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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의 토끼
트린다조아는 초반 라인전 단계에서 AP로 가든 AD로 가든 아주 큰 차이는 없다.
그저 주문력이 높으면 라인전을 버티기 쉽다는 것 정도.
그 장점을 백분 활용해 라인스왑을 걸었고 충분한 성과를 얻었다.
이후로도 AP트린다조아의 특색을 살려 꽤나 면밀한 플레이를 펼쳤지만 이것이 다가 아니다.
AP트린다조아가 어떤 챔피언인지, 그리고 어떤 사기성을 가졌기에 그토록 말이 많았는지.
보여줬다고 하기엔 백만년은 이르다.
화라락!
쿨타임이 40%에 다다른 AP트린다조아.
딜교환이 이리 자유로울 수가 없다.
상대가 포탑을 끼고 있다해도 마음내키는 대로 달려들어 대검을 내려 찍는다.
그러다 치명타라도 한 번 터지면.
화라락!
다시 회전참을 사용해 내빼버린다.
르풀랑이나 할 법한 억지 딜교환.
안 그래도 쿨타임이 5초 밖에 되지 않는 회전참이 치명타에 의해 2초 줄어들은 결과다.
포탑에 맞아 다소 깎인 체력은 피의 환희로 회복하면 그만이다.
'치명타 터지는 게 로또긴 해도.'
궁극기라는 든든한 보험이 트린다조아의 목숨을 지켜준다.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서도 리스크없이 살아나가는 게 가능하다.
적팀의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겠지만 이것이 바로 AP트린다조아.
역대급 OP챔피언의 위엄이다.
화라락!
다시 한 번의 딜교환에서 첫 번째 평타에 치명타가 터졌다.
이미 체력이 깎인 상태인 파이어뱃.
앞으로 3초 후면 회전참의 쿨타임이 돌아온다.
결코 벗어날 수 없는 킬각이 잡혔다.
투두두두둑!
위험신호를 느낀 파이어뱃이 불바다 미사일이 일직선으로 깔아 둔화지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나만 느려진 게 아니다.
꼬꼬댁에 의해 나와 파이어뱃이 평행선을 달리는 한 시간 문제.
이윽고 쿨타임이 돌아온 회전참으로 파이어뱃을 그어버렸다.
콰직!
원래 안되는 날에는 뭘 해도 안된다고 또다시 치명타가 터졌다.
게다가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곧바로 한 번 더 1.0AP 계수의 회전참을 먹여버린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CLC Error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AP트린다조아는 한 번 킬을 먹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내 회복력이 상대의 견제력을 뛰어넘으면서 밸런스가 우지끈! 무너져 버린다.
말도 안되는 돌진기와 궁극기때문에 리스크없이 계속해서 킬각을 노리는 게 가능하다.
파이어뱃처럼 생존기가 부족한 챔피언의 경우 입장이 더욱 처절해질 수밖에.
더욱이 처절한 건, 어깨가 무거운 건 나도 마찬가지다.
첫 번째 세트와 두 번째 세트에서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전력으로 이번 경기에 임하고 있다.
찰칵!
두 번째 코어템부터 선택이 나뉜다.
주문력을 급상승시켜 주는 라둔의 죽음투구냐.
아니면 대인 데미지와 백도어에 힘을 실어주는 부자베인이냐.
하지만 이렇게까지 흥해버리면 선택지가 하나 더 존재한다.
테자이의 재능약탈자.
킬이나 어시스턴트를 챙길 때마다 주문력을 상승시켜 준다.
대신 죽었을 때 주문력이 떨어져 어지간히 흥하지 않고서야 솔로랭크에서도 잘 가지 않는다.
대회무대, 그것도 결승전에서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트린다조아는 죽을 일이 없으니까.'
과감하게 선택해준다.
바로 나 Unknown Error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더없이 적절하다.
.
.
.
* * *
세상을 살다 보면 종종 자신이 알고 있는 상식에서 벗어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흔히 말하는 창의적인 생각.
하지만 그런 재밌는 생각을 볼 때 반은이 꼭 좋으리란 법은 없다.
<아, 나도 저거 생각해 봤는데.>
대부분의 경우 시큰둥한 반응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게 창의적인 생각이라는 건 별 게 아니다.
상식에서 조금 벗어나는 일.
보통은 고개를 끄덕이는 선에서 끝난다.
너무 놀라는 반응을 보이게 되면 체면이 상하니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렇게 대단한 부분이 없다며 스스로 결론짓는다.
이러한 반응은 로드 오브 로드에서 더욱 심화된다.
꿀챔피언, 특이한 템트리 등은 의외로 누구나 한 번은 해본다.
그래서인지 독특한 걸 발견했다고 그걸 대단하다며 치켜 세워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도 한 번은 생각해봤으니 별것도 아니야.
이런 느낌으로 창시자는 대부분 인정받지 못한다.
하지만 종종 상식의 틀을 완전히 비틀어버리는 경우가 존재한다.
주위 사람들의 의문을 자아낼 정도로 독특한 챔피언.
처음에는 의심을 사지만 실효성이 증명될수록 창시자는 조명받는다.
당연하게도 절대 흔할 수가 없다.
하지만 여기 몇 개의 예시가 있다.
얼음 장갑을 가는 이즈레알이라던지.
1렙부터 오버 파밍을 하는 싱나드라던지.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래도 이제 그런 특이한 케이스는 나오지 않겠지.
그런데 오늘 CLC 대 TSL의 LCF 결승전에서 하나가 더 발굴됐다.
다름아닌 Unknown Error가 또 도저히 믿기지 않는 챔피언을 선보였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오지만 현실입니다. LCF결승전에서 AP트린다조아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콰른트도 안 할 법한 말도 안되는 트롤링인데…. 이게 효율이.. 나옵니다? 트린다조아가 주문력템을 가니까 사기 챔피언이 돼버렸어요."
상식을 벗어나도 이렇게 벗어날 수가 없다.
사람 키만한 대검을 들고 있는 근육질의 야만전사.
그런 트린다조아가 주문력 아이템을 사서 마법사 노릇을 하다니 가당키나 한 소린가.
그런데 그게 된다.
오히려 일반적인 트린다조아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실제로 효율이 어떻던 간에 일단 그렇게 밖에 보이지 않는다.
저 Unknown Error라는 마술사는 항상 그렇게 사람들을 속여 넘긴다.
"저도 이제 슬슬 그만 속고 싶지만 이번 경우에 한해서는 그냥 속겠습니다. 저 챔피언 진짜 좋아보이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약 파는 것 같은데…. 하, 게임에서 증명해대니 분하지만 반박할 수단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Unknown Error가 약을 팔아재낀 경우가 어디 한두 번인가.
개중에는 정말로 좋은 챔피언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Unknown Error의 센스와 피지컬, 그리고 판단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부류.
솔로랭크에서 피해자가 하도 속출하다 보니 이제는 사람들도 반신반의 한다.
그럼에도 이번 AP트린다조아는 알고서도 속을 수밖에 없다.
7초마다 체력을 회복하며, 5초마다 돌진기를 사용해댄다.
그마저도 치명타가 터지면 쿨타임도 거의 없이 또 나간다.
이렇게 재밌어 보이는 챔피언을 안 하고 배길 수 있을까.
"보통 이런 특이한 챔피언은 리스크가 높은 경우가 많은데.. 리스크는 커녕 죽을 각도 안 나옵니다. Error선수가 첫 세트에서의 실수를 교훈삼아 이번에는 아예 실수를 안 할 수 있는 챔피언을 들고 나와버렸어요!"
"예.. 절대 안 죽는다고 못을 박아놨죠. 테자이의 재능약탈자, 벌써 스택이 두 자릿수네요. 저거 풀스택 쌓이면 대체 어떻게 될지.. 경기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습니다."
TSL이라고 갱을 안 온 게 아니다.
어떻게든 Unknown Error를 말리기 위해서 갖은 애를 다 써봤다.
하지만 그때마다 귀신같이 잘 도망치는 트린다조아.
무리하게 쫓은 적도 있지만 역으로 갱승이 나버렸다.
실수를 했다기보단 저 챔피언, 그리고 그를 플레이하는 Unknown Error가 상식을 벗어났다.
"스노우볼 계속해서 굴러가네요. 죽을 일이 없으니까 그냥 무작정 다이브를 쳐버립니다. 이거 또 뒤 안 봐주면 당해야만 하거든요."
"회복, 이동, 무적 세 개 의 스킬때문에 기회비용 자체가 전무해서 과감한 플레이가 시도 때도 없이 가능합니다. 이건 막말로 치트키 치고 게임하는 꼴이네요. 답이 안 보입니다."
다이브라는 건 절대 그냥 칠 수 없다.
아무리 라인전이 유리해도 눈치를 봐야 한다.
적 정글러가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까.
절대 실수해서는 안되는 대회 무대에선 더더욱 조심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저 AP트린다조아는 그냥 들어가서 안된다 싶으면 빠져버린다.
이동기의 쿨타임이 말도 안되게 짧은 데다 그마저도 치명타가 터지면 더 줄어든다.
혹시라도 위험한 경우가 생기면 궁극기.
불사의 격노로 5초 동안 살다가 또다시 이동기를 사용해 도망가면 그만이다.
체력도 다 빠졌으니 이제 끝이겠지.
그새 또 체력을 채워서 앞에서 어슬렁어슬렁 얼쩡댄다.
죽일 수도 없는데 가만히 냅두면 계속해서 다이브를 친다.
"아니 데카시르, 저게 대체 뭐죠? 트린다조아가 이번에는 포탑에 맞으면서 백도어를 하고 있습니다..!"
"하아.. 포탑 딜이 무섭지가 않나보네요. 결국 억제 포탑 깡으로 깨고 도망갑니다. 도망가면 또 못 잡죠."
양 팀의 탑라이너, 파이어뱃과 트린다조아는 성장 격차가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그나마 억제 포탑 앞이니까 팀의 백업을 믿고 어느 정도 버티던 거였지.
딜교환에서 체력이 조금만 까여도 바로 다이브각이 성립된다.
파이어뱃은 어쩔 수 없이 궁극기인 불바다 미사일로 라인클리어를 하고 우물로 귀환했다.
한 번 정비를 해서 체력을 채우고 아이템을 보충하기 위함.
그런데 트린다조아가 미니언도 없이 포탑에 달려들더니 대검을 내리친다.
미니언이 없으면 포탑에게 박을 수 있는 딜이 약해질 뿐더러 일단 포탑 딜 자체가 결코 약하지 않다.
한두 방은 몰라도 반피 가까이 남은 포탑을 철거하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
그런 상식을 저 AP트린다조아는 당연한듯 비튼다.
포탑에게 맞은만큼 회복하면서 어거지로 포탑을 파괴해버렸다.
"트린다조아가 라둔의 죽음투구까지 나와버렸습니다. 이거 웃으면 안되는데 전사 챔피언의 주문력이 700을 넘었어요. 진짜 어지간히 미스매치인데 이게 또 좋습니다?"
"이제는 정말 포탑에게 맞는 양보다 회복하는 양이 많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리 에러갓에러갓 한다지만 포탑에 맞으면서 백도어하는 것은 정말 너무하네요."
이제 적팀은 좋든 싫든 트린다조아에게 휘둘려야 한다.
그것도 언제, 어떻게 들어올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다.
일반적으로 미니언과 함께 오는 스플릿 푸쉬는 대비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트린다조아는 미니언이 없어도 그냥 들어가서 포탑을 파괴한다.
공속도 빠른 데다 부자베인도 있어서 포탑 철거 속도가 느리지도 않다.
TSL은 가능한 트린다조아를 말리려고 했지만 문제는 나머지 적들.
트린다조아가 뺑뺑이를 도는 사이에 다른 CLC의 팀원들도 제 할 일을 해냈다.
<블루 팀이 바론 백작을 처치했습니다!>
계속해서 굴러가는 스노우볼.
글로벌 골드의 격차는 벌어질 데로 벌어졌다.
그럼에도 TSL은 아직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한타 조합을 갖춘 TSL은 한 번 꽝! 맞붙는다면 어떻게 비벼볼 여지가 충분히 있다.
파이어뱃이 암만 성장을 못했다 해도 불바다 미사일만 잘 깔면 어찌저찌 1인분이 가능하다.
하지만 과연 CLC가 한타를 해줄련지.
CLC는 몰라도 저 Unknown Error는 한타를 해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게임 끝날 때까지 백도어만 할 기세입니다. 그것도 저렇게 어거지 백도어를 하고 있으니 막을 방도가.. 이게 있나요? 그런데 저거 어떻게 죽이죠?"
"Q스킬 누를 때마다 체력이 1천씩 쭉쭉 차오릅니다. 저러다 위험하면 궁극기 사용하고. 궁극기 끝날 때쯤 되면 도망가서 또 체력 회복하고. 과장없이 풀템 나온 또도 박사도 저거보다는 잡기 쉽습니다."
끊임없이 차오르는 체력이야 말로 또도 박사의 상징이다.
하지만 또도 박사는 성장하기도 힘들 뿐더러 궁극기의 쿨타임 동안은 탱킹력이 크게 저하된다.
여느 챔피언이 그렇듯 최소한의 양심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저 AP트린다조아는 회복이 일반 스킬이다.
그리고 궁극기는 무적이라 어쩌다 점사를 받아도 5초는 무조건 버틴다.
심지어 쿨타임 짧은 이동기로 계속해서 도망가대니 추격도 하기가 힘들다.
한 마디로 술래잡기의 깍두기같은 존재.
잡아도 잡는 게 아닌 깍두기를 상대로 영겁의 술래잡기를 되풀이해야 한다.
"백도어로 억제탑 두 개 부쉈네요. 이제 슬슬 한타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잘못하면 TSL에서 CLC부스로 쳐들어갈 수도 있어요?"
"보는 저도 이렇게 약이 오르는데 TSL 선수들은 오죽할까요. 잡을래야 잡을 수도 없고 잡아도 못 죽이는데 가만 두면 포탑을 다 부수고 돌아다닙니다."
막바지로 흘러가는 결승전 세 번째 세트.
그래도 슬슬 백도어가 질리기는 하는지 Unknown Error의 트린다조아도 합류해서 한타를 바라본다.
백도어도 충분히 재밌기는 했지만 로드 오브 로드의 꽃은 역시 한타니까.
팬들로서는 바라디 바라던 한타지만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여유있는 상황에서의 방심이 자칫 화를 불러일으키는 건 아닌지.
마지막 기회라고 할 수 있는 이번 한타에 임하는 TSL의 태도는 사뭇 진지했다.
특히 맞라인전에서 된통 털렸던 대이리스 선수의 눈에서는 불똥이 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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