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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48화 (44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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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는 서포터

첫 번째 세트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판가름 났다.

얼핏 비등비등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결코 아니다.

게임의 승기는 가짜에어 독수리가 아주 천천히 잡아가고 있었다.

하염없이 느릴 뿐 나무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 나무늘보와도 같다.

하품이 나오는 속도로 나무를 올라가 결과적인 승리를 가져갔다.

가짜에어 독수리의 경기를 표현하자면 이러한 느낌이다.

'나도 어지간히 답답했는데 시청자들은 오죽했을까.'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정말이지 부스 안으로 쳐들어 가고 싶은 심정일 거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어떻게든 이기면.. 물론 좋겠지만 애초에 응원하고 싶지가 않다.

평소에 안 그러다가 가끔 그러는 거랑, 허구헌날 그러는 거랑은 이야기가 다르니까.

조금 심하게 이야기를 하자면 흥행하고 있는 프로판에서 단물만 쪽쪽 빨아먹는 꼴이다.

재밌는 게임판에서 혼자 재미없게, 하지만 이기는 게임만 하는 팀.

진드기같은 팀이라는 비평을 받아도 싸다.

'사실.. 가짜에어 독수리만을 탓할 건 또 아니긴 해.'

그도 그럴게 프로게이머는 결국 이겨야 인정을 받는다.

아무리 재밌게 게임을 한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게임을 진다면?

천천히 가도 될 거 무리수를 뒀다는 둥, 속절없는 비판을 감수해야 한다.

그럴 바에야 재미없더라도 이겨버리자.

정말 기괴하고 공포스럽게도 모든 프로팀들이 그러한 마인드를 가졌던 시즌이 있었다.

지금은 아니고 다음 시즌부터 대부분의 게임단들이 가짜에어 독수리처럼 변모하게 된다.

재미라는 것이 승리의 부산물이 될 수 없는 게임의 양상.

여기서 한풀 꺾어놓는다면 다가오는 시기가 조금은 느려질지도 모르겠다.

"다음 세트는 제가 나가도 되겠죠? 감독님?"

"아니야, 아니야. 게임은 끝날 때까지 가봐야 아는 법이라고? 게임시간 50분쯤 되면 글로벌 골드 차이는 의미가 없다는 사실, 자네는 모르는 모양이야 허허."

모르긴 개뿔이.

말할 것도 없지만 게임 내 지식으로 서지훈 감독보다 내가 낮을 리가 있겠는가.

현재 게임 상황은 사실상 끝났다.

대회 경기이기에 차마 서렌을 누르지 못하고 카운트 다운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감독은 아직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는 모양.

지금까지 게임이 흘러가는 게 느렸다고 앞으로도 느릴 거라고 착각하는 듯하다.

'탑라인 억제기는 깼으니 미니언 웨이브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차분하게 결정타를 꽂아 넣겠지.'

상대방의 심장을 향해 칼을 초속 0.01mm 받아 넣는 듯한 상황이다.

죽는 입장에서도 어지간히 답답하지만 보는 입장에서도 등을 떠밀어주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그렇다고 피가 푸슉!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니니 문외한의 눈에는 아직 승기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언컨데 역전은 없다.

─아군의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봇라인의 2차 포탑에 연이어 억제 포탑까지 부숴졌다.

씨지맥이 탑라인의 빅웨이브를 막으러 간 사이에 벌어진 참사.

나머지 네 명은 포탑을 포기하고 빼는 게 최선이었다.

게임 시간이 제법 흐른만큼 강력해진 화력은 억제 포탑을 눈 깜짝할 사이에 철거해냈다.

선택지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억제탑을 내주고 사릴 것인가

억제탑을 지키면서 싸울 것인가.

말이 이지선다지, 고를 수 있는 건 정해져 있다.

이놈의 가짜에어 독수리는 정말로 눈치 하나 안 보고 게임을 굳히려고 하는 팀이다

이번에 억제탑을 철거하면 재생되는 탑라인의 억제 탑을 재차 부수고 한 타이밍 더 기다려서 미드 억제탑을 밀러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느리더라도 확실하게 게임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

삼선 블루는 그나마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서 한타를 걸어보지만 승산이 희박하다.

챱! 챱! 챱!

가짜에어 독수리의 원딜러, 꼬그모가 미쳐 날뛴다.

당연히 삼선 블루에서도 어떻게든 물기 위해 노력했다.

만약 중반 한타였다면 원딜러가 절대 버티지 못했을 강제 이니시.

하지만 후반쯤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커져라!>

서포터인 랄라가 체력을 뻥튀기 시키고, 정글러인 나무카이가 넓다란 나무진을 깐다.

나무카이의 궁극기, 대자연의 포옹은 안에 있는 아군이 받는 데미지를 20% 감소시킨다.

여기에 더해 톨라리 펜던트, 룬방패, 미카엘의 그릇 등 서포팅 아이템들이 겹겹이 쌓인다.

그야말로 황제 대접.

풀템은 커녕 신발까지 팔고 여섯 개의 값비싼 코어템을 두룬 꼬그모의 막강한 화력이 활화산처럼 분출된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적 더블 킬!

적 트리플 킬!

적은 전설적입니다..!

중간에 핑크 와드를 잘못 치는 카이팅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사소한 부분.

나머지 팀원들의 딜링 능력이 떨어지는 가짜에어 독수리이긴 해도 꼬그모의 지속딜은 모든 것을 커버한다.

6코어의 꼬그모가 뱉어대는 산성침이 탱커를 3초만에 찢어버리고, 딜러는 정확히 두 대 내지 세 대면 죽는다.

그런 괴물같은 꼬그모를 도저히 죽일 수가 없으니 한타의 승패는 불보듯 뻔하리라.

'요즘 메타에서 영 떨어진 나무카이까지 픽할 정도로 원딜 중심의 조합이라..'

당연한 말이지만 삼선 블루의 돌진 조합도 만만치 않았다.

씨지맥의 거미여왕이 점멸 실뭉치를 그림같이 꽂았고 그 후에 풀콤보를 넣으면서 줄타기까지 완벽했다.

다만, 딜탱이 거미여왕으로서는 후반에 넣을 수 있는 딜링이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다소 부실했던 연계는 꼬그모의 생존으로 이어졌고 한타는 그것으로 끝.

꼬그모가 살아버린 시점에서 가짜에어 독수리의 승리는 약속되었다.

"아이고, 맥아! 거기서 걸지 말고 조금 더 버텨보지. 이거 참, 참. 그래도 잘 싸웠어. 1시간 가까이 끌고 왔으면 막상막하였고 말고 암!"

"하아.. 그렇게 평가해주신다니 다행이네요."

경기를 마치고 온 씨지맥에게 서지훈 감독이 본심에도 없을 입에 발린 소리를 늘여 놓는다.

이를 듣는 선수들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씨지맥의 빈정거림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감독은 로드 오브 로드의 지식이 옅었다.

50분을 살짝 넘었던 게임은 그러게 봇 억제탑 앞에서의 한타로 종결되었다.

'아슬아슬은 개뿔. 팀의 분위기가 초상집이구만.'

차라리 초반의 실수에 의해 게임의 균형이 급격히 무너진 거면 사정이 나았으리라.

다음 판에서는 실수를 하지말자, 혹은 상대 팀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를 주의하자.

어찌저찌 정신 차리고 다음 판의 가닥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가짜에어 독수리와의 경기는 선수 체감이 절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저 기분.. 아주 잘 알고 있지.'

차후 운영을 가장한 굳히기가 심각할 정도로 판을 치게 되는 시즌4.

당시에는 강팀과 약팀이 맞붙어도 의외로 초중반은 비등비등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강팀이 약팀을 거의 무조건 이긴다.

잘 모르는 사람의 눈에는 비슷하게 가다가 한타 가서 졌네, 그렇게 생각될 수 있겠지만 아니다.

실질적인 글로벌 골드 격차가, 킬차이가 확확 나지 않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선수들의 입장에서는 게임내내 목이 턱! 막힌 심정이다.

비유를 하자면 등이 겁나 간지러서 손가락을 뻗었는데 닿지를 않는 그런 느낌이다.

여기서 한 번 더 게임을 해보면 달라질까?

비슷한 구도 또 원딜 못잡아서 지겠지.

입 밖으로 차마 내뱉지는 못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거다.

현재 삼선 블루의 팀원들은 사기가 밑바닥을 기고 있다.

"이거는 나랑 명진이가 조금 더 강력한 픽을 해서 라인전을…."

"아냐, 아냐. 이번에는 우리팀도 나를 포커싱하는 조합을 하는 게.."

눈치 느린 감독을 모르고 있지만 침체돼 있는 부스 안의 분위기.

두 명의 눈동자만은 아직 죽지 않았다.

어떻게든 승리할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 작전 회의를 멈추지 않고 토론을 이어간다.

씨지맥과 더불어 한 명 더.

삼선 블루의 원딜러 헬멧 선수였다.

씨지맥의 주장은 방금 전의 조합보다 조금 더 강력한, 그러면서도 초중반에 힘을 싣는 조합을 해서 저 철옹성을 무너뜨리자.

그에 반해 헬멧 선수는 비슷한 형식으로 후반을 가자, 자신도 상대팀의 원딜러만큼 성장한다면 충분히 승산을 놀려볼 수 있다.

완전히 상반된 의견을 내비치고 있었다.

둘 모두 나쁘지 않은 의견이고 지금의 상황에서 삼선 블루가 할 수 있는 최선책이다.

둘 중에서 어느 쪽이 조금 더 나은 선택일지.

그리고 실제 게임에서는 어느 쪽을 선택하게 될지.

열렬한 토론을 하는 와중에 미안하지만 나는 조금 더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려고 한다.

'짜장면과 짬뽕 중에서 꼭 고를 필요는 없잖아?'

요즘은 두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 네 가지도 한 그릇에 담아 준다더라.

그러니까 그 좋은 거 하나만 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씨지맥과 헬멧 선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속삭였다.

"그러면 그 두 가지 한꺼번에 하죠."

꽤나 토론에 열중하고 있었는지 나의 등장을 조금 뒤늦게 파악한 모양이다.

열심히 말을 주고 받던 씨지맥과 헬멧 선수의 말이 멈췄다.

아니, 말문이 막혔는지 입만 뻐끔거린다.

그들이 오락가락한 정신을 붙잡기 전에 나는 말을 이었다.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지나치게 광오한 자신감의 표현.

잠시 침체되었던 부스 안에는 다른 색깔의 감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

.

.

* * *

삼선 블루의 부스 저 건너 편.

반대 방향에 있는 부스 안에서 가짜에어 독수리의 선수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다.

1승을 했다고는 하지만 아직이다.

잉벤을 포함한 커뮤니티 사이트에서는 자신들을 욕할지 언정 가짜에어 독수리의 선수들은 사뭇 진지했다.

"이걸로 1승이네. 전에는 이렇게 운영을 해도 승리를 장담하지 못했는데 네가 와서 참 다행이야."

"MVP는 항상 빼앗기긴 하지만 말이야 키킥."

아무래도 원딜 중심의 조합이니 보니 스포트라이트도 원딜이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원딜러의 실력에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면 잘 받혀준 다른 선수에게 남아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 가짜에어 독수리의 원딜러, 스마일 선수는 원딜러로서 그야말로 완벽하다.

단 한 가지를 빼놓고 말이지만.

"다른 분들이 제 부족한 결점을 채워주신 덕분이죠. 저는 그저 맡은 바 역할을 묵묵히 수행했을 뿐입니다."

겸손해 보이는 대답.

이를 듣는 나머지 가짜에어 독수리의 선수들도 훈훈하게 고개를 끄덕이지만 꼭 겸손인 것만은 아니다.

정말로 스마일 선수는 가짜에어 독수리가 아니었다면 이만한 활약을 못했을 지 모른다.

한 가지라고는 했지만 그 한 가지가 보통 크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말해서 처음엔 농담 하나 했어. 그랜드 마스터쯤 되면서 운영을 전혀 모른다니.. 모른다기 보다는 못하는 거였지만."

가짜에어 독수리의 미드라이너, 갱붐 선수가 특유의 헤맑은 미소와 함께 스마일 선수를 향해 말을 걸었다.

그의 말대로 스마일 선수는 운영을 모르지 않았다.

부족할 지 언정 알고는 있었지만 의도적으로 포기했다.

스마일 선수는 자신의 장점이 초인과도 같은 피지컬이란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쉬운 길이 아니었다.

그 극한의 피지컬을 해내기 위해서는 맵리딩이라던지가 전혀 안됐다.

그렇기에 반쪽짜리 원딜러.

아무리 원딜러라 할 지라도 기본적인 것은 신경 써줘야 한다.

혼자 하는 게임이 아니니만큼 당연한 노릇이다.

실제로 북미 쪽에서는 정 반대로 운영의 특색을 살린 선수가 선전하고 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다.

그만큼 로드 오브 로드에서 운영이란 개념은 필수불가결이여야 했지만.

"우리가 채워주면 되지. 다음 세트도 잘 부탁한다 에이스."

비록 여러 커뮤니티에서 욕을 먹고는 있다지만 가짜에어 독수리의 선수들은 나름대로 자부심이 충만했다.

어떻게 보면 합리화일 수도 있는 논리.

로드 오브 로드도 결국 갤럭시 크래프트와 마찬가지의 흐름을 탈 것이다.

초중반 날빌 싸움이 종결되고 차차 선수들의 실력과 지식이 발전함에 따라 후반 게임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즉, 자신들 가짜에어 독수리는 메타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는 셈이다.

시대를 앞서가는 자들이 욕을 먹는 것은 역사를 통해 증명된 바.

아직 과도기라 그렇지, 언젠가 다른 팀들도 비슷한 행태를 취하며 가짜에어 독수리는 재평가 받을 날이 온다.

그들의 생각은 반쯤은 맞지만, 어쩌면 10할 맞을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틀리다.

그런 모순스러운 생각을 품은 한 명의 선수가 가짜에어 독수리의 앞을 막아서기 위해 반대편 부스의 선수석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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