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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는 서포터
와드를 구입하지 않는다.
라인전을 압살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터져 나왔을 불만이다.
왜?
대충 둘러만 봐도 맵 이곳저곳이 완전 새카마니까!
"맵이 좀.. 어둡네요? 맥형이야 원래 와드 안 사는 거 알지만 봇라인은 좀.."
한국 사람들이 할 말 없어질 때 유달리 많이 붙게 된다는 부사 「좀」.
연이어 두 번 나왔다는 소리는 한 마디로 어지간히 좀 하자.
나나 씨지맥이나 연장자에 알고 지내는 형이니 대놓고 강요하지는 않겠지만 이 정도면 눈치 채겠지.
그런 심정에서 한 말이겠지만.
'원래 해달라고 하면 더 하기 싫어지는 게 사람 심리야.'
한국 사회 특유의 연장자 문화!
염치고 나발이고 갖다 던진다.
그리고 킬을 만들어 버린다.
─삼선 AllMaster님이 가고 있다고 알림!
봇라인을 터트린 후 자연스럽게 행선지로 잡은 탑로밍.
로밍이라기 보단 사실 몰이에 가깝다.
퍼블을 먹은 씨지맥의 말카림이 탑라인을 시종일관 몰아 붙이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타를 꽂아 넣기엔 조금 부족했다.
네네톤의 라인전 강함은 명불허전.
상성상의 우위도 겸해 킬각까지 내는 것은 힘들었다.
더더욱이 봇라인이 터졌던 시점에서 적 정글러가 보이지 않았다.
이말인 즉, 탑에 있다는 소리다.
봇 근처였다면 어떻게든 타워가 터지는 걸 막았을 테니 당연한 추론이다.
그 탓에 사리고 있느냐 몸이 근질근질했을 씨지맥을 위해서 내가 움직였다.
화르륵!
포탑을 끼고있는 네네톤에게 다짜고짜 다가가 스턴.
화염구와 평타를 던져 먹일 수 있는 데미지를 최대한 뿌린다.
그러자 유령화를 켠 씨지맥의 말카림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콰드득!
콰라락!
멸망의 질주로 들이박으며 언월도를 휘두른다.
발화까지 붙자 네네톤의 체력바가 순식간에 갈려나간다.
스턴 상태가 풀린 네네톤은 점멸 스턴을 연계해 나를 길동무로 데려 가려고 하지만.
쿠워어어어!
말카림의 궁극기, 그림자의 습격이 끼얹어지며 네네톤을 1초간 공포 상태로 만든다.
앞선 라인전 딜교환에서 체력이 꽤나 깎여있던 네네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마무리.
뒤늦게 랄라와 나무카이가 도착하지만 부질없다.
네네톤은 이미 죽었고, 명진의 리심 또한 이 근처다.
"이야~ 맥형이랑 올마형 호흡이 장난 아니네요. 아슬아슬했는데 그걸 킬각으로 잡으셨네."
랄라가 한 발만 더 빨리 도착했더라면 점멸 궁극기로 네네톤을 살렸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죽음을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내가 위험하다.
아마 스킬과 스펠을 쏟아부어 나라도 데려갔을 게 분명했다.
'이래서 스로잉과 슈퍼플레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는 거지.'
그 한 장 차이를 면밀히 계산해 과감하게 실행한다.
나와 씨지맥의 호흡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깔끔한 성공.
방금의 스노우볼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봇라인에 이어 탑라인의 1차 포탑까지 파괴했다.
궁극기도, 체력도 빠진 상태인지라 적들이 수성을 하고자 했다면 확률은 반반.
하지만 기세가 다르다.
성난 경주마와도 같은 씨지맥의 말카림이 위협을 주자 적팀은 발을 뺐다.
패기에서 완전히 밀려버렸다.
"와, 게임 쉽게 풀리네요. 그런데 올마형도 슬슬 와드돌…."
명진이의 외침을 뒤로 하고 나는 상점에 귀환해 아이템을 구입했다.
이번에 구입하는 아이템은 기동력의 신발.
지금 시기의 서포터가 으레 그러하듯 당연히 가난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제법 출세한 거다.
시즌2,3 대회 경기에서 보면 게임 시간 30분이 넘는데 가죽 신발 하나 들고 있는 불쌍한 서포터들도 왕왕 보인다.
특히 지고 있는 팀의 서포터들 신세는 처량하기까지 하다.
그에 비해 나는 제법 부유한 편.
카이지의 행운도 있는 데다 와드도 사고 있지 않다.
서폿계의 금수저 망나니라고 불려도 할 말이 없다!
'물론 가짜에어 독수리를 상대로 하는 거니 와드를 안 사는 거지만.'
혹여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플레이다.
삼선 블루의 팀원들을 말하는 게 아니고 시청자들.
정확히는 솔로랭크를 할 유저들!
한동안은 서폿 선호도가 상당히 올라갈지도 모르겠다.
5픽은 서폿을 안 가도 될 테니 경사로세 경사로다~.
─삼선 AllMaster님이 용을 지목!
탑 1차 타워를 정리한 이상 이후의 운영은 간단해진다.
씨지맥의 말카림에 가속도가 붙었다.
의병대를 타고 빠르게 용을 향한다.
나와 명진이도 말의 꼬리를 따라간다.
─아군이 용을 처치했습니다!
급속도로 굴러가는 스노우볼.
게임 시간 10분 안팎인데 포탑 2개에 용까지 챙겼다.
킬과 CS 차이까지 생각한다면 대략 4천 골드 정도의 차이다.
'이곳저곳 찔러볼 구석이 많다는 게 진짜 포인트야.'
단순히 라인전이 우위다.
그런 거라면 가짜에어 독수리에서도 수가 있다.
시간 드럽게 끌면서 후반을 바라보면 그만인 일.
하지만 게임의 흐름이 스노우볼을 굴리기에 딱 좋다.
"네네톤 탑이니까 이대로 적 블루지역 장악하면서 봇2차 타워 다이브 노리자."
"쟤네 빼기는 뺄 텐데 어차피 난 의병대 있어서 괜찮아."
짧막하게 오가는 오더.
정리하자면 블루 지역을 장악한 후 봇라인에 다이브를 시행한다.
여기서 한 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상대는 허수아비가 아니다.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 뺄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손해를 보게 되는 사람은 씨지맥.
네네톤이 팍팍 밀고 있는 탑라인의 웨이브가 크게 손실되는 셈이지만.
'의병대 말카림이라면 상관이 없지.'
나도 익히 사용해봐서 알지만 의병대 말카림의 라인 귀환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뭐, 콩머보다는 조금 느리다 해도 충분 이상으로 빠르다.
조금 뒤늦게 탑커버를 가도 CS를 거의 흘리지 않을 수 있다.
─적팀의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이로써 세 번째 포탑을 파괴했다.
탑라인에 돌아간 씨지맥도 빅 웨이브를 고스란히 받아먹었다.
비슷한 형식의 운영을 반복한다.
처음은 탑으로, 그 다음은 미드를, 마지막으로 바론까지.
가짜에어 독수리라는 철옹성의 대들보를 싹 다 뽑아버린다.
.
.
.
* * *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단계는 다음과 같다.
먼저 눈으로 즐기고.
살짝 들이마셔 향으로 즐기고.
앞선 두 단계를 거친 후에야 맛을 본다.
여기에 음식의 과정까지 전부 바라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가짜에어 독수리의 경기는 어떠한가?
과정을 싹 다 생략하고 맛만 본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 과정이 최소 30분이다.
어떤 경기는 50분, 1시간 가까이 걸리더라.
요즘은 치킨을 시켜도 배달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치킨은 쫙 뜯었을 때 기름기가 자글자글 해야 하는데 다 식어 가지고 오는 치킨에 대체 무슨 가치가 있을까.
<그래도 한타는 무척 잘합니다. 원딜 유저분들이 생각하기에 이상적인 한타 구도. 팀이 저렇게만 해준다면 정말로 원딜 할 맛 제대로 나겠다! 그러니까 어떻게.. 후반을 바라볼 수는 없을련지요?"
전범준 캐스터의 말에 무겁지 않은 진중함이 담겨 있다.
한 마디로 그거다.
일단 캐스터로서 이 경기에 승산이 있나, 없나를 알려줘야 한다.
안 그래도 최근에 부쩍 시청자들의 입롤이 늘었다.
이 경기 혹시 끝난 거 아닐까, 지레짐작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묻기는 하겠지만 제발!
퇴근 시간이 길어지지 않기를 솔직하게 바란다.
그런 전범준 캐스터의 속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김은준 해설위원은 나직하게 대답했다.
<글쎄요.. 가짜에어 독수리가 글로벌 골드에서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도 막강한 한타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스마일 선수 덕분이거든요? 그런데 그 스마일 선수의 상황이 영 좋지가 않아요.>
본래라면 라인전 단계에서 조금 말려도 스마일 선수의 성장은 보증 수표다.
왜? 다른 팀원들이 빅 웨이브를 모두 양보해주니까.
설사 많이 망한다고 해도 스마일 선수만큼은 성장 배곯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야 했지만 이번 게임은 경우가 달랐다.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는 강제 다이브에 가짜에어 독수리는 속수무책 농락당한다.
<말카림은 다이브를 할 수 있거든요! 그림자의 습격에 럭키와 랄라가 걸렸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곰돌이! 이게 바로 격차의 차이죠!>
격차의 차이, 어둠의 다크니스!
강빈 해설이 밀어붙이는 유행어가 튀어나왔다.
커뮤니티에서는 강소리라 치부되기도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인가.
게임 시작 이후로 와드 하나 사지 않은 올마스터의 배티가 판을 지배하는 광경이 더욱 눈에 띈다.
와드를 사지 않는 대신에 딜템과 기동력의 신발을 빠르게 갖춰 전 라인을 들쑤시고 다닌다.
방금 전만 해도 호흡이 맛깔났다.
수성을 하고 있는 가짜에어 독수리를 향해 말카림이 이니시를 걸고, 올마스터의 티버가 연계를 하며 쑥대밭을 만들어냈다.
-강소리도 가끔 잘 맞는다니까? 와드 하나 건설하지 않아서 그런지 배티가 세네!
-ㄹㅇㅋㅋ 미네랄이랑 가스 수급해서 코어템만 올리니까 템 안 나온 미드라이너 수준임.
-한동안 강빈 겁나 까일 뻔했는데 이걸 올마스터가 캐리해주나요ㅋㅋ
서포터일 배티가 와드를 하나도 사지 않더라?
이 부분에 대해 가장 먼저 눈치를 채고 언급을 한 사람이 강빈 해설위원이다.
그 과정에서 와드를 건설해야 하지 않겠냐고 갤럭시 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답게 말실수를 해버렸다.
이는 가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아무래도 로드 오브 로드 유저들 중에서는 갤럭시 크래프트에 다소 적대감을 가진 유저층이 있다.
그리고 강빈 해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종종 말실수를 해대는 탓에 구설수에 오를 정도.
하지만 오늘에 한해서는 웃어 넘겨줄 만했다.
<정말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서포터는 반드시! 와드와 와드돌을 사야 합니다. 이번 세트의 경우 수비적인 가짜에어 독수리를 공략하기 위한 특별한 전략이에요.>
<그러니까 솔로랭크에서 하지 말라! 김은준 해설위원의 강변 잘 들었습니다! 하지만 유저들이 말을 들을 턱이 없겠죠! 솔로랭크 서폿 주의보 발령되겠습니다..!>
가짜에어 독수리의 경기가 이토록 신날 줄이야?
삼류 악역이 돼버리니 중계진도, 시청자들도 웃음꽃이 활짝 핀다!
시청자들은 게임이 재밌게 흘러가서 웃는 거지만 중계진의 입장은 많이 다르다.
중계진은 방송이 흥해서, 그리고 퇴근 시간이 일찍 잡혀서!
편파적인 해설은 하면 안되지만 사람의 속마음이라는 게 있다.
가짜에어 독수리가 만약 오늘의 경기를 승리해서 준결승전에 간다면?
5전 3선승제인 준결승전 경기 시간이 최소 두 배는 늘어난다.
만에 하나라도 결승전에 단다면.. 정말 상상하기도 싫다.
7전 4선승제를 이딴 식으로 치른다니, 퇴사를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지도 모른다.
-범준좌 표정 관리 안되는 거 보소 ㅋㅋ
-해맑게 웃네. 회춘하신 듯ㅋㅋㅋ
-근데 진짜 좋을 만하지. 가짜에어 독수리가 결승전에서.. 저 꼬라지 한다고 생각해봐. 다음 시즌 부터 롤챔스 그냥 안 보고 만다.
재밌으려고 하는 게 게임인데 지루하면 누가 보려고 하겠는가.
노잼스로 흘러가는 롤챔스의 판국은 정말이지 사양이다.
그 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가짜에어 독수리에게 정의의 칼날을 꽂아버린 씨지맥, 그리고 올마스터 선수에게 극찬이 오가고 있다.
현재 잉벤에서는 올마스터에 대한 재평가가 시급하다고 난리부르스다.
주포지션을 서포터로 바꿔야 하지 않겠냐고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하지만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길고 짧은 거 꼭 대봐야 아는 건 아니여도 스마일 선수라면 또 모르는 게 사실이죠?>
<김은준 해설이 평소 저한테 쌓인 부분이 많은 게 아닌지. 진지한 대화를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확실히 아직 억제탑이 나간 건 아닙니다. 가짜에어 독수리도 분명 희망이 있어요!>
현재 게임 시간 20분이 안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벌써 탑, 미드, 봇라인의 2차 포탑이 전부 파괴되어 있다.
가짜에어 독수리는 이니시 걸릴까봐 나가지도 못한다.
그런데 안 나가면 바론이 먹힐지도 모른다.
서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격차.
하지만 가짜에어 독수리는 사고 구조가 남다르다.
2차 포탑을 전부 밀렸다는 의미는 안 쪽 동선이 짧아졌다는 말.
수비하기에는 더 쉬워졌다는 의미다.
바론을 내줘야 한다? 오브젝트를 뺏길 수도 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1시간 질질 끌어서 풀템 싸움하면 그게 그건데.
이것이 바로 가짜에어 독수리가 로드 오브 로드라는 게임을 이끌어가는 방식이다.
<장기적을 보자면 몰려오는 빅 웨이브를 전부 테러스티나가 챙길 수 있게 된다는 말이지만.. 잠깐, 올마스터 선수가 구입한 아이템이 뭐죠?>
<저거 설마.. 카이지의 행운 상위템 아닌가요? 구입하는 사람이 없기는 해도 일단 존재는 합니다.>
억제 포탑이라는 유리한 진형을 끼고 계속해서 수성을 할 수만 있다면 가짜에어 독수리에게도 희망이 있다.
있겠지만 그것을 가만히 두고 봐줄 이유가 있을까.
올마스터가 승부수를 제대로 띄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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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