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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의 토끼
글로벌 골드의 격차는 벌어질 대로 벌어졌다.
억제탑 하나만 깰 수 있다면 도미노처럼 와르르르-!
무너질 게 뻔한데도 적팀은 그 하나를 내주지 않는다.
'여기서 일반적인 선택은 오브젝트만 챙기며 틈을 보는 거겠지만.'
수성을 하는 적을 상대로 글로벌 골드의 격차를 더욱 벌려 나간다.
정말 교과서같은 답안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상대 TSL에서도 원하는 바다.
조금 더 시간을 질질 끈다면 아이템도 아이템이지만 레벨 차이.
우리 CLC가 앞서 나갔다는 이점이 서서히 사그라든다
'그 전에 승부수를 띄운다.'
단순하게 포탑을 압박하거나 바론을 챙기는 방법도 있다.
그 어느 것도 결국은 한타로 이어져서 문제지.
그럴 바에는 직접 나선다.
저 철옹성같은 TSL의 방벽을 뚫기 위해 단독으로 침투한다.
'아이템 차이는 반코어 가량인가.'
미드에서 네 명의 아군이 농성하고 있고.
나와 미역슨의 자드는 봇라인에서 억제 포탑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다.
마치 테이커의 자드가 듀의 자드를 솔킬냈을 때와 비슷한 구도지만.
'상당히 성가셔.'
그때보다 여건이 좋지 않다.
골드 차이와 구도만 따진다면 당시와 비슷하지만 레벨이 동등하다.
결정적으로 미역슨은 나를 마크하기 위해서 금은 장식 머리띠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자드 대 자드의 구도에서 금은 장식 머리띠의 유무는 당연코 중요하다.
상대의 궁극기를 무효화 시키냐, 시키지 못하냐의 차이는 명명백백하니까.
과거 테이커가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듀의 자드를 역관광을 칠 수 있었던 기반이기도 하다.
더욱이 지금까지 진행된 게임에서 내내 휘둘렸음에도 미역슨은 침착하게 맡은 바 플레이를 해내고 있다.
다소 흔들리는 모습은 보여줬지만 멘탈이 망가지지는 않았다.
될성부른 사람은 떡잎부터 다르다는 속담.
정말 옛날 속담임에도 틀린 말이 하나 없다.
'반코어 정도의 차이로는 확실히 포탑을 뚫기가 애매하겠지.'
나는 유령의 영혼검이 완성된데 반해 상대는 그렇지 못하다.
하지만 영락한 기사검과 최후의 숨결만 있어도 자드의 딜링 능력은 아쉽지 않다.
포탑의 유무까지 생각한다면 유리하긴 커녕 불리할 정도.
이 정도의 난관은 있어야 결승전 마지막 문턱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는 법이다.
화락!
챠락!
한 가지 유리한 점이 있다면 나는 라인을 쭉쭉 푸쉬만 해도 되는데 반해 자드는 눈치를 봐야 한다.
내가 아니라 팀원들의 눈치.
미드에서 만약 한타가 이루어진다면 재빨리 합류를 하기 위해 걸음걸이가 위아래로 흔들린다.
나보다 안 쪽 동선을 밟기에 여차하면 그런 판단을 내릴 작정이다.
그를 막기 위해서 나는 더욱 더 거세게 압박해야 하지만.
'반 템포 쉰다.'
평소보다 조금 느리게 그림자 분신없이 라인을 민다.
상대 입장에서는 그저 생존기를 아낀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차이다.
그러자 미역슨의 자드는 약간 숨통이 트인다.
미드 라인을 향해 한 차례 고개가 돌아간다.
터억!
거미여왕이 나무카이에게 실뭉치를 맞히고 콤보를 우겨 넣는다.
한타를 건다기 보단 적당한 선에서의 위협.
혹시 모르는 위기감에 미역슨은 잠시 걸음을 지체하게 된다.
서걱!
서걱!
그렇게 내비친 잠깐의 틈 동안 나는 과감하게 포탑으로 다가갔다.
체력이 절반 이상 남았던 포탑이 내 손질에 조금씩 잘려나간다.
내 성장치를 감안하면 조금만 더 치면 부숴진다.
하지만 그 전에 도착한다.
미역슨의 자드에게 나에게 칼끝을 향한다.
화락!
슈욱..!
그림자 분신을 사용해 나에게 접근한 미역슨의 자드가 회전 베기.
연이어 영락검의 액티브를 사용해 나를 둔화시킨다.
묶어두고 패겠다는 의도.
평타를 쑤셔박으며 내 체력을 깎아낸다.
서로가 금은 장식 머리띠가 있다면 굳이 궁극기 데미지에 연연할 이유가 없다.
그것을 알기에 선빵 필승이다.
지금으로부터 10분을 훌쩍 넘긴 시점에 봇라인에서 행했던 1:2.
나무카이와 함께 나를 잡으려던 자드는 깨달은 바가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을 행한 자가 나라는 사실을, 나를 뛰어넘으려면 멀었다는 사실까지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듯하다.
화락!
슈욱..!
똑같이 회전 베기와 영락검의 액티브를 사용해 미역슨의 자드를 둔화시킨다.
어찌 보면 주고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면 실사정은 그렇지 않다.
포탑을 때리고 있던 상황에서 자드를 타격하자 미니언들은 더 이상 내 방패가 되어주지 못한다.
포탑의 고개가 내 쪽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미역슨의 자드 또한 표창을 날려 나와의 차이를 더욱 벌리려 한다.
구오오..!
궁극기를 사용해 표창을 회피한다.
자드의 궁극기는 사정 좋게도 궁극기를 사용한 순간에는 데미지가 없다.
그리고 맵에서 사라지는 효과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
다시금 포탑의 고개가 미니언 쪽을 향한다.
나는 미역슨과 거리를 벌리며 마침내 포탑에게 마지막 한 방을 쑤셔 넣었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마치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한 모양새가 됐지만 술래였던 건 엄연히 내 쪽이다.
그 탓에 체력은 상당히 깎였고 저울은 기울어졌다.
그나마 아군이 미드에서 공세를 퍼붓고 있어 적팀이 지원을 올 수 없다는 사실이 유일한 희망.
바둑으로 따지면 네 점은 깔고 둔 상황에서 전세를 뒤집어야 한다.
한 번의 실수는 가차없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구오오..!
미역슨이 궁극기를 사용해서 나에게 붙어온다.
그러면서 쿨타임이 돌아온 회전베기를 그어버린다.
화락!
내 머릿속에서 골백번은 재생되었던 구도.
생각보다 먼저 몸이 움직이며 궁극기 그림자와 위치를 바꾼다.
그러면서 그림자 분신을 깔아 표창을 던진다.
챠라라락!
세 개의 표창이 중앙으로 교차하며 본래 가진 데미지의 2배만큼 상대 자드의 체력을 깎아낸다.
그럼에도 아직 불리하다.
시시각각 돌아가고 있는 머릿속 계산에 따르면 상대의 다음 표창 쿨타임은 3초.
이를 피해내지 못한다면, 그리고 한 번 더 차이를 벌리지 못한다면 승리로 이을 수 없다.
나에게만 있는 하나의 무기를 사용해서 반드시 가능케 만든다.
티링-!
영혼검의 액티브가 발동하며 내 이동속도와 공격속도를 상승시킨다.
지금부터 해야 하는 건 0.01초의 싸움이다.
나에게 있어 피지컬은 자신 있는 분야가 아니지만 예측과 판단력의 응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내 특기이자 나밖에 할 수 없는 분야.
지금부터 하려는 것은 그런 부류의 이야기다.
서걱!
서걱!
나와 상대 자드의 손속이 교차한다.
그렇게 정확히 두 번.
살점이 잘리는 듯한 절삭음이 귀에서 두 번 울리자 나는 그림자 분신을 재사용해 위치를 바꿨다.
서로 레벨도, 아이템도 비슷하지만 영혼검의 액티브를 사용하자 공격속도에서 차이가 난다.
상대보다 한 번 더 가격할 수 있었다.
챠라락!
서로의 궁극기는 진작에 금은 장식 머리띠로 해제해버린 상황.
그렇다면 남은 건 누가 더 평타를, 스킬을 정교하게 박아넣냐로 판가름난다.
미역슨의 자드가 내가 그림자 분신을 사용한 위치에 정밀하게 표창을 날려온다.
궁극기 그림자도, 그림자 분신도 이미 사용해버렸다.
나에게 남은 한 가지.
점멸을 사용해 피함과 동시에 인파이트.
승부수를 띄울 작정이다.
서걱!
서걱!
동일한 챔피언이 비슷한 아이템을 들고 순수하게 평타만을 주고 받는다.
마치 갤럭시 크래프트에서 외계 종족끼리 동족상잔의 비극을 벌이는 것만 같다.
두 명의 미친 전사가 서로를 끝장내기 위해 부단히 칼끝을 움직인다.
이러한 상황.
열혈 스포츠물의 한 장면 같아서 보기 좋지만 나는 그렇게 우직하지 못하다.
승리하기 위해서 라면 비겁하게 모래라도 흩뿌릴 수 있는 남자다.
'아니, 솔직히 비겁한 건 아니잖아.'
팬들로서는 지금 이 순간 마지막까지 서있게 될 사람이 누구인지.
설마 더블 K.O가 나는 건 아닌지 손에 땀을 쥐고 보고 있을 터다.
그리고 아마 이대로 시간이 지난다면 그렇게 될 거다.
조금 찬물을 부어버리는 듯한 꼴이 됐지만 나로서는 내 모든 것을 활용할 뿐이다.
화락!
회전 베기를 사용하며 고개를 돌리자 미역슨의 자드가 흠칫 놀라 따라온다.
점멸을 사용해 똑같이 회전 베기를 먹이며 나의 발목을 붙잡는다.
지금의 구도에서 먼저 발을 빼다니.
패배자의 말로와도 같은 추접함이 느껴지지만 의도 대로다.
방금 전 교전에서 나와 미역슨의 자드는 표창을 던져 서로를 노렸다.
차이점이 있다면 미역슨은 한 번도 나를 맞히지 못했다는 사실과 나는 한 번밖에 표창을 던지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내 모든 표창이 미역슨에게 적중할 것만 같다는 현실이다.
점멸을 사용해 따라온 미역슨을 하나의 표창이 갈라버린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CLC Error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거의 오차도 없이 같은 타이밍에 걸었던 발화.
그 마지막 틱이 터지기 전에 미역슨의 자드는 운명을 다했다.
나 또한 발화의 데미지에 턱 끝까지 죽음이 차올랐지만 결국 살아남았다.
아슬아슬 했다고 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잘도 부지하고 있던 하나의 벽이 무너지자 그 여파는 도미노와도 같다.
하나하나 차례대로 쓰러지며 이윽고 마지막 버팀목이 쓰러지는 순간.
결승전 마지막 세트에는 종지부가 찍힌다.
.
.
.
* * *
일곱 번째 세트가 시작하기 전에는 왈가왈부, 정말 많은 말이 오갔다.
LCF에서 내내 자드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준 미역슨인가.
아니면 NA롤챔스 윈터시즌에서 이미 성과를 증명해낸 Unknown Error인가.
양 측이 서로를 반박할 근거가 충분치 있는만큼 말로는 결론을 낼 수 없었다.
결국 봐야 한다.
미역슨과 Unknown Error와 자드를 골라 미러전을 서게 된 마지막 세트의 승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게임의 내용은 과연 어떠한지.
만약 두 가지가 비틀어진 대답을 내놓았다면 어쩌면 끝끝내 해답은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LCF가 2% 찜찜하게 끝났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게임은 어떠한가.
게임의 승패도, 내용도 한 방향으로 올곧다.
그 누구도 반박이 불가능하다.
Unknown Error의 자드가 미역슨을 완벽하게 압도해냈다.
─와, 라인전에서 솔킬도 그렇고 게임내내 그냥 발라버리네.
어떻게 동일 챔프 미러전에서 이 정도의 차이가 날 수 있지.
그것도 자드의 양대산맥이라 불리우는 미역슨을 상대로.
진짜 에러갓은 갓이다 G-O-D!
└자드 그렇게나 아껴 두고 있더니 역시 비장의 카드로 제대로 활용하네.
└이제 누구도 에러갓의 자드가 최고라는 사실에 이견을 달 수 없다.
└내가 보기에는 둘 다 그냥 겁나 잘하는데 역시 하늘도 대류권과 성층권으로 갈라져 있구나.
처음으로 차이가 벌어진 건 라인전에서의 솔킬이다.
야금야금 딜교환에서 이득을 벌어나가다가 확!
Unknown Error는 미역슨의 자드를 솔킬내 버렸다.
그래도 첫 번째 솔킬은 그럭저럭 사정을 봐줄 만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실수를 할 수도 있는 법이고 그 이후로는 솔킬각을 내주는 실수를 하지 않았으니까.
CS 차이는 어쩔 수 없이 벌어졌다만 난전을 통해 한두 번 킬을 먹기 시작한다면 다시금 좁힐 수 있다.
그런데 그 난전에서 CLC가 또다시 승전보를 울렸다.
봇라인에서의 4:4교전.
CLC쪽의 합류가 빨랐지만 포탑을 끼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렇게까지 유리한 것만도 아니었다.
그럴 텐데도 거침없이 몰아붙여 완승을 거뒀다.
팀원들간의 호흡이 워낙 척척 맞물리자 포탑은 방어 기능을 상실했다.
그렇게 여겨졌을 정도다.
─다이브가 그렇게 쉬운 건지 처음 알았음.
다이브 상황에서 역관광 당하는 일이 대회에서도 심심찮게 일어나는데 무서워하지를 않아.
그냥 막 달려드는 것 같은데 그 움직임 하나하나가 계산 하에 떨어졌다, 그런 이야기겠지?
두 명도 아니고 네 명이서 포탑 교대로 맞아가면서 진짜 쩔었다.
└REAL. 한 명만 실수하면 줄줄이 소세지로 전부 골로 갈수 있었는데 LOLOLOL
└CLC가 아군에 대한 신뢰도가 장난이 아니야. 간도 쓸개도 다 빼줄 기세임.
└그럴 만하지. 사랑하면 원래 콩깍지 씌여서 아무것도 안 보인다잖아. 나와는 인연 없는 이야기지만..
Unknown Error의 자드와 MyumMyum선수의 거미여왕이 깔끔하게 적의 공격을 흡수해냈다.
자칫 무리수로 이어질 수 있었던 다이브는 훌륭하게 마무리됐고, 그것을 시작으로 게임은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진 스플릿 구도.
미역슨의 자드와 오드아이의 나무카이가 역으로 당했던 것은 치명타에 가까웠다.
─2대1에서 역으로 관광을 쳐버리네..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잘할 수 있지?
진실로 로드 오브 로드의 신이 돼버린 거냐..?
└신이 Unknown Error에게 로드 오브 로드를 하게 했다. 하지만 자신이 곧 신이 되어버린 선수 에러갓!
└나 무신론자인데 오늘 부로 에러갓 믿는다. 에러갓을 믿으면 솔로랭크 점수가 팍팍! 오를 것 같아.
└LOLOLOL 신드립은 오바긴 한데 진짜 잘하긴 했음. 솔직히 화려하기로는 마지막 1대1이 더 쩔었지.
불리한 전황 속에서도 TSL은 어떻게든 버텨냈다.
수성을 해내고 한타 조합의 특색을 살려 후반을 바라봤다.
아군들이 희생해 미역슨의 자드를 키우는 광경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역부족이었다.
노력을 해서 같은 눈높이까지 따라왔다고 한들.
로드 오브 로드의 신, 에러갓의 앞에서 미역슨은 평등한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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