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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도 에러갓이!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리그 파이널.
준결승전의 A조 승자는 CLC로 정해졌다.
CLC 대 AOA의 경기는 래딧이 떠나가라 화제를 불러왔지만 지금은 다른 이야기로 북적인다.
바로 준결승전 B조의 경기.
TSL 대 모스코5가 한창 격전을 치르고 있다.
스코어 또한 2 대 2로 박빙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세트를 TSL에서 따내면서 이대로 승기를 굳히는가 싶었던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모스코5는 역시 명불허전.
이전 경기들은 그저 실수였다고 이야기라도 하듯 뒤이은 세 번째와 네 번째 세트를 가져가며 바싹 따라붙었다.
결승전의 진출팀은 바야흐로 마지막 다섯 번째 세트의 승패로 정해지리라.
바다 건너 유럽까지 차마 건너가진 못했지만 마음만은 경기장에 가있는 래딧의 팬들은 뜨겁게 들끓었다.
─미역슨 진짜 잘하네.
알렉스도 유럽에서 첫 손에 꼽는 미드라이너 중 한 명인데.
미드 반반 가면서 다른 라인에 간간히 영향 끼치는 것 보면 대단해.
네 번째 세트도 진짜 아쉬웠어.
탤런 대회에서 보기 힘든 픽인데 잘 하더라.
└REAL. 순간 에러갓이 하는 줄 착각해버렸다.
└양 팀 다 잘했음. 간만에 눈호강 했어.
└그치. 준결승전정도 되면 이런 긴장감이 느껴져야 제맛이지. 솔직히 AOA는 너무 탈탈 털렸어.
지난 NA롤챔스 윈터시즌에서 에러갓이 보여준 몇몇 챔피언들.
그것들을 연습한 건지, 아니면 우연히 겹쳤는지는 알 방안이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미역슨은 과거 TSK에 있던 자신을 뛰어넘었다.
당시에도 Unknown Error때문에 다소 묻혔을 뿐이지 그의 기량은 출중했다
2군 팀인 TSK를 준결승전까지 올려놓은 이력.
Unknown Error보단 조금 못하다고는 해도 그 또한 새로운 시즌을 선도하는 기라성이다.
TSK에서 TSL로 옮기게 된 후 잠시간의 부진을 보여줬지만 끝끝내 증명해냈다.
32강 보단 16강에서, 16강보단 8강에서, 8강보단 이번 준결승전 더 나은 모습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대체 어디까지 올라가려고 하는지, 목표는 어디인지 무서울 정도의 기세.
준결승전조차 그의 손아귀에 떨어진다면 과연 결승전에서는 얼마나 한 모습을 보여줄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지경이다.
하지만 준결승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설레발을 치기엔 이르다.
다섯 번째 세트의 승자는 과연 어느 쪽이 될지.
밴픽단계에서 모스코5가 작은 실수를 해버렸다.
첫 번째 세트와 두 번째 세트에서 선전을 했던 미역슨 선수의 자드를 내주게 되었다.
─와 미역슨 또 자드 잡음!
미역슨이 자드만 잡으면 미쳐 날뛰는데 왜 그걸 밴 안했지?
요즘 에러갓이 자드를 안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미역슨이 자드 더 잘하는 거 같기도 하더라.
금은 장식 머리띠로 파훼법 밝혀지면서 솔랭에서도 자드하면 트롤 취급받는데 미역슨 혼자서 하니까 정감까지 감.
솔직히 에러갓도 자드 버린 꼴인데 혼자 붙들고서 캐리하고 있지.
└음.. 확실히 미역슨이 요즘 물 오르긴 했어.
└어, 에러갓은 밴돼서 못하는 거 아니야?
└금은 장식 머리띠가 자드한테 너무 카운터격이라 안 할 만도 함. 챔프폭이 한두 개가 아닌 에러갓인데 왜 이상한 버그 있는 챔피언을 하겠어? 나 같아도 안 함.
자드는 지난 NA롤챔스 윈터시즌의 주인공 격인 챔피언이었다.
당시 신규 챔피언이었던 자드는 챔피언 해석이 덜 되었고 심지어 라인조차 확정지어지지 않았다.
그런 자드를 미드 챔피언으로 신기에 가깝게 다뤘던 선수가 두 명.
바로 미역슨과 Unknown Error다.
둘 중 어느 선수가 더 잘했냐, 굳이 따지자면 Unknown Error의 손을 들어주는 게 일반적인 분위기다.
하지만 이번 LCF, 그리고 오늘의 경기로 인해 조금은 달리 생각될 여지를 주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게 Unknown Error는 LCF에서 단 한 번도 자드를 잡지 않았다.
그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밴이 되었다는 탓도 분명 있겠지만 찾아보면 자드를 꺼낼 수 있었던 판도 분명 있었다.
할 수 있었는데도 안 한 이유는 간단명료.
적어도 팬들은 이렇게 추측하고 있다.
─아니, 솔직히 자드가 궁극기 하나 보고 하는 챔피언인데.
그런 궁극기를 1550원짜리 아이템으로 상쇄해버리는 게 말이 돼?
하다 못해 조냐의 물시계처럼 비싸면서 2.5초간 행동불능되는 패널티라도 있으면 이해를 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그냥 버그의 일종 같아.
└블러디체리 궁극기도 금은 장식 머리띠로 해제되는 거 몰라?
글쓴이-블러디체리는 궁극기 의존도가 엄청 높진 않잖아. 게다가 광역딜임. 인정?
└듣고 보니 납득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자드가 궁극기 하나 보고 하는 챔피언이라는 말은 납득 못해주겠다.
확실히 자드가 처음 출시됐을 때만 해도 궁극기로 암살 실패하면 끝.
탤런 하위 호환같은 허섭스레기 챔피언이라는 평가였다.
그랬던 자드는 미역슨과 에러갓에 의해 챔피언의 플레이 방식이 어느 정도 정립됐다.
자신이 동경하는 프로게이머를 따라하려는 위함인지, 아니면 그저 꿀을 빨려고 하는 건지.
어느 쪽이든 간에 윈터시즌이 끝난 직후에는 한창 자드의 픽률과 승률이 꽤나 높은 축까지 들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 때.
금은 장식 머리띠라는 어처구니 없는 파훼법이 발견되며 자드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자드의 궁극기는 발동 후 3초가 지나야만 효력을 발휘한다.
그 특이함 때문에 이전부터 파훼법은 연구돼 왔다.
대표적인 방법은 2.5초간 무적 상태가 되는 조냐의 물시계로 궁극기의 피해를 무효화 시켜버리는 것.
그러나 주문력 아이템인 조냐는 마법사 챔피언들밖에 갈 수 없었고 덕분에 자드는 원딜 학살자라는 이명으로 불리게 됐다.
굳이 적팀의 미드라이너를 죽이지 않아도 한타에서 매번 원딜러를 따내며 1인분 이상을 톡톡히 해냈다.
게임이 후반에 갈수록 원딜러의 입지는 높아지는데 그 원딜러를 쉽게 암살할 수 있으니 자드 할 맛 제대로 난다.
그런데 원딜러들이 금은 장식 머리띠로 자드의 궁극기를 아예 상쇄시켜 버리자 유통기한이 와버렸다.
자드 유저들로서는 뒷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충격을 지울 수 없었다.
─솔직히 대회니까 그나마 운영으로 스노우볼 빠르게 굴리면서 써볼만한 건지 솔로랭크에서는 진짜..
아니 자드로 라인전에서 8킬 먹었는데 아군 탑라인 농사짓고 봇라인 계속 끊기고.
그러다가 후반 가서 적 원딜 3코어에 금은 장식 머리띠 나오니까 슬슬 비벼지더라?
그러더니 한타지고 바론 먹히고 결국 짐 LUUUUUL
짜증나서 게임사에 문의 때렸더니 버그 아니라네.
└그거 픽스될 때까지 자드 절대 안 할 예정.
└원딜 잡으라고 만든 챔피언인데 원딜도 못 잡아 LOLOOLOL
└근데 8킬 먹고 스노우볼 못 굴린 건 님 잘못인듯..
└팩트폭력배 보소;
그런 자드를 현 시점에서 유일하게 다루는 선수가 바로 미역슨이다.
궁극기 빼고 별 볼일 없다, 그런 말이 있는 자드라지만 에러갓이 증명했듯 사용하기에 따라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당시 윈터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에러갓의 자드가 미역슨의 손에서 펼쳐졌다.
그림자 분신과 궁극기의 분신을 활용해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적을 농락한다.
몇몇 팬들은 이미 Unknown Error의 자드를 뛰어넘었다고 말할 수준.
실제로 어떠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의 실력이 그만큼 일취월장했다는 사실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렇게나 잘 다루는 자드를 미역슨이 재차 잡았으니 이번 다섯 번째 센트는 TSL의 승리로 점찍어지리라.
하지만 아직 착각해서는 곤란한 게 모스코5도 나름 생각이 있었다.
아무리 프로팀이라고 한들 실수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결전을 짓는 마지막 게임에서 바보짓을 할 모스코5가 아니다.
모스코5는 유럽에서 첫 손가락에 꼽히는 명문.
오히려 자드 하나를 열어줌으로서 그 이상의 카드를 두 개나 챙겨왔다.
하나는 솔로랭크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미드 챔피언인 카지트, 다른 하나는 에러갓이 보여주며 화젯거리를 불러 일으켰던 이블퀸이었다.
─설마 모스코5도 이블퀸 연습한 거야?
카지트는 그렇다 치고 이블퀸까지 벤치마킹하네.
CLC의 주요 픽들 연구해서 써먹는가 본데?
└에러갓이 독나타스 상대로 이블퀸 선보인지 1주일 조금 넘었나? 프로급의 센스면 해볼 만도 하지.
└글쎄, 그냥 따라만 하는 수준 아닐까. 나 솔랭에서 해보니까 무지 어려웠던 거로 기억함.
└프로를 자기랑 비교하는 건 무슨 근자감이래 LOLOLOL.
TSL 대 모스코5의 마지막 다섯 번째 세트의 밴픽.
자드를 살려주고 카지트와 이블퀸을 가져간 의도는 명명백백, 넘겨짚을 만했다.
카지트와 이블퀸이라는 두 챔피언은 CLC에서 처음으로 선보였다.
그 시기는 롤챔스와 이번 LCF, 각각이지만 그만큼이나 모스코5가 CLC를 견제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상대 TSL도 아니고 CLC를 떠올릴만한 픽을 벌써부터 한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모스코5는 자신들의 결승전 진출은 이미 확정되었다고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2 대 2로 반반을 왔던 것도 어디까지나 연습했던 비장의 카드들을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장의 카드들을 선보임과 동시에 CLC에 대한 선전포고까지 완벽했다.
물론 이기지 않는다면 말짱 헛것.
혹여라도 지게 된다면 쪽팔림도 이런 쪽팔림이 없지만 반대로 이기면 그만인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시즌을 선도하는 팀도 바로 우리 모스코5가 된다.
그리고 최근에 조명을 받고 있다는 Unknown Error에 대한 일침까지.
여기까지만 보면 모스코5는 다섯 번째 밴픽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한 가지 크게 간과해버린 것이 있었지만은.
.
.
.
* * *
시간이 흐르고 흘러 드디어 시작된 준결승전 B조의 다섯 번째 세트.
나와 예은이 두 봉다리씩이나 사왔던 음식들도 슬슬 바닥을 보인다.
배가 부른 예은은 간만에 기분 좋은 표정이 되어 내 어깨에 기대듯 앉아있다.
"경기 끝나면 깨워줘..?"
"여기가 무슨 영화관이냐.."
영화관에서도 자는 건 실례겠지만 배도 부르고 자세도 편안하니 졸리는 것 정도는 이해가 간다.
게다가 아직 라인전 초반 단계라 게임의 진행도 루즈하다.
양 팀의 봇과 탑이 라인스왑으로 포탑 하나씩 가져가고 다시 라인스왑을 통해 정상적인 라인전을 진행한다.
서로 어깨에 걸린 무게가 가볍지가 않은만큼 정석적으로 흘러가는 게임이지만 주목해서 봐야 하는 점이 두 가지 있다.
미역슨이 자드를 잡은 것, 그리고 모스코5에서 카지트와 이블퀸은 잡은 것.
경기의 포인트가 제대로 잡혀있는만큼 시청자의 입장에선 재미지다.
하지만 내 입장에선 조금 언짢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뭐,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조금 이르네.'
내가 꺼낸 챔피언을 다른 선수들이 따라서 사용한다.
감안을 하고 있던 부분이지만 꺼낸지 1주일 가량된 이블퀸 정글이 벌써 나오게 되다니.
놀랍기도 하고 찜찜하기도 하고 싱숭생숭 마음이 복잡해진다.
물론 같은 챔피언을 하더라도 선수의 기량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특히 이블퀸처럼 가진 바 특색을 살리기가 어려운 편에 속하는 챔프는 더더욱이다.
그렇기에 지켜봤지만 생각보다 훌륭하다.
은신 챔피언인 이블퀸의 장점을 꽤나 잘 살리고 있다.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저 정도면 제법이지. 하지만 제법인 건 모스코5만이 아니야.'
게임의 시작 단계부터 조금 안고 있던 걱정.
걱정은 현실이 되어 터져버렸다.
라인전 초반 단계를 조금 넘긴 시점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이변은 이블퀸이 들은 스펠에서 비롯됐다.
구오오..!
자드의 궁극기가 이블퀸을 타겟팅했다.
그 효과는 3초간 자드가 가한 피해의 일정수치만큼 추가 데미지를 입힌다.
당연 상대라고 이를 바보같이 맞아줄 리 없지만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했다.
이블퀸이 들은 스펠이 점멸이 아닌 발화였기 때문이다.
발화는 초반 갱킹에 도움이 됐지만 자드같은 암살자 챔피언을 상대로는 악수가 될 수 있다.
그러한 사실까지는 미처 연구하지 못한듯 자드의 풀콤보를 맞은 이블퀸은 결국 사망해버렸다.
자드가 궁극기를 쓴 타이밍마저 절묘했기에 일어날 수 있던 결과물이다.
'우연...은 아니겠지.'
미역슨의 자드가 적팀의 유령지역에 미리 와드를 깔아 놓았다.
그리고 라인을 압박하며 은근하게 윗무빙을 밟기까지 했다.
그러다가 이블퀸이 유령을 먹을 때 뜬금없이 점멸로 벽을 넘더니 급습을 감행.
이블퀸은 발버둥쳤지만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모스코5의 미드라이너 카지트는 뒤늦게 따라갔지만 추격은 실패로 끝났다.
자드가 궁극기 그림자를 절묘하게 사용해 살아나갔다.
그 한 번의 킬로 인해 굴러가는 스노우볼.
TSL 대 모스코5의 경기는 어떠한 분기점을 예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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