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03화 (403/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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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

프랑스의 파리에서 성황리에 폐막식이 내려진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파이널.

북미와 유럽에서는 그렇게나 화제일 수 없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몇몇의 매니아를 빼면 관심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국가가 참가하는 국제 대회인 롤드컵과 달리 LCF는 조금 지역 특색이 강한 편이니까.

당연하게도 오프게임넷 등 정규 방송에서 해설을 하지도 않는다.

본다면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영어 해설.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은 필연이었다.

그럴 텐데도 잉벤은 뒤늦게 LCF로 아우성인 상태다.

─아, AP트린다조아로 꿀빨아서 브론즈에서 골드까지 갔는데 갑자기 퍼지더니 밴됨;

이 기세면 플레까지 갈 수 있었는데 아..

어디서 퍼졌나 했더니.. LCF?

서양권 대회인데 거기서 프로 선수가 썼다더라..

└인터넷 개통 축하드립니다!

└요즘 잉벤에서 LCF 모르면 간첩인데 화제글도 안 보고 삼?

글쓴이-제가 커뮤니티를 잘 안 해서ㅎㅎ;

└니가 AP트린다조아를 먼저 썼다고? 구라치고 있네ㅋㅋ

└브론즈가 플레 간다는 것 부터가 말이 안됨 ㅅㄱ

한국보다 북미와 유럽 리그의 수준이 높다는 건 일반적인 통설이다.

굳이 증명따위 안 해도 로드 오브 로드의 역사가 훨씬 이르게 시작됐으니 당연한 노릇.

하지만 최근에는 한국, 중국, 대만 또한 못지 않게 강성하다.

실제로 지난 해의 롤드컵 결승에서 자웅을 겨룬 건 한국과 대만이었다.

그러니만큼 갤럭시 크래프트 때처럼 시간이 갈수록 차차 주도권이 넘어오지 않을까.

아직 이르다는 사실이 LCF를 통해 확증되었다.

가히 압도적인 경기력을 선보이며 북미와 유럽이 아직 로드 오브 로드의 최강자라는 사실을 당당히 입증했다.

경기의 수준이 하도 높자 소문이 퍼지는 건 삽시간.

한국만 해도 잉벤 등을 통해 LCF의 경기가 어느 정도인지 정보가 전달됐고.

관심을 가지는 유저들이 기하급수 늘어나면서 잠시간이나마 롤챔스 이상의 파급력을 보였다.

자그마한 사건들이 딸려오긴 했지만 말이다.

─LCF 진짜 재밌었다.

해외 리그 별로 관심 없었는데 잉벤 화제글 보고 처음 봄.

말도 안 나오게 잘하더라.

북미와 유럽쪽 수준이 높다는 말이 정말 괜히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절실히 느낌.

└이번 LCF가 유달리 수준 높았던 탓도 있어. 원래 그 정도로 잘하진 않아.

글쓴이-그래도 수준 장난 아니던데? 특히 그 CLC에 Error선수? 보고 한 번에 팬됨.

└어, 나도 그 선수 팬이야.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더욱 정감 가더라.

└한국에도 진짜 그런 선수 나와야 하는데ㅋㅋ

└근데 그 선수가 한국 선수 잡음..!ㅋ

CLC에 의해 준결승전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던 팀 AOA.

그 팀AOA에 소속돼 있던 ChadoRE 선수는 본명 정상근으로 알려지며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한국 사람이 해외 리그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hadoRE 선수에게 미심쩍은 소문이 퍼지고 있다.

확증은 없다지만 근거가 제법 귀를 쫑긋하게 만들었다.

─AOA의 ChadoRE가 도차라는 소문 있던데 들어본 사람?

챔프폭이랑 플레이 스타일이 도차랑 완전 판박이라고.

듣고 보니 그런 걸 수도 있는데 ㄹㅇ 리플레이 보니까 비슷하긴 하더라.

그리고 아이디를 돌려보니까..

RE, Docha.

뭔가 켕기지 않냐?

└ ㅁㅊㄷㅁㅊㅇ 이건 특종감 아니냐?

└애들아 빨리 화제글 안 보내고 뭐하냐.

└쟤 도차 맞음. 아무튼 그럼.

└유럽 출신이잖아? 근데 RE는 영어 아니냐?ㅋㅋ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이다.

도차의 본명이나 얼굴을 아는 사람따위 없었으니까.

그저 도차가 사라진 시기도 그렇고 정황이 맞물리다 보니 의심할 여지가 있는 정도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이미 잉벤을 통해 공공연한 사실이 됐다.

─이러면 설마 Error선수도 한국인인 거 아니냐?

개인적으로 Error선수 광팬인데 한국사람이었으면 ㅎㅎ

올마스터도 비슷한 시기에 게임 접었는데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내가 올마스터 팬인데 LCL 결승전 왔었을 때 실물 봄. 전혀 다른 사람임. 올마스터는 멸치 갓 면한 정도의 체격ㅇㅇ

└동양인이면 일단 한국인이냐? 국뽕 치사량 소름 돋네. 생각을 해봐라 한국 사람 중에 그렇게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국 프로판이 이 모양 이 꼴이겠냐.

└ㅋㅋ 그 옆에 MyumMyum선수도 한국인이라고 해보지? 내가 아는데 한국 여자 선수 중에 그 정도로 잘하는 사람 없음 ㅅㄱ링.

글쓴이-ㅈㅅㅈㅅ 제가 너무 분위기 탄 듯;

ChadoRE선수가 도차라면 Unknown Error는 올마스터가 아닐까.

그러한 추측도 한 차례 있었지만 너무 얼토당토하지 않아 금새 묻혔다.

버스터콜이 떨어진 잉벤수사대로서는 ChadoRE선수가 도차라는 증거라는 잡기에도 여념이 없었다.

─일단 챔피언 폭이랑 아이템 순서는 일치하거든?

이거 가지고 증거 되려나..

누가 APM 측정할 수 있는 사람 없어?

└ㄷㄷ갓벤 수사대.. 역시 남 잘되는 꼴은 못 보죠!

└응, 아니야. 정의구현 하려는 거야.

└도차면 솔직히 제재 때리는 게 맞지.

여러 추측들이 불거지며 신빙성, 그리고 광기를 더한다.

사실 이쯤 되면 진실의 유무따윈 중요하지 않다.

엄청나게 실례인 행위지만 군중 심리의 특성상 그럴 듯하면 일단은 건드려보기 마련이다.

그렇게 불난 집이라고 할 수 있는 잉벤에 기름이 부어진다.

ChadoRE선수가 중국 게임단으로 이적한다는 이야기,

그것도 중국에 뿌리를 내린다는 괴이한 뉴스가 무려 실화였다.

이로써 심증은 거의 확신에 가까워졌다.

─한국 국적 포기 실화냐..?

이거 심증이고 뭐고 빼박 아님?

갓-벤 보다가 찔려가지고 중국으로 토꼈네.

로얄CN인지 뭔지 듣보 게임단에 들어갔다더라.

└스포츠계에서는 사실 흔하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인데 E-스포츠에서는 으음..

└딱히 월드컵 나가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로얄CN 거기 자국 선수만 받는데 아니냐? 설마 국적 바꿔서 들어간 거냐? 헐..

AOA에서 ChadoRE선수를 방출했다는 공식 입장을 표명하자마자 들려온 속보.

로얄CN에서 ChadoRE선수를 전격 영입, 자국 국적으로 회유까지 시켰다며 의기양양 기사를 내보냈다.

대체 로얄CN이 뭐하는 팀이길래 국적 변경까지 개입을 한 걸까.

ChadoRE선수가 입단했다는 로얄CN은 중국 대기업에서 돈의 힘으로 일으켜 세운 게임단이다.

창단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성장 속도는 놀라울 따름.

그보다 눈여겨볼 부분은 이렇다 할 성적을 거두지 않았음에도 인기가 대단하다는 사실이다.

한국 내에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로얄CN은 한 가지 이유로 인해 중국 내에서 선풍적인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대부분의 프로게임단들이 한 명씩은 외국 선수를 동반한데 반해 로얄CN은 그렇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순혈주의를 표방하고 있다.

한 마디로 중국 선수가 아닌 이상 입단을 거절한다.

여기에 더해 실력 또한 준수한 편이라 자국 국민들에게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한다.

그 성장세는 기존의 강팀들에게 위협이 될 수준이라고.

그런 로얄CN에 입단하기 위해 ChadoRE선수는 국적을 바꿔버렸다.

─그럼 이제 한국인이 아니네?ㅋㅋ

도차라는 전제 하에 이야기 하겠는데 그럼 대리 제재도 못 때리나?

와 진짜 어처구니 없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하지.

└게임에 인생을 올인한 남자.. 도차, 아니 차도리.

└으음.. 딱히 도차 편드는 건 아닌데 그냥 돈보고 입단한 건 아닐까. 애초에 도차라는 확증도 없고.

└이건 누가 봐도 빼박인데 뭘 도차 아니라고 하고 있냐 ㅋㅋ

확실한 증거가 없는 이상 게임사는 움직이기 힘들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팬들이 흥미를 가지지 않는 중국 리그로 옮기기까지 했으니 서서히 관심도 사그라들리라.

이것까지 계산하고 옮긴 것이라면 정말로 얍삽하게 잔머리를 굴린 셈이다.

─도차는 이제 한국 올 일 이제 없겠네?

누구처럼 입국 거부까지는 안 당하겠지만 한국 리그는 절대 발 디딜 수 없을 테니까.

내 눈 앞에 어슬렁 거리는 거 아니면 걍 신경 끌란다.

└이래서 세상은 나쁘게 살아야 하는 건가. 나쁜 놈이 이득 보는 더러운 세상.

└나도 대리하고 싶다. 실버3인데 브론즈 2까지 양학 가능.

└네 다음 실버; 님 양심 ㅇㄷ?

진실은 과연 어느 쪽인지.

게임사가 발 벗고 나서거나 그 본인이 밝히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확실한 건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진 사람이라는 사실.

만약 도차가 맞다면 본인도 낯짝이 있을 테니 한국으로 돌아올 일은 없을 테고.

도차가 아니라 해도 국적까지 바꾼 마당에 한국 귀환을 생각하지는 않을 터다.

그렇게 도차, ChadoRE선수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씩 잊혀져 갔다.

그리고 다가오는 한국 롤챔스 스프링 시즌.

LCF가 흥했다고는 하지만 한국 팬들로서는 아무래도 자국 리그가 더욱 관심이 가는 법이다.

잉벤을 한 차례 달아오르게 만든 불길은 더욱 더 큰 불길에 의해 진압되었다.

─이제 곧 스프링 시즌인가? 기대되네.

씨지맥 같은 선수 두엇 나오면 한국 리그도 이제 외국 리그 못지 않아질걸?

그럴 만한 기량이 보이는 신인들도 여럿 보이고.

작년 LCF 서머에서 올마스터랑 삐까 떴던 파전주도 나이 제한 풀렸다고 하더라.

난 이번 스프링 시즌에 진짜 기대가 많다.

└ㄹㅇ 시즌3 땡치고 활약하던 선수들 이미 프로팀들에서 다 채갔음. 나도 유심히 지켜보는 중.

└그 헬퍼급 피지컬 자랑하는 원딜러? 걔도 프로됨? 피지컬만 좋지 운영은 거의 브론즈 수준이던데.

└카더라 통신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일단 그렇다는 이야기. 1위 찍었던 무기마스터는 확실하게 프로하나봐.

LCF가 지나치게 흥행했을 뿐이다.

한국 또한 지난 해와는 확실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성장 가도를 밟아가고 있다.

윈터 시즌만 해도 기대 이상의 말도 안되는 꿀잼 경기를 선보였다.

그 중심이 되었던 선수는 바로 삼선 블루 우승의 주역 씨지맥.

다가오는 스프링 시즌에는 그 기대치가 씨지맥 선수 못지 않은 신인들이 여럿 보인다.

뭐, 아마추어에서 날고 기던 이들이 프로 무대에서 고꾸라지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지만 그래도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자국 리그의 흥행을 바라는 한국팬들로서는 더욱 간절할 수밖에 없다.

갤럭시 크래프트 때부터 이어져 오던 E-스포츠 최강국의 자리를 슬슬 되찾아야할 시기다.

아직 말을 꺼내지 않았을 뿐 깊숙한 내면 한 구석에 당연한 듯 자리잡고 있다.

만약 이를 이루어줄 선수가 나온다면 평생 그의 팬을 자처하겠다.

라고 생각하는 유저들은 정말이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

.

.

* * *

열두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났다.

결승전 예은 빙빙 사건 이후로 조금 어색하고 싸늘한 공기가 흘렀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나와 예은의 사이다.

잠에서 깬 예은과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이전의 관계로 돌아와 있었다.

"오오! 로스앤젤레스 하고는 역시 다르네. 파리보다 배는 춥다 야."

"..그러게. 쌀쌀하네.."

인천 국제 공항에서 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2월 말의 한국.

일기예보에서 보았던 대로 꽃샘 추위 때문인지 상당히 춥다.

비행기 내에서 옷을 껴입고 나오길 정말로 잘했다.

"그럼 난 여기서 갈 테니까. 너도 잘 지내고."

오는 길에 이미 이야기는 나눌만큼 나눴다.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질질 끌면 오히려 정 떨어지는 법이다.

예은을 향해 짧막한 인사를 건네며 미련이 남지 않도록 곧바로 고개를 돌렸다.

공항 밖의 버스 정류장에서 적당한 공항 버스를 타고 적당한 곳에 내려야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귀찮은 일이 많아질 것이다.

한동안은 한적한 곳에서 간만의 자취 생활을 만끽하면서 휴식을 취할 생각이다.

그러면서 많이 고생해줬던 몸도 보하고 앞으로 할 일들도 정리하고.

휴식이라고는 했지만 생각보다 바빠질 거란 전망이다.

마냥 놀고 있기에는 못다 마무리지은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야. 잠깐만."

그렇게 바쁘다는 핑계로 미련을 끊으려고 했건만.

예은이 나를 향해 한 마디를 던져왔다.

이 말을 받는다면 어느 쪽이든 한동안은 마음이 싱숭생숭 해질 것만 같다.

"생각해봤는데 나 가출하려고."

"................뭐?"

느닷없는 커밍아웃에 잠깐 당황해버렸지만 이내 상황이 이해된다.

그러고 보면 이 녀석, 부모님 문제로 종종 툴툴대곤 했다.

특히 술을 많이 마신 날이면 반드시 그 얘기가 나왔다.

속박 받는 삶은 질색이라느니 어쩌고저쩌고.

집안 잘 살고 머리 똑똑한 이 녀석도 나름대로 고민이 있구나.

그 정도로 흘려 넘긴 이야기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나이에 가출은 아니지.

"정신 차려라."

"진심인데?"

예은이 내 눈을 부담스러울 정도로 쳐다보며 말을 잇는다.

백보 양보해서 진심이라 쳐도 나한테 그걸 알려주는 진의는 또 무엇인지.

막말로 데리고 살기라도 해달라고?

"어."

"야..... 동거가 애들 장난이냐?"

술 마신 것도 아닌데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가능한 어이없다는 표정을 유지하려고는 하지만 심장이 쿵쾅쿵쾅 요동친다.

결승전이 끝나고 이 녀석에게 고백..

하려고 했던 나이기에 마음을 더욱 진정시키기 힘들다.

이 녀석의 미래를 생각해서 참았는데.

이제 와서 다시 연이 이어진다.

그렇게 되면 도저히 브레이크를 걸 수가 없다.

정말로 그 이상은 말하지 않아줬으면.

"안 받아주면.. 담배 필거야."

술도 엄청 마시고, 나이트 클럽같은 데도 쏘다니고, 노래방 같은 데서 아르바이트도 하겠다고.

어처구니 없는 양아치 선언으로 협박을 해온다.

그런데 그거, 어지간한 대학생은 다 경험하는 거고 딱히 불량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곱게, 아가씨처럼 자라와서 그런지 거부감이 있나 보다.

정말 쓸데없는 부분에서 착실한 녀석이다.

그런 주제에 술은 나보다 잘 마시지만.

"..내 유일한 화풀이 수단이었으니까."

"뭐, 나쁜 쪽으로 삐뚤어지지 않은 건 다행이다만.."

기다리던 공항 버스를 하나 보내야 했을 정도로 이야기는 길어졌다.

혹시 홧김에 내린 결정이었다면 엉덩이라도 때려서 라도 보낼 생각이었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나 이상으로 예은은 본인의 인생관과 목표가 뚜렷하다.

내심 부러워하기도 했을 정도니 기억에 남아있다.

하지만 예은의 입장에서는 그게 또 달랐던 듯하다.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자유롭게 살고 싶어."

엘리트 코스, 보장된 미래.

익히 들어왔지만, 그것이 대단하다고 치켜세워 줬을 정도지만.

예은으로서는 많이 답답했던 모양이다.

프로게이머를 해보지 않겠냐고, 내 제안을 수락했던 이유도 거기서 기인했다고 한다.

"그리고 약속했던 거 기억나지? 그거 채권 회수할 건데 할 말 있어?"

"그게..여기서 나오냐.."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나 들어주겠다.

그러한 약속을 한 적이 가물가물 기억난다.

설마 하지만 예은은 그 약속을 할때쯤부터 결심을 내렸던 것 같다.

물론 일이 잘 풀렸을 때의 얘기겠지만 철두철미한 예은이라면 풀리지 않았을 때의 경우도 상정해놨겠지.

이렇게 되면 거부할 수단도 방법도 없다.

"너 허리도 성치 않잖아..? 간호도 좀 해주고 어쨌든.. 잠깐 신세 좀 질 테니까 그리 알아."

".....너도 참 막무가내다."

예은의 사정을 들어보니 아예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 길로 자택에 돌아간다면 졸업할 때까지 꼼짝 없이 붙잡혀 살아야 한단다.

그럴 바에야 확! 가출해주겠다고.

꽤 오랜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인 듯 타협의 여지는 없어 보였다.

이 녀석 똥고집이 하루이틀 일이 아닌만큼 잘 알고 있다.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데 뭐 있는 녀석이라니까.'

당장 한 마디로 정리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제 와서 내가 몇 마디 한다고 태도를 고칠 일은 절대 없을 거라는 것.

그리고 또다시 반강제로 이 녀석의 행태에 휘둘리게 될 거란 사실이다.

예은과의 지긋지긋한 인연은 조금 더 이어지려나 보다.

나도 모르게 잠깐 미소가 지어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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