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387화 (387/803)

387====================

세 마리의 토끼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결승전.

래딧 유저들은 가진 바 여건이 되지 않아 프랑스까지 갈 수는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 이번 결승전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실망감은 더할 수밖에 없었다.

간혹 기대를 불러 일으켰던 대회가 결승전 직전까지 엄청난 이슈를 몰고 오다가.

정작 결승전 당일에는 시시껄렁하게 끝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안타깝긴 해도 그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니만큼 이해는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번 결승전이 그래서야 아니됐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파이널.

그 결승전인 TSL 대 CLC의 매치는 2 대 0의 상태다.

TSL이 연이어 두 세트를 따내며 앞서 달렸다.

물론 7전 4선승제나 되는 장기 매치인 데다 경기의 내용도 막상막하, 나쁘지 않았다.

그저 결과론적으로 TSL이 2승을 챙겼을 뿐이다.

보통의 상황이었다면 두 판 졌다고 설레발을 치지 않았을 터.

문제가 있다면 이번 LCF에서 가장 많은 화젯거리를 만들고 있는 슈퍼스타 Unknown Error의 급부진 때문이다.

─에러갓 멘탈터졌나 본데?

첫 세트에서 라인전 잘하더니 갑자기 실수 두어번하고 멘탈 펑!

솔직히 아무리 에러갓이라도 결승전쯤 오면 긴장할 수 있고 한 번 실수하는 거야 충분 그럴 수 있는데..

이번 세트에서 안 나온거 보면 일있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첫 세트 완전 정줄 놓고 하던데. 와드를 미리 깔아놨는데도 못 보고 죽어 주더라 개실망.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그걸 가지고 실망이래.

└에러갓은 사람이 아니다 G-O-D이지.

└아픈 거 아님? 안색 안 좋아 보이던데.

지금껏 단 한 번도 팬들을 실망시켰던 적이 없는 철인.

Unknown Error가 갑자기 실수를 연발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굴러 떨어질 수 있다.

만약 두 번째 세트에서 다시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면 별소리 나오지 않았으리라.

문제는 그 다음 세트에서는 아예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다른 팀원과 교체돼 벤치에서 쉬고있는 듯하다.

CLC가 식스맨 체제를 유지하는 거야 익히 알려져 있고 실제로 종종 있어왔기에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팀이 고배를 마신 위기 상황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의미는 명명백백.

현재 Unknown Error는 때 아닌 슬럼프를 겪고 있다는 반증이다.

선수 본인의 사정이야 안타까운 일이지만 팬들로서도 가만 있기 힘들다.

결승전까지 와서 갑자기 출전을 하지 않는다니.

팬들로서는 당장이라도 들고 일어나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다.

아직은 이성이 감성을 억누르고 있지만 언제까지 계속되리란 보장은 없다.

현재 래딧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도화선이다.

간간이 올라오는 불만글들에 이성적인 타박을 하는 댓글들의 수는 줄어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세 번째 세트에 다시 Unknown Error는 얼굴을 비쳤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있었지만.

─오, 에러갓 드디어 나왔다!

안색도 좋아 보이고 컨디션 회복 좀 했나?

제발 지금부터는 정상적

근데 미드가 아닌 것 같네.

└바이바이가 벤치로 들어간 것 보면 확실히 미드가 아니네.

└일단 몸부터 천천히 풀려는 거 아닐까 정글이나 탑하면서.

└에러갓 정글, 탑도 잘하긴 하지. 가능하면 미드서줬으면 하지만.

팬들의 사소한 불만도 어쩔 수 없다.

가장 화려함으로 선보일 수 있는 미드라는 라인.

선수의 스타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중심지다.

Unknown Error가 탑도 정글도 못지 않게 잘한다는 사실은 이미 증명이 됐다.

그래도 가능하면 미드라이너로서의 Unknown Error를 보고 싶은 게 팬들의 솔직한 욕심이다.

하지만 당장은 컨디션을 되찾는 일 정도로 만족하자.

그렇기에 방심할 수밖에 없었다.

─에러갓 슬슬 시동 걸리나?

또 듣도 보도 못한 챔피언 꺼냈네.

나 저거 시즌1 이후로 본 적도 없는데 오랜만이다.

└시즌1 때는 진짜 사기였지. 죽일 수도 없고 딜링은 장난 아니고. 근데 요즘은 애매하던데.

└에러갓이라면 나름대로 생각이 있겠지. 난 믿는다.

└와 시즌1때부터 로드 오브 로드한 화석들이 왜케 많냐.

언제나처럼 팬들의 예상을 가볍게 깨버린다.

그런 Unknown Error가 선사하는 마술같은 경기에 매료된 수많은 팬들.

혹시 무리하는 건 아닐까, 조금 불안한 것도 사실이지만 Unknown Error라면.

그 마술같은 한 마디는 팬들을 실망으로 끝맺게 하지 않으리란 알 수 없는 믿음이 있었다.

.

.

.

* * *

첫 번째 세트는 나의 실수로 져버렸다.

두 번째 세트는 분전했지만 인베 단계에서의 스노우볼이 안 좋은 결과를 낳았다.

만약 세 번째 세트까지 나없이 갔다면 꽤나 높은 확률로 이기지 않았을까.

동전을 던져 이전에는 앞면이 나왔으니 다음에는 뒷면이 나올 것이다.

그러한 느낌으로 긍정적인 예상을 하며 지켜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구경할 수 없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닌 나 자신이 경기에서 뛰고 싶다.

그래도 조급할 건 없으니 천천히.

그리고 나 자신의 본래 모습.

올마스터로서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미드가 아닌 탑을 선택했다.

탑라이너로서 소환자의 전장에 발을 딛었다.

─Welcome to Summoner's field.

헤드셋을 통해 울리우는 맑은 청음.

언제나 게임의 시작을 알려주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조금은 무겁게 느껴진다.

두 번의 패배를 안고서 시작하기에 그리 들릴 수밖에 없으리라.

'적당한 긴장감은 오히려 좋아.'

확실히 내 심장의 고동은 평소보다 조금 빠르다.

빠를 뿐, 불규칙하진 않다.

기분 좋은 엔돌핀이 흘러나오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게끔 해준다.

정말 상대로 누가 와도 질 것 같지 않은 기분.

단순한 기분에서 끝낼 수 없기에 이번 판에서 고른 챔피언은 특별하다.

아껴두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묵힐 수만은 없다.

속된 말로 묵히다가 X되는 법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고 보면 이 챔피언의 꿀냄새가 퍼지는 것도 슬슬 시기다.

늦어도 2월 중에는 풀리게 된다.

어떤 브론즈 유저가 이 챔프 하나로 플레티넘까지 갔다는 말이 있을 정도.

그런 사기 챔피언을 대회 무대 결승전에서 꺼낸다.

─미니언이 출발하였습니다.

나는 미니언 웨이브를 타고 천천히 봇라인을 향했다.

흔히 말하는 라인스왑이다.

주도적으로 라인스왑을 건 이유는 아군의 원딜러 트리플리프트가 배인을 들었기 때문.

라인전이 약한 배인의 특성상 맞라인전 구도에서 불리한 감이 있다.

트리플리프트의 배인이라면 충분 극복할 수 있겠지만 나 나름대로의 이유도 더해 라인스왑을 걸었다.

타앙!

타앙!

라인에 도착하자 적 봇듀오가 라인을 쭉쭉 푸쉬해댄다.

그렇게 미니언들을 몰아 포탑에 꼴아박게 한 후.

미니언을 한 입 하려 하는 나를 툭툭 쳐대며 견제한다.

그 견제에 체력이 많이 까이면 최소 빅웨이브 손해, 심하면 다이브를 당할 수도 있다.

그래서 탑라이너들 중엔 라인스왑을 정말로 질색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 챔피언에 한해서는 그럴 걱정이 없지.'

사람 키만한 대검으로 패대기치는 맛이 있는 챔피언.

이번 판에서 내가 선택한 트린다조아는 불사(不死)라는 희귀한 컨셉으로 유명하다.

궁극기, 불사의 격노를 사용하면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절대 죽지 않고 버텨낸다.

'이제는 단순한 쩌리 챔피언에 지나지 않지만.'

그런데 그 불사의 격노이 줄어드는 하향 패치를 받은 이후로는 픽률도 승률도 급감했다.

해당 챔피언의 장점 자체를 잔인하게 앗아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노릇.

죽지 않는 상태에서 대검으로 퍽퍽 후려치는 광경은 공포를 자아냈으나, 이제는 CC기라도 걸어서 조금만 버티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샌드백이다.

더군다나 이전 시즌만 해도 한타의 중요도가 워낙 깊었다.

궁극기가 너프된 트린다조아는 한타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몇 대 치기도 전에 CC기에 노출되거나 심지어는 궁극기를 아끼다 죽는 경우가 허다해졌다.

하지만 시즌3에 들어서부터는 스플릿 푸쉬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단순했던 백도어가 스플릿이라는 하나의 운영방식으로 정립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즉, 트린다조아를 써먹어도 됨직하다는 사실.

여기에 더해 빼놓으면 섭한 스킬이 하나 존재한다.

화랑-!

적팀의 원딜러 크레이브즈에게 맞아 깎였던 체력이 다시금 차오른다.

내가 라인스왑을 버틸 수 있을 거라 여겼던 자신감의 근원.

트린다조아의 Q스킬, 피의 환희는 1.5AP 계수의 주문력과 분노에 비례해 체력을 회복시켜 준다.

본래는 미니언을 때려 코스트인 분노를 쌓지 않으면 회복량이 미미하다.

하지만 AP트린다조아, 주문력을 올렸기에 그냥 누르기만 해도 체력이 꾸준하게 회복된다.

타앙!

타앙!

크레이브즈가 재차 미니언 웨이브를 몰아 포탑에 왔을 때 내 체력은 만피에 가깝게 돌아왔다.

한 번의 미니언 웨이브가 도착하는 시간은 평균 30초.

그런데 피의 환희는 쿨타임이 10초가 조금 넘는다.

한 번 쓸 때마다 거진 100씩 회복하니 크레이브즈가 어지간히 때려도 체력이 유지된다.

유지되는 체력 덕에 조금 더 많은 미니언을 챙기는 게 가능하다.

적어도 탑에서 쇠꼬챙이를 쏘아대며 힘들게 파밍을 하고 있는 파이어뱃보다 배 이상은 먹었다.

화랑-!

너무나도 끈질긴 내 회복력에 적 봇듀오는 나를 무시하고 포탑만을 때려댄다.

그 대신에 내가 먹을 수 있는 CS의 양은 더욱 많아졌음은 물론이다.

어떻게 보면 나를 성장시켜도 그다지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라인 유지를 위해 조금 변칙적인 룬을 들었다. 그러니까 성장을 조금 허용해도 되겠지. 그렇게 판단을 했다면 큰 오산인데.'

초반 유지력을 위해 룬과 특성 등으로 주문력을 보충했다.

그러니까 시간을 끌면 저 주문력은 쓸모가 없어질 거다.

트린다조아가 AD챔피언으로 설계된만큼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당연 정답이 아니다.

나는 순수하게 주문력 아이템만을 올릴 예정이니까.

─아군이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아군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최대한 CS를 챙기며 버티기는 했지만 포탑이 부숴진다는 결과는 막을 수 없었다.

머릿수에 장사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다시금 봇라인에 복귀하니 봇듀오를 대신해 적팀의 탑라이너 파이어뱃이 왔다.

탑라이너들이 봇라인에서 조우하게 되다니.

솔로랭크였다면 우스꽝스러울 수 있겠지만 대회 무대에서는 상당히 흔한 경우다.

아무래도 라인스왑 상태가 계속해서 지속되면 적 입장에서는 이로울 게 없을 테니 옳은 선택이다.

'뭐, 이미 늦었지만 말이야.'

트린다조아가 파이어뱃을 상대로 사려야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초반.

이렇게 슬슬 아이템이 나오고 6레벨이 도달하는 시점이 될수록 트린다조아가 주도권을 잡는다.

파이어뱃으로서는 그 전에 CS격차를 얼마나 벌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사기적인 회복력을 자랑하는 AP트린다조아에게 어지간한 견제는 먹히지 않지만 약간의 디나이는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초반을 라인스왑으로 넘겼고, 심지어 그 과정에서 CS를 내가 배 이상 먹었다.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상황.

주도적으로 라인스왑을 걸었던 진가가 발휘된다.

파이어뱃은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만회를 해보기 위해 불찜질 견제를 시작하지만.

화라락!

유일한 접근기인 E스킬 회전참으로 다가가 대검을 내리친다.

파이어뱃은 맞자마자 쇠꼬챙이를 발사하며 도망가지만 트린다조아에게는 꼬꼬댁이 있다.

트린다조아의 W스킬, 꼬꼬댁은 등 돌린 적의 이동속도를 둔화시킨다.

느려진 파이어뱃에게 다시 한 번 대검을 철썩 내려찍는다.

콰직!

아무리 AP트린다조아라고 해도 마관룬은 들지 않는다.

대신에 공격력룬을 박은 데다 Q스킬은 찍기만 해도 공격력이 올라간다.

라인전에 한해서는 그 공격력이 뒤지지 않는다.

게다가 방금 전 마지막 평타가 치명타로 터졌다.

'이게 또 상대하는 입장에서 어지간히 짜증나지 않을 수가 없는 부분이지.'

미니언을 때려서 코스트인 분노를 한계치까지 채운다.

그러면 치명타 확률이 최대 35%까지 올라간다.

큼직한 대검으로 후두부를 내려찍는 모션은 그 자체만으로도 압권이지만 데미지는 더욱 괴랄하다.

방금 한 번의 딜교환으로 파이어뱃은 체력이 반피가 조금 안되게 까였다.

─CLC MyumMyum님이 파이어뱃을 지목.

곧 6레벨에 도달하는 트린다조아.

아군의 미니언 웨이브는 한가득 쌓여 몰려가고 있다.

일련의 상황이 의미하는 바는 뻔하디 뻔하다.

뻔하지만 당해야만 하는 무참한 다이브가 파이어뱃의 목을 조른다.

============================ 작품 후기 ============================

우측 상단에 있는 추천 버튼 잊지 않고 눌러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