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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도씨 삼형제
나와 도슈가 미드에서 맞붙는다.
이것은 딱히 긴장이 될만한 일도 아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한 번 붙어봤으니 설명이 필요할까.
'뭐, 본인은 곧 죽어도 잡아 떼겠지만.'
본인이 아니라고 바락바락 우겨댈 정도인데 믿어주는 거야 어렵지 않다.
정말로 만에 하나 지난 세기말 그랜드 마스터 승격전 때 나를 저격했던 이가 도슈가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다.
어디서 비빌걸 비벼야지.
미안하지만 격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넌 이제 끝났어!>
물보라가 터지듯 경쾌한 소리와 함께 상대 미드라이너의 체력바가 한 움큼 뜯겨나간다.
내가 플레이하고 있는 제임스가 도슈의 아링을 완전히 밀어붙이고 있다.
사실 이 자체는 그렇게까지 사이다가 빵빵 터지는 일까진 아니다.
하지만 시청자의 반응은 꽤나 좋다.
-크~! 도슈 큰 소리 치더니 개털리네ㅋㅋ
-ㄴㄴ 아직 라인전 해봐야 암. 원래 6렙 전에 제임스가 유리함.
-그렇긴 하지. 6렙 되면 아링 궁극기 배우는데 제임스는 궁극기가 없잖아. 여눈 딜로스도 크고.
-어휴 도슈충들 와서 분탕치네. 너희 별로 돌아가라ㅉㅉ
6레벨 이전에는 제임스가 조금 더 할만한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게 제임스의 스킬 구조는 특이하다.
무기를 변환해서 Q, W, E스킬을 각각 두 번씩 사용한다.
게다가 원거리 AD챔피언이기도 해서 평타 짤짤이가 상당히 거슬린다.
이러한 사정으로 6레벨 이전까지는 제임스가 라인 주도권을 쥘 수 있지만 그 이후로는 달라진다.
제임스는 6레벨이 돼도 다른 챔피언들처럼 특별한 궁극기를 배울 수 없다.
그에 반해 아링의 황천질주는 3단 대쉬기로서 확실하게 킬각을 잡을 수 있다.
그러면 6레벨 이전까지 빠듯하게 견제해서 킬각을 잡으면 되는 거 아니냐?
'제임스는 다 좋은데 아링을 상대로 킬각을 잡기가 힘들어.'
라인전 세고 포킹되고 맞딜까지 센데 당연히 단점 하나 둘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양심이 있는 법이다.
기본적으로 포킹 챔피언인 제임스는 CC기가 조금 부실하다.
망치 찍기에 돌진과 둔화가 달려 있긴 하지만 아링을 상대로는 섣불리 움직여선 안된다.
'해머폼으로 들어가면 당연히 유혹을 맞을 테고.. 이게 참 골치 아픈 부분이야.'
비슷한 포킹 챔피언 구리가스는 배치기 점멸에 연이은 술통 던지기 발화로 킬각을 잡을 수 있다.
점멸로 연계되는 배치기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CC기를 먹이고 막타를 치는 행위.
그러나 대부분의 스킬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제임스의 망치 찍기는 판정 직전에 점멸을 사용한다던지를 할 수 없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정직하게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정직하게 들어가면 상대가 맞아줄 리 있을까.
짧은 거리를 도약해 적을 내려치는 제임스의 Q스킬 망치 찍기는 즉발이 아니다.
모션도 엄청 커서 적에게 도달하는 데에 시간이 소요된다.
만약 그 사이에 아링의 유혹을 정확하게 꽂힌다면?
망치찍기가 취소되며 데미지가 안 들어감은 물론, 역으로 킬각까지 잡힐 수 있다.
'그 유혹 반응을 못할 정도로 도슈가 허수아비는 아니지.'
이러니저러니 해도 도슈는 한 따까리 한다.
단순히 개념없는 유저였으면 도전을 받아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챔프폭과 플레이 성향이 치우쳐지긴 했어도 순수한 실력만 따진다면 아마추어 중에서 손에 꼽는다.
상대하는 내가 프로 중에서도 탑클래스라 상대적으로 못해 보이는 거지, 도슈의 실력 자체는 나 개인적으로도 높게 평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의 실수를 기대하는 플레이를 할 수는 없다.
과감한 것과 무리수인 것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확연하게 다르다.
<가속!>
다시 한 번 관문을 타고 쏘아진 번개 포탄이 아링에게 정확히 맞아 터진다.
3레벨에 올라 스킬 레벨이 두 번 찍힌 번개 포탄의 데미지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도슈의 아링은 벌써 체력이 반피나 빠진 채 마지막 포션을 목에 넘기고 있다.
이 흐름대로 라면 최소한 집보내기.
운이 좋다면 킬각은 아니더라도 점멸을 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역시 올마스터 딜교환 겁나 깔끔하네. 포킹도 예술이고~
-스킬 적중률도 적중률이지만 난 죽었다 깨어나도 평타 견제를 저렇게 깔끔하게 못하겠다..
-ㄹㅇ 제임스로 저렇게 할 수 있으면 해도 되지. 평타 짤짤이 날리다가 미니언한테 얻어 터짐ㅋ 특히 우리팀 제임스ㅅㅂ
당연하게도 포킹 몇 대 맞혔다고 아링의 체력이 반피나 빠졌을 리 있을까.
1레벨부터 차곡차곡 평타 견제를 우겨 넣은 결과다.
그러면서 아링이 던지는 미혹의 물방울은 무빙을 통해 피해냈다.
패시브 덕분에 체력 수급이 좋은 아링을 숨도 못 쉬게 압박하려면 고작 포킹가지고는 턱도 없다.
'문제는 슬슬 갱이 올 타이밍이라는 건데..'
현재 메타의 정글러들은 초반 갱킹을 필히 염두해 두어야 한다.
요전번의 탈리반도 그렇지만 이블퀸, 리심, 거미여왕.
어느 하나도 초반 갱킹이 약한 것이 없다.
그리고 상대팀의 정글러는 이블퀸이다.
플레이어의 숙련도에 따라 천차만별.
은신을 활용한 갱킹은 정말이지 까다롭다.
눈 뜨고서도 코 베인다는 속담이 딱 여기에 알맞다.
'나는 알 것 같지만 말이지.'
내 포킹을 맞지 않기 위해서 간격을 크게 벌리고 있던 도슈의 아링.
그런데 그 간격이 미묘하게 좁혀졌다.
자칫 실수나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가 않다.
나는 슬그머니 무기를 해머폼으로 전환하며 단정지었다.
'아마 연기도 아닐 거야.'
갱이 온 척 패기를 부리는 플레이는 탑신병자들이 흔히 쓰는 뻥카다.
상대를 소극적이게 만들고 라인전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함.
이는 당연하게도 미드에서 또한 종종 쓰인다.
하지만 연기를 할 작정이었으면 저것보다 더 앞무빙을 밟았다.
그리고 킬각을 내주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딜교환까지 걸었을 것이다.
멈추지 않고 슬금슬금 조금씩 거리를 좁히고 있다는 사실이 내 판단에 확신을 더해준다.
슈웅~!
거리를 좁히던 아링이 역시나 행동을 개시했다.
이전에 내가 아링을 했을 때 쏠쏠하게 활용했던 유혹-점멸로 갱호응을 노려온다.
본래보다 한 타이밍 빠르게 닿아버리는 유혹은 상대의 허를 찌르기에 안성맞춤.
그와 동시에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이블퀸이 모습을 드러낸다.
챠라락!
항시 은신이라는 패시브를 가진 이블퀸의 갱킹은 와드따위로 알아챌 수 없다.
상대의 목전까지 은신으로 숨어있다가 광란의 춤을 활성화해 기습한다.
깜짝 놀란 상대는 허둥지둥 도망가다 목숨을 내주기 일수지만.
'뻔하지 뻔해.'
허를 찌르는 행위는 상대가 조금이라도 방심을 하고 있어야 먹힌다.
나처럼 미리 대비하고 있으면 당연히 씨알도 안 통한다.
맞점멸을 사용해 유혹을 피해낸 나는 망치로 내리 찍었다.
콰득!
정말로 허를 찌르고 싶었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
내가 망치로 찍어버린 대상은 미니언.
하지만 제임스의 해머폼 Q스킬, 망치 찍기는 주변의 적들에게 광역 피해를 가한다.
그 스플래시 데미지가 갱호응을 하기 위해 나에게 접근해 오던 아링에게까지 닿았다.
망지 찍기의 효과는 막대한 물리 피해에 더해 2초동안의 둔화.
제임스의 진면목이 자연스럽게 연계된다.
파아앙!
이 한 방을 위해 미리 무기를 해머폼으로 전환해두었다.
망치로 내려찍고 전기장을 펼치며 곧바로 원거리폼으로 무기를 전환.
점멸도, 유혹도 빠져버린 아링은 코앞에서 쏘아지는 번개 포탄을 그대로 들어맞는다.
탕!
탕! 탕! 탕!
원거리폼의 W스킬, 3연타는 세 번의 평타를 최대 공격속도로 쏠 수 있게 만들어준다.
평캔의 원리를 이용하자 네 번의 평타가 틀어박히며 아링의 체력을 급속도로 깎아낸다.
앞서 반피 가량이 빠져버린 아링은 제임스의 원콤에 풍선처럼 터져나간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순간적인 기지를 발휘해 적팀의 갱킹을 역이용했다.
하지만 아직 기뻐하긴 이르다.
퍼스트 블러드의 값어치는 400골드.
내가 이블퀸에게 마무리 당하면 적팀은 킬값인 300골드에 더해 어시스트값으로 150골드를 추가로 벌게 된다.
물론 솔랭에서의 논리로 '아 나는 라인 바르고 있는데 아군 정글러가 역갱을 안 쳐주네!'
이런 변명이 가능하고 또 틀린 말도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손해가 맞다.
그러니까 한 번 더 적절하게 생존을 목표한다.
치지직.!
찰! 콱!
이블퀸이 끝장을 볼 요량인지 발화까지 걸며 나에게 달려든다.
정말 거지같이 안 지나가는 3초.
다시 해머폼으로 무기를 전환해 번개홈런을 사용할 타이밍만을 기다리고 있다.
번개홈런으로 이블퀸을 한 번 밀쳐낸다면 살 가능성이 쥐꼬리나마 올라간다.
콰앙!
이블린을 뒤로 날려버리긴 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번개홈런은 리심의 궁극기처럼 먼 거리를 밀쳐내지 못한다.
레드가 묻어 둔화된 나에게 이블퀸이 다시금 붙어온다.
현재 이블퀸은 적에게 스킬 피해를 가하면 이동속도가 상승한다.
나에게 가시세례와 쌍발톱을 긁어 한계치까지 속도가 올라간 이블퀸은 적당히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체력도 성한 지라 여차하면 다이브도 무릅쓰지 않을 기세.
결국 포탑 안 쪽까지 기어들어온 이블퀸이 일을 내고 만다.
츄륵!
레드가 묻은 평타와 함께 가시세례가 나를 긁는다.
이미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던 나는 확실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발버둥 정도는 당연히 친다.
파앙!
치지직..!
죽기 직전 원거리폼으로 무기를 전환해 번개포탄을 쏘아냈다.
관문을 통과하지 않은 탓에 다소 맥아리가 없게 터지긴 했지만 데미지 자체는 유효하다.
여기에 발화까지 끼얹자 어찌저찌 킬각이 나타난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더블 킬!
적을 처치했습니다!
이블퀸은 나를 따내자마자 광란의 춤을 재사용해 도망갔지만 이내 목숨줄이 꺼진다.
특성인 아찔한 게임의 효과로 아슬아슬 살아나갈 수 있었던 체력이 발화에 의해 무용지물.
발화는 상대방의 체력을 5초에 걸쳐 고정 데미지로 깎아내릴 뿐만 아니라 치유력 감소 효과까지 존재한다.
상당한 고민 끝에 시도했을 첫 번째 갱킹이 무효로 돌아간 수준이 아니라 역관광이다.
-진짜 올마스터 미드해야 해. 서폿하는 건 재능낭비다.
-거기서 아링을 역으로 킬각 내버리네.. 나같은 쫄보는 스플래시 거리 안 닿을까봐 하지도 못했을 듯….
-아링 따낸 것도 지렸는데 더블 킬까지 스노우볼을 굴려버리냐.. 저기서 꾸역꾸역 도망가다 러브샷까지 노릴 생각을 어떻게 한 거지;
본래라면 도슈를 털어버린 걸로 유쾌함만이 터져나와야 하는 채팅창.
하지만 너무 심하게 관광을 쳐버린 여파로 그런 사소한 것 따위 걸고 넘어갈 분위기가 아니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최근의 나는 기세가 무르익었다.
'뭐, 시간문제겠지만.'
곧 있으면 내 방 뿐만 아니라 도슈의 방송도 채팅창이 미어터질 예정이다.
도슈의 입장에선 지 놀리는 시청자들 강퇴하기 바빠서 게임 못할 수도 있다.
그것이 변명이 되어 또다시 도전을 한다면 그건 그거대로 상관없다.
찰칵!
더블 킬을 먹은 덕에 골드도, 경험치 도 풍족하다.
본래라면 여제의 눈물방울 때문에 생기는 딜로스가 깔끔하게 해결된 셈이다.
활용만 잘한다면 딱히 딜로스랄 것도 없지만 일단은 기분의 문제.
그리고 시청자들이 신나 있다는 게 중요하다.
-2킬 먹은 제임스 왕귀 예약!
-제임스 성장 잘하면 포킹 한 방에 반피 나가던데.. 맞으면 진짜 원딜하기 싫어짐.
-아링 황천질주로 들어올 때 번개 포탄 딱! 쏴서 이마빡 터트리면 쾌감 진짜ㄷㄷ
채팅창은 이미 이긴 분위기다.
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금 더 게임에 가속도를 붙여야 할 듯싶다.
자신만만 그렇게나 자뻑이 심한 도슈의 아링을 숨도 못 쉬게 압박한다.
아까는 내가 조금 친절했던 탓에 갱호응을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갱호응할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두둘겨 패서 정신을 차리게 만들어준다.
키잉-!
현재 제임스는 여제의 눈물방울을 무조건 빠르게 가야 한다.
무기를 전환할 때 여눈 스택이 쌓이기 때문.
덕분에 굳이 마나 소모를 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스택 쌓기가 가능하다.
'이게 진짜로 괴랄하지.'
빠듯하게 한다면 15분 경에 마나소드가 마나바라기로 진화한다.
어지간히 빠르게 떠도 20분에 떠야 정상인 마나바라기가 15분 경에 나온다면?
그야말로 밸런스 파괴.
제임스의 원콤에 탱커조차 터져버린다.
현재 그 흐름으로 가기에 최상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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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