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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물결
국방부 퀘스트 수행 당시.
나는 선임한테 억울한 말을 정말로 많이 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짜증나는 소리를 하나 꼽자면 이것.
장난으로 말해도 짜증이 솟을 정도다.
"미안하다고 하면 군생활이.. 아니 양푼이 비어?"
"도저히 못 먹겠셈! 차라리 날 죽이셈!"
단언컨데 억지로 먹이는 건 아니다.
먹으면 내기의 패배는 없던 걸로 해주겠다.
그렇게 이야기가 오갔고 도슈도, 본명 이초홍씨도 받아들였다.
"우엑, 이런 음식물 쓰레기를 왜 먹는 거셈? 누렁이도 이런 누렁이가 없으셈. 커플이 쌍으로 미각이 맛간 거셈."
물론 한식 중에는 다소 비쥬얼이 안 좋은 음식이 가끔 있다.
대표적인 음식이 바로 비빔밥.
아무래도 여러 음식들을 섞어버리기에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단점이다.
하지만 이래 봬도 비빔밥은 평가가 높은 편에 속한다.
외국인들 입맛을 기준으로도 상당히 괜찮다.
그런 비빔밥을 도저히 먹지 못하겠다?
한국인으로서의 수치.
용납하지 못할 편식이며 못 먹겠다면 먹게 만들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예은이 친절하게도 편식을 하는 도슈도 먹을만한 비빔밥을 만들어주었다.
"참치 국물을 왜 넣는 거셈? 드디어 음식물 찌꺼기라는 걸 인정한 거셈? 키킥 그럴 줄 알았셈. 근데 왜.. 비비셈?"
일반적으로 참치캔은 당연히 살코기 부분만 먹고 기름은 버린다.
그러나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비빔밥을 할 때 참기름 대신 참치 기름 부어서 석석 비비면 이게 또 제대로 맛깔난다
그렇게 휘휘 저어서 숟가락을 푹! 삽처럼 한 수저 퍼버린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날 너무 탓하지 마."
"이러지 마셈! 이러지 마셈! 아줌.. 아니, 언니 살려주셈!"
음식 남기면 벌 받는다.
봐주기에는 못할 말을 너무 했다.
이제 와서 후회한다고 돌이킬 수 없다.
온갖 찬거리와 밥 한 그릇을 야무지게 비빈 비빔밥은 도슈의 뱃속으로 오롯이 전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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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나는 나갈 채비를 하기 위해 옷을 갈아 입으며 사흘 전 일을 떠올렸다.
도슈 사건은 아주 만족스럽게 마무리 지어졌다.
과연 어떻게 결론이 났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빔밥은 마지막 한 숟갈까지 꾸역꾸역 다 먹였다.
'이래 봬도 나름 신사적으로 먹이려고 노력했는데.. 정작 본인은 달리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먹다가 목 맥히면 사이다도 한 잔 따라주고.
물린다 싶으면 김치도 한 점 숟가락에 올려주고.
비빔밤에 대해 선입견을 지울 수 있도록 많이 노력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이 정도 소리 들은 거면 충분히 성공이 맞지.'
앞으로 도슈는 급식 투정 안 하는 착한 아이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물론 아무거나 비빈 비빔밥은 조금 잔인해서 몇 입만 먹이고 본래 먹이려고 했던 라이트한 비빔밥으로 선회했으니 망정이다.
예은이 폭주해서 만든 비빔밤은 솔직히 나도 아슬아슬했다.
그렇게 어떻게든 비빔밤을 완식한 도슈는 도망가려고 했다.
일 끝났으니 가도 상관은 없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뒤끝이 작렬한 예은이 도슈의 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였다.
대체 무슨 말을 들은 건지는 몰라도 애가 오들오들 떨어대더라.
꺽꺽 거리는 도슈를 불쌍해서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 주고 버스 태워 보냈지만 적반하장.
버스에 타자마자 창문을 열고 약을 올려 댄다.
그래서 잽싸게 쫓아가 버스를 세워 잡아 탄 다음 두 정거장 동석하고 꿀밤 때려서 보냈다.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핸드폰 번호랑 주소까지 받아냈다.
당연히 안 내주려고 했지만 끝까지 따라간다고 하자 울먹거리며 건네줬다.
'말하고 보니 내가 집적 거리는 형세가 되긴 했지만 어쨌든..'
앞으로는 까불면 현실갱을 가주겠다.
그리고 다음에 만났을 때 또 거지같은 급식체 쓰면 비빔밥으로 코스 요리다.
내 말에 도슈는 부들부들 대면서도 고개를 끄덕였으니 어련히 알아들었을 거라 믿는다.
철이 없어서 그렇지 머리가 나쁜 아이는 아니여 보였다.
"잘 갔다 오고. 혹시 하지만.. 너 그런 취향은 아니지?"
"내가 미쳤냐. 그런 꼬맹이를 좋아하게."
예은이 내 옷차림을 점검해준다면서 여러 군데를 톡톡 두들기며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온다.
정말로 만에 하나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안심해도 좋다.
예은이 따져온 상대는 다름아닌 도슈.
얼핏 보아도 키가 160cm이 안되어 보이는 도슈는 썩 귀엽게 생기긴 했다.
눈썹을 기준으로 반듯하게 자른 일자 앞머리.
검은 생머리는 허리춤까지 내려와 찰랑거렸다.
딱 고등학생다운 귀여움이랄까.
방구석 게임 폐인 치고는 나름대로 관리 좀 하고 다니는 모양새였다.
'대리로 번 돈을 치장하는 데에 썼다고 했던가.'
중고등학생, 요즘은 초등학생부터 꾸미는 데에 관심이 많다고 하더라.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돈.
부모님 문제야 다 어떻게든 해결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도슈는 대리를 통해 돈을 쉽게 벌었다.
'이러저러 짜증이 많이 나긴 했겠구만.'
그 나이 또래의 애들이 으레 그렇다.
별것도 아닌 걸로 짜증내고, 자존심 무척 세고.
아무리 불법적인 거라고는 하지만 가지고 있던 걸 뺏겼으니 심통이 낫겠지.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이라고 하니 앞으로는 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 잘 갔다 오고. 올 때 맛있는 거 사오고."
"아야, 이거 성추행이야."
예은이 인사 대신 내 엉덩이를 툭 두들겨왔다.
요즘 따라 갈수록 안 좋은 쪽의 장난기가 심해진다.
딱히 싫은 건 아니지만 이러다가 확 돌려주는 수가 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예은과의 인사를 마치고 현관문을 나섰다.
목적지는 서울시 마포구.
E-스포츠의 성지라 불리우는 상암 E-스포츠 경기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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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스프링 시즌.
그 맛배기를 보여주는 조별 리그가 드디어 끝이 났다.
A조의 진출자는.
얼밤.
SKY T1 K.
삼선 레드.
KTX 롤러코스터 B팀.
B조의 진출자는.
불밤.
가짜에어 독수리.
삼선 블루.
마진 공격대.
각각 일곱 팀씩 자웅을 겨뤘던 A조와 B조는 총 여덟 팀만이 살아남았다.
나머지 하위권의 여섯 팀은 2부 리그로 강등되어 다시금 롤챔스 시드권을 목표로 해야 한다.
어쨌든 간에 중요한 건 본선 리그.
그 대진표를 짜는 조추첨식은 후폭풍이 아주 대단했다.
8강 리그의 이튿날임에도 잉벤에서는 그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도 한창이다.
─빅빠따맨의 포스가 잊혀지지 않는다.
이번 시즌의 우승 각오가 아주 남다르더만.
8강에 맞붙는 팀 누가 됐든 박살을 내준데.
그런데 선세레모니로 빠따 휘두름ㅋㅋㅋ
└ㄹㅇ 오줌지릴 뻔ㅋㅋ 빵 터짐.
└마크눔 상대팀으로 불밤 뽑은 후에 표정 썩은 거 본 사람?
└현실에서도 겁나 무서운가 보다 빅빠따맨 성님ㄷㄷ
살기가 등등했던 조추첨식의 신호탄을 울린 팀은 불밤이었다.
불밤의 주장 빅빠따맨이 목재로 추정되는 야구 방망이를 들고 단상에 올랐다.
오르자마자 크게 휘둘러 스윙!
긴장감을 제대로 고조시켰다.
<저희와 8강에서 만나는 팀은 이렇게 됩니다.>
여덟 개의 공백 중 세 번재 칸에 '불밤' 이라 쓰인 카드를 찰싹 붙인 빅빠따맨은 그렇게 선언했다.
첫 타자인 빅빠따맨이 승리를 호언장담하는 선세레모니를 선보이자 다른 팀들도 가만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각 팀의 주장들만 죽어났다.
삼선 레드의 주장 아웃섹은 스윙질 대신에 날라차기로 자신의 주특기인 아웃섹킥을 연기했다.
이에 뒤질 수 없다는 듯 얼밤의 주장 클끼리는 눈을 감고서 마음 속의 리심과 일심동체가 되었다.
기타 등등 각 팀의 주장들은 저마다 무언가 하나씩은 보여주었다.
안타깝게도 몇몇의 실패 사례들.
잉벤을 포함한 각 커뮤니티에선 깊은 유혹의 꽃미남이 생각난다며 애도를 표했다.
─오늘 어디 대 어디냐?
찾으러 가기 귀찮다.
스피드잉벤 출동ㄱ
└내 소개를 하지! 나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스피드잉벤! 오늘은 삼선 블루 대 가짜에어 독수리야!
└설명을 덧붙이자면 삼선 블루는 씨지맥을 필두로 윈터시즌의 우승을 했던 신흥 강호지!
└가짜에어 독수리는 극후반을 바라보며 원딜러인 스마일 선수를 키우는 전형적인 진시황 메타야!
└아, 참고로 스마일 선수의 피지컬은 거의 헬퍼급이라고 전해져! 난 그럼 바빠서 20000!
글쓴이-언제나 고마워 스피드잉벤! 그런데 진시황 메타가 뭐야?
진시황 메타.
불로초로 영원을 꿈꾸려 했던 진시황은 한 마디로 절대 권력을 가진 황제였다.
진나라라는 나라 자체가 황제 하나를 위해 존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즉, 진시황 메타는 모든 팀원이 단 한 명을 뒷받침하는 메타를 일컫는다.
쉽게 말해 원딜 캐리 조합이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수준의 원딜 캐리 조합.
─조별 리그에서 가짜에어 독수리.. 진짜 심하긴 했어.
그래도 전에는 후반 가도 승패를 장담 못하니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스마일 선수 믿고서 대놓고 후반 가더라.
탑에서 빅 웨이브 몰아놓고 딸피 파이어뱃 다이브 안 친 거 기억나는 사람?
그거 적 정글 왔어도 무조건 따는 건데 해설진도 답답해서 뒤질라고 했잖아.
콩알만큼 위험해도 절대 안 해.
게임 이길라고 목숨을 건 거 같아.
└가짜에어 독수리 경기할 때만 롤챔스가 노잼스가 되어버림;
└만에 하나라도 가짜에어 독수리가 우승까지 가면.........
└상상도 하기 싫네 그건 지옥이다 진짜;
단순한 원딜 캐리 조합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챔피언 선택부터 갱킹 위험이 큰 챔피언은 하지 않는다.
한타는 당연히 하지 않고 소규모 국지전 또한 피한다.
언제까지?
원딜러에게 3코어가 나오기 전까지.
물론 이는 로드 오브 로드라는 게임의 특성상 본래라면 불가능하다.
위험 부담을 짊어지지 않는다는 소리는 그만큼 얻는 것도 없다는 소리니까.
그리고 상대팀이 소극적인 상황에서 스노우볼을 못 굴릴만큼 프로팀들이 만만하지도 않다.
용을 포함한 오브젝트를 뺏길 수밖에 없을 뿐더러,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다이브라던지 블루 컨트롤이라던지 눈덩이가 굴러나간다.
그럼에도 극후반을 지향하는 진시황 메타를 고수할 수 있는 까닭.
가짜에어 독수리가 자랑하는 원딜러, 스마일 선수 때문이다.
그가 후반 캐리를 철저하게 책임진다.
게임의 시작과 과정이 어찌 됐건 가짜에어 독수리의 게임은 마무리가 늘 똑같다.
스마일 선수를 잡느냐, 못 잡느냐.
마치 채소의 일종인 파프리카와도 같다.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파프리카가 알고 보니 맛이 전부 똑같더라!
이번 경기는 다르겠지 하고 보는 팬들의 입장에선 언제나의 허무한 결말이었다.
심지어 간간히 피망처럼 쓰디 쓴, 지옥같이 지루한 경기들까지 섞여 있어 팬들로서는 가짜에어 독수리가 꺼려졌다.
─하지만 그래도 삼선 블루라면..
가짜에어 독수리도 무적은 아니잖아?
조합 잘 짜서 원딜러만 포커싱하면 이기는 거 아니야?
씨지맥이 이번에도 무언가 하나 준비해 왔을 거라 기대해!
└글쎄.. 가짜에어 독수리는 네 명이서 작정하고 원딜러만 지켜서 그게 문제야.
└탑쇈에 정글 나무카이, 미드 럭키 나왔을 때는 진짜 토나왔어.. 원딜러 빼고는 딜 하나도 없는데 원딜러가 안 죽어.
└그걸 끝까지 봤냐? 난 픽 보고 바로 채널 돌렸는데 선견지명이 부족하네.
가짜에어 독수리는 인기가 더럽게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실력이 저평가 받는 건 아니다.
오직 이기기 위해서만 게임을 하는 만큼 승률만큼은 상당하다.
실제로 불밤의 뒤를 이어 B조 2위로 본선에 진출했으니 설명이 필요할까.
그런 가짜에어 독수리를 상대로 삼선 블루가 승리를 따낼 수 있을 것인가.
잉벤의 반응은 솔직하게 회의적이었다.
지난 윈터 시즌 씨지맥이 보여준 포스라면 기대할 만도 하지만 이번 시즌은 애매하다.
씨지맥이 다소 부족했던 삼선 블루를 우승으로 이끌 수 있던 원동력은 넓은 챔프폭.
조금 까놓고 말하자면 꿀챔이다.
그런데 그 꿀챔이라는 게 널리고 널린 돌멩이겠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꿀챔을 찾는 것은 정말로 어렵다.
실제로 조별 리그에서 씨지맥은 별다른 카드를 선보이지 않았다.
물론 본선을 대비해 아껴두는 걸 수도 있겠지만 과연.
설사 꺼낸다고 해도 그 혼자서 적장이라 할 수 있는 스마일 선수를 쳐낼 수 있을지.
이에 대해 현재 잉벤에서는 토론을 가장한 입롤이 한창이다.
씨지맥 혼자면 몰라도 한 명이 더 존재하니까.
올마스터와 씨지맥이 보여줄 시너지.
가짜에어 독수리라는 철옹성을 무너뜨리기에 합당한 수준인지는 붙어봐야 알 일이다.
->오늘 한 편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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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이 주시는 쿠폰 덕에 힘내서 연재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히로인이 아니라 여캐임 아무튼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