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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올마스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실력보다 까마득하게 낮은 구간에서 패배할 수 있는 법이다.
실력의 부족함이 문제라기 보단 AOS게임 자체의 문제.
서로가 동등하게 시작하는 5:5 팀게임인 로드 오브 로드에서 개인이 가지는 한계다.
팀게임에서 혼자 날뛸 수 있다면 오히려 문제가 되리라.
하지만 종종 챔피언에 따라 그 한계를 극복해버리기도 한다.
바로 게임사의 딸내미.
이 리픈이라는 챔피언은 플레이어의 기량에 따라 한계라는 틀을 부숴버리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그만한 기량이 나에겐 있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탑라인에서의 두 번째 솔킬.
반항이고 나발이고 간에 2렙 솔킬을 따낸 시점에서 라인전은 이미 터졌다.
솔킬도 솔킬이지만 미니언 웨이브가 한 차례 포탑에 박혀버림으로서 경험치 차이가 크게 나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니언 웨이브는 내 쪽을 향해 밀려오기까지 한다.
그렇게 몰려온 미니언 웨이브를 프리징하면 일은 간단.
블러디체리가 미니언을 먹으러 올 때마다 딜교환을 건다.
그렇게 체력을 깎아내다 언제 한 번 뒤지게 패서 죽이면 끝이다.
'이 지옥같은 프리징은 정글러가 와서 라인을 밀어주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지.'
이곳 구간의 정글러가 그렇게 하나하나 고려하며 정글을 돌진 않는다.
와주지 않는다면 말라 죽을 뿐.
블러디체리로서는 경험치라도 챙기는 게 최대한이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앉게 되면 눕고 싶다.
간간히 CS 한 점 먹어보려던 블러디체리는 결국 솔킬까지 내주게 됐다.
-블러디 불쌍하다ㅠㅠ 원거리 미니언은 먹게 해주지.
-저건 블러디가 잘못했네. 눈치 보며 경험치나 빨지 ㅉㅉ
-저렇게 프리징 당해서 CS 차이 계속 벌어지면 답도 없음ㅋㅋ 이러나저러나 죽는 수밖에.
-방장 진짜 잔인하게 게임한다..
이로써 탑은 언제 어느 때 내가 원하는 타이밍마다 다이브를 칠 수 있게 됐다.
설사 적팀의 정글러 자드가 온다고 해도 더블 킬이 예약된다.
자드가 정글이라니.
사실 이게 맞는 일이지만 확실히 한국 서버가 뒤쳐지긴 했다.
'자드가 탑이나 정글로 쓰이다가 나중에야 미드로 재발견됐었긴 해.'
북미에서야 내가 미드로 쓰다보니 멋모르고 사람들이 따라 썼다.
미역슨의 경우는 그 전부터 썼다고 하지만 조금 많이 어설펐다.
LCF에서는 상당히 훌륭했지만 적어도 롤챔스 윈터시즌 당시에는 그러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한국에서는 제대로 정형화가 되지 않았다.
아직도 탑이나 정글로도 많이 쓰이나 모양.
'앞으로 서서히 바뀌어 나갈 테지만 말이야.'
나는 미소를 살짝 머금으며 봇라인을 보았다.
하지만 봇라인의 상황은 내 미소를 절로 닫히게 할만큼 심각했다.
더블 킬을 따인 것은 둘째 치고 CS 차이가 암울하다.
그리고 분위기 자체도 영 아니올시다.
랄라[0/1/0]-원딜님. 사리면서 CS만 좀 드시죠? 여기 다이아인데.
애씨[0/2/0]-발화 아니었으면 살았는데.. 어쨌든 죄송….
실버 원딜을 데리고 암이 걸린 랄라가 핀잔을 준다.
너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랄라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또 그럴 만도 하다.
아무리 별의 별 소문이 다 있는 다이아5 구간이라고는 해도 일단은 천상계.
실버 5티어인 [올마스터짱짱맨]님이 버티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서포터가 발화도 들어? 탈력이 진리 아닌가..
-ㅉㅉ원래 잘하는 서폿들은 발화들고 킬각잡는 거 모름? 롤챔스도 안 보나.
-매일라이프가 발화로 킬각 귀신같이 잘 잡잖아!
인베에서의 킬 차이도 있어 봇라인은 아주 팡팡 밀리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도 극복해내지 못해서야 쓸까.
솔로랭크의 양학 정도로 곤란해 할 내가 아니다.
'솔랭은 개판 오분전으로 만든 후에 킬을 주워 먹기만 하면 간단한 문제지.'
대회 무대와는 달리 솔로랭크는 킬이 엄청나게 터져 나온다.
양 팀에서 사소한 실수를 연발해주기에 가능한 일.
특히 정면 한타가 아닌 어설픈 스플릿 구도가 나올 때 더더욱 심화된다.
그러한 난전에서 혼자 정신 똑바로 차리고 킬을 쓸어 담는다면?
AOS게임 임에도 압도적인 성장속도를 뽐내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이 리픈이라면 실현하고도 남으니까.'
성장을 잘 한다고 네 개 있던 스킬이 여덟 개가 되는 게 아니다.
개인의 캐리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소리.
그러나 이 리픈에 한해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킬을 쓸어 담기 시작하면 혼자서 무쌍을 찍어버린다.
슈우웅..!
포탑을 끼고 CS를 받아먹던 블러디체리가 불현듯 유령화를 키고 달려든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다.
드디어 탑라인에 갱킹이 온 듯하다.
준비운동은 끝마쳤으니 슬슬 몸을 풀 시간이다.
촤아앙!
블러디체리가 붉은 감염을 뿌림과 동시에 아래쪽 부쉬에서 튀어 나온 적팀의 정글러 자드가 나를 덮친다.
꽤나 화려한 축에 속하는 두 가지 궁극기가 진풍경을 자아낸다.
금은 장식 머리띠 생각이 간절하지만 안타깝게도 벌써부터 들고 있진 않다.
그렇다고 딱히 위기감은 느껴지지 않지만.
쿠훙!
짧은 거리를 돌진하며 실드를 덧씌워주는 리픈의 E스킬, 용기가 발동하며 블러디체리와 자드 사이에 내 몸이 옮겨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발동하는 두 가지 스킬.
궁극기로 칼의 크기를 키우며 에너지 폭발로 스턴을 건다.
본래라면 닿지 않았을 스턴의 범위는 궁극기의 효과 덕에 두 명의 적을 캐치해냈다.
챠락, 챠작!
스턴에 걸린 자드에게 쉴새없이 평캔이 들어간다.
리픈의 궁극기, 숙청자의 칼이 만들어내는 진면목.
공격력을 2할 상승시키며 스킬과 평타의 사거리까지 늘려준다.
그로 인해 스무스하게 들어가는 평캔은 자드의 체력을 사과 썰듯 깎아냈다.
위기감을 느낀 자드는 궁극기 그림자를 재사용해 위치를 바꾸지만 헛수고.
콰라랑!
숙청자의 칼을 사용해 뿜어낸 충격파.
바람의 칼날에 자드의 목이 뎅겅! 잘려나간다.
아무리 자드와 2레벨 차이가 난다지만 궁극기가 동반된 리픈의 원콤은 괴랄하다.
-헐?? 궁극기 예측샷 날린 거야?
-진짜 올마스터 리픈은 언제 봐도 평캔 쩐다..
-졸지에 갱승. 블러디체리 시무룩행ㅠㅠ
자드가 궁극기 그림자를 재사용할 거라고는 뻔히 예상했다.
그 자드로 LCF에서 우승한 사람이 난데 모를 리가 있을까.
그리고 자드 하나 잡았다고 끝이 아니다.
혼자 남은 블러디체리 또한 연이어 먹잇감으로 전락한다.
콰항!
마지막 세 번째 Q스킬, 파열된 날갯죽지의 에어본으로 블러디체리를 띄우며 서걱서걱 평타로 썰어버린다.
굳이 스킬 딜링에 의존할 필요없이 리픈은 평타만으로도 충분히 강력하다.
패시브 자체가 매 평타에 추가 물리 피해.
궁극기의 공격력까지 상승까지 더해지자 더할 나위가 없다.
치지직..!
핏물화로 도망가는 블러디체리를 따라가서 점멸 평타, 그리고 발화.
앞서 솔킬을 따인 탓에 나와 2레벨 차이가 나는 블러디체리로선 그 막대한 데미지를 버티지 못한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로 허무하고 안타까운 결말이다.
─더블 킬!
올마스터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모름지기 솔로랭크의 캐리공식은 죽이고, 또 죽이는 거다.
아군이 봇라인에서 더블 킬을 따인다면 나는 그 이상.
탑을 완전히 터트려서 입도 뻥끗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탑 뿐만 아니라 정글까지 말리게 하면 게임은 더욱 쉬워진다.
-ㅋㅋㅋㅋ 이거 설마 이기나? 봇이 너무 못해서 가망 없을 줄 알았는데.
-캐리력 대결 잼ㅋㅋ 봇이 죽는 속도가 빠른가, 올마스터가 탑을 터트리는 속도가 빠른가!
-리픈 저 정도로 커버리면 답 없긴 하지. 근데 한타 가면 쪼금..
-올마스터 리픈은 한타도 잘하는 거 모르나? 뉴비 많네ㅋㅋ
어느새 채팅창은 예전 느낌이 나기 시작한다.
보아하니 유입과 함께 예전 팬들의 복귀도 진행되고 있는 모양.
방송의 진행은 생각 이상으로 순조롭게 흘러간다.
찰칵!
내 아이템 또한 순조롭게 나오고 있다.
잡템 장수처럼 하나하나 들려있던 템들이 그럴 듯한 아이템으로 변환된다.
채굴삽이 티아매트로, 롱스워드가 미개한 방망이로.
라인전이 너무 흥해버려 딜방템인 스킬포식자는 갈 필요도 없다.
그냥 딜로 찍어누른다.
콰항!
쿠훙!
포탑을 끼고 사리는 것조차 리픈의 앞에선 불가능하다.
파열된 날갯죽지의 3타로 에어본시킨 후 스턴.
평타와 함께 티아매트를 울려 체력바를 뜯어낸다.
블러디체리의 반격과 포탑의 공격은 실드를 사용해 절반 이상 상쇄시킨다.
이렇게 한 번만 체력을 깎아 놓으면 다음 스킬쿨에 무조건 킬각이 나온다.
쿠훙!
터엉!
돌진하며 궁극기를 사용하면 모션이 캔슬된다.
그러면서 곧바로 스턴을 걸고 티아매트와 궁극기.
평타와 함께 들어가는 바람의 칼날이 블러디체리를 그대로 찢어버린다.
핏물화를 쓸 타이밍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올마스터님을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킬을 먹기 시작한 리픈은 다이브가 이리도 손쉽다.
없는 킬각도 알아서 척척 만들어낸다.
다채로운 돌진기와 즉발 스턴은 정말 눈 뜨고서도 코 베일 지경이다.
리픈이 괜히 게임사의 딸내미라 불리었던 챔피언이 아닌 것.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여기서부터가 분기점이다.
탑라인의 1차 포탑을 파괴하면 나에게는 선택지가 생긴다.
로밍을 가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탑을 쭉쭉 푸쉬할 것인가.
찰칵!
탑을 철거한 내가 상점에 귀환해 아이템을 구비하는 사이.
아군의 원딜러 애씨를 또 한 번 따낸 적팀의 봇라인이 정글러와 함께 용을 접수하러 갔다.
공교롭게도 아군 정글러는 딴 곳에서 뻘짓하고 있어 스틸각을 노릴 수도 없다.
이렇게 되면 용을 내주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지만.
'리픈에 한해서는 조금 기발한 선택지가 가능하지.'
잘 큰다는 전제 하에 만능이 돼버리는 챔피언.
리픈에게는 지금의 상황을 역전시킬 힘이 충분히 있다.
챠락, 차작!
대쉬기를 사용해 빠르게 용을 향한다.
아이우에오의 신발이 나옴으로서 내 쿨타임 감소는 30%.
기동력이 극대화된 덕에 도착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설마 저걸 걸라고? 3 대 1 인데?
-무리하다 리픈 짤리고 무난하게 지는 스토리ㅋㅋ
-역시 실버 데리고 듀오하는 게 아니었음ㅋ
승산 정도도 계산하지 못하고 들어갈 내가 아니다.
그리고 방심을 해주고 있다면 오히려 좋다.
잘 커버린 리픈의 파급력.
까먹고 있는 이들의 기억을 불러 일으켜줄 좋은 기회다.
챠락, 챠작!
용을 치고 있는 상대팀 앞에서 Q스킬, 파열된 날갯죽지를 두 번 돌린다.
그러자 위기감을 느낀 토이치가 다가오지 말라고 독병을 던져오지만 이를 가볍게 회피.
상대가 가장 방심하고 있을 순간에 들이닥친다.
치고 있던 용의 체력이 바닥까지 난 순간에 돌연 대쉬한다.
콰항!
용기로 다가가 내려찍는 3타.
숙청자의 칼은 이미 발동된 상태다.
그 효과로 넓어진 스킬 범위는 적팀의 원딜러 토이치에게 아슬아슬 닿는다.
에너지 폭발까지 연계된 순간 이야기는 이미 끝났다.
서걱!
콰라랑!
한 번의 평타 이후에 나가는 바람의 칼날.
토이치는 보호막을 사용해 한 순간 버텨냈지만 생명 연장의 꿈에 불과하다.
연이어 터진 티아매트가 토이치를 끔살내버린다.
─적을 처치했습니다!
올마스터님이 전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한 명의 적을 따냈다지만 모든 스킬이 빠졌다.
쏘냐가 나에게 발화를 걸며 자드가 궁극기를 사용한다.
일반적인 챔피언이었다면 여기서 끝이 맞다.
'봇라인 스펠, 전부 빠졌다고 하지 않았나? 뭐, 상관없지만.'
아군이 다소 착각을 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고난이야 문제도 되지 않는다.
30%에 달하는 쿨타임 감소는 어이없는 역전극을 가능케 만든다.
챠락, 차작!
앞서 분명히 사용했던 파열된 날갯죽지.
그 쿨타임이 벌써 돌아 쏘냐의 체력을 토막내고 있다.
스킬 사이사이에 섞여 나가는 평캔에 쏘냐는 순식간에 썰려나간다.
콰직!
쏘냐를 따내기는 했지만 자드가 남아있다.
자드의 궁극기가 터지며 내 체력을 위험한 지경까지 몰아넣었다.
최대한 분전을 하긴 했지만 한계.
정말로 리픈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참극이다.
콰항!
자드를 향해 세 번째 파열된 날갯죽지가 떨어진다.
나와 달리 바람의 칼날에 한 번 스친 게 고작인 자드는 체력이 온전하다.
그런 자드를 에어본시키며 평타 한 방.
치명적이라고는 절대 볼 수 없지만 아직 연계가 남아 있다.
쿠훙!
체력이 실피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다시금 돌아온 스킬 쿨타임.
용기를 사용해 실드를 덧씌우며 에너지 폭발로 자드를 기절시킨다.
반대로 스킬쿨이 다 빠진 자드는 불합리한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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