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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올마스터
어제는 조금 일이 있었다.
방송 진행을 끊고서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내 뒤의 침대에 누워 자고 있던 예은.
예은의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탓에 도무지 집중이 안됐다.
감기에 걸렸을 때 기침을 하는 거야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지.
쉬지 않고 기침을 해대면 걱정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심지어 목소리를 죽인 채 조그마한 소리로 끙끙대는데 어떻게 두고 보기가 힘들었다.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은의 얼굴을 살펴보니.
'아주 사색이 되어 있었지.'
그러게 병원 가자고 할 때 바로 가지.
많이 안 좋냐고 물어보니 쫑알쫑알 괜찮다고만 연발해댔다.
누가 어떻게 봐도 괜찮은 상태가 아닌데.
결국 보다 못한 나는 방송을 끄고 강제로 예은을 병원으로 데려 갔다.
안 가면 들쳐 업어 버린다고 하니 툴툴 대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 말을 따랐다.
병원에 가서 주사 맞고 약 먹고 푹 자고 일어나니 오늘은 상태가 많이 양호해졌다.
아직까지도 전체적으로 골골대긴 하지만 어제 일로 나를 쿡쿡 쪼아대는 게 살만한 모양.
아침으로 해준 죽도 깨작깨작 대지 않고 잘 먹었고 걱정은 많이 덜었다.
그래도 어제처럼 다시 돋을 수도 있는 일이니 절대 침대에서 일어나지 말라고 엄포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예은을 재워 놓은 나는 어제 못다 한 방송을 진행하기 위해서 컴퓨터를 켰다.
이미 방송을 킨지 10분 남짓.
정말로 간만에 파프리카TV에서 방송을 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에 있었을 때 토이치TV 방송을 하긴 했지만 느낌이 다르다.
이루 말로 표현을 하지 못하리만큼 감회가 새롭다.
'특히 이 싸구려틱한 채팅이 말이야.'
파프리카 채팅창의 수준은 흔히 말하는 저질이다.
그게 또 매력적인 요소긴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살짝 고달프다.
아무리 자업자득이라고는 해도 채팅창이 너무 빠르게 올라간다.
-방제 보고 왔습니다 엌ㅋㅋㅋㅋ
-와 어그로 지리네. 이건 볼 수밖에 없다ㅋㅋㅋ
-헐 올마스터 겜복귀함?
-올마스터 여친 실화냐?
-대박. 얼마나 쎄길레 0.1초컷이 나온다는 겨?ㅋㅋㅋㅋㅋㅋ
현재 파프리카TV에서는 그다지 흔하지 않지만.
앞으로 몇 년만 지나면 방제 어그로없이 살아남기 힘들다.
그리고 내가 지금 자리가 안 잡힌 것도 사실이니 조금은 써주자.
그런 느낌으로 활용했다.
<「북미 전역을 울린 감동실화」 미드 테러스티나 모든 챔프 0.1초 컷>
조금, 아니 상당히 오바를 떤 감은 있지만 기왕 지를 거면 뒤를 보지 않아야 하는 법.
특히나 방제를 본 시청자들이 물밀듯 몰려온다.
그 탓에 채팅창은 상당히 난잡한 상태다.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올라가고 있지만 일단은 감수하고 방송을 진행해야 한다.
채팅창을 얼리더라도 그건 나중의 일.
내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알리고 난 이후다.
─소환자의 전장에 온 것을 환영해요!
정말 간만에 한국 클라이언트로 게임을 하게 됐다.
언제나 듣던 북미 여성 성우의 목소리가 반듯한 성인 여성의 매력이 있다면 한국 쪽은 귀여운 맛이 있다.
어느 쪽도 익숙하니 상관은 없지만 다소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진짜 2주만이네.. 그래도 지금까지 한 게 있는데 배치고사 정도야 충분히 양학하고도 남겠지.'
한국으로 건너오고 정말로 게임 한 판 한 적 없이 휴식만 취했다.
불안해서 조금씩 하려고 했지만 예은이 뜯어 말렸다.
쉴 때는 확실하게 쉬는 게 좋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란다.
적어도 허리 나을 때까지는 집안 일도 자신이 한다면서 기특한 소리를 해댔다.
빈말이겠거니 그렇게 큰 의미를 담지 않았지만 의외로 정말이었다.
귀찮은 살림살이를 예은이 전부 떠맡아줘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아도 됐다.
예은이 해주는 요리도 먹고 마사지도 받고, 정말이지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바랬을 정도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
예은의 수발 받으면서 2주 가량 쉬었으면 충분히 호강했다.
허리도 다 나았거니와 이 이상 휴식 기간을 가져버리면 게임에 대한 감을 잃는다.
이제는 적절한 몸풀기가 필요할 때다.
무대는 이미 갖춰졌다.
'설계도 제대로 해놨고. 시청자 다시 모으는 건 금방이야.'
이래 봬도 방송 경력이 짧지 않은 나다.
어떻게 해야 초반부터 어그로를 팍팍 모아 시청자의 관심을 끌 수 있는지.
과장없이 이 분야의 도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내가 플레이하는 미드 테러스티나.
정확히는 주문력템을 올리는 AP테러스티나가 제격이다.
이걸 정말 써도 될까, 하는 수준의 알쏭달쏭한 픽인 데다 실제로 효율이 나온다.
그것도 방제가 거짓말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순간 폭딜을 자랑한다.
특히 이런 솔로랭크에서 날뛰기에 더없이 알맞다.
펑!
펑!
테러스티나가 들고 있는 대포에서 포탄들이 쏘아지며 미니언을 터트린다.
단순히 평타를 쐈을 뿐인데 미니언들이 제멋대로 터지며 광역 피해를 가한다.
테러스티나의 E스킬, 폭렬 탄환의 패시브 효과다.
막타를 치면 미니언이 폭발하며 주위의 적에게 데미지를 준다.
덕분에 굳이 스킬을 쓰지 않아도 라인 푸쉬력이 나쁘지 않다.
그렇게 아낀 스킬은 견제에 사용된다.
파르륵..!
폭렬 탄환이 상대 미드라이너 카서트의 몸을 태운다.
막타를 친 대상을 폭발시키는 패시브에 더해 사용시 적을 타겟팅으로 불태우며 치유 감소 효과까지 선사한다.
소환자 스펠 발화의 스킬 버젼.
초당 고정 피해가 아닌 마법 피해고 1.0AP계수가 달려 있다는 점을 빼놓고 굉장히 비슷하다.
토옹!
토옹!
하지만 상대라고 생판 맞아주기만 하란 법은 없다.
카서트가 내 발치 아래에 딱콩을 터트리며 반격해온다.
1초에 한 번 터져버리는 딱콩이 자랑하는 어마어마한 DPS.
맞는다면 상당히 곤란해진다.
'당연히 안 맞겠지만.'
아무리 내가 잠시 쉬었다고 한들 기본기가 어디 갈 턱이 있을까.
NA롤챔스 윈터시즌의 결승전에서 맥도날드의 카서트를 상대로도 맞지 않았던 딱콩.
고작 배치고사에서 만나는 카서트의 딱콩을 맞을 정도로 내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다.
-?? 설마 전부 피한 거야?
-뭐야, 핵쓴 거임?
-대놓고 사거리까지 들어갔는데 저건 카서트가 못한 거지.
-와 어이없다. 올마스터 실력 어디 가지 않았구나..
이 정도로 놀라기엔 한참은 이르지만.
Unknown Error 본인이라는 걸 안다면 까무러칠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내 이름을 팔아서 방송을 흥행시키고 싶지는 않으니 차근차근 진행한다.
평타로 미니언을 터트려 라인을 밀고 폭렬 탄환을 먹여 체력을 깎는다.
한 마디로 라인 밀고 견제.
이러한 일련의 행위를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카서트가 느끼는 압박감은 장난이 아니다.
카서트의 반격을 허용하지 않기에 가능한 플레이 방식이다.
오로지 실력으로 승부한다.
과거부터 이 하나만은 결코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변할 일 없다.
방제 어그로도 완전 헛소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금부터 증명해 나갈 예정이다.
'앞으로 미니언 두 마리.. 그러면 킬각이지.'
테러스티나라는 챔프를 픽한 이유, 그 첫 번째는 아무래도 솔킬이다.
솔킬을 따기 겁나게 쉽다.
그렇게 한 번 킬을 먹기 시작하면 스노우볼은 무진장 굴러간다.
다소 제한적이라고는 해도 킬리셋이 있는 테러스티나에겐 더더욱이다.
후웅-!
포물선을 크게 그리며 날아가 카서트에게 엉덩방아를 찍어버린다.
테러스티나의 W스킬, 폭발 점프.
도약 사거리가 상당한 데다 짓밟은 상대에게 광역 마법 피해를 가한다.
2.5초 간의 둔화 효과도 있지만 지금의 상황에선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일이다.
퍼엉!
미니언 경험치를 정확히 계산한 나는 날아가는 사이에 6레벨을 찍었다.
그리고 지체없이 배운 궁극기를 곧바로 쏘아냈다.
테러스티나의 궁극기, 미사일 탄환은 상대를 밀어냄과 동시에 1.5AP 계수의 막대한 마법 피해를 가한다.
그 효과로 카서트는 어떻게 반격을 하기도 전에 저편으로 밀려난다.
'딜계산이 아슬아슬.. 한가?'
미사일 탄환은 본디 원딜로 가는 테러스티나가 카이팅을 할 때나 쓰는 스킬이다.
하지만 AP테러스티나는 순수하게 딜링기로 활용한다.
그냥 간단하게 앞점프해서 ER평, 그리고 발화.
전부 타겟팅으로 들어가기에 킬각잡는 것이 이리도 쉬울 수가 없다.
하나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내 딜계산.
2주 정도 쉰 바람에 살짝 애매모호하긴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엇나가지 않았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폭렬 탄환과 발화가 카서트의 남은 체력을 전부 갉아먹었다.
그렇게 카서트가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W스킬 폭발 점프의 쿨타임이 돌아온다.
카지트의 진화한 날개 뛰기처럼 킬혹은 어시스턴트 리셋 효과가 존재한다.
쿠! 챠앙!
뒤늦게 카서트의 죽음을 확인한 적팀의 정글러 탈리반 3세가 미드를 찔러왔다.
이를 쿨타임이 돌아온 폭발 점프로 가볍게 회피.
깔끔하기 그지없는 미드 솔킬과 뒤처리에 채팅창에서 찬사가 터져나온다.
파프리카TV답게 아주 시끄럽지만 말이다.
-딜계산 ㅁㅊㄷㅁㅊㅇ!
-6레벨 찍기도 전에 들어간 판단 대단하다. 다 계산한 거지?
-올마스터 계정이면 배치고사로 만나는 사람들도 최소 다이아일 텐데 그냥 양학해버리네 ㄷㄷ
-테러스티나 재밌어 보이네. 나도 해봐야지ㅋㅋ
재밌어 보인다고 따라하다간 팀원들에게 뒤지게 욕 얻어먹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채팅창의 반응이 좋으니 나로서도 기쁘다.
물론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스노우볼이라는 건 몸집을 계속해서 굴려 나가기에 의미가 있는 것.
그 스노우볼을 굴리기에 최적화된 챔피언 중 하나가 바로 테러스티나다.
대회 무대에서는 쓰기 힘든 솔로랭크형 챔피언이긴 하지만 솔로랭크에 한해서는 정말로 기똥차다.
찰칵!
솔킬을 딴 덕에 겁나 쓸데없는 지팡이를 첫 귀환에 뽑을 수 있었다.
첫 번째로 목표하는 아이템은 당연히 죽음의 불타는 손길.
AP테러스티나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코어아이템이다.
'특히 액티브의 쿨타임이 참 마음에 들어.'
테러스티나의 궁극기, 미사일 타환은 쿨타임이 불과 1분 밖에 되지 않는다.
본디 성장형 원딜러로 설계된 테러스티나가 라인전 단계에서 덜 죽으라고 쿨타임을 짧게 설정했다.
하지만 원딜러가 아닌 AP누커로 사용한다면 어떨까.
무려 1분마다 킬각을 잡을 수 있다.
그리고 이 킬각에 도움을 주는 아이템이 바로 죽음의 불타는 손길이다.
똑같이 쿨타임이 1분이라 딱딱 맞물려서 1분에 한 명씩 쓱싹-! 이 가능하다.
─테러스티나가 가고 있음을 알림.
한 번 킬을 따인 카서트는 엄청나게 사리며 파밍만을 지향한다.
그 선택은 다분 옳지만 안타깝게도 사리는 것은 만능이 될 수 없다.
라인에 귀환하자마자 궁극기 쿨타임의 거의 차버린 테러스티나가 봇라인으로 로밍을 간다.
현재 봇라인은 서로 간에 무난한 파밍구도가 이루어져 있다.
흔히 말하는 휴전 협상.
그들끼리는 동조가 이루어져 있을지 언정 내가 끼어든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타겟팅으로 목숨을 빼앗아버리는 폭탄 테러범이 들이닥친다.
애씨[1/0/0]-봇라인 아직 6레벨 안 찍힘.
소리커[0/1/1]-체력이랑 스펠 다 있어서 다이브 무리 같은데.. 글고 저 CC기도 없어요.
시즌3에는 아직 다이브가 생활화돼 있지 않다.
수준이 정말 높거나 서로 간에 차이가 크면 모르되, 고작 머릿수 하나 정도 많을 때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체력 상태가 온존할 때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만 해도 아군들이 빽핑을 찍어대며 나를 말린다.
'확실히, 북미의 수준이 높은 시기인가.'
배치고사 첫 번째 판인지라 게임의 수준은 다이아4,5 티어대.
만약 북미의 동티어대 솔로랭크였다면 조금 더 원활한 다이브가 가능했을 터다.
그 이전에 나를 믿고서라도 다이브를 호응했겠지.
하지만 한국은 현재 전체적인 기량이 북미나 유럽보다 다소 밀릴 뿐더러 그 격차는 본래보다 더욱 벌어졌다.
다름아닌 나로 인해서 북미와 유럽의 수준이 상당히 상승했기 때문이다.
-포탑 끼고 있는데 설마 다이브?
-탈력도 있을 텐데 너무 욕심 내는 듯
-한 번 삐끗하면 카서트 궁극기에 몰살행ㅋㅋ
아군 뿐만 아니라 채팅창에서도 다이브에 회의적이다.
회의적이다 못해 야유까지 한다.
그리고 이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니다.
내가 대회 무대에서 다이브를 했을 때는 팀원들의 칼같은 호응이 밑바탕돼 있었다.
어느 정도 호응을 할 줄 아냐에 따라 다이브 성공률은 오르락내리락.
다이아4,5티어의 현지인들 데리고 시도를 하기에는 리스크가 조금 크긴 하다.
'애초부터 믿지도 않았으니 상관없지만.'
이 정도도 혼자 어떻게 할 수 없었다면 북미에서의 위업은 꿈도 꾸지 못했다.
나에게 어린애 장난과도 같은 수준의 과제.
지체없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른다.
올마스터가 아직 죽지 않았다는 신호탄이 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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