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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는 서포터
삼선 블루와 접전을 치르고 있는 가짜에어 독수리의 부스 안.
침착했던 분위기는 온데간데 사라지고 뒤숭숭하다.
특히, 팀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봇라인에서 의견 마찰까지 생겨버렸다.
"적 정글 탑에 보였고, 미드도 알 박고 있으니 한 번 해보자? 절대 손해는 안 볼 거라 생각하는데.. 설사 다이브 하다 죽어도 꼬그모가 킬 먹으면 이득이고."
"아니, 그래도 기본 방침이 있잖아. 이제 와서 바꾸기도 뭣하다고."
정글러와 서포터의 의견이 갈렸다.
한 쪽은 다이브를 하자고 하고, 다른 쪽은 그냥 지극히 안정적으로 하던대로 가자.
본래라면 이런 의견 마찰이 생겨도 금새 후자로 방향이 기울지만 상황이 조금 다르다.
"점멸 그랩으로 킬각을 노리다니.. 스마일 네가 연계 CC기도 없이 그랩 맞는 건 정말 처음 봤어."
"......"
가짜에어 독수리의 원딜러, 스마일 선수는 서포터의 말에 씁쓸하게 웃었다.
타이밍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2레벨을 찍기 직전.
정말로 미니언 막타 하나만 먹으면 되는데 하필이면 그때 쓰렉귀의 낫이 던져졌다.
그냥 던진 거라면 무빙, 시간 상 안된다고 해도 점멸 반응을 어떻게든 해냈을 것이다.
다른 선수들은 장담을 못할 문제지만 자신이라면 가능하다.
모든 신경을 컨트롤 하나에 집중해 반응 속도를 인간의 한계에 가까운 수치까지 올려버린다.
하지만 그런 스마일 선수도 코앞에서 즉발로 나가는 그랩만큼은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탑은 아마 이대로 다이브 당해서 죽을 것 같은데.. 함 해보자?"
"나는 일단 반대. 1:1이니 원딜러 의견을 따르자."
쓰렉귀의 점멸 그랩은 결국 퍼스트 블러드로 이어졌다.
퍼블은 근 600골드에 가까운 값어치.
여기에 더해 경험치 손실까지 감안하면 막대하다.
기회를 잡은 상대는 라인전 스노우볼을 거세게 굴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탑라이너까지 죽어버린다면?
아무리 후반을 바라보는 가짜에어 독수리라 할 지라도 만능일 리 있겠는가.
실제로 조별 리그에서 가짜에어 독수리는 무패가 아니었고, 패배할 때의 흐름이 이와 같았다.
아직 게임이 초반 라인전 단계인만큼 속판하는 것은 이르지만 신경 쓰인다.
새로운 서포터의 실력이 여간 내기가 아니었다.
"한 번 해보는 편이 나아 보입니다."
팀의 운영은 커녕 세세한 판단에서조차 스마일 선수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다.
전적으로 맡기고 피지컬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그에게는 편했다.
물어봐 온 의견도 사실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저 올마스터라는 선수.
듣기로 미드가 주포지션이라고 한다.
그런 선수가 뽀록으로 한 번 그랩을 당긴 후 자신을 디나이시킨다?
원딜러의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다.
"쟤네 뺀다! 지금 토이치 거리 정확히 나오니까 그냥 걸게!"
스마일 선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나무카이는 점멸 일그러진 전진으로 이니시를 걸었다.
토이치가 은신하기 전에 묶어버리고 곧바로 핑크와드까지 박았다.
중반도 가지 않은 이 시기에 비싸디 비싼 핑크와드를 들고 다니다니?
딱히 갱킹을 생각해서 준비해온 건 아니었다.
그저, 라인전 단계를 무난하게 넘기기 위해서 미리미리 구입해놓은 와드들 중 하나였다.
운 좋게도 그런 핑크와드가 템칸에 하나 남아있었고, 이 때문에 가짜에어 독수리의 정글러는 갱킹을 시행하고자 했다.
한 가지 불안 요소가 있다면 상대가 과연 이니시 거리를 내줄 것인가.
그 불안 요소가 방금 완벽히 해결됐다.
일그러진 전진으로 포박한 이상 다이브는 사실상 성공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키잉-!
분명 원딜러를 노리고 던졌을 거라 생각했던 쓰렉귀의 그랩.
스마일이라면 무난하게 피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그 낫이 원딜러가 아닌 나무카이에게 떡하니 박혀버렸다.
.
.
.
* * *
신규 챔피언, 혹은 안 나온던 픽은 그냥 픽하면 절대 안된다.
설사 잘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팀원들이 익숙하지 않다면 라인전부터 한타까지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쓰렉귀를 선택했다.
'세상만사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기 마련이니까.'
팀원들이 익숙해하지 않는 챔피언도 활약이 가능한 경우가 존재하다.
한 마디로 라인전이 극도로 강해서 숙련도고, 호응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면 괜찮다.
그냥 자기 혼자서 다 때려 죽이는데 팀원이 왜 필요해?
실제로 그럴 듯한 예로 꼽을 만한 챔피언이 있다.
너무나도 사기였던 탓에 출시된지 3일 만에 칼질을 당해버린, 통칭 삼일천하(三日天下)의 르풀랑.
라인전이 극도로 강해서 숙련도고, 팀플레이고 간에 다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이에 해당한다고 한들, 내가 플레이하는 챔피언은 서포터다.
서포터는 팀원과의 호응이 필수불가결이다.
라인전이 세다고 해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자기 자신이 낼 수 있는 데미지에 한계가 있으니 당연한 노릇.
그럼에도, 그럼에도다.
키잉-!
다이브를 치려는 나무카이에게 목줄을 정확히 걸어버린다.
일그러진 전진으로 정직하게 들어오는 나무카이.
아군 토이치의 위에다가 겹쳐 날리기만 하면 되니 어렵지 않다.
문제는 이 다음이다.
철썩!
채찍 쓸기로 밀쳐낸다.
밀쳐내는 상대는 나무카이가 아닌 적팀의 봇듀오.
실질적인 딜링을 하는 이는 원딜러이니만큼 당연하다.
여기에 한 번 더 벽을 쌓아올린다.
쿠루룽!
기괴한 기음과 함께 땅에 그려지는 오망성.
다섯 개의 끝점을 중심으로 벽이 세워진다.
쓰렉귀의 궁극기, 영검의 감옥이 나무카이와 적팀의 봇듀오 사이를 두 겹으로 막아 세웠다.
구룽!
위쪽의 벽은 나무카이에게 닿아 허물어졌다.
그 효과는 2초간 지속되는 99%의 둔화와 상당량의 마법 피해.
사실상 속박이나 다름없는 둔화 지옥에 나무카이의 발을 꽁꽁 묶여버린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포탑은 나무카이를 점사하며 차곡차곡 체력을 깎아내고 있다.
그 뿐일까?
일순간 위기를 맞이했던 토이치는 점멸을 사용해 거리를 벌렸다.
도망가지 않고 침착하게 나무카이를 향해 독화살을 쏘아내는 중이다.
'선택의 시간이지.'
나무카이가 들어온 순간 정확히 낫을 날려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채찍 쓸기와 궁극기를 적절히 연계해 호응을 저지시켰다.
갱승으로 끝맺을 것인가.
무리를 해서라도 한 명 따버릴 것인가.
적팀의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나는 가짜에어 독수리의 성향상 전자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후자였다.
이유는 몰라도 집착이 꽤나 남아있는 듯한 판단이었다.
챱! 챱!
그렇게나 사리기만 하던 꼬그모가 난데없는 앞점멸을 해왔다.
그러고선 W스킬, 침 마구마구 뱉기를 활성화해 토이치를 공격한다.
나무카이는 포탑의 공격에 더 버티지 못하고 전사했지만 적팀의 공세는 끝나지 않았다.
<커져라!>
퍼블을 따인 탓에 성장이 부족했던 꼬그모와 달리 적 서포터 랄라는 6레벨에 도달했다.
랄라의 궁극기, 거대화가 꼬그모의 몸집을 키우며 요정을 붙여 평타까지 강화시킨다.
끝이 아니다.
꼬그모에게 달려 있는 요정을 통해 보라색 창을 날렸다.
이대로 라면 내가 꼬그모에게 탈력을 건다고 한들 토이치는 죽은 목숨.
적팀은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만.
촤라락!
그 위기의 순간에 나는 토이치에게 랜턴을 던졌다.
쓰렉귀의 W스킬, 랜턴은 아군에게 약간의 보호막을 덧씌워준다.
그리고 클릭시 랜턴과 함께 자신의 위치까지 아군을 끌어 당겨온다.
나는 토이치가 랜턴을 타고 오는 타이밍을 정확히 맞춰 점멸을 사용해 거리를 벌렸다.
토이치와 꼬그모 사이의 거리는 엄청나게 벌어줬다.
여기까지 했으면 정말로 할 일 다한 셈.
다행스럽게도 랜턴을 타고 온 토이치는 기껏 잡은 기회를 헛되이 낭비하지 않았다.
<씹고! 뜯고! 맛보고! 꿰뚫고! 끄하하하하하!>
침 마구마구 뱉기를 활성화한 꼬그모의 사거리는 괴랄하다.
하지만, 원딜러의 사거리라는 측면에서 궁극기를 켠 토이치 이상 가는 존재는 없다.
그 꼬그모가 사거리가 닿지 않아 농락당한다.
─더블 킬!
삼선 HELMET님이 학살 중입니다!
하도 먼 거리에서 화살을 쏴재낀 탓에 시체를 자폭시키는 꼬그모의 패시브가 닿지도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한 명.
우물쭈물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가려는 랄라가 식후 디저트다.
방금의 교전에서 내가 있던 위치가 어디였겠는가?
봇듀오와 나무카이 사이였다.
여기서 내가 랜턴을 던지고 점멸까지 사용해 이동한 위치는 당연히 역방향.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는 아니여도 랄라에게 잡기에는 충분한 거리다.
철썩!
도망가려는 랄라를 쿨타임이 돌아온 채찍 쓸기로 당겨온다.
랄라는 딸피가 남은 토이치라도 데려가기 위해서 안간 힘을 쓰지만 헛수고.
현재 토이치의 궁극기는 7초간 유지된다.
그리고 때릴 때마다 조금씩 피흡도 된다.
퍼블 덕분에 구입할 수 있었던 흡수의 칼 덕분.
나무카이가 배달해준 레드 버프까지 있다.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랄라를 카이팅하자 트리플 킬을 달성할 수 있었다.
─트리플 킬!
삼선 HELMET님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역관광 수준이 아니다.
아예 게임이 터져버렸다.
이 말도 안되는 슈퍼 플레이가 가능했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
첫 번째는 까놓고 말해서 내가 잘했다.
적재적소의 타이밍에 활용할 수 있는 스킬을 정확하게 사용해냈다.
두 번째는 상대가 쓰렉귀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몰랐다.
마지막으로 쓰렉귀가 좀 많이 OP다.
'2013년부터 신규 챔피언들이 흉작이긴 했어.'
지난 해에 OP챔피언이 한도 많이 나와서 밸런스 팀이 제작팀을 갈궜다더라.
그 루머가 완전 헛소문이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현재까지 나온 신규 챔피언들은 평가가 썩 훌륭하지 않다.
밸런스 팀도 바보가 아니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테스트 서버를 통해 충분히 실험을 마치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보고 해서 괜찮은 수준까지 챔피언을 조정한다.
'그래도 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마련이지.'
로드 오브 로드 게임사가 그럼 그렇지.
작심삼일은 아니지만 작심 삼개월정도는 되더라.
그렇게 나온 챔피언이 바로 쓰렉귀다.
스킬 구조가 원딜러의 입에 킬 떠먹이기 이리도 알맞을 수가 없다.
팀원과의 호응이고 나발이고 간에 킬을 목구멍에 수저 채로 쑤셔박는데 못 먹으면 그게 사람이겠는가?
다른 챔피언은 몰라도 쓰렉귀는 가능하다.
일단 낫을 던져서 1.5초 스턴.
채찍 쓸기로 1.5초 둔화와 동시에 당겨오기.
궁극기로 2초간 속박에 가까운 둔화.
혹시 그래도 못 삼킬까, 랜턴을 던져서 킬을 코앞까지 대령할 수 있다.
방금의 상황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그만큼 쓰렉귀의 킬 결정력이 높다는 소리다.
헬멧 선수의 기량이 빼어났던 점도 있어 트리플 킬까지 연결할 수 있었다.
과연, 그의 남자가 될만한 자격이 있는 선수다.
'그러고 보니 헬멧 선수는 차후에 매일라이프와 봇듀오를 서게 되던가.'
나중에 헬멧 선수가 은퇴를 하게 되었을 때.
나와 매일라이프 중 누가 더 그의 기억 속 깊이 남을 수 있으련지.
사소한 경쟁심리가 나를 부추긴다.
찰칵!
비록 킬은 먹지 못했다지만 어시스트를 세 개나 챙겼다.
그 결과, 기동력의 신발이 거뜬히 나왔다.
가격이 1천 골드나 되는 가난하디 가난한 서포터가 벌써부터?
시청자들은 물론 중계진들까지 머리에 알쏭달쏭 물음표가 떠오를 거다.
차라리 그 돈을 돈템인 현자의 돌멩이를 갔다면 꾸준한 재태크와 더불어 안정적인 라인전이 가능했을 테니까.
하다 못해 와드돌을 올리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었다.
서포터가 2티어 신발을 첫 아이템으로 올리는 건 정말 돈낭비다.
그런 식으로 왈가왈부 하고 있을 게 뻔할 뻔자다.
'꼭 그렇지도 않아.'
선행투자를 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편하다.
이 기동력의 신발을 밑천으로 그 이상을 벌어버린다.
그리고 어차피 라인전에서는 미련이 남아있지 않다.
'죽도록 사리면서 후반 갈 놈들인데 내가 왜 착하게 사랑의 매를 때려줘야 해?'
라인전이 사랑의 매라면, 로밍은 팩트폭력이다.
가짜에어 독수리가 자랑하는 그 잘난 전략.
얼마나 빈틈 투성이인지 여실히 드러내준다.
앞으로는 더 이상 같은 꼬라지를 반복하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그토록 태산과도 같던 철옹성에 금이 쩍쩍 벌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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