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54화 (45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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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는 서포터

한 톨의 불씨가 힘아리 없게 날아간다.

바람이라도 불면 꺼질 것 같은 배티의 평타가 적팀의 원딜러 테러스티나에게 닿아 사라진다.

어처구니 없을 수도 있겠지만 평타 견제다.

나는 테러스티나에게 평타를 툭툭 갈기고 있다.

'배티가 평타 모션이 조금 안 좋아.'

평타 모션 거지같은 챔피언들이 몇 명 있다.

대표적으로 시계노인, 매미비아.

차후에는 버프가 된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지금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배티의 평타는 유별나게 답답하다.

툭.

불씨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떨어진다.

마치 캐치볼에서 주고 받는 아리랑볼 같은 느낌이다.

저 평타로 미니언 막타를 친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하지만 서포터로서 적을 견제할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 배티 평타 사거리가 길어서 그런지.. 견제가 의외로 좋네요?"

"어때요, 쓸만하죠?"

쓸만한 수준이 아니다.

평타 사거리가 무려 625.

원딜러의 평균 사거리가 550다.

그 길다는 헤이클린조차 650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엄청나다.

그리고 아리랑볼처럼 날아가는 이 평타의 선딜레이는 오히려 혜자로 작용한다.

툭.

다섯 번째 떨어진 힘아리 없는 불씨에 의해 테러스티나의 체력이 벌써 1/3피나 까였다.

평타를 칠 때마다 소매치기 특성에 의해 조금씩 획득하는 골드도 쏠쏠하다.

본래라면 이렇게 평타 짤짤이를 마음 놓고 할 수가 없지만 두 가지.

하나는 지나치게 긴 선딜레이 때문에 내가 평타를 날린 후에 부쉬로 빠져서 미니언 어그로를 뺄 수 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나와 테러스티나의 평타 사거리 차이다.

테러스티나는 18레벨을 기준으로 사거리가 700을 넘게 된다.

괜히 원딜러 중에 가장 성장 기대치가 좋다고 평받는 게 아닌 것.

그 대가로 초중반 딜로스와 약한 라인전이 꼬리표처럼 따라온다.

'초중반 수준이 아니라 3코어 전까지는 아예 딜이 없고 제대로 딜을 뿜으려먼 최소한 4코어지.'

이러한 이유로 대회 무대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 챔피언을 상대가 꺼냈다.

그렇다면 대가를 톡톡히 받아야하지 않겠는가.

초반 라인전 단계에서 평타 사거리가 짧은 편에 속하는 테러스티나는 내 견제를 속수무책 허용해야 한다.

내 평타 짤짤이가 야금야금 테러스티나의 체력을 깎아내고 있다.

'아무래도 킬각까지는 잡아내기 힘들겠지만.'

어쩔래야 어쩔 수가 없다.

인베에서 점멸과 발화를 전부 소비한 만큼 체력을 깎는 선에서 참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나는 참지 않는다.

밑도 끝도 없이 불씨를 날려 테러스티나를 두들긴다.

"딜교환을 잘해 놓긴 했는데.. 쟤네 어차피 포탑 끼고 사리겠죠? 정글러 때문에 다이브도 안될 테고."

"뭐, 그럴 수도 있겠죠."

나는 헬멧 선수의 물음에 대강 대답하며 딜교환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그러니까 내가 목표하는 건 하나다.

숨도 쉬지 못하게 견제한다.

배티 서폿의 유일한 단점인 갱에 약하다를 완전히 사라지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우핫!

배티의 Q스킬, 화염구가 랄라를 향해 날아간다.

가능하다면 테러스티나에게 딜교환을 하고 싶었지만 거리를 내주지 않는다.

평타와 달리 배티의 스킬은 비교적 사거리가 짧은 편에 속하기 때문.

꿩 대신 닭이라는 느낌으로 랄라를 후려팼다.

스턴 덕분에 아군의 원딜러 토이치가 호응하기도 쉽다.

'이런 느낌으로 주구장창 두들기다 보면 언제가 열릴 시기가 와.'

옛날 동화 중에 북풍과 해님이라고 있다.

그 이야기를 보면서 답답했던 게..

왜 북풍이 조금 더 모질지 못했을까?

잔인한 말이긴 하지만 북풍이 만약 찬바람을 계속해서 불었다면 나그네는 필히 저체온증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 혼절을 했을 테고, 나그네의 외투는 바람에 떠나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 착한 북풍은 적당히 하다가 나그네가 오들오들 떨어대니 그만뒀다.

'미안하지만 난 북풍처럼 착하지를 못해서.'

열리지 않는다면 강제로 오픈 마인드를 만들어준다.

네 번 스킬을 사용하면 다음 스킬 공격에 스턴이 묻어나는 배티의 패시브.

전면 딜교환에서 확실하게 주도권을 잡고, 평타 짤짤이의 서비스를 꾸준하게 넣는다.

'현재 시점의 서포터들은 견제력이 적당적당 하지만 배티는 많이 다를 거야.'

소극적으로 딜교환을 하고 있는 상대는 언제까지 당해야만 한다.

다른 서포터 챔피언들이었다면 적당히 거리 조절하면서 버틸 수 있었겠지만 배티다.

지나친 평타 사거리와 더불 스턴에 의한 일방적인 딜교환.

테러스티나와 랄라의 체력이 바닥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체력이 바닥난 상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귀환 뿐이다.

그럴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만에 하나 갱이 온다고 해도 적 봇듀오는 호응할 체력이 안된다.

정글러를 불러서 위협을 한다?

우리가 빼줄 이유도 없을 뿐더러 거기서 버티면 경험치만 나눠 먹는 꼴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라인전을 진행하면 언젠가 CS를 건드리지도 못할 날이 온다.

결국 테러스티나와 랄라는 눈물을 머금고 귀환했다.

나와 토이치 또한 라인을 쭉 푸쉬하고 상점으로 향했다.

찰칵!

내가 조금 생각을 해봤다.

특이한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원래 트롤과 캐리는 한 끝 차이 아니겠는가.

가짜에어 독수리처럼 독특한 전략을 쓰는 상대로는 꼭 정석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와드 이거, 굳이 사야 되나?

'어차피 갱 안 올 거잖아?'

설사 온다고 해도 무조건 이긴다.

테러스티나라는 라인전 약챔을 했으면 그 대가를 받아야지.

받아도 아주 톡톡히 받아야지.

내가 가진 골드를 탈탈 털어 구입한 아이템은 카이지의 행복.

흔히 말하는 돈템의 한 종류다.

'고작 재태크하려고 구입한 건 아니고.'

카이지의 행복은 10초마다 4골드를 추가로 주며 주문력도 준수하다.

돈템 중에서는 나름 혜자라 미드라이너들도 은근히 구입하는 편.

하지만 상위템이 너무 애매하다.

'다른 챔피언들한테는 말이지만.'

상위 아이템인 불투명한 얼음 파편.

하도 연구가 안된 탓에 현재 시점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시즌4가 되어 아이템 자체가 삭제되기 직전에야 급격히 구입 빈도가 올라간다.

써보니 의외로 꿀템이더라?

그것도 배티에게 상당히 좋더라?

이번 게임에서 여실히 증명해준다.

우핫!

화르륵!

라인에 돌아와 마주치자마자 화끈한 딜교환.

서포터인 랄라에게 스턴을 걸고 딜링을 우겨 박는다.

원딜러를 때리는 게 정석일 텐데 왜?

그게 다 이유가 있다.

'라인전을 버티기 위해 흡수의 칼을 사왔나 본데.. 그 선택이 오히려 독이 될 거야.'

안 그래도 약한 테러스티나가 아이템까지 수비적으로 구입했다.

한 마디로 테러스티나의 딜링 능력은 무시해도 된다.

어차피 피지컬도 뛰어나셔서 건드리기 힘든 마당에 잘됐다.

나는 토이치와 함께 랄라를 사정없이 후려팼다.

.

.

.

* * *

배티 서폿이 픽됐을 때 사람들이 떠올린 생각은 기대였다.

오, 드디어 롤챔스에도 미드 배티가 나오는구나.

그 시점에서는 서폿으로 갈 것이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픽이 완료되고 보니 미드가.. 아니더라?

여기서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드 챔피언이 서폿을 왜 가지 않나? 한 마디로 가진 바 특색을 살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김은준 해설이 현재 게임이 흘러가는 판국을 훑어 보며 주저리주저리 설명을 시작했다.

미드 챔피언과 서폿 챔피언이 구별되는 이유.

여러가지 있겠지만 가장 확실한 구별법은 아이템 빨이다.

예를 들어 쏘냐에게 주문력 아이템이 많으면 물론 좋겠지만! 없어도 그다지 상관은 없다.

그 외에 원딜러를 보조할 버프 스킬들,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는 광역 스턴이 한타의 1인분을 보장해주니까.

하지만 미드 챔피언들이 서폿으로 가는 경우는 이야기가 다르다.

정해진 라인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만큼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럴 줄 알았는데 배티 서폿은 아니더라?

<평타 사거리가 길어서 그런지 견제력이 막강합니다..? 스턴에 의한 강제 딜교환까지! 상당히 매서워요?>

미드 챔피언이 서폿으로 간다는 것, 이 자체는 의외로 흔한 일이다.

산다라라던지 브란도라던지 초반 견제가 매서운 미드라이너가 서포터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솔로랭크에서의 픽률이 낮지 않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주문력 아이템을 올리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딜링 능력이 떨어진다.

대신 미드 챔프 특유의 물몸이라는 단점만 남는다.

시도 때도 없이 잘리는 경우가 허다해진다.

결정적으로, 라인전에서 한 번 갱 당하기 시작하면 맛집이 되고 만다.

견제력만 뛰어나지 버티는 능력은 영 아니올시다.

<그런데 가짜에어 독수리는 갱킹을 거의 안하죠? 올마스터 선수가 준비를 해와도 단단히 해왔습니다. 가짜에어 독수리라는 팀의 색깔 자체에 의문을 던지고 있어요.>

미드나 탑은 결국 포탑을 끼고 버티는 라인전이 가능하다.

설사 버티기 힘든 상황이 된다고 해도 가짜에어 독수리는 쿨하게 포기해버린다.

그것이 지금까지 가짜에어 독수리가 보여준 팀 색깔이다.

하지만 올마스터처럼 봇라인을 대놓고 조져버린다?

미드 챔피언으로 강하게 압박해 라인전에서 숨도 쉬지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가짜에어 독수리의 정글러가 능동적인 움직임을 취하지 못한다면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은 전무하다.

이미 늦어버렸지만.

<곰이다!>

삼선 블루의 봇듀오가 6레벨을 찍자마자 벌어진 참사다.

중계진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강제 이니시.

배티가 점멸 궁을 때려박았다.

<랄라가 반응조차 못하고 녹아버렸습니다. 와, 무슨 미드 배티보는 줄 알았어요?>

<올마스터 선수의 킬각 잡는 능력은 정말로 소름이 돋아요! 하지만 이걸 맞점멸로 피한 스마일 선수의 피지컬도 만만치 않습니다..!>

패시브 스택을 채운 덕분에 스턴이 묻어난 배티의 궁극기, 곰돌이 소환.

그 범위에 테러스티나와 랄라가 모두 걸렸다.

조금 더 앞에 있었던 랄라는 순삭.

테러스티나는 용케 맞점멸을 사용해 회피했다.

정확히는 스턴은 들어갔지만 적의 공격 사거리에서 벗어났다.

손익만 따지자면 삼선 블루의 일방적인 선전이지만 한 가지.

가짜에어 독수리는 어차피 시간을 질질 끌어 후반을 가는 게 목적이다.

그리고 어쩌면 배티의 점멸에 킬 하나 내주는 것은 염두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5분 가량의 시간을 번 셈이니 나쁘지 않은 계산.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가짜에어 독수리를 삼선 블루가 더욱 더 밀어붙였다.

<설마 여기서 포탑까지..? 곰돌이를 앞세워서 포탑을 때려 부수고 있습니다! 이거 참 귀여우면서도 무서운 광경이에요?>

<활활 타오르는 대형 곰인형이 포탑의 공격을 다 맞아주고 있습니다. 미니언 웨이브와 같이 포탑을 점사하면 금방이죠. 나무카이가 레드를 먹고 귀환하는 잠깐의 공백 동안 일이 제대로 터졌습니다.>

배티의 궁극기, 곰돌이 소환은 글자 그대로 소환이다.

광역 마법 피해가 메인이기는 해도 소환물인 곰돌이를 무시하면 섭하다.

몸뚱이가 하도 느릿느릿해서 맞아주는 상대가 거의 없기는 하지만 포탑이라면?

곰인형의 평타도 다 맞아줄 뿐더러 맷집이 장난이 아니다.

어지간한 챔피언들을 상회하는 체력.

봇듀오와 미니언들까지 가세하니 포탑이 순식간에 철거된다.

<이거..라인전 끝났죠? 설마 두 번째 세트랑 비슷한 양상을 띄게 되는 걸까요?>

<다른 점이 있다면 원딜러가 아니라 서포터가 킬을 먹었다는 사실이죠. 그리고 지금의 상황이 꼭 삼선 블루에게 웃어준다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김은준 해설이 현재 흘러가는 게임의 진행 방향을 냉정하게 분석했다.

킬을 따고 포탑까지 부쉈다.

다른 팀들간의 경기였다면 이거 대박이다, 잘못하면 게임 터지겠다 호들갑을 떨었겠지만 당한 상대는 가짜에어 독수리다.

어쩌면 위기를 기회로.

고통받던 라인전이 끝난 걸 계기로 찌질하게 웅크려서 후반을 볼지도 모를 일이다.

그만큼 다른 라인은 더 힘들 테지만 원딜러가 풀린다는 게 중요.

게다가 두 번째 세트와는 달리 토이치의 성장이 기괴하지 않다.

테러스티나는 생존력도 좋아서 어지간하면 물리지도 않는다.

과연 현 한국 프로게임판의 해설자들 중 탑을 달린다는 김은준 해설위원 다운 분석력이다.

그런 김은준 해설의 말이 끝나자마자 강빈 해설이 무언가 발견한 듯 말씨가 급해졌다.

강조냐라는 별명 만치나 말을 아끼고 있었던 그가 왜?

어쩌면 그이기에 가능한 뜬금없는 한 마디, 강소리였다.

<올마스터 선수가 와드를 건설.. 아니, 구입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방금 귀환했을 때 분명히 와드돌 가격이 나왔거든요? 와드돌은 둘째 치고 일반 와드는 사야 하는 게….>

갤럭시 크래프트 프로게이머이자 해설자 출신의 폐해!

하지만 그 말실수가 사소해질 정도로 중요한 부분을 짚어주었다.

서포터니까 당연히 와드를 사겠지.

그런데 올마스터는 안 산다.

올마스터의 템칸에는 흔하디 흔한 일반 와드가 단 하나도 들려있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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