 종결이 날 분위기입니다.
금일 치러지는 준결승전 A조의 승자, 결승전에 올라가는 팀은 과연 어느 쪽이 될 것인가.
길고 길었던 시시비비는 더 이상 말로 왈가왈부할 필요성이 사라졌다.
경기의 내용, 그리고 결과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
북미의 팬들이 떠받드는 CLC인가, 아니면 유럽의 명문이자 또다시 부상하려 하는 AOA인가.
고민해볼 필요없이 게임에 들어가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지체없이 시작되는 첫 번째 세트의 밴픽.
밴픽싸움부터 승패가 결정된다는 말은 결코 근거가 없지 않다.
그렇기에 양 팀은 최선을 다해 서로를 견제했다.
"파사딘! 차도리 선수가 주로 활용하는 챔피언이 첫 번째로 밴되고 말았네요. 하지만 AOA도 자드를 죽임으로서 교환은 한 셈이에요."
"서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 밴카드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납니다. 하지만 반드시 생각을 해둬야 하는 점이 꼭 미드를 갈 거란 보장이 없는 선수에요 Error선수는."
CLC의 Error선수가 처음 자신을 알린 대회인 NA롤챔스에선 분명히 미드라이너였다.
단 한 번, 결승전에서 정글을 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변칙적인 전략의 한 갈래.
하지만 어째서인지 LCF에서는 탑, 미드, 정글 골라가면서 플레이하고 있다.
"Error선수는 정말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더군요. 개인적으로 알아봤지만 챔프폭이 말도 안 나와요. 솔직히 믿기지가 않은데 눈 앞에 증거가 떡 놓여져 있으니 어쩔 수 있겠습니까? 믿는 수밖에."
선수 출신인 해설자 데카시르는 처음에 의심했다.
대회의 흥행을 위한 띄워주기식 선수 만들기가 아닐까.
그렇기에 더욱 철두철미하게 조사를 했고 결론은 하나로 이르렀다.
글자 그대로 이상(理想)의 이상(以上).
솔로랭크 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디 안 보여준 라인이 존재하지 않았다.
심지어 원딜과 서폿까지 두루 섭렵한 독보적인 라인폭과 익히 알려진 챔프폭을 자랑한다.
어떻게 감히 평가 절하 할 건덕지가 없었다.
CLC도, AOA도 밴이 끝나고 이제는 픽차례에 들어선다.
하지만 도무지 Error선수가 어떤 픽을 할 건지 예상이 가지 않는다.
데카시르로서는 일반론을 말하는 게 최선이었다.
"완벽히 유추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감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정도로 어디로 튈지 예측을 기피하고 싶은 선수에요. 자신 있게 말했다가 틀려버리는 흑역사, 저로서는 제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언급하자면..!"
좁히는 것 정도야 가능하다.
일단 라인부터 짚고 넘어 가볼까.
아무리 식스맨 시스템을 사용하며 포지션 스왑을 통해 이색적인 변수를 사용한다지만 경우의 수라는 게 있다.
그리고 일반론에 의해 어느 정도 좁히는 게 가능하다.
"그러한 면에서 봤을 때 첫 세트는 미드가 맞겠군요?"
"콰른트, 제 대사를 가로채다간 민트껌도 안 사주는 수가 있어요?"
CLC측에서 첫 세트에 선보인 멤버로 봤을 때 Error 선수가 미드가 아닐지.
그렇게 유추하고 있을 뿐이다.
여섯 명의 CLC선수들 중 빅풋 선수 참전하지 않았으니 그렇게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MyumMyum선수 또한 한 미드 한다는 사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안심할 수 있는 구석은 어디에도 없다.
"AOA에서 트와이스 페이크 가져갑니다. 그러고 보니 이게 살았네요."
"트와이스 페이크는 상대로 누가 와도 어지간하면 무난합니다. 초반에 갱킹을 당해도 궁극기 잘 활용해서 풀어볼 여지가 충분히 있거든요."
현재 트와이스 페이크는 OP반열에 든다.
아니, 거의 필밴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오버파워의 근원은 현재 트페가 가진 W스킬, 파랑카드의 마나수급력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더욱이 E스킬에 쿨타임 감소까지 있어 따로 쿨감템이 필요없을 정도다.
초반 갱에 약하다는 것이야 매한가지지만 멋하면 아군 정글이 뒤를 봐주면 되는 일.
솔로랭크가 아닌 대회 무대이기에 게임의 구도를 맞춰서 플레이할 수 있다.
6레벨 이후에 정글러와 같이 찌르는 봇라인 로밍은 게임을 아예 터트리는 게 가능해서 투자한 수고가 손쉽게 회수된다.
결정적으로 ChadoRE선수는 트와이스 페이크를 자기 손마냥 잘 다루기로 소문나있다.
이미 준결승전까지 올라오는 무대에서 트페가 풀릴 때마다 필승을 보여줬다.
정보가 부족했을리 없을 텐데도 살렸다는 것은 의미가 두 가지 중 하나다.
대비책이 있거나 실수를 해버렸거나.
아무래도 전자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Error 선수라 해도 조금 오만한 감이 있죠. 지금까지 트와이스 페이크를 어떻게 해보려는 팀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부분 실패. 게임을 이겨도 트페라는 챔피언의 존재때문에 진 적은 없었어요."
"아무래도 변수를 만들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데다, 다른 라인이 자주적으로 라인전을 행하기 힘들게 만든다는 면이 엄청 크거든요."
설사 트페가 한 번 말린다 해도 궁극기는 온전하다.
봇라인에서 2:2 딜교환 거세게 하다가 트페가 불현듯 나타나면 더블 킬을 내주고 게임이 터진다.
트페를 카운터칠 수단은 수많은 프로팀에서 연구했지만 모두 실패.
그럼에도 Unknown Error라면.
한 번쯤 기대를 해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 팬심이다.
"서포터 랄라. 그리고 미드 모르피나. 이런 조합이라면 저도 어느 정도 판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콰른트가 알 수 있는 정도라면 말 다했죠. 아무래도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인 한타를 지향하겠다. CLC에서는 한타에 자신이 있는 모양입니다."
트와이스 페이크의 카운터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말하기는 했어도 완전히 맞는 말은 아니다.
그도 그럴 게 트와이스 페이크가 로밍을 가지 못하도록 쭉쭉 라인푸쉬를 할 수 있는 챔피언.
그 대표격인 챔피언이 바로 모르피나다.
라인 클리어 좋기로 정평이 나있는 모르피나는 트페를 미드라인에 붙잡아 둘 수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까진 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그 때문에 슈퍼 세이브에 일가견이 있는 랄라를 꺼낸 게 아닐까 추측을 합니다. 그리고 한타만 따지면 확실히 CLC가 나아요."
"콰른트는 언제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요. 로드 오브 로드에서 한타가 끝이던 시대는 지났거든요? 과연 AOA가 운영으로 CLC를 휘몰아칠 수 있을지, 첫 번째 세트 들어가겠습니다..!"
목청껏 외친 중계진의 끝말을 신호로 화면이 넘어간다.
자신들이 갈아왔던 실력을 증명하는 자리.
북미와 유럽 양 지역의 팬들이 보내오는 성원에 보답할 수 있는 무대.
소환자의 전장에서 양 팀의 선수들이 각자의 기량을 뽐낸다.
수많은 기라성들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과시하는 선수는 누구로 꼽힐지.
진행되는 첫 번째 세트에 세계의 절반에 해당하는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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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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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현 시점에서 트페가 엄청난 OP라는 것은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블루카드의 마나 수급력도 그렇고 E스킬에 달린 쿨감 패시브도 그렇고.
챔피언 자체 스펙이 상당해서 대부분의 미드 챔피언들을 상대로 대처가 가능하다.
그렇게 까다롭기 그지 없는 트페를 살린 데엔 당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솔로랭크와 대회무대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준결승전까지 올라온 것은 인정해줄 만한 일이다.
아무리 팀 자체가 강팀에 속하는 AOA라 해도 가진 바 실력이 없었다면.
더욱이 주목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도차의 기량이 상위권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도 그럴 게 솔로랭크에서부터 알아주던 실력이다.
솔랭 순위 1,2위를 다퉜다는 것은 언제 프로로 데뷔해도 이상하지 않은 실력이라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솔로랭크와 대회무대의 차이가 현저하다는 사실을 잊어서야 안된다.
솔로랭크에서 정말로 날고 기던 아마추어들이 프로게이머로 데뷔한 후 가까스로 프로 생활의 명맥을 유지하는 일은 아주 흔한 케이스다.
역으로 솔로랭크에선 애매하기 짝이 없던 아마추어가 프로게이머로 데뷔하니 날아다니는 경우도 존재한다.
물론 솔로랭크 실력은 영향이 아예 없는 건 아니고 어느 정도의 잣대는 된다.
당연하게도 절대적인 기준의 척도는 될 수 없겠지만.
'프로들이 괜히 솔로랭크에 집착하지 않는 게 아니니까.'
솔로랭크의 점수에 집착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안 좋은 습관들이 쌓인다.
프로 무대에서는 악영향이 가지만 솔로랭크에서는 점수 쌓기 좋은 잡지식.
몸에 배어버린다면 쉽사리 떨쳐낼 수 없다.
필 때는 기분 좋지만 끈적하게 달라붙는 담배연기처럼 말이다.
재기의 여지가 없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선.
내가 보기에 너무나도 틈이 많다.
솔로랭크에서의 버릇을 채 버리지 못했다.
타악! 타악!
시원하게 박히는 카드 소리.
AOA의 미드라이너, ChadoRE가 플레이하는 트페가 라인을 밀려고 한다.
나도 트와이스 페이크에 대해 잘 알지만 라인을 푸쉬하며 적당한 긴장감을 조성해야만 초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챔피언이다.
저렇게 작정하고 라인을 밀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마나를 수급해주는 블루카드.
스킬쿨을 계속 돌려 라인을 밀어대면 상대 미드는 꽤나 난감하다.
물론 모르피나의 라인 푸쉬력은 트페 이상이지만 극초반에 한해 트페도 꿇리지 않는다.
모르피나의 W스킬은 스킬 레벨이 어느 정도 올라야만 깔끔한 푸쉬가 가능하다.
그 이전까지 트페가 어떻게 버티다가 궁극기로 이득을 보게 되면 모르피나가 할 게 없어진다.
속박을 맞춰 킬로 연결시킨다면 스노우볼을 굴릴 수 있겠지만 상대는 교활하다.
세컨드 스펠로 발화가 아닌 클린즈를 들어 안정성을 추구했다.
자신이 괜히 트페를 선픽박은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 제법 잔머리를 굴렸다.
'그 점이 바로 솔로랭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국 솔로랭크 1,2위 쟁탈전 때 수도 없이 겨뤄봐서 알고 있지만 확실히 실력은 괜찮다.
하지만 대처가 너무 정직하다.
솔로랭크에서야 운 나쁘게 뭐 밟았다,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대회에서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솔로랭크를 할 땐 OP챔피언을 칼같이 선픽박는 건 당연히 옳아.'
OP챔피언이라는 의미는 어지간하지 않고서야 악수가 되지 않는다는 소리기도 하다.
적어도 열 번 꺼내면 여덟 번은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대회 무대에서도 그 상식이 마냥 통할까.
상대가 계산을 하고, 덫을 파고, 그렇게까지 해온다는 사실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당해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다.
챠락!
당연하게도 내가 픽한 챔피언은 모르피나가 아니다.
그런 재미없는 챔피언을 준결승전, 그것도 첫 세트부터 꺼내 팬들의 기대를 저버릴 리가 있나.
라인 푸쉬력과 함께 견제력까지 출중한 미드랄라.
정말 간만에 꺼낸 랄라로 혼찌검을 내줄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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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