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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50화 (4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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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는 서포터

내가 신규 챔피언, 혹은 특이한 픽을 꺼내는 경우가 잦긴 하지만 결코 그냥 꺼내는 일은 없다.

다 사전에 협의를 마치고, 팀원에게 익숙해질 시간을 주고 그러한 과정을 거친 후에야 선보인다.

아무리 꿀챔프라도 팀원들이 호응을 해주지 못한다면 본말전도인 법이니까.

실제로 그토록 OP라고 불리던 픽들도 초창기부터 평가가 좋진 않았다.

팀원들이 못 알아본 건 둘째 치고, 호응하기가 너무 까다롭다는 게 근본적인 이유.

손발을 맞춰본 적 없으니 당연하다.

이렇게 팀원들 간에 말도 안 하고 그냥 끝내는 경우가 이례적인 거다.

'다 생각이 있으니 픽한 거지만.'

약간의 말썽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했다.

팀원들은 상당히 난색을 표해왔고.

특히 헬멧 선수는 다른 걸 하는 게 어떻겠냐? 권유할 정도였다.

씨지맥이 한 마디 해주지 않았다면 쓰렉귀를 못할 뻔했다.

당연히 믿고 있었으니 저지른 거지만 문제가 끝난 건 아니다.

리쉬를 마치고 봇라인을 향해 걸어가고 있던 와중.

원딜러인 헬멧 선수가 라인전을 어떻게 할 것이냐, 끊임없이 이야기를 건네왔다.

"역시.. 라인전을 안정적으로 가면서 그랩각을 노리는 게 낫지 않을까요?"

"뭐, 그런 방법도 있겠죠."

나는 헬멧 선수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 쳐주면서도 입장을 굽히진 않았다.

지극히 공격적인 라인전.

일단은 제가 킬각을 만들어 볼 테니 호응을 해줘라.

그런 식으로 돌려 말하기는 했지만 헬멧 선수는 내심 불안할 거다.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일반적으로 그랩류의 서포터들은 수비적인 라인전을 지향한다.

그러다가 언제 한 번 제대로 그랩각을 노리거나, 아군 정글러가 왔을 때 호응을 해서 킬을 만드는 식이다.

그런데 나는 아예 정반대로 게임을 하겠다고 하니 얼척이 없을 수밖에.

공격적인 라인전을 할 거면 쏘냐나 랄라같은 걸 하지 왜 쓰렉귀를?

하다 못해 호흡이라도 많이 맞췄으면 모른다.

하지만 신규 챔피언으로 공격적으로까지 하면 호흡이 어긋날 공산이 크다.

씨지맥의 말이 있어 더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는 있지만, 현재 내 옆자리에 앉은 헬멧 선수의 표정은 무겁게 진중하다.

'쓰렉귀의 스킬이 뭔지는 대강 안다고 하니 그거면 충분해.'

프로게이머이니만큼 신규 챔피언에 대해 모를 리도 없겠고 솔로랭크에서도 당연히 만나 봤을 거다.

혹시 몰라 물어봐서 확인했으니 틀릴 리 없다.

문제가 있다면 이곳은 대회 경기, 그리고 솔로 라인이 아니라는 사실.

설사 내가 그랩으로 당겨도 봇듀오의 호흡이 정확히 맞지 않는다면 기껏 잡은 킬각이 무산되어버린다.

운이 나쁘면 역으로 적에게 기회를 내줄 수도 있다.

헬멧 선수는 그 부분을 염려하는 모양이지만.

찰싹!

간단하며 효과적인 쓰렉귀의 딜교환 방식.

나는 자연스럽게 다가가 평타를 한 대 찰싹! 갈겼다.

적팀의 원딜러 꼬그모도, 랄라도 당연히 이에 질세라 반격해오지만 헛수고.

철썩!

쓰렉귀의 E스킬, 채찍 쓸기다.

활용하냐에 따라 적을 당길 수도 있고 밀수도 있다.

나는 미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고 나를 때리기 위해 다가오던 랄라와 꼬그모 모두 밀쳐졌다.

단순히 밀린 것 뿐만 아니라 짜증나는 둔화까지.

적들은 더 이상 추격해오지 못한다.

'쓰렉귀의 1렙 스킬은 그랩이 아니라 쓸기지.'

현재 대부분의 쓰렉귀 유저들은 풀리츠크랭커처럼 1레벨에 그랩을 찍는다.

아무래도 비슷한 챔피언이고, 그랩이 킬각을 만들기 좋으니 그럴 수도 있는 이치.

하지만 채찍 쓸기를 찍으면 딜교환이 무척 강력하다.

평타를 치지 않고 가만히 기다린다.

흔히 말하는 기모으기를 끝내면 다음 평타가 묵직하게 들어간다.

그러면서 쫓아오는 적을 밀어버리면 일방적인 딜교환이 성립한다.

"아, 들어갈 때 말씀 해주시지. 근데 딜교환 개이득 봤네."

"이래 봬도 쓰렉귀가 1레벨이 세거든요."

이래서 공격적인 라인전을 하자고 했구나.

나의 말에 헬멧 선수가 고개를 끄덕끄덕 해온다.

그래도 다음 번 딜교환에는 자신도 끼어 달라며 조금은 밝아진 표정으로 말을 건네왔다.

'안타깝게도 다음은 없지만.'

쓰렉귀가 1레벨에 채찍 쓸기를 찍는 이유는 고작 딜교환 하나 때문이 아니다.

채찍 쓸기는 미니언에게도 유효한 광역 피해.

방금 전, 딜교환을 했을 때 은글슬쩍 미니언도 같이 체력을 깎아놨다.

아군 원딜러 헬멧 선수의 토이치가 주섬주섬 미니언을 챙긴다.

"2레벨 되자마자 바로 꼬그모 노려요."

"우리가 빨라봐야 1,2초 같은데 무리.. 어!"

봇라인전에서 선 2레벨은 상당히 중요하다.

먼저 2레벨을 찍은 쪽이 주구장창 라인 주도권을 잡게 된다.

어느 정도냐면 정글러가 풀어주기 전까지는 답도 없을 수준.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상대는 제법 빠듯하게 미니언을 밀었고.

선 2레벨의 타이밍은 빨라봐야 2초, 거의 동등하다.

'그 2초면 이미 끝난 거야.'

쓰렉귀가 낫을 휘휘 돌려서 내던지는 데에 대략 1초가 소요된다.

적에게 도달하는 시간까지 고려한다면 얼추 맞다.

그 시간을 벌어낸 거면 충분.

앞무빙을 밟은 나는 2레벨을 찍자마자 사형을 선고했다.

키잉-!

논타겟 스킬따위, 특히 그랩류를 맞을 리가 없는 적팀의 원딜러 스마일 선수.

그 스마일 선수가 플레이하는 꼬그모의 면상에 직격탄이다.

쓰렉귀의 Q스킬, 사신의 선고가 제대로 걸려버렸다.

"점사 하면 필킬이니까 점멸 써서라도 따요."

사신의 선고가 풀리츠크랭커 그랩의하위 호환이다 뭐다 말은 많지만 하나, 괜찮은 효과가 붙어있다.

낫에 걸린 상대를 1.5초간 스턴시킨다.

풀츠처럼 완전히 끌어오지는 못하는 대신, 그리고 좌우 범위가 좁아 맞히기 힘든 대신이다.

기절해버린 꼬그모에게 CC기가 연계된다.

쨍그랑!

헬멧 선수의 토이치가 독병을 던진 후 평타를 툭툭 쏘아댄다.

독병의 효과는 약간의 둔화.

꼬그모는 느려진 몸을 이끌고 점멸을 사용해 도망가려고 하지만 이미 선고되어 있다.

내가 던진 낫에 맞은 시점에서 죽음은 결정되었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도망가는 꼬그모를 채찍 쓸기로 다시 한번 당겨오고 탈력까지 걸어 빼도 박도 못하게 만들었다.

제아무리 피지컬이 좋다 한들 타겟팅 CC기에는 얄짤 없는 법.

낫에 걸린 시점에서 도망갈 구석은 존재하지 않았다.

"봇에서 퍼블 나와서 깜짝 놀랐는데.. 우리가 땄어? 설마 그랩이라도 맞힌 거야? 저 스마일 선수한테?"

"어.. 맞히더라. 점멸 그랩이라니 생각지도 못했지만.."

미드에서 라인전을 진행하고 있던 키나키나 선수의 물음에 헬멧 선수가 벙찐 어조로 대답했다.

기뻐하고 있는 팀원들에 반해 정작 본인은 떨떠름하다.

일단 받아 먹기는 했지만 방금의 킬각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지. 그랩-점멸을 사용했으니까.'

얼마 전 도슈의 아링이 했던 유혹-점멸과 비슷한 이치다.

점멸을 사용한 위치에서 스킬이 발사된다.

낫을 휘휘 두 번 돌리고 나서야 그랩이 나가는 쓰렉귀에는 엄청난 이점.

나는 그 그랩-점멸을 사용해서 꼬그모를 낚아채버렸다.

무빙이고 뭐고 틀 시간따위 없다.

어디로, 어떻게 이동해도 내가 점멸로 코앞까지 이동해 그랩을 날리니 맞점멸밖에 방법이 있을까.

이 그랩-점멸에 대해 알고 있었다면 예측으로 피할 수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상태라면 그냥 당해야지.

꼬그모는 몸으로서 값진 교훈을 얻은 셈이다.

찰칵!

라인을 쭉쭉 밀어 타워에 꼬라박게 한 후 귀환.

나는 퍼블의 어시스트 값으로 가죽 신발을 구입했다.

그리고 퍼블을 먹은 헬멧 선수는 흡수의 칼이 벌써 나왔다며 좋아라 한다.

"꼬그모 진짜 엄청 말렸네. 이제야 2레벨이고, 이러면 널널이 가도 되겠는데요?"

순식간에 맥스치를 기록해버린 신뢰감!

퍼블을 만들어낸 내 솜씨를 고평가 해줬다면 기쁜 일이지만 안타깝게도 틀렸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원딜러가 가장 중요한 팀에서 원딜러가 말려버렸으니 당연히 수를 써오겠지.'

나는 길고 길었던 조별 리그의 시간을 생으로 보내지 않았다.

지루함을 꾹꾹 눌러 참으며 가짜에어 독수리의 경기를 챙겨봤다.

그냥저냥 어떻게든 후반만 가는 팀으로 보이지만 상황에 따른 맞춤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무카이가 대놓고 봇만 봐서 우리가 라인전을 더 압박하지 못하겠어."

"내가 갈까? 아니면 맥형이랑 같이 탑을 부숴버릴까?"

조별 리그는 각 팀당 여섯 번씩 치렀다.

그 여섯 번의 경기 중에는 가짜에어 독수리가 패배한 경기도 있었다.

내가 신경 썼던 부분은 승패를 떠나 봇라인이 한 번 말렸을 때.

말린 봇라인전을 푸는 가짜에어 독수리의 방식이었다.

'대놓고 봇동선만 밟으면서 아예 탑을 포기해버리는.. 극단적인 전략이라.'

사실 극단적인 수준까진 아니었지만 현재 봇라인의 상황이 그만큼 위중하다.

나는 꼬그모가 CS 먹으러 올 때마다 사정없이 패버리고 있다.

퍼블을 바탕으로 딜교환 주도권을 완전히 가져왔다.

자랑하는 카이팅으로 어떻게 해보기엔 내가 너무 단단해서 체력이 깎이지 않는다.

호롱!

호로롱~!

쓰렉귀의 패시브 덕분이다.

주위의 적이 죽으면 영혼을 하나 뱉어낸다.

무조건은 아니고 그럭저럭 높지도 낮지도 않은 확률.

그런데 이 영혼을 하나 먹을 때마다 쓰렉귀 주문력과 방어력이 하나씩 오른다.

나름대로 AP계수가 자잘하게 붙어 있는 쓰렉귀 데미지가 올라감은 물론, 단단해지기까지 한다.

'입롤이고, 이상이지만 영혼을 잘만 모으면 정말로 서포터가 서포터가 아니게 되어버리지.'

영혼을 차곡차곡 모은 쓰렉귀의 딜링과 탱킹 능력은 어지간한 라이너에 준할 정도다.

그런데 라인 주도권을 꽉 잡고 있으니 영혼 모으기가 한결 수월하다.

문제는 이 이상 나아갈 수가 없다.

봇라인 주변을 쭈뼛쭈뼛 돌아다니면서 와드를 깔고, 지우는 적팀의 정글러 나무카이.

내가 너무 지나치게 몰아붙이지 못하도록 눈치를 줄 목적이다.

"나 보이기 전까지는 절대 움직일 생각 없어 보이는데 그냥 탑 갈게?"

"그래, 끌려 다니는 것보다 그게 날 거 같다."

실제로, 봇라인만 보는 가짜에어 독수리의 전략에 대부분의 팀들이 비슷한 대응을 취했다.

어차피 갱을 안 올 거니까, 시간을 질질 끌 목적이니까 역갱이 성립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냥 탑이나 미드를 찔러서 그쪽 스노우볼을 굴려버린다.

이것이 바로 가짜에어 독수리가 시간을 질질 끌어버리는 노하우다.

원딜러를 노리면 그쪽에서 머릿수를 맞춰 시간을 끌고.

탑이나 미드를 노리면 원딜러가 클 시간을 벌어주고.

어느 쪽으로 가도 가짜에어 독수리가 원하는 흐름이다.

사기적인 피지컬을 자랑하는 가짜에어 독수리의 원딜러, 스마일 선수가 있기에 가능한 전략.

'시간 끌리고, 꼬그모 크고. 꼬그모가 하드캐리하고. 그렇게 되길 원하는 모양인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 장단에 맞춰 놀아줄 생각이 없다.

가짜에어 독수리가 이러한 전략을 취할 거라는 걸 분석을 통해 알아냈다는 의미.

당연하게도 대응할 전략 또한 준비해왔다는 뜻이다.

고고하게 군림하는 황제에게 제대로 찔러 줄 죽창 한 방, 제대로 챙겨왔다.

'앞으로 300골드만 더모아서 귀환하면 완벽해.'

챙겨온 전략이라 함은 라인전의 이탈이다.

현재 시점에선 흔하지 않은 서포터의 로밍.

기동력의 신발을 빠르게 구입해 이동 속도를 극대화한 로밍은 정말이지 까다롭다.

제 2의 정글러라고까지 불리울 정도다.

처음에 가죽 신발을 산 시점에서 움직였어도 괜찮았겠지만 기껏 잡은 라인주도권을 무위로 돌리고 싶지 않았다.

섣부른 로밍보다는 꼬그모를 하드 디나이시키는 편이 재미.. 뭐, 재미 이전에 확실한 소득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철통 수비를 해온다면 본래 계획했던 대로 움직인다.

그러려고 했지만.

"쟤네.. 설마?"

"가짜에어 독수리가 다이브를 친다고? 제길, 방심했다."

프로 리그에서 한 쪽 정글러의 동선이 읽혀버리면 반대 편의 라인에 다이브가 시도되는 일은 흔한 수준을 넘어 정석이다.

그렇지만 저 가짜에어 독수리는 어처구니 없을만큼 수비지향적.

알고 있었음에도 경시했지만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그냥 쭉 뺄까요?"

"아니요. 다이브를 많이 쳐본 팀이 아닐 테니 여기선 패기롭게 가보죠."

혹시 반, 설마 반.

나는 다급해보이는 헬멧 선수의 물음에 침착하게 대답했다.

적팀의 정글러 나무카이가 미니언 웨이브를 대동하고 천천히 포탑을 향해 오고 있다.

다른 팀이라면 볼 것 없이 다이브다.

가짜에어 독수리라면 그저 위협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절반.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정말로 들어와줄까?

두근두근 한 내 마음에 호응이라도 하듯, 상대팀의 정글러 나무카이가 일을 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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