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58화 (458/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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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는 서포터

8강의 경기가 끝난 지도 벌써 나흘이 흘렀다.

그 사이에 일어난 일들은 별거 없다.

적어도 현실에 한정하자면 그러하다.

-방장아. 준결승전에서 뭐할 거냐? 형한테만 살짝 귀뜸해줘라.

-뭘 해도 재밌게 보겠지만 와드돌은 제발 사줘요ㅋㅋ

-와드돌 안 사는 서폿들 때문에 요즘 죽겠어! 준결승전에서도 그러면 진짜 큰일 난다.

-딜템 올린다고 깝죽대는 놈들 꼭 라인전 끝나고 시도 때도 없이 잘려댐ㅠㅠ

하지만 현실 말고 게임 내에서는 다소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게 사실 솔로랭크에선 와드 안 사는 서폿이 상당히 흔하다.

특히 낮은 티어대에 갈수록 달고 살게 되는 말이 있다.

<서폿님 제발 와드돌만 사주세요!>

서폿 럭키를 해도 좋고, 미달리를 해도 상관없으니 제발 와드돌만!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슬픈 현실이다.

캐리력도 없고, 상대적으로 재미가 떨어진다는 말이 많은 서폿은 선호도가 낮다.

하지만 결국 한 명은 해야 하는데 5픽조차 하기 싫으면?

그냥 꼴리는 거 고르고 응 서폿이야~.

하는 일이 낮은 점수대에서는 다반사다.

이런 말도 있을 정도다.

자진해서 서폿가는 플레이어가 있는 팀은 반드시 이긴다.

그 정도로 서포터가 게임을 역으로 터트리는 경우가 잦다.

'그런 자칭 서포터들이 와드돌을 안 사도 될만한 변명이 붙은 셈이네.'

가짜에어 독수리를 상대로 한 세 번째 세트.

나는 배티를 골라서 와드돌을 사지 않았다.

아니, 와드 자체를 전혀 사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맵이 어두껌껌 했다는 소린 아니다.

리심은 필수적으로 와드돌을 구입하는 정글러.

그리고 와드를 안 샀을 뿐이지, 로밍이나 깜짝 이니시를 위한 핑크 와드정도는 구입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와드를 안 산건 상대가 가짜에어 독수리여서다.

어차피 허구헌날 수비하면서 후반만 볼 텐데.

내가 굳이 와드 박으면서 그들의 향방을 면밀하게 알아볼 이유가 없었다.

이러한 사정.

설명을 한다고 한들 먹힐 리가 없다.

애초에 알아들었다면 그 티어에 있지 않을 테니까!

-방장아 진짜 방송 끔? 해설 방송 안 해?

-솔직히 방송 끄면 10에바터는 각 ㅇㅈ? 어, ㅇㅈ?

-힝 해설 방송 보려고 왔는데..

-프로라서 어쩔 수 없는 건가. 이러다가 곧 개인방송도 접겠네.

-사실 계약직이니까 하는 거지. 원래 프로들은 방송도 안 함.

프로들의 개인방송이 해금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게임단 입장에서는 소속된 선수들이 방송을 안 하는 편이 좋았다.

그도 그럴 게 프로라고는 해도 대부분이 이제 막 고등학교 졸업한 사회 새내기다.

조금 까놓고 말해서 철이 안 든 애들이 대부분이다.

방송 중에 사고, 혹은 막말을 해서 구설수에 오를 위험이 크다.

'전략 노출도 그렇고.. 한 마디로 관리하기가 귀찮아서지.'

하지만 그건 게임단 입장에서고.

팬들도, 선수들도 개인 방송을 하는 편이 좋다.

여기서 얻는 수익이 장난아니니까.

위트있게 방송을 진행할 끼가 있다면 연봉보다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해외 선수들 중에는 그런 경우가 많다.

그냥 게임단에 소속만 되고 방송만 하는 이들.

나도 경험해봐서 알지만 토이치TV의 경우 프로 선수에게 여러가지 혜택을 준다.

게임단도 자신들 스폰서가 홍보가 되는 셈이니 서로 간에 기브 앤 테이크다.

'고집불통의 한국에서 정착 되려면 최소 2년은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시청자들의 만류를 뒤로 하고 방송 종료.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은 후 거실로 나갔다.

나가기로 약속을 잡은 오후 다섯 시가 코앞이다.

그랬지만 예은은 아직 준비를 채 못 마친 듯 나오지 않았다.

'급할 건 없으니 천천히 기다려볼까.'

나는 거실 쇼파에 털썩 주저 앉아 리모콘으로 TV를 틀었다.

딱히 보고 싶은 채널이 있는 건 아니지만 천천히 돌려보는 것만으로도 시간 때우기는 된다.

그렇게 장장 30분.

약속 시간을 상당히 넘기고 나서야 예은은 방문을 열고 나왔다.

정말이지 한 마디 해주려고 했다.

TV를 보며 축적시킨 분노를 태우며 왜 이렇게 늦었냐고.

단단히 마음 먹었던 내 입 밖으로 튀어 나온 말은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어.. 잘 어울리네…."

타박을 주려고 했던 마음은 어느샌가 깡그리.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그저 속마음이었다.

생각의 과정조차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을 정도로 진심이다.

"그래? 뭐.. 힘 쓴 보람이 있네."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스커트.

그 아래는 조금 두꺼운 회색 타이츠로 무장했다.

노출을 싫어하는 예은다운 옷차림이지만 평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나 예쁜 거 처음 알았냐? 자, 바보짓 그만하고 어서 가자 늦겠다."

예은이 내 손을 자엽스럽게 꼬옥 잡고 현관문 쪽으로 끌어당겼다.

옅은 향수라도 뿌렸는지 여성스러운 꽃향기가 아른거린다

옷차림도 노출이 적을 뿐, 전체적으로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쓴 듯 인형같다.

옆에 있다가 남자친구로 생각되어진다면 살짝 부담스러울 것 같다.

그렇다고 뭐 싫다는 소린 아니지만 뭐랄까..

'평소에 나갈 때나 좀 이래주지.. 오늘은 자리가 약간 불편한데.'

나와 예은이 향하는 목적지.

며칠 전 8강 경기 때 하지 못한 뒤풀이다.

만나는 사람들은 당연 삼선 블루의 팀원들이 된다.

나는 예은과 함께 간만에 분당 미금역 쪽으로 향했다.

.

.

.

* * *

분명 날짜 상으로는 봄날이 왔을 텐데도 기온이 쌀쌀하다.

이놈의 지구는 어찌 되려는 지, 매해 이상 기온이다 뭐다 떠들썩 한 것도 이해가 간다.

예은이 두꺼운 타이츠를 입은 이유도 단순히 노출을 가리기 위해서.

그것도 있겠지만 날씨 놈의 탓도 분명히 있다.

'지금의 분위기가 얼어붙은 건 또 다른 이유지만.'

기왕 간만에, 그리고 조금 특별한 만남을 가지게 된 만큼 장소 또한 엄선했다.

미금역에서도 꽤나 알아준다는 소갈비집!

그것도 예약석으로 한 방을 빌렸다.

그 방 안에 일곱 남자와 한 명의 무서운 처자가 각각 두 테이블을 이어붙여 앉아 있다.

"그러니까.. 이분이? 정말로?"

씨지맥이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 그는 내가 북미에서 프로게이머 활동을 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상당히 꼬이고 꼬였다.

아무래도 교통 정리가 필요할 듯하다.

"이미 알아봤으니 하는 소리지만. 얘가 걔 맞아. 뮴뮴이."

일단 오기는 왔다만 남자들이 일곱이나 모이니 자리가 영 불편해 보이는 예은.

날카로운 눈매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오해 사기 딱 좋다.

나는 예은의 머리를 쓰담쓰담 진정시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딱히 부연 설명은 필요 없었다.

여기 와서 서로 인사를 한 시점에서 모두 알아봤으니까.

'이 녀석만한 외모가 흔치가 않긴 해.'

애초에 밝히는 것을 가정하고 이 자리에 왔다.

그도 그럴 게 대외적으로는 몰라도 팀원들.

같이 게임을 하는 이들까지 모르고 있어야 불편한 부분이 많다.

어쩌면 배신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다른 이유가 있어 이 자리에 한 명 더 불렀다.

정말 간만에 얼굴을 보는, 이제는 조금은 남자다워진 타임끝이 테이블 오른쪽 가장 끝자리에서 얼굴을 붉히고 있다.

"이건 다른 팀원들은 상관없는 이야긴데 얘가 걔야. 혹시 이야기 길어질까봐 오는 길에 문자했지만 정말로 맞아."

예은이 리뮤라는 이야기는 나만 알고 있었다.

숨기려고 했다기 보다는 말을 꺼내기 겁나 껄끄롭다.

님들 알고 보니 도슈가 여자임!

키 160cm정도의 작고 귀여운 여고딩임!

이러면 미친ㄴ.. 소리 듣지 않겠는가?

비슷한 연유다.

요즘에야 그렇지 않는다지만 1년 전만 해도 이 녀석 관종이었으니까.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로서는 떨떠름할 수밖에!

하지만 여기서 하나 반드시 짚고 가야 하는 만물불변의 진리가 있다.

"게임도 잘하시는데 미인이시기까지 하네. 아니, 프로 선수한테 게임을 잘한다는 소리는 실례겠죠?"

"누나 엄청 예쁘네요! 보이스채팅할 때는 일부러 목소리 깔으신 거에요?"

미인은 모든 것을 용서받는다!

대학 생활을 하다 보면 싫어도 알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

아무 것도 안 해도 동기생들이, 선배들이 자진해서 무언가를 꾸준히 바친다.

딱히 노려본다는 의도만 있는 게 아니다.

예은 정도의 미인이면 언감생심 꿈도 안 꾸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미인의 친구는 또 미인들만 있다고 하더라..

끼리끼리 논다고 예쁜 애들은 꼭 예쁜 애들끼리 그룹을 형성한다.

그러니까 내 주제에 살짝 어긋나는 선에서, 그리고 옆구리 시린 사람들끼리 주선해주지 않겠냐.

차곡차곡 모은 호감도를 사용해 소개팅 자리 한 번만 따내도 개이득!

굳이 그런 이해타산적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냥 미인에게는 면죄부가 딸려온다.

따지고 들어가면 째째한 남자.

그리고 솔직히 미인과 같이 있으면 힐링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남자만 이렇게 칙칙한 곳에서 미인, 그것도 프로게이머 선배님과 같이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의도하지 않아도 분위기가 띄워진다.

"오늘은 내가 쏠 테니까 다들 마음껏 먹어! 그리고 혹시나.. 예은씨에게 딴 마음 먹지 말고. 임자 있는 거 알지?"

예쁜 여자 앞에서는 폼 잡고 싶은 것이 남자의 공통된 마음!

자연스럽게 한 명의 호구.

아니, 씨지맥의 지갑이 열린다.

꼭 그래서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이렇게 시원하게 들어가면 나중에 뭐 딴 소리 나올 일은 없겠지. 그리고 다음에는 내가 쏘기로 할까.'

8강에서의 경기.

결과만 따지자면 좋았다고는 해도 과정에서 다소 강요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내가 누구인지 사전에 알았다면 의문이 생기지도 않았으리라.

개의치 않아 하는 분위기지만 약간 양심의 가책 정도는 남아있다.

다음에 한 번 맛있는 고기라도 사먹이며 회포를 풀면 될 듯하다.

'그런데 나.. 완전히 묻혀버렸네.'

예은과 나를 관련지어 생각하니 유추되기는 했다.

이미 내 입에서 이야기도 당연히 나왔다.

하지만 예은의 임팩트가 너무너무 크더라.

평소에 예은한테 이쁘다 이쁘다 해주는 나지만 이게 약간 어폐가 있다.

보통 여자들도 화장을 하고, 옷차림을 잘 꾸미고 나오면 그럭저럭 미모가 돋보인다.

그만큼이나 현재 대한민국의 화장 기술은 전세계적으로도 인정을 받을 정도!

실제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화장품 쇼핑 관광 오는 이들이 그렇게나 많다.

여성 일본인들이 한국에 오는 이유의 열에 아홉은 화장품 쇼핑 때문이라고 하니 알 만하다.

적어도 동양권에서는 화장으로 가장 이름 높은 강국이 우리나라다.

실제로 종종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오는 경험담들.

그토록 귀여웠던 여친의 민낯이 아주 사알짝 부담스럽더라.

예은에 한해서는 그럴 일이 없다.

민낯은 민낯대로, 화장은 화장한 거 대로 다른 매력이 돋보인다.

"와, 역시 에러갓! 능력 장난 아니시네요. 두 분 어떻게 만났는지 썰 좀 풀어주실 수 있나요? 아 근데 사귀는 거 맞죠..?"

8강에서 같이 게임을 하면서도 느낀 사실이지만..

명진이가 착하긴 착한데 조금 눈치가 없다.

여기서 직격탄을 박아버린다.

"그, 그런 셈이지. 게임하다 만나서 이러쿵저러쿵 일이 좀 있었어."

"그러셨군요. 사적인 건 너무 물어보면 안되는데.. 그게 아시잖아요? 게임하는 여친이라니, 그것도 잘한다니 완전 게이머의 이상인데."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상당히 신났나 보다.

떠벌떠벌 주저리주저리 계속해서 떠들어댄다.

뭐, 술자리에 이런 사람 한 명쯤 있는 편이 분위기도 유지되고 좋기는 하다.

하지만 사귄다고 인정을 해버리니 예은의 눈치가 살짝 보인다.

'이런 거 가지고 끙끙 대는 게 이상한 건가..'

정작은 본이인 예은은 개의치 않는지 내 옆에서 호쾌하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생각해 보면 괜시리 날파리 꼬이는 것보다는 내가 남자친구 행세 해주는 것이 예은에게도 낫지 않았을까.

납득은 충분히 되고도 남지만 이상하게.. 괘씸하다.

그래서 한 소리 해줬다.

"야, 적당히 마셔. 나랑 마실 때처럼 꽐라되지 말고."

"니가 어련히 집까지 데려다 주겠지. 아니면 뭐.. 나 업고 가기 무겁냐?"

예은의 한 마디에 호응이 장난 아니다.

화끈한 누님.

둘 사이 뜨겁다 기타등등.

낯 뜨거운 소리도 제법 있었는데 다행히도 예은은 여기 모인 애들이 싫지는 않나 보다.

사실 여기 오기 전에는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바로 데리고 돌아가려고 했다.

'옛날이었으면 밥상 뒤집어 엎었을 지도.'

성격이 참 많이도 좋아졌다.

묵히고 묵혔던 이야기가 풀리자 잘 섞여 들어간다.

원래 이렇게 분위기 맞춰주는 성격이 아니었는데.

참, 여러모로 기특해졌다.

그렇게 1차로 가볍게 식사만 하고 끝내려고 했던 술자리는 어느새라 할 것도 없이 2차, 3차.

결과적으로 예은에 대한 걱정은 기우였다.

일곱 남자를 제치고 마지막까지 제정신을 유지한 사람은 예은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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