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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02화 (40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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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길다면 길었고 짧았다면 짧았던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생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가장 이상적인 결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현재 한국으로 떠나는 비행기의 좌석에 앉아 있다.

'이상적이라.. 엄밀히 따지자면 아니겠지.'

이상이라는 건 결국 내 생각 내에서 최고의 결과였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내가 원했던 것보다도 이상의 결과를 얻었다.

프로게이머로서의 성적.

물론 중요하지만 그 외에도 두 가지를 포함해서 말이다.

'마음이 꽉 찬 느낌이야.'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마음 속 한 구석이 텅 빈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딱히 옆구리가 시려서 그런 건 아니고, 한 마디로 이룬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룬 것의 크고 작음은 문제가 아니었다.

나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

그 과정에서 부딪히고 깨지고 기뻐해주고 함께 걸어가는 동료들.

마음을 기댈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 컸다.

씨불얼에서 연습생 생활을 했었을 때.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동기들이 위로 치고 올라가거나, 역으로 낙오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았다.

어차피 곧 얼굴을 볼 일이 없어질 사람들.

그렇게 생각하니 언젠가부터 사람에게 마음을 주는 일이 사라졌다.

그 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내 미래의 모습, 프로게이머로서의 나를 꿈꾸는 일도 차츰 사라졌다.

그나마 이야기를 섞을 상대라고는 그 디스 좋아하는 감독.

개인적인 친분은 조금 있었다지만 나를 선수로서 보는 감독의 눈은 곱지 않았다.

괜히 눈칫밥을 먹었던 게 아니었으니까.

그러니까 선수가 아닌 코치로서, 중국 게임단에 자리 하나 만들어 달라.

그것만이 연습생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자 희망이었다.

내 꿈은 그것으로 접혔다.

'사실.. 감독 탓을 할 것은 아니지.'

감독이라고 자신이 오랫동안 키운 선수가 연습생 생활로 허덕이는 꼴이 좋게만 보였을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능력의 부족 탓이 맞다.

능력이 조금 더 뛰어났다면 없는 자리도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저 못 오를 나무를 언감생심 쳐다본 내 잘못이다.

그것 또한 다시금 삶을 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간절하지 못했다.. 엄밀히 따지자면 조금 달라.'

나는 노력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조금 더 노력해라,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표정으로 가능한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속으로는 들끓었다.

연습생 시절 나는 그 누구보다 노력했다고 자신했다.

연습 시간이 많으면 많았지 적을 리 없었다.

안 그래도 빠듯한 스케줄에서 오전 오후 최소 한 시간 이상은 밥먹을 시간 아껴가며 연습에 쏟았으니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로 노력이 맞았을까.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을 어떻게든 껴입으려 했던 것이 과연 노력이었을까.

나는 노력이란 명분으로 합리화를 하며 하루하루 시간을 죽였을 뿐이었다.

그 사실을 당시에도 모르지 않았다.

'정말로 의미없는 재능이라 생각했으니까.'

모든 챔피언을 다룰 줄 안다.

정작 제대로 할 줄 아는 챔피언은 없다.

프로무대에 잘 맞지 않는 내 성향을 한탄하며 혹시나를 바랬다.

메타가 나에게 웃어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온다면 나도 프로 데뷔의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코치로서는 활약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치가 점점 떨어져 가며 말이다.

올마스터로서의 재능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

제대로 활용하기만 한다면 최강의 칼이 될 수 있었으되 내가 바보천치라서 살리지 못했다.

그 사실은 다시금 게이머의 전철을 밟으며 알 수 있었다.

단순히 꿀챔을 아냐, 마냐의 이야기가 아니다.

NA롤챔스 윈터시즌 때도, 이번 LCF에서도 상대팀이 휘둘리는 모습에서 내심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만약 상대팀에 나와 같은 성향의 분석가가 있다면 얼마나 까다로울지.

전략을 구상한 사람이 나이기에 누구보다 뼈저리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지금의 내 스펙 그대로 미래에 간다고 해서 만사형통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선수들의 피지컬이 급부상하는만큼 아쉬운 점도 부명 두드러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라는 사실.

LCF의 결승전에서 증명되었다.

'미역슨은 정말 상정 외였어.'

한 번 나와 자웅을 겨루고 그 영향을 제대로 받아 자신의 재능을 녹여 더하기까지 한 미역슨.

지금의 그라면 차후 로드 오브 로드 미래의 스타들에 비해 꿇리지 않을 정도다.

결승전 내내 그가 보여준 능력은 놀라울 따름이었고 만약 단순하게 맞붙었다면 지는 쪽은 내가 됐을지도 모른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러한 위기감을 느꼈다.

그 정도로 미역슨의 성장은 일취월장, 자칫 청출어람이 됐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그래서 미뤄둔 감도 있지.'

자신이 없다기 보단 확신을 더하는 작업이었다.

직접 겨루며 그의 플레이를 알아 갈수록 내 대처 능력도 폭넓어진다.

마지막 일곱 번째 세트에서 마치 모든 것을 안다는 듯이 손바닥 위에서 미역슨을 가지고 놀았던 것.

그 전까지의 경험이 밑바탕되지 않았다면 그러한 결과를 낳지 못했을 터다.

모든 챔피언을 비슷한 수준으로 다룰 줄 안다.

이것은 단순히 게임을 잘하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그랜드 마스터인 유저가 못하는 챔피언으로 다이아에서 노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모든 챔피언을 '비슷' 하게 할 줄 안다는 것과는 애초부터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면 안되는 일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조금 뒤늦게 알아버렸다.

'이제부터라도 뭐.. 괜찮잖아?

내가 두 번째로 얻은 것은 다름아닌 자신감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 가지.

그녀는 내 옆 좌석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다.

꽤나 피곤한 상태인지 비행기가 채 출발하기도 전에 꿈나라로 떠났다.

'확실히.. 나에게 부족한 부분이 없진 않지.'

결승전이 끝나고 래딧을 눈팅하니 별의별 글들이 다 올라와 있었다.

개중에는 부담스런 찬양에 가까운 글들도 있었지만 한 가지는 공통점은 존재했다.

현 시점에서 가장 완벽한 프로게이머.

황송스럽게도 팬들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 자신이 평가하기에 나는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부족하다.

내 실력이 부족했을 때엔 오히려 몰랐을 사실이다.

실력이 늘어남으로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되었다.

'이 녀석이 있는 한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나는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침을 질질 흘리며 자는 예은의 입가를 쓰윽 닦아주며 생각했다.

로드 오브 로드는 결코 혼자서 하는 게임이 아니다.

누구나 단점은 있고 이는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팀원이 있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약점, 등을 맡길 수 있는 소중한 인연들이 내 뒤에 선다.

그들이 내 부족한 부분을 메꿔주기에 나는 완벽을 연기할 수 있다.

언제까지고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 녀석과 같은 연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면.

'정말 잘도 자네.'

조심성이라곤 하나 없이 쿨쿨 곯아 떨어져 있는 예은.

로스앤젤레스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어쩌면 이 녀석일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트러블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지나고 보니 추억이 됐다.

이 녀석과 만날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고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랬던 생활도 이제는 끝인가.'

한국에 돌아가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제는 또 다른 인연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 녀석에는 이 녀석 나름대로의 미래가 있을 테고 내가 그 길을 방해해서야 안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자신감이 충만하다.

예은과도 같은 인연.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다른 괜찮은 인연을 분명 사귈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정말로 예전이었으면 가지지 못했을 자신감이다.

'음.. 그래도 역시 밝힐 걸 그랬나.'

우승을 확정 짓고 무대 위에 올라오니 관중들의 반응이 상상하지도 못했을 정도로 뜨거웠다.

인터뷰를 진행해보니 그들 나름대로 너무나도 국뽕에 차올라 있어 살짝 부담스러웠다.

결국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힐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어차피 휴식 기간을 가질 예정이기도 하고.. 당장의 관심은 적은 편이 낫겠지.'

금의환향하는 셈이지만 이것이 꼭 좋은 것 만은 아니다.

자랑스런 대한민국이 가진 특유의 문화!

자국 사람이 해외에서 한 건 하면 유난히 호들갑이다.

모르긴 몰라도 가만 놔두지를 않을 거다.

NA롤챔스에 연이어 LCF우승까지 이뤄냈으니 오죽할까.

차라리 휴식 기간 동안 몸이나 살피며 조용히 쉬어 주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다.

몸도 조금 안 좋은 상태고 말이다.

'크크, 너무 오바했던 감이 있었지.'

남자의 생명은 허리라는 말이 있는데 그만 그 허리를 삐끗했다.

우승컵을 손아귀에 쥐자 감정이 너무 고양됐고 결국 저질러버렸다.

예은을 두 팔로 안아 빙글빙글 돌렸다.

졸지에 회전 목마가 되어버린 예은이 꺅꺅 거리면서 날뛰는데 이게 또 재미가 찰지더라.

평소였다면 적당히 장난치다 그만뒀을 테지만 다른 마음까지 섞여 들어서 힘조절이 안됐다.

그러다 결국 허리를 살짝 삐끗.

일단 병원은 가봤지만 잠시 집에서 찜질이라도 하며 쉬고 있으랜다.

'마침 타이밍도 괜찮고. 한국 돌아가면 방송이나 다시 해볼까.'

나를 기다려주는 팬들은 한국에도 있다.

Unknown Error가 아닌 올마스터의 팬들.

그들 오랫동안 방치한 건 사실이다.

회장님 건도 그렇고 여러모로 책임감을 느낀다.

그러니만큼 쉬는 겸해서 방송을 하는 것도 괜찮겠지.

'여유가 있을 때 즐겨 놓자.'

목표했던 모든 것들.

그 이상을 로스앤젤레스에서 얻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제 2의 고향같은 도시가 됐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야 할 때다.

이미 비행기는 출발했고 조금 전 고도를 높여 성층권까지 도달했다.

지금부터 열두 시간, 반나절 후면 한국에 도착한다.

나는 예은이 조금은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도록 안전 벨트를 풀어주며,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를 그녀의 얼굴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

.

.

* * *

준결승전에서의 패배.

그 자체는 충격적이지 않다.

누구나 처음은 있는 법이고 첫술에 배부를 거라 생각하는 것은 오만이니까.

하지만 그 패배의 과정이 너무나 농밀했다.

마치 자신의 한계를 가르쳐 주겠다는 듯.

상대는 자신을 잔인하리만큼 찍어 눌렀다.

어떻게 보면 원한, 혹은 경멸까지 섞여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당신이 저를 처음 만났을 때의 행동처럼 말이지요."

이제는 유창해진 영어로 도차는 눈 앞의 남자에게 또박또박 말을 건넸다.

자신의 말을 전해 들은 남자는 무슨 뜻인지 도저히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나 지금까지 주고 받은 이야기만 생각해도 좋은 쪽의 부류는 아니다.

당황한 남자는 말을 더듬으면서도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듯 필사적이었다.

그 변명의 내용은 자신이 예상했던 것에서 별반 벗어나지 않았지만.

"잠깐.. 아직 영어가 조금 익숙하지 않나 본데. 트러블이 있었던 거라면 통역을 부르도록 함세."

팀AOA의 감독 메리후드는 어떻게든 오해를 풀려고 했다.

아무리 준결승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고는 해도 놓칠만한 인재가 아니다.

여기서 그를 놓아주기에는 AOA의 사정이 그렇게 좋지를 못하다.

이곳 생활에 다소 불편이 있는 거라면, 그리고 약간의 연봉 재협상정도는 고려해줄 여지가 충분했다.

그만큼이나 현재 도차의 기량은 어지간한 게임단이라면 탐낼 수준이었다.

"아니요. 제가 그렇게 멍청하진 않습니다. 이곳에 남아 시간을 허비할 정도는 더더욱 아니지요."

"아니, 자 잠깐!"

그렇게 한 마디를 내뱉고 도차는 바로 감독실의 문을 닫고 나왔다.

뒷 이야기는 들어줄 이유도, 최소한의 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이 하려는 것은 일방적인 통보이지, 협의가 아니었으니까.

'쓸모 없는 연은 여기서 확실히 끊어두는 게 좋다. 이제는 필요도 없고.'

LCF가 끝나고, 아니 진행 중에 이미 도차는 이곳저곳에서 괜찮은 제의를 받았다.

그 중에는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한국 게임단도 포함돼 있었지만 당연히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멀어질 작정이다.

도차는 어쩌면 자신의 인생에 큰 갈림길이 될 수 있는 선택을 내렸다.

중국 게임단으로의 이적.

그것도 국적까지 변경해서 말이다.

'성을 갈겠다고 했었나..'

준결승전 진행 중 다졌던 각오.

비단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 만은 아니다.

전세계 여느 국가에서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만큼 중화사상에 쪄들어 있는 나라.

중국은 자국민과 외국인에 대한 구분이 철저하다.

그래서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중국의 프로게임단 로얄 CN은 자신에게 제의해왔다.

국적 변경까지 고려해준다면 어지간한 요구는 전부 수용해줄 생각이 있다고.

혹시 몰라 찔러봤지만 요구의 상향선은 대단했다.

어차피 한국에 남은 미련따위 없다.

도차는 로얄 CN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더 이상 대리를 행했던 과거로 꼬투리를 잡힐 위험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도차는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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