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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의 토끼
사실 기대라는 것은 보답받기 힘들다.
기대가 크면 클수록 더할 수밖에 없다.
무궁무진한 인간의 상상력.
여태껏 보지 못했던 무언가, 이상(以上)의 이상(理想)을 바라게 된다.
기대치가 높은 선수일수록, 지금껏 많은 커리어를 쌓아온 팀일수록 기대를 보답하는 건 힘든 일이 된다.
그렇기에 선수들도, 팬들도 타협한다.
이기는 것으로 만족하자.
자신이 응원하던 팀이 게임을 승리하는 것으로 합의점을 찾게 된다.
그 이상을 바라는 건 욕심이라는 생각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원격 조종의 RC카를 원했던 아이가 부모님의 지갑 사정으로 미니카를 선물 받았다.
못마땅한 표정을 짓지만 이것으로도 충분히 재밌게 놀 수 있으니 이내 만족해서 포장을 뜯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판단이고 선물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일이 맞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생물은 욕심으로, 욕망으로 똘똘 뭉쳐있다.
기왕 받는 거 RC카를 받고 싶다.
이러한 요구에 보답해줄 수 선수가 과연 흔할까.
만약 있다면 그는 슈퍼 스타고 모든 팬들의 환호를 한 몸에 받게 되리라.
과아아아아아아-!!!
LCF의 결승전이 치러지고 있는 <제니스-파리>에서 불현듯 지진이 일어난다.
진짜로 땅이 흔들리는 게 아님에도 관중들의 환호, 그 음파에 의해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공기가 울리우며 진동을 만들고, 그것이 경기장의 내부 벽에 마구마구 부딪혀 반사되며 정말로 떨리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곳 <제니스-파리>가 조금이라도 크게 설계되었다면, 그리고 관중들의 열기가 이보다 더 작았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기현상.
과장이나 비유가 아닌 실제로 1만의 관중들이 진원지가 되어 지진을 만들고 있다.
언제나 팬들의 기대 이상을 보여주는 선수.
지금까지 보여준 것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그 이상을 당연한 듯 해내는 한 사람.
바로 Unknown Error를 향한 환호성이라는 사실에 이견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팬들이 RC카를 원하면 진짜 차로 뽑아줘버린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결승전 내내, 심지어 마지막 블라인드 픽에서조차 증명하고 있다.
Unknown Error는 그런 선수다.
"정말 믿을 수가 없습니다. 열 개의 손가락으로 입롤을 실현하는 선수가 있다면! 저는 Error선수 이외에는 본 적이 없다고 감히 단언 하겠습니다."
"콰른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가 아니라면 이루어낼 수 없는 기적과도 같은 플레이. 이것은 단순한 요행, 혹은 실력의 격차조차 아닙니다."
마치 체스, 혹은 장기와도 같다.
여러 개의 말이 시간 차로 움직이며 적군의 왕을 노린다.
이러한 양식의 게임에서 중요한 건 상대의 생각을 얼마나 넘겨 짚을 수 있는가.
한 마디로 수읽기라는 것이 초점이 된다.
정말 잘 나가는 기사들은 수십 수 이상 읽을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며.
어떤 컴퓨터는 아예 게임이 시작된 순간부터 승부가 정해지는 순간까지 전부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만큼이나 얼마나 더 상대의 수를 넘겨 짚을 수 있는가는 승패와 직결되는 문제다.
마치 Unknown Error의 플레이가 그러하다.
대체 언제부터 상대 TSL이 그러하리라 짐작하고 있었을까.
그의 플레이를 본다면 정말로 언제부터 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상대는 어느새 Unknown Error가 원하는 대로 인형처럼 움직여 조작 당한다.
그리고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체크 메이트, 혹은 장군.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이미 늦어 있다.
Unknown Error의 손바닥 위에서 농락 당한 이후다.
"사실 게임 복잡하기로서니 로드 오브 로드하고 체스는 비교가 안되겠죠. 막말로 이미 컴퓨터에게 정복된 분야니까요."
"고전 오락 중에서 동양의 바둑 같은 특이한 케이스를 제외하면 아무래도 인간과 컴퓨터의 수읽기 차이는 좁히기 힘드니 말입니다."
당연하게도 로드 오브 로드는 턴제로 진행되는 게임이 아니다.
상대가 하나 할 때 두 개 할 수 있다.
어지간히 실력 차가 나지 않는 이상 쉬운 일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숫자가 많다면.
5 대 5의 팀플레이 게임인 로드 오브 로드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다.
둘이 하나를 상대한다.
방금 전, 봇라인에서 스플릿을 하고 있는 Unknown Error의 자드를 마크하기 위해 TSL은 두 명을 보냈다.
미역슨의 자드와 오드아이의 나무카이가 양 쪽에서 포위하여 덮쳤다.
여기까지만 봤을 땐, TSL의 노림수에 Unknown Error가 완전히 당한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게 나머지 세 명의 TSL 선수들.
파이어뱃과 크레이브즈, 그리고 루나면 CLC의 바론 트라이를 막아봄직하다.
Unknown Error만 막는다면 TSL은 후반을 도모할 기반이 마련된다.
그런데 그 Unknown Error가 미쳐 날뛴다.
"어쩌면 금은 장식 머리띠부터 모든 것이 설계였을 지도 몰라요. 사실 조금 의아할 정도로 빠르게 구입한 감이 분명히 있었거든요."
"영락검이면 딜은 충분하다고 판단했던 듯합니다. 역으로 금은 장식 머리띠를 올리는 편이 다수와의 교전에서 효과적이다. Error선수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계산이 마쳐졌던 모양입니다."
금은 장식 머리띠는 자드의 궁극기를 무효화시킨다.
익히 알려진 사실이고 오늘의 결승전이 시작되기 전에 중계진들이 입이 닳도록 말했던 관전 포인트다.
하지만 동챔프 간에서 금은 장식 머리띠는 쉽사리 선택하기 힘들다.
달린 것이 방어력이면 몰라도 마법 저항력.
차라리 그 돈으로 공격력 아이템을 구입하는 편의 효율이 낫다.
그럼에도 Unknown Error는 과감하게 영락검을 뽑자마자 금은 장식 머리띠를 올렸다.
두 명 이상의 상대가 자신을 마크하게 되면 그 중 하나가 반드시 AP챔피언이라 예상하고서.
"확실히 나무카이 아니면 파이어뱃이었죠. 크레이브즈가 오기에는 역으로 암살 당할 우려가 컸으니까요."
"그리고 만약 루나가 왔다면 스턴 연계를 푸는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었을 겁니다. 정말로, 정말로! 아이템을 구입한 순간부터 모든 것이 설계였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Unknown Error라면 거기까지 바라봤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Unknown Error는 2대1의 상황에서 역으로 상대 자드를 따내버렸다.
그 뿐만 아니라 나무카이를 확실하게 묶어두기까지 했다.
이 여파는 바론으로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충분한 실효를 거뒀다.
일단 탑라인의 2차 포탑이 트린다조아의 백도어에 의해 파괴됐다.
나머지 CLC 선수들은 미드 라인에 물밀듯 쳐들어갔다.
이를 막기 위해서 세 명의 TSL 선수들은 정말로 노력했지만 근본적인 수적 열세는 어찌 할 방안이 없었다.
탑타워를 철거하고 온 트린다조아가 뒤에서 들이닥치자 궁극기와 점멸을 벗어던지고 내빼야만 했다.
순식간에 양 팀의 글로벌 골드 격차가 손쓸 수 없을 지경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CLC에서 한타를 한 번만 실수 해주면 TSL도 변수를 만들기 충분합니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로 TSL의 조합은 그만큼이나 한타 잠재력이 있단 말이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한타, 막말로 CLC에서는 해줄 이유가 전혀 없거든요. 이대로 131운영 계속 하면 TSL은 말려 죽습니다."
탑에서는 트린다조아가.
미드에서는 거미여왕, 쏘냐, 배인이.
봇에서는 Unknown Error의 자드가 숨통을 쥐어온다.
이미 2차 포탑들이 깡그리 파괴된 상황이라 어떻게 기지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다.
1분 후에 젠되는 용은 CLC측에서 손쉽게 가져갈 전망된다.
"진짜로 꾹꾹 참아서 한 방만 터트리면 되거든요. 마치 갤럭시 크래프트에서 외계 종족이 하던 것처럼 말이에요. 이거 무리순가요?"
"LCF 결승전에서 갤럭시 크래프트 얘기가 나오면 어떡합니까? 참 실소가 뿜어져 나오는데 콰른트의 이야기도 아주 틀린 건 아니에요."
CLC에서 지금까지 스노우볼을 잘 굴린 건 사실이다.
하지만 프로팀들이 한타를 그렇게나 신경 써서 조합을 짜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로드 오브 로드의 꽃은 결국 한타.
꽝! 맞붙어서 결과가 어찌 나오냐에 따라 지고 있던 게임도 역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혹은 이기고 있던 게임도 한타를 지면 어떻게 비벼질지 모른다.
초중반에 킬을 내주는 것과 후반에 킬을 내주는 것은 무게가 다르다.
후반에 누구 한 명 죽게 되면 그대로 바론 나가고 억제탑 밀리고.
솔로랭크에선 일상인 일이지만 대회 무대에서도 그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최종적으로는 한타를 하게 되기 마련.
수비 측의 동선을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차나 2차 포탑같은 바깥 지역을 방어할 때는 동선이 길어 스플릿 푸쉬에 휘둘리게 된다.
그러나 억제 포탑을 끼고 방어할 땐 팀의 지원이 빠르게 도착한다.
또 지형 자체도 수성하는 측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억제 포탑이라는 벽을 한타없이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게 계속해서 버티면서 코어 아이템의 차이를 좁힌다.
TSL이 어중이떠중이 팀도 아니고, 솔로랭크처럼 쉽게 실수를 해줄 턱이 없다.
"그러니까 결국 한타를 하게 될 거고, 한타 조합은 TSL이 유리하니 승산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 말인 거죠, 데카시르?"
"축약하자면 대강 그런 늬앙스의 이야기가 되겠네요. 실제로 게임의 구도를 보면 CLC에서 더는 압박을 하지 못하고 있죠?"
예상되었던 데로 두 번째 용은 CLC에서 가져 갔지만 그 이후로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어떻게 바론이라도 먹으면 바론 버프의 힘을 빌어 한타를 해볼 만도 하지만.
만약 바론을 치게 된다면 굳이 수성이 아니더라도 TSL이 유리한 한타가 돼버린다.
그도 그럴 게 한타 조합.
그리고 파이어뱃의 불바다 미사일은 적의 바론 트라이를 막는데 최적화된 스킬이다.
섣불리 판단했다간 공든 탑이 와르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노련한 CLC에서 감안하지 않았을 리 없다.
"어떤 한타가 CLC측에 이상적인 한타가 될지.. 아, 결단 내렸습니다. CLC가 지금껏 고수하던 131운영을 포기했네요?"
"일반적인 스플릿 양상으로 바뀌었습니다. Error선수의 자드가 봇을 압박하고 나머지 네 명의 CLC 팀원들이 미드라인에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131은 접었지만 그렇다고 자신들의 운영 특색까지 포기한 건 아니다.
한타 구도에 들어가면 TSL 쪽에 조금은 무게가 실린다.
하지만 언제까지 회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CLC는 한 사람에게 맡겼다.
바로 Unknown Error의 손에 결승전의 운명이 놀아난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Unknown Error의 자드를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
있다면 TSL은 목표하던 대로 시간을 더 벌 수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스플릿 운영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이번 세트에서 다소 밀리게 된 감은 있지만 TSL은 뿌리 깊은 북미의 명문.
쉽사리 무너질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다.
TSL은 불리한 상황임에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최대한을 해냈다.
바로 미역슨 선수의 자드에게 미니언을 몰아주며 성장을 집중시켰다.
수성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대량의 미니언들이 몰려서 오게 된다.
그렇게 몰려오는 빅 웨이브를 차례 차례.
한 사람이 받아 먹게 되면 기존의 배에 가까운 성장 가속도를 붙일 수 있다.
물론 그만큼 다른 팀원들이 손해를 보는 셈이지만 괜찮다.
나머지 TSL의 선수들이 픽한 챔피언들은 한타 지향형.
필수 아이템만 갖춰지면 충분히 1인분을 해낸다.
미역슨에게 골드와 경험치를 몰아서 Unknown Error를 상대할 수 있게끔 한 TSL의 선택은 더없이 옳다.
"그래도 아이템 차이가 조금 나죠? 하지만 레벨 격차는 다 따라잡았습니다. 그리고 포탑을 끼고 있다는 게 중요해요."
"예, 막말로 미역슨 선수는 솔킬 욕심을 낼 이유가 없으니가요. 이대로 포탑을 끼고 수성만 해도 시간 끌어서 후반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진부하고 지루하긴 해도 이번 세트의 승기를 되찾아올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그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시간을 질질 끈다면 흔히 말하는 풀템 구도를 그릴 수 있다.
아니, 풀템까지 가지 않아도 4코어 정도만 갖춘다면 아이템 차이는 중요해지지 않는다.
그때부터 이목이 모아지는 건 양 팀이 스킬을 어떻게 활용하냐.
그리고 한타의 조합이 얼마나 맛깔나냐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TSL은 자신감이 충만하다.
다소의 아이템 격차는 충분 메꿀 수 있는 극한타 조합.
그에 비해 CLC는 다소 따로 논다고 볼 수 있는 개인기 위주의 조합이다.
하지만 과연 Unknown Error가 그 꼴을 두 눈 뜨고 기다려줄만큼 성격 느긋한 위인일까.
Unknown Error가 언제나처럼 팬들의 기대에 화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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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미니카를 받았던 기억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네요 ㅠ.ㅠ
RC카 받고 싶었던 초등학생 시절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