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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37화 (437/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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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물결

로드 오브 로드의 전설급 프로게이머들.

조금 희한하게도 대부분이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천재와 또라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누군가 말했던가.

그것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경우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을 정도다.

농담이나 과장이 아니라 진지한 사실이다.

예를 들어볼까.

타 AOS게임에서 30대가 넘도록 활동하다가 로드 오브 로드로 전향한 선수라던지.

프로게이머는 아니고 BJ지만 알파고급 피지컬을 보여주는 원딜러라던지.

그 외에도 독특한 명언을 남긴,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군계일학.

날고 기는 톱클래스의 선수들 사이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이가 존재했다.

그에게 붙는 전설이라는 수식어는 단순한 띄워주기라고 볼 수 없다.

형용할 수 있는 수식어의 최고치가 전설이었기에, 고작해야 전설로 남은 남자.

어쩌면 그일지도 모르는 남자가 내 눈앞에 있다.

남자가 향하고 있는 방향은 분명히 선수대기실.

이말인 즉, 높은 확률로 오늘 롤챔스에 참가하는 프로게이머라는 의미다.

"저기.. 혹시 몸이 편찮으신가요?"

엄청나게 신경 쓰인다.

그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

남자의 입장에서 다소 오해를 할 수도 있지만, 오지랖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

나는 오른손을 고통스러운 듯 붙잡고 있는 남자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윽! 으윽! 오른손이.. 오른손이..!"

"많이 아프신가요? 구급차 불러드려요?"

남자는 상당히 고통스러운 듯 자신의 오른손을 더욱 더 거세게 부여잡았다.

통증 때문인지 얼굴을 찡그리고 있다.

그 탓에 내가 아는 남자가 맞는지 확인하기가 힘들다.

'일단은 연락을 할까?'

그가 아니라면 빨리 119에 연락을 하는 편이 옳을 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오른손이 금이 갔거나 하는 일이라면 도의적인 차원에서 도움을 주는 것이 맞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연락을 시도하려 했지만.

"그 남자 멀쩡해. 진짜 아픈 거면 손가락 제대로 펴지도 못해."

뚜벅뚜벅 걸어온 예은이 신경질적인 어조로 툭 내뱉는다.

예은 성격에 확신이 없었으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십중팔구 맞기는 맞겠지만 너 정말 성격 더럽다.

모르는 사람한테 어떻게 꾀병이라 단언할 수 있지.

그만큼 믿음직스럽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다.

예은의 말이 맞다면 이 남자는 왜 아픈 척을 하고 있던 걸까.

인터넷 세계에서 흔하디 흔한 관심종자가, 도슈같은 애가 산책을 하러 온 걸까.

아니면 뭐, 특별한 사정이 있는 건 아닐까.

온갖 생각이 교차한다.

어쨌든 신경 써줄 필요가 없다면 그걸로 됐다.

그런데 이 남자,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구급차 부를 정도는 아닌 거 맞지요? 저기..요?"

"크, 크, 크! 봉인이 풀리는구나..!"

오른손을 부여잡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남자의 어깨가 불현듯 들썩인다.

그러면서 기분 나쁘게 크큭 대며 웃는다.

이거 설마 하지만 비슷한 증상을 가진 환자들을 본 적이 있다.

특히 인터넷 상에 많은데 한 마디로..

"꾀병에 중2병? 참 가지가지도 하네."

최근에 많이 둥글둥글 해졌다고 하지만 역시 예은은 예은이다.

나한테 한정하자면 많이 바뀌긴 했어도 어디가서 무슨 일 있으면 하고 싶은 말 다 한다.

아주 단칼에 중2병이라 단정지었다.

'오른손, 그리고 중2병.. 정말로 맞는 것 같은데..?'

얼핏 보기엔 이상한 흐름이지만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근두근 기대된다.

흩어져 있던 퍼즐조각들이 하나로 모여진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서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평범한 뿔테 안경을 쓴 전형적인 한국 남자의 상.

이 자체는 특별할 것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소름이 끼친다.

마지막 퍼즐조각이 모여짐으로서 그림이 완성됐다.

이 모든 상황이 '그' 라는 사실을 빼도 박도 못하게 증명하고 있다.

'얼굴은 대강 겹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것이다.

현재 그는 아직 프로게이머로서 데뷔하지도 않은 시점이다.

사람 얼굴이라는 게 독특한 특징이 있지 않은 이상 세월, 혹은 기타 요인에 못 알아봐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오른손과 중2병.

이 두 가지 만큼은 그가 가진 고유의 영역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따져볼 것도 없다.

이 남자가 바로 정글의 지배자..!

"닝겐들.. 나의 주인격이 걱정을 끼친 모양이야?"

방금 전까지 고통스럽게 오른손을 부여잡았던 남자가 벌떡 일어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말을 잇는다.

말의 내용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예은이 조금 많이 빡쳐버렸다.

"참아, 참아 예은아."

"제발, 나 쟤 한 대만 때리게 해줘."

나는 바둥대는 예은의 허리를 간신히 붙잡으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유난히 오른손에 집착하는 행동거지.

그리고 중2병에 완전히 물들어버린 말투.

눈앞의 남자는 틀림없이 세계 최고의 정글러, SKY T1이 낳은 전설적인 프로게이머 장병기 선수였다.

.

.

.

* * *

로드 오브 로드의 신은 미드에 테이커를, 서폿에는 매일라이프를 보냈다.

그리고 정글의 자리에는 자신이 직접 내려오셨다고 한다.

그러한 드립이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로 장병기 선수의 정글 실력은 빼어났다.

세계 최고의 정글러

신의 오른손.

그에게 붙어오는 수식어는 너무나도 많았지만 단 하나도 만족스러운 것이 없었을 정도였다.

최고라는 말조차 그를 표현하기에는 역부족했다.

그렇다면 그를 뭐라고 부르는 게 옳을까.

정말로 많은 말이 오갔지만 한 가지로 결론지어졌다.

그가 바로 정글의 신이자 정글의 동의어다.

<비 The Jungle  God 행기>라는 칭호는 그렇게 탄생되었다.

"아까 그 재수 없는 중2병 자식.. 진짜 한 대 때렸어야 하는데 너 때문에 못 때렸잖아!"

"사람을 때리는 건 일단 범죄다..?"

예은이 씩씩대며 나에게 따져댄다.

폭력사태를 방지한 공로는 인정 받기는 그른 것 같다.

확실히 방금의 상황은 나도 살짝 짜증이 났다.

SKY T1 비행기라는 아이디를 쓰는 장병기 선수.

그는 중2병 컨셉으로도 많이 유명했다.

인터뷰 자리에서 자신의 오른손에 봉인한 흑염룡이 들끓는다던지.

영문 모를 소리를 해대는 것으로 상당히 입방아에 올랐다.

뭐,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이미지.

유머러스한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컨셉은 현실에서도 유효한 듯했다.

방금 전 만났던 그는 손발이 오글거리는 대사를 내뱉으며 예은의 화를 자아냈다.

결국 개빡쳐버린 예은이 허리를 감싸 안은 내 팔을 떼어내고 쫓아갔다.

'무서울 만도 하지만.. 그래도 연기였던 모양이니 다행이네.'

미친 개는 매가 약이라는 속담이 있다.

위기감을 느끼자 없던 정신도 돌아왔는지 부리나케 도망갔다.

컨셉도 컨셉이지만 일단은 살아야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노릇이다.

화난 예은은 오싹할 정도로 무섭다.

다름아닌 내 경험담이니 틀림없다.

당하고 살았던 과거에 찔끔 나오는 눈물.

나는 봉변을 당해버린 장병기 선수에게 부디 트라우마가 남지 않기를 기도했다.

"하아.. 간만에 폭발했네. 진짜 재수없었어. 으~ 느글거려!"

"조금 심하긴 했지? 참자, 참아. 세상에 이상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야?"

어째서 그가 그런 컨셉을 가지게 된 건지는 몰라도 이것 하나는 이견의 여지가 붙지 않는다.

그의 실력은 진짜다.

오른손에 봉인했다는 흑염룡이 단순한 컨셉으로 치부될 수 있었던 이유도 실력 덕분이다.

프로게이머는 실력으로 모든 것을 말한다.

흑염룡의 전설은 로드 오브 로드에서 하나의 신화가 됐다.

컨셉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팬들은 그의 오른손에 흑염룡이 잠자고 있다고 믿는다.

봉인을 푸는 순간 엄청난 캐리력을 보일 거라는 기대는 팬들의 가슴을 들끓게 만든다.

"나 지금 주먹이 근질근질 한데.. 니가 대신 맞아주면 안되냐?"

"..안 아프게 부탁할게."

방송으로 볼 때는 나도 재밌게 봤는데 현실에서 저러니 장단 맞춰주기 힘들긴 하다.

원래부터 인내심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예은이니 저러한 반응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나도 한국에서 프로게이머 활동을 할 땐 재밌는 컨셉 하나 잡아볼까.

내심 생각을 두고 있었는데 고민 할 필요가 싹 사라졌다.

만에 하나라도 했다가는 예은이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잔뜩 짜증이 나서 주먹으로 내 어깨를 툭툭 쳐대는 예은과 함께 경기장의 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이 없다.

북적댄다기 보다는 딱 평일 낮 백화점 정도의 밀도다.

"역시 먹을 거 사갈 거지? 너 근데 그렇게 먹으면 살 안 찌냐?"

"안 쪄 짜샤. 나말고 네 걱정이나 해. 토실토실 살 오른 게 잡아먹으면 딱 좋겠더라."

무슨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그리고 니가 마녀도 아니고.

마녀라는 말은 쪼오금 어울리기도 하지만 이거 다 니가 찌운 거잖아.

게다가 언제는 또 보기 좋다며.

잡아먹는다는 말이 이중적인 의미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음식을 사가는 건 확정이다.

"경기 시작하려면 아직 30분 정도 남았네.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갈래?"

"됐어. 그냥 좌석 가서 놀자. 그리고 여기.. 알잖아?"

예은이 볼을 볼록 내밀고 정말로 모르겠냐는 듯 물어온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도 설마 예은이 신경을 써주고 있었을 줄이야.

Unknown Error라는 사실을 잠시 묵혀두고 있는 건 예은도 상당히 고려를 하고 있던 모양이다.

사실 나야 뭐 워낙 흔하게 생겨서 신경 쓸 거고 뭐고 없다.

살짝 훈남 느낌 나지 않을까 생각했기도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관리 좀 했을 때의 기준.

딱히 꾸미고 다니지 않으면 흔해빠진 마을청년A다.

유달리 바보짓을 하지 않는 이상 내가 누군지 들통날 염려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예은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

굳이 치장따위 하지 않아도 이 정도 외모의 미인은 보기가 드물다.

최소한으로 따져도 상위 0.1%, 어쩌면 그 이상.

그런 미인에 더해 나까지 함께 돌아다닌다면 알아 봐달라고 광고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그래도 뭐 설마 하지만."

"여기가 어딘지 몰라? 서프라이즈로 남겨두고 있는 거면 제대로 신경 쓰라고? 어설프게 들키지 말고."

스프링 시즌 우승 인터뷰 자리에서 모든 것을 밝히겠다.

사실 딴지를 걸어야 하는 부분은 내가 Unknown Error라는 사실을 숨기는 게 아니라 우승을 할 수 있냐.

그 부분이 가장 얼토당토 않아야 하지만 예은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은 반응이다.

오히려 그것도 못하면 한 대, 아니 많이 때릴 기세다.

'자의식 과잉일 수도 있지만. 이곳이라면 정말로 우릴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

다른 장소면 몰라도 이곳은 상암 E-스포츠 경기장.

전국의 로드 오브 로드 팬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이곳에서 눈에 띄는 행동을 하기는 뭣하다.

아무리 나와 예은이 경기장에서의 모습과 다르게 차려입었다고는 하지만 간혹 눈썰미가 좋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혹은 나의 포스가 모자를 푹 눌러 쓴 정도로는 억제되지 못할 수도 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는 예은의 충고는 깊이 새겨들을 만하다.

"너도 확! 한 대 맞을래? 멍멍이 소리 말고 빨리 쇼핑이나 해. 나 닭다리 뜯고 싶어."

"이미 다 때려 놓고 무슨.. 그래, 맛있어 보이긴 하네. 사가자."

튀긴 게 아니라 구운 닭다리.

다른 부위가 아닌 다리 부위만 노릇노릇하게 구워 팔고 있다.

그리고 버터감자라던지, 매콤하게 맛을 낸 떡꼬치까지!

가벼운 먹거리가 아니라 한 끼 식사로 떼워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의 음식들을 종류 별로 전부 싹쓸이했다.

분명히 점심을 먹고 왔는데 예은에몽의 배는 4차원 주머니 같다.

"여기 괜찮다. 가격은 조금 세지만 명절날 휴게소 느낌?"

"그러게. 원래 이 정도는 아니었던 거 같은데 후원을 많이 받기 하나 봐?"

예은이 한 보따리 사온 음식들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쭉 둘러본다.

원래 롤챔스가 이렇게까지 먹을 것 잔치인 곳은 아닌 거로 아는데.

이번 스프링 시즌이 여러 대기업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긴 하나 보다.

이미 한 번 와봤기에 알지만 내부 인테리어라던지 여러가지가 반년 전과는 수준이 사뭇 다르다.

그렇게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와 예은은 예약한 좌석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자리.

그러면서도 경기장이 한 눈에 다 들어온다.

흔히 말하는 꿀좌석이라 예매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는데 예은이 잘도 따왔다.

예은과 나란히 앉아 노닥거리며 오늘의 첫 경기를 기다렸다.

마진 수비대와 SKY T1 K의 단판 승부.

정글 그 자체라 불리게 될 비행기의 첫 출범을 말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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