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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대받는 서포터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진탕 마셨던 어제.
나는 예은의 부축을 받은 채 가까스로 집에 도착해 침대에 몸을 던질 수 있었다.
그러고서 일어나니 정오를 한참 넘어선 오후 두 시다.
많이 자서인지 숙취도 그다지 심하지 않다.
부스스한 머리를 매만지며 거실에 나가자 예은이 보였다.
"퍼뜩 온."
예은이 나를 보자마자 위아래로 손짓을 해댄다.
무슨 일로?
안 그래도 방금 일어나서 정신없는데 유난스럽다.
천천히 걸어가 예은 옆 쇼파에 앉자 나를 찌릿 째려본다.
"누님이 누구 때문에 어깨가 아프시단다."
살짝 강압적인 목소리.
심기가 불편한 듯 째려보고 있는 눈동자가 더욱 날카로워진다.
딱히 기분이 나쁜 건 아닌 것 같고 눈치를 주는 듯하다.
어떤 의미인지는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뻔할 뻔자다.
"뭉친 게 좀 풀리십니까, 마님?"
"으음.., 시원찮구나. 전력으로 꾹꾹 누르지 못할까?"
주먹을 쥐어서 콩콩 쳐주니 영 만족스럽지 못한 듯 목소리가 뚱하다.
나는 손바닥을 활짝 펴서 예은의 어깨를 감싸쥐듯 마사지했다.
처음이 아니다 보니 딱히 가릴 것도, 망설임도 없었다.
'뭐 보들보들 하기만 한데. 혹시 근육통이 왔나?'
어제 나를 부축해서 집에 데려 오는 과정이 여간 힘들었나 보다.
사실 반대의 상황은 많았지만 아무래도 남녀의 차이라는 게 있다.
다른 부분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몸무게부터 다르지 않은가.
그리고 예은이 힘이 세다 뭐다 해도 악력이 좋은 거지 팔힘이 센 건 아니다.
"짜샤, 즐기지 말고 나를 기분 좋게 해달라고오."
"어허!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리를 하시네."
손을 쫙 뻗어서 감싸면 예은의 한 쪽 어깨가 완전히 손아귀에 쥐어진다.
이게 참 뭐랄까..
남자로서 괜시리 우쭐해지는 기분이 든다.
굳이 따지자면 지배욕이라는 감정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손으로 쥔 부위를 고르게 눌렀는데 마사지를 받는 입장에선 조금 부족한가 보다.
'역시 마사지는 손끝 힘이지.'
나는 엄지 손가락을 세워 예은의 등, 날갯죽지 부분을 꾸욱 밀어올렸다.
당해봐서 알지만 상당히 시원하다.
실제로 예은에게서 반응이 왔다.
작은 교성을 내지르며 몸을 부들부들 떨어댄다.
"좋냐?"
"당빠지. 하아.. 미칠 것 같아 정말."
어깨 쪽은 말랑말랑 괜찮았는데 등 쪽은 확실히 뭉쳐있다.
그것을 내가 꾸꾹 눌러 자극해주니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함께 입술 끝이 침으로 번들거린다.
여기서 조금 더 정신을 못 차리게 해주면 주륵 흘리지 않을까.
시도를 하기에는 나도 조금 위험하다.
'참자, 참아..'
낮 두 시라고는 하지만 나한테는 아침이다.
그리고 건장한 성인 남성이 아침을 맞이했을 때 곤란한 경험,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 아닌가.
5분만 더 자야지.
정말 졸려서 자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도 간혹 존재한다.
일단은 식히고 나온 건데 예은이 이상한 소리를 흘러대니까 나까지 이상해질 것 같다.
"흐아.. 좋구만 좋아. 극락이야."
"네가 무슨 아저씨냐."
위기를 맞이했던 것도 잠시.
계속해서 마사지를 해주자 자극에 익숙해진 듯 사우나실의 아저씨같은 반응을 해온다.
나도 뭐, 예은한테 마사지를 받아본 적 있어서 알지만 기분이 점점 늘어지긴 한다.
그래도 조금은 긴장하라고 허리 아랫 부분을 찰싹 두들겨 주니 이제는 또 다른 소리를 해온다.
"등 쪽은 이제 됐고 발해줘. 발도 아팠단 말이야."
처음엔 분명 앉아있던 예은이었지만 마사지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엎드리는 자세가 되었다.
늘어지는 기분에 동해 몸도 점점 아래로 숙여진 것.
그 자세 그대로 발을 올려서 나를 향해 휘젓는다.
묘한 상황이다.
나는 예은의 발을 그대로 두 손으로 잡고 꾹꾹 눌러줬다.
발마사지의 경험은 없지만 대충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도야 감으로 알고 있다.
체한 사람 손 눌러주듯 발바닥을 지압해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디가 기분 좋은지, 뭉쳐 있는지 알 것 만도 같았다.
'무슨 아기 발처럼 부드럽네.'
예은의 발은 작은 편은 아니다.
키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렇다고 큰 편도 아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발이 예쁘고 보드랍다.
아무래도 하이힐 같은 것을 안 신어서 발 모양이 망가지지 않았나 보다.
'피부랑 모양은 타고난 건가?'
오밀조밀 발바닥이 무슨 생명체같기도 하다.
손가락으로 깍지 끼듯 발가락 사이를 벌려주자 하나하나가 따로 움직여댄다.
나는 어디선가 보았던 스포츠 마사지의 방식대로 발가락을 하나하나 괴롭혀주었다.
혹시 아파하지 않을까.
의외로 예은은 기분 좋은 듯 반응이 썩 괜찮았다.
"다음에 또 부탁해도 되지?"
"예끼! 너도 나한테 해준다면 생각해보고. 이게 은근히 힘들거든."
세상만사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점에 한해서는 딱히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계산은 확실한 녀석이다.
엎드려 있던 예은이 일어나서 나에게 몸을 기댄다.
그러고서 한 쪽 손을 내 머리 위에 포개왔다.
"착하지, 착하지. 마사지 수고했어."
예은이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주며 귀에 속삭여온다.
내가 한 적은 있어도 받은 적은 없었는데.
막상 쓰다듬어지니 이거 상당히 부끄럽다.
이것을 예은에게 몇 번이고 했다고 생각하니 낯이 뜨거워진다.
"후후, 솔직히 너도 재미 좀 봤잖아. 내 몸 만지는 거 좋았냐?"
내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을 보더니 더욱 더 박차를 가해온다.
하지만 나도 옛날의 내가 아니다.
놀린다고 곧이곧대로 당해주지 않는다.
내 머리통으로 두 팔로 안아쥐며 놀려오는 예은의 허리를 밀어서 쇼파 위로 밀어 넘어뜨렸다.
"그래, 좋았다. 이 기지배야."
"꺄아~. 동네 사람들, 저 덮쳐져요-!"
그러자 아직 백만년은 이르다는 듯 위험스런 소리를 내질러온다.
순간 아찔했다.
목소리 톤이 조금만 더 높았다면 신고가 들어오지 않았을까.
이 녀석 안에 능구렁이 세 마리는 들어앉아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언제 한 번 확! 혼을 내줘야 하는데."
"할 수 있으면 해보시던지, 짜샤. 당해줄 것 같냐?"
나에게 깔리는 듯한 모양새가 되어서도 눈 하나 깜빡 안 한다.
역으로 우쭐대며 웃어오기까지 한다.
김이 빠진 나는 그대로 허리를 일으켜 쇼파에서 내려왔다.
애초에 뭐, 장난이었다.
뭔가를 한다고 해도 발을 만지작거리던 손으로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쇼파에서 내려온 그대로 화장실을 향해 몸을 튼 나에게 예은이 뒤에서 나지막하게 말을 건네왔다.
방금 전까지의 장난스런 분위기는 조금 옅어졌다.
"얌.. 다음 주에 준결승이지?"
"그야 그렇지. 정확히는 수요일이야."
삼선 블루가 속한 A조는 준결승전을 조금 이르게 치른다.
A조 진출 팀의 8강은 월요일, 화요일에 끝났으니 당연한 노릇.
그에 비해 B조는 이번 주 주말에 경기가 끝마쳐지고 다음 주 주말에 준결승전을 가진다.
특정 팀이 시간상 너무 여유롭거나 빠듯하지 않도록 해주는 대회측의 기본적인 배려다.
"잘해봐. 혹시 뭐.. 상이라도 줄지 누가 알아?"
예은이 히죽 웃으며 오해의 소지가 많은 말을 건네온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방금 그런 일을 있었던 상황에서 상이라는 말을 꺼낸다면 괜스레 망상이 가버리는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알고서 저질렀을 확률이 100%인 정말 짓궂은 녀석이다.
비단 상이 아니더라도 이기려고 작정하긴 했지만,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는 더 늘어난 듯하다.
.
.
.
* * *
8강 두 번째 경기, 삼선 블루 대 가짜에어 독수리의 경기가 끝난 지도 어언 5일 전이다.
그 사이에 불어 닥친 솔로랭크의 서폿 열풍은 가히 뜨거웠다.
올마스터가 서포터의 가능성을 한 번 짚어주자 우후죽순 너도나도 한 번씩은 건드려본다.
특히 신규 챔피언이자 그럴 듯한 가능성을 보여준 쓰렉귀에 대해서 많은 의견이 오갔다.
─쓰렉귀 그냥 딴 거 말고.
평타 견제만 꾸준히 넣어도 다른 주류 서폿들에게 밀리지 않는 것 같아.
정확히는 평E견제.
이거 진짜 센 듯.
└기모아서 한 대 툭! 치면 원딜러보다 더 세.
└나는 그래서 쓰렉귀 원딜로 씀. 스토커의 단검 가면 지지직! 번개 터지면서 ㄹㅇ꿀잼.
└뭐야, 그거ㅋㅋㅋ 재밌긴 하겠네.
└근데 그랩이랑 궁 맞히기 너무 힘들어. 채찍 쓸기도 툭하면 역방향으로 나감.
└결국 스킬 활용 못하면 한타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지더라.. 난 그냥 쏘냐로 스턴 셔틀이나 하련다.
챔피언의 난이도가 높아도 너무 높다.
그랩은 코앞에서 던져도 빗나가기가 일쑤.
채찍 쓸기는 당겨야 할 걸 밀어서 방생하거나, 밀어야 할 걸 당겨서 욕을 먹는 경우가 허다했다.
궁극기도 이게 그냥 주위에 세우는 거라서 활용하기가 어지간히 힘들더라.
역시 그냥 올마스터가 잘하는 거였나.
그런 의문이 나올만한 나흘 간.
어쩌면 필연이었을지 모를 하나의 사건에 의해 정리되었다.
어제 있었던 8강 세 번째 경기.
얼밤 대 SKY T1 K의 혈전에서 매일라이프에 의해 쓰렉귀가 선보여졌다.
과연, 그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명경기였으나.
─얼밤 진짜 아쉽다..
아니.. 조별 리그에서는 못 알아봤는데 뭐라 해야 하지..
매일라이프 빼고는 팀원들 기량.. 왜 이러냐?
솔직히 클끼리는 슬슬 은퇴각 잡아야 할 성싶더라.
└간나색히가 또..
└거눙 그 자식도 이제 퇴물이야. 애초에 피지컬도 별로였고 탱원딜 컨셉으로 살아남았는데 요즘 워울프의 심장 잘 안 가잖아.
└매일라이프의 기량을 원딜러가 못 따라와. 얼밤은 원딜러 좀 갈았으면 싶더라.
└원딜러는 역시 딜을 넣어야지. 가짜에어 독수리가 팀 색깔은 별로여도 원딜러가 피지컬은 참 맛깔나.
└ㄹㅇ 팔에 오토메일 단 수준으로 세심하게 컨트롤 하더라.
1승 2패의 접점, 결과적인 패배.
무어라 덧붙여도 얼밤의 8강 탈락에 실드를 씌울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그래도 매일라이프는 잘했다.
매일라이프는 쓰렉귀라는 챔피언의 특색을 살려 라인전부터 한타까지 전부 훌륭했다.
랜턴에 의해 슈퍼세이브도 볼 만했고.
풀리츠크랭커보다 이어져 온 그랩 신화는 명불허전.
그나마 하나의 승점을 가져 올 수 있었던 것도 매일라이프 덕분이었다.
─이러면 결국 서포터는 역시 캐리가 안된다는 건가..
매일라이프가 올마스터보다 당연히 못하지 않는데 글고 게임 내에서도 잘해줬는데 ㅈㅈ
서포터는 게임에 열쇠를 쥐기 힘든 거 같다.
그랩이다 뭐다 해도 아이템을 올릴 수 없다는 게 후반 갈수록 크게 작용해.
올마스터가 출전한 경기는 다 짧게 끝났잖아.
그래서 영향력이 컸던 듯?
└아니, 바람 좀 빼고 보면 쓰렉귀에 한해서는 올마스터가 매일라이프보다 숙련도 훨씬 높은데?
└응 매라는 서폿신이야~
└매라신 그랩! 꺄악! 끌렸어!
└광신도들 답도 없네..
서폿으로 할 수 있는 플레이를 다 하고도 졌다.
얼밤 대 SKY T1 K의 8강은 매일라이프의 한탄이 묻어나는 진국이었다.
게임의 내용 자체는 정말로 훌륭했으나 서포터로서 후반 한타에서 할 수 있는 한계가 명확했다.
올마스터가 최근에 조금 괜찮은 경기를 펼쳤다고는 하지만 서폿터는 역시 매일라이프니까.
그런 매일라이프가 실패했으니 그냥 어쩔 수가 없는 경기였다.
실제로 이는 틀린 말도 아니었다.
매일라이프는 분명히 잘해줬다.
그러나 나머지 팀원들은 슬럼프라도 온 것인지 영 아니올시다.
특히 얼밤의 정글러인 콜끼리가 유별나게 실수를 남발했다.
SKY T1 K의 비행기 선수보다 항상 한 발이 늦었다.
3경기 내내 제대로 된 갱킹을 성공시키지 못했고, 이는 얼밤이 패배하고 만 가장 큰 요인으로 짚어졌을 정도다.
그래도 2시즌 내내 좋은 모습, 한국의 롤드컵 결승이라는 업적을 일구어낸 그이니만큼 많이 까이지는 않았지만 불안하다.
좋아하는 선수가 슬럼프에 빠졌을 때 걱정되는 것은 팬으로서 지당한 반응이었다.
─얼밤 탈락은 아쉽게 됐지만 어쨌든.. 준결승전 대진표는 이렇게 되는 건가?
일단 A조는 불밤이랑 삼선 블루의 리벤지 매치 성사고.
B조는 오늘 붙을 삼선 레드 대 KTX 롤러코스터 B팀 경기 봐바야 알겠네.
개인적으로는 삼선 레드가 이길 거라 생각하지만.
└양 팀 미드라이너 클라스는 삐까삐까하지 않나? 다대기나 듀나.
글쓴이-글킨 한데 정글 차이가 조금 남. 특히 리심 풀리면..
└아웃섹 리심이 장난 없긴 하지ㅋㅋ
└나도 삼선 레드에 손 들어준다. 근데 이러면 삼선은 형제팀 모두 준결승전 진출이네?
조별 리그가 2주일 동안 천천히 진행됐다면.
8강 경기는 1주일 동안 나뉘어서 치러졌다.
월요일과 화요일에 각각 한 팀씩, 그리고 주말에 또 한 팀씩.
이미 월요일과 화요일, 토요일 경기는 진행되어 준결승전 진출팀이 결정되었다.
남은 것은 오늘 성사되는 삼선 레드 대 KTX 롤러코스터 B팀의 경기.
그런데 요새 삼선 레드가 상당히 물이 올랐더라?
조별 리그에서는 그럭저럭 평균치의 실력을 보여줬지만 해설자들이 아무튼 그렇게 말했다.
롤챔스의 축소판이라 불리우는 스크림에서 성적이 상당하단다.
다름아닌 김은준 해설위원의 입에 서 나온 말이니 틀림없는 정보다.
조금 후면 시작되는 8강 마지막 경기.
사람들은 높은 삼선 레드의 손을 들어주는 분위기다.
준결승전 엔트리가 완벽하게 짜이기까지 이제 겨우 한 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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