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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올마스터
서포터란 EU스타일에서 파생된 포지션이다.
사실 1시즌 롤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원딜, 서폿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탱커 두 명이 봇에 서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정글러가 두 명이기도 했을 정도다.
그러다가 포나틱이 원딜, 서폿이라는 개념을 선보이며 롤드컵의 우승을 틀어쥐었다.
그것을 따라해보니 정말 효율적이더라.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봇듀오는 일반적인 개념이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포지션이 세분화되면서 어쩔 수 없는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CS는 원딜러만 먹는다.
그리고 서포터는 손가락이나 빨아야 한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그렇기에 문제가 생긴다.
후반 캐리가 돋보이는 원딜러에 반해 서포터는 캐리력이 전무하다.
흔히 말하는 버스 포지션이 됐다.
차후 미래에는 어쩌고저쩌고 논쟁이 많아지는 부분이지만 적어도 현재 시즌3에서는 상당히 확고하게 굳혀진 선입견이다.
CS를 먹지 못한다 해도 경험치는 먹을 수 있지만 그 뿐.
아이템이 허접하면 약하다는 사실은 비단 RPG게임에서만 파생된 일반론이 아니다.
심한 경우 게임 시간 30분이 넘었는데 서포터가 신발 업그레이드를 하지 못하더라.
눈 뜨고 보기 안타까운 게임이 실제로 프로 무대에서 종종 나온다.
그러니까 현재 서포터의 입지란 이러하다.
초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라인전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리고 한타에서 CC기를 잘 맞히면 1인분이 가능하다.
즉, 서로가 비등할 때 무게추를 살짝 기울게 할 수는 있어도 결정적인 캐리로는 이어질 수 없다.
그것이 현재 모든 서포터들이 가지는 불만사항이자 타협점이다.
여기까지가 서포터의 한계라고 선을 쫘악 그어버렸다.
'뭐,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진행하고 있는 방송에서 서포터를 선택했다.
요 며칠 간의 방제 어그로로 방송 유입은 충분히 끌었다.
불이 붙어버린 잠시 동안이긴 하지만 현재 파프리카TV의 시청자 랭킹 순위가 상당히 높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한 가지 더.
이전에 했던 듀오 방송을 연장했다.
"어서와. 봇듀오는 처음이지?"
<형.. 서포터 진짜 할 줄 아는 거 맞죠?>
듀오 방송이라고는 했지만 [올마스터짱짱맨]님이 아니다.
씨지맥과 이야기를 나눴듯이 한 명 더 연락을 하지 않으면 섭섭할 사람이 하나 있다.
파프리카TV의 BJ로 데뷔해 크게 선전을 하고 있는 타임끝.
연락을 하니 자연스럽게 듀오 예정이 잡혔다.
[저..올마스터님. 실례지만 혹시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있어서 트롤하는 건 아니죠?]
[옛날에 제가 올마스터님 만나서 조금 많이 못한 적 있는데 그거 묵혀두셨나.. 저 이제 진짜 1인분은 함.]
[뒷담 까다 걸린 놈 알아서 자백하자. 자수해서 광명찾자.]
그리고 현재 첫 번째 판의 픽창이다.
나와 타임끝이 듀오를 한다면 필승.
평소 이상으로 엄청난 시청자가 유입됐고 기대가 모이던 찰나에 폭풍 선언을 해버렸다.
봇듀오를 가자.
간만에 꽁승 좀 하겠다는 생각에 본캐로 듀오를 해버린 타임끝은 어벙벙.
같은 팀에 걸려서 오늘 운수 좀 트였구나 생각한 나머지 팀원들의 반응도 마찬가지.
시청자들은 이게 웬 난데없는 트롤 선언인가 흥미진진.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하다 못해 원딜로 가주시지. 피지컬 좋으시던데..]
[서포터는 진짜 아닌 것 같습니다. 제발, 너무 재능 낭비임.]
[저같은 천것들이 서포터 가야죠. 올마스터님은 미드 가셔서 운전 해주시면 됩니다.]
올마스터 계정으로는 서포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반대 몰표가 떨어졌다.
하지만 내가 확고하게 입장을 굳히니 일단은 믿어보는 눈치다.
평안 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데 어쩔 수 있을까.
그렇게 내 서포터행이 막무가내로 확정되었다.
"내가 올마스턴데 설마 서포터만 빼놓고 하겠냐? 나만 믿어 임마."
<아, 제발.. 형! 형! 형!! 그거.. 말고 진짜 좀 딴 거 해주시지 아…….>
내가 챔피언을 픽해버린 순간 채팅창이 ㅋㅋㅋ으로 도배되기 시작한다.
타임끝의 입에서는 길다란 탄식이 이어진다.
확실히 이 챔피언은 이면성이 존재한다.
한 선수에 의해 캐리의 대명사로 통용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 선수에 한정돼 있다.
솔로랭크에서는 정말 아군이 하지 않았으면 하는 서포터.
나는 굳이 그 챔피언을 골라서 락인 박아버렸다.
-벌써부터 게임 내용 상상되네 ㅋㅋㅋㅋㅋㅋ 그거 하겠지?
-에이, 설마 그래도 마스터 구간인데..?
-올마스터면 진짜 해도 이상하지 않다ㅋㅋ 팬서비스로라도 하겠지.
-아 대낮부터 빵 터지게 만드네ㅋㅋㅋㅋ
상대를 자신의 위치까지 당겨올 수 있는 Q스킬, 로켓 그랩으로 대표되는 챔피언.
속칭 [인베 가죠.] 로도 유명한 풀리츠크랭커다.
풀리츠크랭커는 한국 최고의 서포터라 모두가 인정하는 매일라이프의 주챔피언이기도 하다.
매일라이프는 이 풀리츠크랭커로 기적을 행사한다.
서포터 주제에 대회 무대에서 캐리를 해버린다.
그는 현 로드 오브 로드의 상식을 비틀어버린 유일무이한 서포터 선수다.
'이 그랩만 잘 맞히면 캐리가 가능하긴 하지.'
어째서 하고 많은 챔피언들을 놨두고 하필 풀리츠크랭커로 캐리를 한다는 걸까?
다른 서포터들도 물론 한타에서 스킬을 잘 쓴다면 '오! 이건 서포터 캐리다' 라는 말을 듣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예의상하는 말이지 진짜로 그 서포터 하나때문에 게임이 기우는 경우는 없다.
아무리 서포터가 이니시를 잘 걸고, 적 딜러한테 딜로스 구간을 만들어버려도 실질적인 영향도는 떨어진다.
서로가 비등할 때 무게추를 기울이는 정도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이 일반적인 통설이지만 이 풀리츠크랭커는 여과없는 진짜 캐리가 가능하다.
[님들, 인베 가죠?]
[...진심이신가요?]
[ㅇㄱㄹㅇ ㅂㅂㅂㄱ.]
[하아.. 실화냐….]
팀원들의 복창을 터트려버린다.
하지 말라는 짓 골라서 한다.
심해에서나 볼 법한 [인베 가죠.]가 마스터 티어에서 펼쳐진다.
"풀리츠크랭커 하면 인베 가주는 게 예의지. 인정?"
<노인정.. 형, 저 진심 요즘 그랜드 마스터 간당간당해요.. 지면 안돼요 진짜로..>
타임끝의 한숨이 늘어짐을 신호로 다섯 명의 팀원이 적진영을 향해 달려간다.
노리는 것은 당연히 퍼스트 블러드.
내 그랩 한 방에 팀원들의 사활이 걸렸다.
'삐지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구만.'
장난스런 태도를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인베를 가는 건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다.
풀리츠크랭커만큼 인베에서 뽀록 터지기 쉬운 챔피언이 또 없다.
열 판 돌려서 뽀록 두세 판정도 터지면 적어도 그 판은 게임이 쉽게 풀리지 않겠는가.
'물론 이번엔 확신이 있으니 가는 거지만.'
첫 아이템으로 가죽 신발을 구매한 풀리츠크랭커.
여기에 더해 특성을 보조에 몰아주면 1렙 이동속도가 우월하다.
이 장점에 내 판단력 가미된다면 굉장히 높은 확률로 킬을 만들 수 있다.
─올마스터님이 랄라를 지목!
게임이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뛰어간 보람일까.
나와 적팀의 서포터 랄라가 부쉬에서 마주쳤다.
내 이동속도를 감안하지 못한 랄라가 실수를 해버렸다.
깜짝 놀란 랄라는 허겁지겁 보라색창을 흩뿌려온다.
챠라랑!
보라색창을 맞아버리면 이동 속도가 크게 저하된다.
그렇게 되면 말짱 도루묵.
나는 과감히 점멸을 사용해 피해내며 순간 고장난 것처럼 멈춰 섰다.
-?ㅋㅋㅋ 랄라 점멸 뺌 개이득!
-이제 당기기만 하면 된다.
-이걸 이렇게 훼이크 치네ㅋㅋㅋㅋ
사람의 심리라는 게 묘하다.
평소라면 바로 하지 않았을 맞점멸 반응.
그랩을 지나치게 인식하고 있던 나머지 랄라는 과도한 반응을 해버렸다.
내 앞점멸을 보자마자 손을 올리고 있던 점멸키를 무의식 중에 눌러버리고 만 것.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내가 저 랄라에게 그랩을 맞힐 수 있느냐, 없느냐.
저렇게 당황해버린 랄라에게 논타겟 스킬 하나 못 맞힐 정도로 내가 만만하진 않다.
─퍼스트 블러드!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그랩으로 랄라를 땡겨옴과 동시에 아군들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이미 생존기도 빠져버린 이상 먼저 먹는 놈이 임자.
미드라이너인 나이즈가 점멸로 랄라를 속박시키자 탑라이너인 네네톤이 점멸 스턴을 연이은다.
피튀기는 신경전 끝에 최종적으로 킬을 먹게 된 사람은 얄궂게도 타임끝의 고르키였다.
<스킬 아껴놨는데 개꿀띠~! 형 뽀록 좀 터졌네요?>
"뽀록아니라니까 이거 참 사람을 못 믿네."
아무래도 증명이 살짝 부족한 모양이다.
인베 킬은 순수하게 실력이라고 보긴 뭣하긴 하니까.
라인전에서 그 기량을 한껏 발휘해야 신뢰도가 쌓이려나 보다.
'그 라인전이 문제긴 해.'
내가 갑자기 서포터를 하고 있는 이유.
스프링 시즌에서 어떤 그림을 그릴지야 이미 머릿속에 구상을 끝내놨다.
서포터의 캐리력이 낮다니 뭐니 해도 내 손이 들린 이상 섭섭하게 넘어갈 일은 없다.
하지만 라인전은 조금 이야기가 다르다.
'매일라이프가 풀리츠크랭커로 캐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라인전을 최소 반반은 갔으니 가능했던 거지. 그냥 잘 당기기만 하던 선수는 아니야.'
적팀을 확! 끌어와서 아군에게 떠먹여주는 쾌감.
이것이 가능함에도 풀리츠크랭커가 솔랭에서 기피받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라인전에서 원딜러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랩으로 적을 당길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못 맞히면?
20초 동안 장승처럼 원딜러의 경험치만 뺏어먹는다.
그리고 땡겼다고 반드시 킬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 이게 중요하다.
<형..제가 진짜 못 미더워서 그러는 게 아니라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데스그랩은 하면 안돼요?>
"내가 너한테 걱정이나 받고 참 서러워서 살겠나. 올마스터야 이거 왜 그래!"
데스그랩은 상대를 자신에게 땡겨 버리는 로켓 그랩이 역효과가 났을 때를 일컫는 말.
체력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랩각이 나왔다고 무작정 당겼다가 원콤에 죽어버린다던지.
광우스타같은 걸 당겨서 아군 원딜러가 역으로 배달을 당해버린다던지.
하지만 내가 아무리 정말 오래간만에 서포터를 한다고 거기까지 할까.
타임끝의 툴툴거림이 조금은 야속하게도 느껴진다.
'혹시라도 지면 미드로 이겨주면 되겠지..? 뭐, 질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물론 타임끝도 방송 멘트로 장난 삼아 던지는 말이다.
씨지맥 뿐만 아니라 타임끝도 내가 북미에서 활동한 이력을 잘 알고 있다.
서포터를 한 적이 없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어서 문제지.
'세계 최고의 미드라이너도 서포터를 설 때는 한낱 트롤러에 불과해질 수 있다는 케이스.. 그러고 보니 있었지.'
그렇다고 나까지 동류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당연하게도 올마스터로서 서포터 또한 섭렵하고 있음은 물론이니까.
북미에서 솔로랭크를 할 때 간간히 서포터를 픽했을 정도니 감도 어느 정도 살아있다.
다만 당시에는 라인전이 강력한 픽 위주로 했다.
그에 반해 풀리츠크랭커는 수비적인 라인전을 지향하는 챔피언.
그러다가 기회가 왔을 때 정확히 받아먹는다.
역으로 상대에게 위기감을 심어주어 견제를 못하게 하는 무빙 또한 중요하다.
이것을 행하기 위해서는 수준급의 라인전 능력을 필요로 한다.
대회에서는 상당히 다르게 활용할 예정이지만 기본기는 언제나 갈고 닦아 놔야 하는 법이다.
[랄라 노플. 오면 무조건 킬 ㅇㄱㄹㅇ.]
[올마스터가 ㅇㄱㄹㅇ치니까 왜캐 부자연스럽지.. 정말 본인 맞아요?]
[본인 맞음. 이거리얼 반박불가.]
아무래도 내가 캠을 키지 않고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게임 내용은 웃기게 가야 한다.
왜 캠을 켜주지 않냐고 뭐라 하는 시청자들이 있었다.
여기에 대해 내 입장은 우리 여친느님의 얼굴이 혹시라도 알려질까봐.
그렇게 설득했더니 보고 싶다며 역으로 채팅창이 도배를 됐지만 일단은 그걸로 설명은 됐다.
납득은 못하지만 이해는 한다는 분위기.
물론 그만큼 방송 내용을 알차게 가기로 했다.
이미 방제 어그로는 충분히 증명했다.
<「양학마스터」 실버 끼고 다이아 강제 캐리 38승 4패 이거 실화냐?> 까지는 해줬으니 차고 넘친다.
하지만 이제부터 해야 하는 건 본방송.
양학이 아닌 진짜 극천상계 솔로랭크를 지향하는 만큼 약간 재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고티어 솔로랭크보다 화끈한 양학을 조금 더 좋아한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간단하다.
고티어 솔로랭크에서 화끈한 양학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말도 안되는 입롤을 실현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
바로 나 올마스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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