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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마리의 토끼
봇라인 억제 포탑 앞에서의 1대1.
분명 TSL측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었건만 결과는 갸우뚱하다.
일방적으로 맞고 시작한 Unknown Error의 자드가 미역슨의 자드를 역으로 따버렸다.
"분명히 체력이 1/3이상 깎이고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최후의 승자는 Error선수. 정말 보고서도 믿기지 않는 신기에 가까운 컨트롤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입롤이죠. 상대의 스킬을 모두 피하고 자신의 스킬은 모두 맞힌다. 그런데 Error선수는 한술 더 뜨기까지 했습니다."
Unknown Error가 미역슨 선수에게 맞으면서까지 포탑을 때려댔던 때.
포탑의 체력은 적지 않게 남아있었고 회전 베기와 영락검의 둔화가 중첩되자 평타만으로도 죽을 수 있는 위기였다.
그토록 위험한 상황에서 Unknown Error는 재치를 발휘해 위기를 기회로 탈바꿈했다.
똑같이 회전 베기와 영락검을 사용해 둔화를 상쇄시키며, 미역슨 선수의 표창과 포탑의 공격을 무적 판정이 있는 궁극기를 사용해 피해냈다.
그 후의 대처도 상당히 깔끔하여 결국 포탑을 파괴시키기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여기서부터가 문제.
일반인의 사고라면, 아니 백이면 백 도망을 선택하는 게 당연하다.
금은 장식 머리띠와 유령의 영혼검이 있기 때문에 전력으로 뛴다면 높은 확률로 살 수 있다.
그럴 텐데도 Unknown Error는 사고 구조가 이상하다.
이겼기에 망정이지 종이 한 장 차이로 결승전에 초를 칠 뻔했다.
"그러니까 에러갓인 겁니다.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킬각이, 승산이 보였던 거죠. 앞서 2대1의 상황에서 미역슨 선수의 자드를 따냈을 때처럼 모든 것이 설계. Error선수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났던 겁니다."
"혹시는 이제 확신이 되었죠. 그는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미역슨 선수가 어떻게 행동할지, 그의 머릿속에서는 맞붙기도 전에 이미 승리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수읽기에서 한 수가 아니라 열 수, 어쩌면 그 이상.
애초부터 Unknown Error는 이길 것을 전제로 싸웠다.
물론 그렇게 단언을 내리기에 로드 오브 로드라는 게임은 복잡하다.
로드 오브 로드에서는 각 말이 더욱 입체적으로 움직이는 데다 턴제 게임이 아니다.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도 정도가 있다.
그러나 Unknown Error는 당연하다는 듯이 모든 것을 설계하고 움직였다.
알고 있지 않았다면 하지 못했을 아이템 선택, 그리고 상대의 움직임까지 그의 손아귀에서 놀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미역슨 선수가 조급한 나머지 실수를 저질렀다.
그 점도 분명 없지는 않겠지만 한 마디로 Unknown Error가 너무 잘해버렸다.
본래부터 가진 바 실력이 입증된 선수였지만 이번 일곱 번째 세트에서의 그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어디 하나 흠잡을 구석이 없었다.
Unknown Error의 슈퍼플레이는 간신히 유지되고 있던 저울에 무게추를, 아니 손으로 찍어눌렀다.
TSL에서는 이제 가능한 최상의 입롤로 한타를 한다고 해도 양패구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게임은 기울었다.
"바론은 이미 먹혔고, 억제탑 재생성 되려면 최소 3분은 지나야 합니다. 그전에 반드시 스노우볼 굴러 갈 거에요."
"봇라인 미니언 웨이브 쌓였거든요? 저거 안 막으면 쌍둥이 포탑 공짜로 밀립니다. 한 명이 막으러 가면 탑라인 억제탑이 나가요. 어떻게 방법이 없습니다."
중립을 표방해야 하는 중계진의 입에서 어느 한 쪽의 승리가 예고되는 경우는 단 한 가지로 밖에 좁혀지지 않는다.
그만큼이나 CLC가 유리하다.
유리하기를 넘어서 질 수가 없다.
그나마 한타만을 두고 보던 TSL에서는 일말의 희망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떳떳한 패배.
자신들이 이곳 결승전 자리에 오르기 부끄럽지 않은 팀이었다는 걸 증명하는 발버둥 뿐이다.
하지만 그 발버둥조차 CLC에서 허락해줘야 가능하다.
허락해주지 않으면 TSL은 현재 발버둥조차 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탑라인 억제탑 나갔고 이제는 미드 억제탑 차례죠. CLC에서 아주 뽕을 뽑을 작정인 것 같습니다."
"3억제탑은 승리라는 불변의 공식, 사실 깨진 적이 없는 건 아닙니다만. 글로벌 골드 차이까지 생각한다면 뒤집을 여지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야 한다고 했거늘.
CLC는 정말로 차근차근 정석적으로 TSL의 숨통을 조인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토달지 않는다.
게임이 루즈하게 흘러갔다면 관중석에서 불만이 새어 나올 수도 있는 일이지만, 알다시피 그렇지가 않았으니까.
코스 요리를 완전 배터지게, 맛있게 먹어 놓고 후식이 늦게 나오는 정도다.
프랑스 요리로 따지면 입가심 할 코냑을 못 마신 수준.
오히려 이렇게 끝맺음이 늘어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지금까지 먹은 요리의 맛이 어땠는지, 느긋하게 소화하며 식사의 여운을 느낀다.
빨리빨리의 한국에서야 찾아보기 힘든 습관이지만 이곳 프랑스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보통이다.
이곳 <제니스-파리>의 관중들 중 어느 하나 불만족스런 표정을 지은 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독안에 든 쥐죠. 게임 시작한지 30분을 훌쩍 넘어서 드디어 첫 번째 한타가 시작됩니다."
"지금 TV를 키신 분들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자면 분명히 교전은 계속해서 일어났어요. 그저 정면 한타가 처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정도로 CLC의 운영은 완성도 있었고 아나콘다처럼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사냥감의 뼈를 으스러뜨렸습니다."
TSL이 그렇게나 학수고대 하던 한타가 드디어 시작됐다.
하늘에서 파이어뱃의 불바다 미사일이 떨어지고.
루나가 달빛 포격으로 광역 스턴을 노리고.
크레이브즈가 탄환을 쏘아 폭약 세례를 끼얹는다.
하지만 유효타라 불리기엔 맥이 빠진다.
미역슨의 자드에게 미니언을 몰아준 TSL의 나머지 팀원들은 상대적으로 성장이 저조하다.
아무리 한타 조합이라는 게 어느 정도 아이템만 갖춰지면 위력을 뽐낸다고 해도 시기가 시기다.
후반까지 흘러간 이상 CLC는 그에 대비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 뽑혔다.
"룬방패에 청동의 톨라리 펜던트! 그리고 미카엘의 그릇까지 있거든요? 배인한테 기스조차 안 납니다."
"안 맞으니까 기스가 안 나는 거겠죠! 누구의 배인입니까? 바로 트리플리프트입니다. 전세계에서 배인 가장 잘하는 선수에요. 맞아줄 턱이 있겠습니까?!"
불사의 AP트린다조아가 앞장서고 거미여왕과 쏘냐가 뒤따른다.
혼자서 다섯 명을 모두 잡을 기세인 트리플리프트의 배인이 눈에 불을 키고 굴러간다.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한 탓에 순간 시선을 빼앗길 뻔했지만 진짜 주인공은 따로 있다.
Unknown Error의 자드가 유령의 영혼검을 키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한 명을 순삭내버렸다.
화락!
챠라락!
서걱!
크레이브즈가 영문도 모른 채 끔살 당한다.
지나치게 성장해버린 Unknown Error의 자드는 피를 마시는 칼까지 나와 순수 AD만 따져도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영락검의 액티브와 발화까지 걸려버렸으니 한 순간에 썰려버린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리고 한 가지, 자칫 넘어갈 수 있는 사실이지만 궁극기는 아직 쓰지도 않았다.
구오오..!
궁극기를 사용하는 대상은 다름아닌 나무카이.
미역슨의 자드에겐 금은 장식 머리띠가 있고 파이어뱃에게는 조냐가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하지만 그래도 탱커인데?
Unknown Error의 자드는 탱커고 나발이고 상관없이 토막내버린다.
처음부터 마지막 한타까지 Unknown Error는 최전선에서 가장 화려하게 활약했다.
"마지막까지 스포트 라이트를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이네요? 참으로 짓궂습니다. 하지만 이것까지 포함해서 Error선수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죠."
"지루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절대 사린다는 개념이 없어요.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이득을 만듭니다. 캐리를 해낼, 승리로 이어갈 발판을 만들어 나갑니다. 결승전, 아니 3시즌 LCF의 주인공! Unknown Error, 에러갓, Error선수. 그라는 사실에 저는 크게 한 표 던지겠습니다!!"
역대급으로 흥해버린 올해의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파이널.
롤드컵 이후로 자칫 폐퇴할 뻔했던 북미와 유럽의 분위기가 살아났음은 물론 그 이상으로 뻗쳐나간다.
이번 LCF를 계기로 로드 오브 로드의 이용자 수는 훨씬 더 늘어나리란 전망이다.
만약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슈퍼스타가 없었다면 이러한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리라.
주인공이 있었기에 조역들 또한 한층 더 빛날 수 있었다.
정말로 이번 LCF의 흥행은 Unknown Error,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레드팀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활약으로 마지막 한타까지 깔끔하게 마무리됐다.
누구 하나 낙오되는 인원 없이 전원 다 살아남은 CLC가 쌍둥이 포탑에 연이어 넥서스까지 허물어뜨린다.
TSL에서는 미역슨의 자드와 대이리스의 파이어뱃이 살아남았지만 손가락만 빨며 지켜봐야 하는 실정이다.
이윽고 확실하게 일곱 번째 세트의 승패가 결정지어졌다.
CLC가 LCF의 우승을 확정짓는다.
"현장의 관중분들이 파도처럼 일어나 기립 박수를 치고 있습니다. 혹시 몰라 말씀드리자면 방송 기획에 포함되지 않은 부분이고, 스태프분들도 관계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저도 지금 당장이라도 일어나고 싶은 기분이라는 것이네요!"
"단언컨대! 제가 해설자가 아닌 관중으로 이 자리에 왔다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일어나서 박수를 쳤을 겁니다. 감동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감동을 만들어낸 선수들! 우승컵을 차지할 주인들이 무대를 향해 올라오겠습니다. 저희들도 이만 마중을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어느 스포츠든 간에 경기가 허무하게 끝나면 티켓 가격이 아깝다는 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오늘의 결승전에 한해서는 그저 아쉬울 뿐이다.
왜 내가 돈을 따따블로 지불해서 암표를 사지 않았을까.
TV화면을 통해 <제니스-파리>의 열기를 전달받는 시청자들의 입에서는 탄식이 절로 새어나왔다.
그리고 이곳 <제니스-파리>에 모인 관중들은 자부심을 가지게 됐다.
향후 세계 최고의 E-스포츠가 될 로드 오브 로드의 역사에 순간에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기립 박수라는 관중들이 표할 수 있는 최대의 경의로 나타난다.
갤럭시 크래프트부터 시작된 E-스포츠의 역사상 처음으로 관중들이 일어나서 선수들을 향해 감사함을 표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감수성이 예민한 파리의 시민들이 함께 하고 있기에.
군중 심리의 특성상 한 명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우르르 따라 하기에.
그러한 영향도 분명 있겠지만, 정말로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면 경기장에 모인 1만의 관중들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소리치는 합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이윽고 CLC의 선수들이 무대 정중앙에 도착하자 서둘러 뛰어온 중계진이 터져 나오려는 숨을 참은 채 마이크를 들어 목청껏 소리친다.
"최고의 경기를 선사해준 선수들! 좌측부터 트리플리프트, 바이바이, 빅풋, 카우스터, 뮴뮴.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역 에러갓까지! 정말로 수고 많았고 이제는 그 결실을 가져가시기만 하면 되겠습니다!"
본래는 조금 더 과정이 있었겠지만 애드립으로 과감히 생략했다.
관중석의 열기가 식기 전에 순서를 앞당겼다.
해설자의 말을 끝으로 안 그래도 떠나갈 듯 했던 관중들이 오직 한 단어만을 큰 소리로 외치게 됐다.
<에러갓>.
이 자리에서 함께 했던 이는 죽는 그 순간까지 잊지 못한 한 마디다.
자신들이 만들어냈음에도 믿기지 않는 반응에 CLC의 선수들은 잠시 어안이 벙벙.
하지만 주역들이 멍때려서 안된다는 생각에 이내 표정을 고치고 행동에 활력을 더한다.
가장 먼저 우승컵을 손에 번쩍 들게 된 사람은 Error선수.
그가 나섰다기 보단 팀원들이 등을 떠밀어줬다.
다음으로 우승컵을 넘겨 받은 사람은 그와의 열애설이 퍼지고 있는 MyumMyum선수였다.
그런데 그녀가 우승컵을 손에 쥐자마자 Error선수가 기이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건..! 참으로 익살맞습니다. 인터뷰 자리에서도 보통내기가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제가 말려야 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지켜 보겠습니다. 이 감동, 움직이지 않는다면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 이미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이 몸으로 증명했으니까요!"
이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받아들여지지 못했을 지 모른다.
그러나 이 지금의 분위기에 있어서는 가장 적절한 세레모니가 됐다.
Unknown Error가 MyumMyum선수를 안아 들고 빙글빙글 돌린다.
자칫 놓치면 어떡하지.
나머지 CLC의 선수들과 중계진들까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MyumMyum선수를 받아들 준비를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준비가 효력을 발휘하게 되는 일은 없었다.
다만 한참을 빙글빙글 안겨 놀아나던 MyumMyum선수가 Unknown Error를 하이킥으로 대차게 까버렸다.
그 바람에 Unknown Error는 MyumMyum선수를 손아귀에서 놓아야 했지만 그것도 잠시.
어떻게 봐도 상당히 아프게 맞았는데 좀비처럼 벌떡 일어나 MyumMyum선수를 거세게 안았다.
도망가기라도 할까,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제니스-파리>의 무대 한복판에서 이루어진 두 사람의 찐한 포옹.
정말로 익살스럽고 얄궂게도 다른 모든 장면을 재치고 이번 LCF,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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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결승전 편이 끝났습니다.
내일 올라가는 건 2부의 마무리로, 3부의 예고를 겸한 후일담이에요.
3부 시작은 가능하면 폭참, 안돼도 3연참은 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