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385화 (38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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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도 에러갓이!

과거 NA롤챔스 윈터시즌에서 나는 TSK와 TSL을 싸그리 격파하고 우승했다.

그럼에도 현재의 TSL이 만만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미드라이너가 미역슨으로 교체됐다는 사실은 가볍게 단정지을 만한 문제가 아니니 말이다.

'TSL은 미역슨으로 완성되는 팀이었어.'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서 그는 시즌4 이후로 TSL의 간판 스타가 되며 북미는 물론 유럽에서까지 최고로 칭송받는 미드라이너로 발돋움하게 된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시즌4는 이미 북미와 유럽의 끝물.

한국이 바싹 치고 올라간지 오래인 한 마디로 볼장 다 본 시기다.

아무리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낫다고는 해도 아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특히 미역슨의 입장에선 더더욱 그러했겠지.'

한창 로드 오브 로드가 흥할 시기에 프로게이머를 목표로 했다.

그런데 성인이 되지 못한 나이때문에 한 번 발목을 잡히고.

TSL로 이적을 할 때 계약 문제로 다시 한 번.

그러고 나니 북미와 유럽의 롤판이 크게 기울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런 미역슨이 북미와 유럽이 최전성기를 구가할 때 TSL로 이적했다.

TSL의 주전 미드라이너가 되어 서서히 적응.

전 미드라이너인 맥도날드 이상의 평가를 받으며 마침내 팀을 결승전까지 올려놓은 주역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같기도 하다.

'어째서인지야 모를 일이지만…. 오히려 바라는 바야.'

만약 모스코5가 결승전의 상대로 올라왔다면 어땠을까.

모스코5가 나름대로 유럽 최고의 팀이라고는 하지만 솔직히 손색이 있다.

내가 구사할 여러 전략들에 다분 휘말릴 거라 다분 예상된다.

어설프게 아는 것은 모르니만 못하다.

방금 전 TSL 대 모스코5의 마지막 세트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그리고 두 번은 당하지 않겠다라.'

나의 챔프폭을 그대로 따라하며 나에게 선전 포고를 했던 모스코5.

그런 모스코5가 꺼낸 이블퀸과 카지트를 가볍게 대응해낸 미역슨의 활약은 역으로 예고한다.

이전의 자신이 아니라고, 그리고 나의 챔프폭에 대응해낼 능력이 있다고.

우승을 향한 마지막 관문은 아무래도 쉽게쉽게 갈 수 없어 보인다.

<글쎄요, 콰른트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모스코5의 숙련도는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그저 미역슨 선수가 너무 잘했다. 그리고 상황이 잘 맞물려져 떨어진 결과 같습니다.>

용 앞에서의 한타를 대승하고 바론까지 챙겼던 TSL이 승기를 굳히기 위해 미드 라인을 치고 나갔다.

모스코5는 2차 포탑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억제 포탑만은 지키려 했지만 절묘한 이니시.

TSL의 탑라이너 카오스가 플레이하는 파이어뱃이 불바다 미사일로 적의 퇴로를 차단했다.

강제로 배수진을 치게 된 모스코5는 싸워봤으나 결국 패퇴하여 넥서스까지 밀리고 말았다.

<게임이 마무리되어 가는데 벌써부터 인터뷰 자리가 기대되네요. 엊그제 A조의 인터뷰 자리가 너무 재밌었던 여파라고 할까요.>

TSL 대 모스코5의 마지막 세트, 그 게임의 흐름은 더는 뒤집을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았다.

나는 이쯤에서 경기장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인터뷰까지 보고 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괜스레 시간만 잡아먹는다.

중요도도 떨어지거니와 내 옆자리에서 곤히 자고 있는 예은.

이 녀석 깨워서 숙소의 침대에 눕혀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야, 일어나. 그만 가자."

"우웅? 벌써 끝난 거야?"

내 어깨에 기대 한참을 곯아 떨어졌던 예은이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목소리가 늘어져 있다.

시끄러운 경기장에서 잘 수 있는 재주가 신기하다면 신기하지만 한 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배부르고 등따습다는 이유도 분명 있겠지만 최근에 들어 연습량이 부쩍 많아졌다.

피곤함이 동반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이치.

입가에 침 질질 흘리면서 내 어깨에 침 발라 놓은 것 정도는 눈감아줘야 할 듯하다.

"야, 야. 고개 위로 들어봐, 옳지 착하네."

티슈를 꺼내 예은의 입가를 꾹꾹 눌러 닦아줬다.

이렇게 말만 잘 들으면 여러모로 이쁜 녀석인데.

슬슬 잠에서 깨고 있는 건지 표독스러운 눈매가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 드센 성깔도 매력이라면 매력이지만.'

이제는 없어서야 섭할 지경이다.

나는 잠에서 깬 예은을 데리고 경기장을 나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정신은 제법 돌아온 모양이지만 아직 휘청휘청.

무게 중심을 못 잡고 있는 예은이 넘어질까, 손을 꼭 깍지 끼고서.

.

.

.

* * *

누가 와도 반드시 이기겠다.

그리고 재밌는 경기를 보여주겠다.

준결승전 A조의 모든 경기가 끝나고 3연속 MVP로 발탁된 Error선수의 인터뷰는 대략 그렇게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목요연 이야기를 끝맺을만큼 인터뷰 자리는 사실 가볍지 않았다.

─에러갓 인터뷰 패기 쩔더라.

ChadoRE를 애송이라 했던 건 둘째 치고.

결승전 상대로 누가 올라오든 이길 거라 상관없다고 했었지?

└에러갓 정도면 자부심 가지고도 남지.

└근데 애송이라곤 안 했어. 그냥 자신을 상대하기엔 백만 년은 이르다 그 정도 였음.

글쓴이-그게 그거지. 쨌든 패기 쩔어.

└REAL. 실력이 받혀주는데 그 정도 컨셉 가져도 충분해.

Unknown Error의 인터뷰 내용은 대략 이런 느낌이었다.

준결승전을 3 대 0으로 가져갈 수 있을 거라 예상을 했나?

아나운서의 물음에 Unknown Error는 이렇게 대답했다.

<질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 고로, 예상은 당연 하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패기 넘치는 대답으로 인터뷰의 시작을 장식했다.

Unknown Error의 인터뷰가 갈수록 능글맞아진다는 거야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조금 도를 넘은 게 아니냐.

일부 선비같은 지적을 하는 팬들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컨셉.

프로게이머로서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가진다면 할 수 있는 발언이다.

물론 그 발언에 책임질 수 있는 실력이 동반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얼마 전 세인트조지아처럼 X키를 눌러 JOY를 표해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Unknown Error라면.

그리고 결승전 또한 어느 팀이 올라와도 이길 거라 단언했던 그라면 과연 기대해봄직 하다.

─결승전 북미 대 북미돼서 유럽 애들 배아파 뒤지겠다.

심지어 모스코5가 TSL에 잡혔으니 LUUUUL

누가 이기든 이번 LCF는 또 북미 쪽에서 가져가겠네.

└미역슨도 요즘 물 제대로 올라서 결승전 박빙 예상함.

└마지막 세트에서 이블퀸 끝장낸 거 진짜 소름돋았어. 그게 만약 에러갓이었으면..

└에이, 에러갓은 그렇게 쉽게 안 당해주지.

Unknown Error가 선보였던 이블퀸이라는 카드.

모스코5가 그대로 따라 쓰며 초반에 재미를 톡톡히 봤다.

게임의 흐름은 모스코5에 조금 웃어주는듯 해보였지만 6레벨 이후의 실수 한 번에 뒤집혔다.

바로 자드의 슈퍼 플레이.

유령을 먹고 있던 이블퀸을 당당히 솔킬따냈다.

─TSL 상대하는 팀도, CLC 상대하는 팀도 어지간하면 자드 밴했었는데.

결승전은 서로 자드 살리고 시작하게 되겠지?

아무래도 밴카드 하나하나가 소중할 테니까.

자드 쟁탈전으로 간다면 정말 흥미진진해지겠네 LOLOLOL

└윈터시즌때 딱 그런 구도 나왔느네 에러갓이 자드로 박살을 내줬잖아.

└근데 이번엔 미역슨도 자드 숙련도가 장난 아니라 또 모름.

└둘 다 피지컬이 미쳐 날뛰던데 어느 쪽이 자드 원탑인지 이번에야말로 판가름났으면.

지난 NA롤챔스 윈터시즌에서 비슷한 구도가 나왔다.

당시 미역슨은 자드를 잡고 Unknown Error의 산다라에게 패배했다.

그리고 산다라를 잡았을 땐 역으로 Unknown Error의 자드에게 패배했다.

사실상의 완패.

하지만 잊어서는 안된다.

세간에서 미역슨 선수에 대한 평가는 대기만성형.

윈터시즌때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기량을 현재 LCF에서 뽐내는 와중이다.

자드의 숙련도는 무르익었고 Unknown Error와 감히 비교해볼만한 수준이라 말이 오갈 정도다.

─그냥 확실하게 미러전 떠서 결판났으면 좋겠다.

다른 챔피언으로 하는 건 플레이 성향 탓도 있고 깔끔하지가 않잖아.

동 챔피언 잡고 미러전하는 게 제일 꿀잼 구도.

└당사자들은 눈깔 돌아갈듯.

└자드끼리 궁쓰고 분신 깔고 이동하고 상상만 해도 복잡하네 LOOOL

└자드 미러전 나오면 진짜 재밌긴 하겠다. 근데 그럴려면 마지막 세트까지 가야 하잖아?

어디까지나 만약의 경우다.

하지만 기대해볼 만한 것도 사실이다.

TSL도 CLC도 어느 쪽도 결코 쉽게 무너질 팀이 아니다.

가진 바 모든 수를 쏟아부어 실랑이질을 계속한다.

그렇게 일곱 번째 세트, 마지막에 다다르게 된다면 과연 어떠한 광경이 펼쳐질까.

극한으로 피지컬을 타는 챔피언인 자드.

그런 자드를 플레이할 수 있는 오직 두 명의 선수.

그들이 보여줄 광경은 감히 짐작해서는 안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작년의 롤드컵 이후로 북미와 유럽의 로드 오브 로드 열풍은 한 번 식어버릴 위기가 왔었다.

그러했던 사실이 거짓말처럼 다시금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이번 LCF는 비교를 불허하리만큼 뜨겁다.

그 LCF의 종지부를 찍을 마지막 한 판이 화룡점정이 되지 않고서야 섭섭하리라.

.

.

.

* * *

준결승전 A조와 B조의 경기가 끝난지도 벌써 일주일이다.

하루하루의 시간을 결코 허투루 쓰지 않았음에도 찰나.

눈 한 번 깜빡이니 지나갔다고 느껴지는 현실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가슴이 진정이 되지를 않아.'

결승전이 시작하기 고작 30분 남짓 남았다.

나는 이미 경기장의 부스 안에 들어와 숨을 죽이고 있다.

최대한 호흡을 가라앉히고 있음에도 두근두근대고 있는 심장의 고동.

마음같아서는 주먹으로 쿵! 치고 싶을 정도로 정말 막무가내로 심장이 뛰어댄다.

인터뷰 자리에서 자신만만 승리를 예고했던 선세레모니가 걸리기 때문이 아니다.

승리할 자신이 없어서는 더더욱 아니다.

이번 LCF 결승전이 향후 내 인생에 끼치게 될 영향.

그 탓도 물론 있겠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이미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럴 텐데도 복잡하게 엉겨 있는 내 머릿속이 도저히 풀려지 않고 있는 이유는 정말 이제 와서라는 느낌이다.

그저 부담스럽다.

내가 이 자리에 있어서 되는 사람인지.

일주일 전 미역슨의 경기를 보고 돌아가 침대에 누웠을 때 문득 하나의 생각이 들었다.

'나로 인해 바뀌는 역사는 과연 옳은 것일까.'

역사를 바꿔도 되는 것일까.

그렇게도 바꿔 생각할 수 있는 이 의문은 틈만 나면 떠올라 나를 괴롭힌다.

그나마 근 일주일은 하도 바빠 딴 생각할 틈이 없어 다행이었다.

그리고 슬슬 잊을 때도 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대회 당일 내 머릿속 한 구석에서 기어 나온 이 의문은 다시금 몸집을 키워나간다.

나는 미역슨을 보고 소설 속 주인공 같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나는 그 주인공의 자리를 박탈하는, 이를 테면 바이러스같은 존재인 건 아닐까.

내가 하고 있는 짓은 어쩌면 본래 있어야 할 그들의 자리를 빼앗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정말 이제 와서 생각하기엔 바보같은 의문이다.

그렇다고 생각을 멈추기엔 머릿속을 자꾸 헤집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끝맺음을 내야 한다.

경기 부스의 앉은 자리에서 고민하기를 어언 30분.

어쩌면 합리화일지도 모를 결론에 다다랐다.

'그들 이상의 스타가 되어 팬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다면 그만.. 인 건 아닐까.'

나라고 바보가 아니고 결론을 내린 것이 없지 않다.

인생을 다시 살아가며 많은 것을 배웠고.

그 덕에 자신감도 되찾았고.

소중한 인연 또한 얻었다.

솔직하게 분에 넘치는 행복이라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나 자신의 잘남.

인터뷰 자리였다면 우스갯소리로 꺼냈을 지도 모를 말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나를 바라봐주는, 응원해주는 팬이 있었기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다.

그들에게 받은만큼 돌려주면 괜찮은 게 아닐까.

나 혼자서는 도저히 생각을 떨쳐낼 수 없었다.

"괜찮아."

지금까지 좋은 일도 있었고 안 좋은 일도 있었다.

그만큼 나쁜 인연도 있었고 나빴던 인연도 있었다.

나빴던 인연에서 좋은 인연으로, 이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인연이 되어준 사람.

그녀가 내 손을 꼬옥 붙잡으며 한 마디 속삭여온다.

친절하지 않은 그녀는 무어라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심전심.

말을 하지 않다 보니 오히려 통하는 바가 있더라.

내 손을 붙잡고 속삭인 그녀의 한 마디는 복잡했던 마음을 조금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어조가 조금만 고왔더라면 좀 좋았을까도 싶지만..'

그것 또한 포함해서 나와 그녀는 서로를 이해한다.

그녀가 어떤 의도로 말을 꺼냈는지 나는 알 수 있다.

이번 결승전이 끝나고 나 자신에게 조금은 솔직해지자.

그리고 자신감을 가져보자.

길고 길었던 북미에서의 마지막 종지부를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를 결승전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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