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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도 에러갓이!
─적에게 당했습니다!
CLC Error님의 학살이 종결되었습니다.
무리한 다이브의 대가로 목숨을 내주게 된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처음부터 궁극기를 때려박고 시작했으니 미드에서처럼 슈퍼세이브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양념을 해놨다는 게 포인트.
티아매트가 펑펑 터지는 검의 댄스가 포탑을 끼고 농성하던 네 명의 적에게 치명상을 선사했다.
쿠! 챠앙!
아군의 정글러 탈리반 3세가 깃창으로 돌격해 궁극기를 내려찍는다.
한 줄기 희망이었을 지도 모를 퇴로가 차단되었다.
연이어 트리플리프트의 크레이브즈와 카우스터의 쏘냐까지 들이닥친다.
콰앙! 파아앙!
크레이브즈의 굵은 총구에서 뿜어진 두 개의 포탄.
포탄이 터진 자리엔 매캐한 매연만이 남아 있다.
더 이상 무언가를 할 필요도 없이 광역딜에 싸그리 정리됐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트리플 킬!
CLC TRIPLELIFT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스노우볼이 무지막지 굴러간다.
그나마 4:4의 교전이었던지라 마무리..! 까지는 뜨지 않았던 게 다행인 정도.
하지만 탑라인에서 이 상황을 보고 있을 AOA의 탑솔러 말화이트의 입장에서 여간 답답한 게 아니리라.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봇라인의 1차 포탑에서 2차 포탑까지 연이어 도미노처럼 쓰러진다.
세 명의 아군이 한데 모이자 철거 속도는 놀라울 지경이다.
순식간에 글로벌 골드가 4천 가까이 벌어졌다.
찰칵!
티아매트 다음으로 가는 아이템은 VF소드.
흥해버린 피로라는 역시 방관템보단 피를 마시는 칼이다.
피로라가 공격력과 피흡을 극한까지 올리면 어떻게 되는지.
그 첫 번째 걸음으로 피를 마시는 칼은 더없이 적절한 선택이다.
.
.
.
* * *
반쯤 초상집 분위기가 되어버린 팀 AOA의 경기 부스 안.
사실상 끝나버린 경기에 목을 매고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AOA의 미드라이너 ChadoRE 선수가 보이스 채팅을 통해 중얼거렸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서 3코어만 갖춰 보자."
딱히 반박해오는 사람은 없지만 모두 알고 있다.
이것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헛소리인지.
모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AOA는 격이 떨어지는 팀이 아니다.
명실상부 유럽의 강호였던 AOA는 팀의 에이스가 자꾸 이적을 가는 통에 하락세를 걷게 됐다.
하지만 나머지 팀원들의 기량도 충분히 빼어나다.
북미의 강호들, TSL이나 CLC에게 밀린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그들이다.
그럼에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게임의 상황은 극단적으로 치우쳐졌다.
오브젝트라는 오브젝트는 모두 내줬고.
킬스코어는 보는 것조차 민망할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한 가지 희망을 갖자면 그 하나 뿐이었다.
'어떻게 3코어만 갖출 수 있다면.'
절망적으로 흘러가는 게임에서 유일하게 희망적인 관측을 가지고 있는 남자.
ChadoRE라는 아이디를 쓰는, 한국에서는 도차라 불렸던 미드라이너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솔로랭크에선 꽤나 먹히는 부류의 전략이다.
완성된 아이템 두 개와 세 개의 차이는 정말로 사이즈가 안 나온다.
한 명만 잘 큰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1코어 차이가 난다면 그 게임은 답이 없는 게 맞다.
그래도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 서로가 동등하게 1코어씩 더 갖춘다면 할만해진다
2코어 대 3코어가 1.5배라면 3코어 대 4코어는 1.3배.
단순한 계산 이상으로 서로 간에 가진 힘의 격차가 줄어든다.
레벨 또한 비등비등해져 한타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 뒤집을 여지가 존재한다.
상대가 아주 조금만 방심을 해준다면 꾸역꾸역 게임을 끌고 나가 역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당연하게도 이 또한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도차에게는 한 가지가 믿는 바가 있었다.
'다른 챔피언으로는 턱도 없겠지만 파사딘이라면 모른다.'
잡기만 한다면 결코 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파사딘.
초반의 실수 탓에 게임이 굉장히 말리긴 했지만 파사딘의 성장 가능성은 무한하다.
적팀이 어떻게 실수를 조금만 해준다면.
하다 못해 이대로 시간이 조금만 끌린다면 한타에서 어찌저찌 비벼보는 게 가능하다.
절대 빈말이 아닐정도로 도차는 파사딘에 대해 자신감이 충만했다.
"적들 뭉쳐서 미드오고 있다. 제길, 또 다이브칠 작정인가 본데."
"어떻게 피로라만 막을 수 있으면.. 피로라때문에 정말 아무것도 못하겠다."
문제가 있다면 그 시간을 끄는 행위조차 여의치 않다는 사실.
부정적인 소리를 해대는 팀원들의 말이 어쩔 수가 없을 정도로 상대는 무서우리만큼 강제 교전을 유도해댔다.
당연하게도 솔로랭크에서는 이렇게까지 일심동체를 이뤄 게임을 빨리 끝장내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도차가 지금껏 상대해왔던 프로팀들도 마찬가지였다.
유리한 상황에서 왜 무리를 하겠는가.
하는 쪽도 받는 쪽도 그다지 달갑지 않은 법이다.
천천히 오브젝트 챙겨 가며 차이를 더욱 벌리는 게 안정적이고 현명한 판단임이 두 번은 옳다.
도차가 하려 했던 시간끌기는 그렇게 안정적으로 가려는 적의 의표를 찌르는 전략이었다.
다른 챔피언이면 몰라도 트와이스 페이크와 파사딘같은 하드캐리형 챔피언들로는 충분 해봄직하다.
실제로 지금까지는 제법 잘 먹혔다.
이곳 준결승전 자리에 올라오기까지 수차례 있었던 위기.
꾸역꾸역 시간을 끌어 역전해냈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자신이 단기간에 AOA의 주전 미드가 되고 인지도를 쌓을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저 CLC를 상대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대체 무서움이라는 감정이 없기라도 한 건지.
저렇게 호전적으로 플레이하다가 제 발에 걸려 고꾸라질 거란 생각 자체가 없는 듯 지나치게 과감하다.
이런 호전적인 구도를 이끌고 있는 상대는 두 명.
심지어 CLC의 간판과도 같은 트리플리프트를 제외하고서다.
무리한 플레이를 즐겨하기로 이름난 트리플리프트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첫 번째는 절제라는 것 없이 몸을 날려대는 저 탈리반 3세다.
모르긴 몰라도 현실 성격도 굉장히 불같을 거란 사실이 모니터 너머로도 느껴질 정도.
탈리반 3세는 나머지 한 명, 피로라의 의도에 맞춰 동귀어진까지 고려해 판을 짜버린다.
'두 명 다 정상이 아니야.'
탈리반 3세가 그린 큰 그림에 피로라가 붓칠을 한다.
아주 새빨갛고 거침에도 정교하기까지 하다.
솔로랭크에서는 픽만 돼도 닷지를 불러일으키는 저급한 챔피언인 피로라를 도무지 막을 방도가 없다.
'제길, 결국 들어오나.'
정말 어떻게 시간을 조금만 쥐어준다면 좋았을 텐데.
답을 찾을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건지 막무가내로 쳐들어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상대팀인 CLC는 자신들의 목을 조여오고 있었다.
<버거킹!>
분명 억제 포탑을 끼고 있는 상황이다.
그것이 아예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 건지 상대팀 정글러 탈리반 3세가 점멸까지 써서 이니시를 걸었다.
원형의 흙벽이 도차를 포함한 세명의 아군을 가둬버렸다.
챠랑-! 카라랑!
연이어 들어온 바이바이의 탱까타레나가 몸을 뱅글뱅글 돌리며 칼날을 수없이 흩뿌린다.
도차는 반사적으로 허무의 마격을 던져 까타레나의 궁극기를 끊어냈다.
그러나 그조차도 미끼.
지금의 상황을 조율했을 진짜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멈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살육의 댄스가.
촹! 촹! 촹!
시야가 없는 벽 건너편에서 불현듯 솟아나온 피로라가 궁극기를 사용했다.
피로라의 궁극기 검의 댄스의 타겟으로 지정된 상대는 다름아닌 자신.
한 번 걸린 이상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도차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솔로랭크에선 픽될 일이 없는 저 허섭스레기 챔피언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저 이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수도 없이 피로라에게 죽었기 때문이다.
가장 자신있는, 내심 로드 오브 로드에서 가장 OP라 생각하던 파사딘으로 비주류인 피로라에게 갈갈이 찢겨 나갔다.
'너라도 길동무로 데려가주마.'
상대로 하여금 반항의 여지를 주지 않는 피로라지만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존재한다.
판정이 너무 좋은 탓에 적을 지옥 끝까지 추격해버린다는 사실.
보통의 상황에선 장점으로 작용할 테지만 자신이 있는 곳은 억제 포탑 앞이다.
도차는 궁극기와 점멸을 사용해 쌍둥이 포탑까지 한순간에 도약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은 죽겠지만 피로라도 무사할 수 없다.
운이 좋으면 자신은 살지도 모른다.
띠이잉..!
크리스탈 유리병을 팔아서까지 아슬아슬 완성시킨 조냐의 물시계가 빛을 발한다.
2.5초간 황금상으로 변해 피로라의 공격에서 벗어났다.
피로라가 만약 바로 도망간다면 살 수는 있겠지만 내 추적을 허용해버린다.
쌍둥이 포탑에게 두들겨 맞은 피로라는 성장을 못한 파사딘으로도 충분 마무리할 수 있다.
부디 그래주기를 바랬지만 상대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써컹!
써컹!
역시라면 역시일까.
피로라는 자신을 기다리는 길을 택했고 이렇게 되면 길동무가 된다.
비록 게임을 뒤집을 수 있는 수준까진 아니겠지만 한 타이밍 시간을 끌 수는 있으리라.
부왁!
도차는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아끼고 E스킬, 공허한 파동을 피로라에게 흩뿌렸다.
성장을 하지 못한 탓에 데미지는 볼품없지만 중요한 건 CC기.
상대를 3초간 크게 둔화시키는 효과가 피로라를 물귀신처럼 붙든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CLC Error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3.5코어가 나와버린 피로라의 검이 파사딘을 순식간에 썰어냈다.
어찌나 묵직한지 평타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지만 어쨌든 목표는 달성했다.
공허한 파동의 둔화로 인해 피로라는 도망도 못 가고 포탑에 맞아 절명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무리 쌍둥이 포탑의 데미지가 막대할 지라도 피로라는 성장을 잘한 상태다.
조금 과한 감이 있긴 하지만 아낌없이 발화를 소비했다
포탑과 발화의 데미지에 피로라의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진 걸 확인한 도차는 미련없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
쌍둥이 포탑 사이에서 미니언이 젠됨으로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뭐야, 잠깐, 설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이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미니언을 후려팰 때마다 피로라의 체력이 뭉텅뭉텅 차오른다.
발화가 걸려 치유력이 감소된 상태임에도 억척스럽게 버텨낸다.
이윽고 발화의 효과가 풀리자 역으로 체력을 만피까지 회복한 피로라가 쌍둥이 포탑 사이를 유유히 빠져나간다.
'이 뭐 병….'
아이템창을 보아하니 피를 마시는 칼과 배고픈 하이드라가 눈에 뜬다.
세 웨이브 젠이 된 미니언 떼에서 광역으로 피흡해낸 피로라의 회복력은 보고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하지만 직시해야 한다.
다시금 전장에 복귀한 피로라가 아군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더블 킬!
트리플 킬!
적은 전장의 화신입니다..!
피로라를 길동무로 데려가지 못했다.
아니, 결과만 놓고 보자면 체력조차 깎지 못했다.
포탑을 낀 채 아슬아슬 4대4의 밸런스를 유지하던 한타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운이 안 좋았다라..'
사실상 끝나가고 있는 게임을 모니터 너머로 보고 있던 도차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만약 미니언들이 2초만 늦게 나타났다면 피로라는 피흡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 타이밍 적의 공세를 버틸 수 있었을 테고 장기적으로 보면 역전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완벽한 패배다.'
더 이상 변명할 거리가 없다.
이번 세트만 말렸던 거면 모르되 첫 번째 세트부터 아예 상대가 되지 못했다.
가용할 수 있는 최고의 수로 부딪혔지만 무참히 깨져버렸다.
적은 자신의 주력 챔피언을 자진해서 밴하고 트페와 파사딘을 살려줄만큼 여유가 넘쳤다.
'카운터를 맞았다라, 당치도 않아.'
상대의 주력픽을 모조리 저격하고도 그런 말을 내뱉을 정도로 자신은 낯짝이 두껍지 않다.
엄밀히는 실력적인 부분에 한해서지만 그렇기에 더더욱이다.
하수(下數).
자신은 저 피로라를 플레이하는 이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다.
대회는 솔로랭크와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
더없이 처절하게 주제를 파악시켜 주는 한 판이었다.
자신은 안이하게 상대의 실수만을 바랬다.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던 것도 요행이었다.
만약 다른 팀들도 자신의 약점을 알았다면, 그리고 이용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지면 성을 간다고 했었지..'
파사딘을 하고 게임을 진다.
이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미드 차이로 승패가 갈렸다.
마음을 굳게 먹은 도차는 푹 고개를 숙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채 끝나지 않은 게임에 종지부를 짓기 위해서 다섯 명의 적이 넥서스를 향해 물밀듯 쳐들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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