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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가 캐리한다
명실상부 한국의 최강팀 중 하나.
불밤을 상대로 한 준결승전이 바로 오늘이다.
게임은 이미 시작되어 중반을 넘어가고 있다.
라인전은 무난히 끝났고 한타 또한 반반.
삼선 블루가 자신하는 운영 단계에 접어들을 일만 남았지만.
'답답하네..'
경기의 흐름때문이 아닌 다른 의미의 답답함이다.
나는 두 가지 사정이 있어 첫 번째 게임에 참여하지 못했다.
첫 번째 사정은 왠지 그럴 것 같았던 감독 녀석.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 처음에는 그대로 가보잖다.
"다 계획대로야. 지난 번에도 두 번째 세트에서 상대가 방심해서 패배하고, 세 번째 세트에서 말카림을 열어줬지 않나? 그게 전부 심리전, 이란 거거든. 크흠-!"
내 옆 벤치에 앉은 감독이 잘난 듯 떠들어온다.
나는 적당히 주억거려주며 생각했다.
와, 사람이 저렇게 행복하게도 살 수 있구나.
긍정적인 마인드에 속으로나마 찬사를 보낸다.
'물론 저 감독도 나름대로 꿍꿍이가 있을 테지만.'
정말로 저렇게 생각하는 거라면 진짜 답도 없는 거고.
자신의 꿍꿍이를 실현시키기 위한 발판이라면 꽤나 능글맞은 아저씨다.
그리고 사실 반쯤은 성공한 셈이기도 하다.
'삼선 레드가 준결승전에 올랐으니까. 어쩌면 결승전까지 갈지도 모르고..'
모든 게임단이 그런 건 아니지만, 강팀이 속한 게임단은 대부분 그러하다.
형제팀의 개념이든, 1/2군의 개념이든 팀이 나누어져 있다.
후자라면 상관이 적겠지만 전자의 경우는 조금 까다롭다.
흔히 말하는 파벌이 나뉜다.
사실 회사원으로 들어가는 사회 초년생들이라면 으레 겪게 되는 이야기다.
정부장님파, 최이사님 라인 등등..
썩은 동아줄 잡는 걸 조심하라는 소리 꼭 듣게 된다.
안타깝게도 프로게임단도 예외가 아니다.
예를 들어 볼까.
KTX 롤러코스터에는 A팀과 B팀이 있다.
그런데 이 A팀과 B팀을 모두 같은 사람이 메이킹했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니.'
즉, 각 팀 별로 추진을 맡은 사람이 따로따로 존재한다.
어느 정도는 공통으로 기획을 하겠지만 구심점은 다르다는 이야기.
자신이 맡은 게임단이 잘되면 구심점이 된 이도 승승장구하게 된다.
KTX 롤러코스터의 경우 B팀이 약간은 더 성적이 좋다.
B팀의 구성을 맡은 이는 게임단 내에서 조금 더 콧방귀를 세게 뀌고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SKY T1이라던지, 이곳 삼선도 사정은 마찬가지지.'
삼선게임단의 경우 감독은 레드에 상당히 치중했다.
자신의 권한으로 삼선 레드에 기대되는 신인들을 전부 넣었을 정도.
하지만 결과를 놓고 보니 이게 웬걸?
가성비가 훌륭하게 반비례했다.
게임단 내에서 감독의 입지가 어떻게 됐을지는 너무나도 쉽게 상상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감독은 어떻게든 삼선 레드가 블루보다 낫게 만들고 싶은 거다.
적어도 블루가 레드보다는 좋은 성적을 내서는 안된다.
그마저도 이제는 내가 첫 경기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한계다.
"본명이 시현..이라고 했나? 어때, 천천히 나가는 게 낫지 않겠어? 아직 프로게이머 생활도 익숙지 않을 텐데.."
"제 걱정은 됐습니다. 이래 봬도 제가 적응력이 무척 뛰어난 편이라서요."
게임 진행 중에도 자꾸 나를 회유하려는 속셈을 내비쳐 온다.
당연히 감독 생각은 변수가 생길 수 있는 내 출전을 허락하고 싶지 않다.
그러고 싶겠지만 더는 불가능하다.
지난 8강 경기 때 나는 큰 활약을 보였다.
게다가 팀원들 또한 나를 적극 지지하고 있다.
아까 주저리주저리 떠든 것처럼 내 공로를 깎으려고 해도 어느 정도다.
모두가 눈이 있고, 귀가 있고 게임단에는 감독보다 윗사람이 있는데 어딜 감히.
그런 상황에서 본인의 어거지를 끝까지 밀어 붙인다면?
그리고 그 판단이 팀의 패배로 이어진다면?
어지간히 멍청이가 아닌 이상 권한이 있다고 해도 시도하기 힘들다.
'멍청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고는 하지만.. 진짜 무서운 건 그게 아니야.'
애초에 멍청한 사람이면 감독의 자리에 올라가지도 못한다.
한 마디로 썩은 정치인.
능력은 있지만 그 능력의 활용법이 자기 안위다.
정말로 안타깝게도 사회에서 보면 이런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다.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말을 무시할 수도 없다는 게 참.. 골때려.'
썩어도 준치라고 일단은 감독이다.
나는 작게 한숨을 내뱉으며 흘러가고 있는 게임의 양상을 주목했다.
킬 스코어는 9 대 11.
포탑은 하나 차이로 밀리고 있다.
게임의 승기는 4 대 6정도일까.
아군이 살짝 밀리고는 있어도 향후 한타의 결과에 따라 뒤집어볼 여지는 충분하다.
감독 자식이 원하는 흐름대로 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삼선 블루가 첫 세트를 따줬으면 내심 바라고는 있지만.
'장기전으로 갈수록 불리할 것 같은데.. 집중력이라던지 여러가지가.'
1세대 E스포츠 갤럭시 크래프트 때도 자주 짚어지던 문제다.
선수의 집중력이 후반 운영을 좌우한다.
수송선이라도 잘못 떨어져서 일꾼 다 날라가고, 생산 기반 파괴되고 그러면 난리가 나버린다.
물론 5 대 5의 AOS게임인 로드 오브 로드는 조금 덜하긴 하다.
하지만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솔로랭크만 봐도 뻔하게 잘려주는 이들 꼭 한 명씩 나오지 않는가.
대회 게임에서야 그런 실수가 잘 안 나오지만, 그 반대.
상대가 실수를 해주지 않더라도 환상적인 이니시, 연계 등을 통해 강제로 잘라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 경우 쥐꼬리만한 빈틈도 내주지 않으려는 선수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불밤은 썩 훌륭하다.
정보를 바탕으로 한 추측이지만, 주장인 빅빠따맨의 오더에 따라 팀원들이 철두철미 계산된 움직임을 취한다.
빈틈이 아예 없는 수준은 아니여도 최소화 해낸 것은 분명한 사실.
개개인이 욕심부리지 않고 지극히 안정적인 선택지를 고르고 있다.
'확실히 불밤의 수준이 높긴 높아. 선수들 각자의 기량은 위협적이지 않지만 이음매가 굉장히 깔끔해.'
어쩌면 팀게임인 로드 오브 로드에 가장 잘 적응한 케이스의 팀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개인의 감정을 죽이고 팀의 승리에 이바지한다.
어찌 보면 가짜에어 독수리를 연상케 할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
'작정하고 후반만 가는 팀이랑 비교하는 건 실례지.'
게임 시작 전부터 방향을 정하고 목적지를 향해 묵묵히 전진하는 가짜에어 독수리.
그에 비해 불밤은 정말로 다섯 명이 하나 되어 움직인다.
마치 하나의 소대와도 같다.
소대장인 빅빠따맨의 명령대로 소대원들이 척척 행동하여 승기를 굳혀간다.
'전형적인 한국식 팀이랄까.. 딱 알맞는 비유야.'
개인의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 팀들은 캐리력 부족이 문제로 꼽히기도 한다.
하지만 불밤은 팀의 캐리력이 전혀 부족하지 않다.
능력이 없어서 참고 있는 게 아니다.
때에 따라 과감히 행동하게 승기를 가져온다.
팀의 중심 오더일 빅빠따맨의 판단력, 그의 그릇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원딜러의 기량도 상당하고. 0.1초 클린즈로 유명할 정도니 말 다했나.'
불밤의 원딜러 빅캡틴맨.
시즌2에는 탑클래스의 원딜러로 손꼽혔다.
새로운 시즌에 들어 살짝 저조하다고는 하지만 그 기량은 충분히 상위에 속한다.
칼같은 클린즈 반응 속도는 여전히 건재하다.
현재 게임의 흐름은 4 대 6에서 3.5대 6.5로 기울어졌다.
불밤이 팀원들간의 호흡을 과시하며 삼선 블루를 아주 천천히 수세에 몰아붙이고 있다.
단순히 안정적으로만 가는 게 아니라 언제 한 번 확! 잡아먹을 거라는 늬앙스도 충분히 내포하면서 말이다.
촤앙!
빅빠따맨의 미달리가 내던진 한 자루의 창.
그 창이 아군 미드라이너 키나키나가 플레이 하는 코리아나의 엉덩이에 제대로 명중했다.
.
.
.
* * *
쭈욱-! 줄어드는 체력바.
미처 실드 반응이 느렸던 코리아나의 체력이 반토막 나는 순간, 빅빠따맨은 오더를 내렸다.
아주 간단하고 평이하게.
"까."
빅빠따맨의 한 마디를 신호로 네명의 팀원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선두에서는 것은 정글러, 얼마 전 크게 정신을 차릴 일이 있었던 빅태양맨이 점멸 이니시를 걸었다.
쿠확!
빅태양맨이 플레이 하는 이블퀸이 궁극기인 어둠의 침식을 때려 박는다.
그 넓다란 범위에 세 명의 적이 휩싸이며 한타가 개시된다.
일반적으로 이블퀸은 발화를 많이 들지지만 빅태양맨은 점멸을 들게 됐다.
주장이 들라고 했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까라면 까야지.'
사실 빅태양맨은 이니시라는 부담을 짊어지기 싫었다.
잘 걸어봐야 중간 가는 행위고, 행여나 실수라도 하면 잉벤같은 커뮤니티에서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평소 소극적인 성격이었던 그는 이니시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불밤에 들어온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정확히는 주장인 빅빠따맨과 담배를 한 대 같이 태우고 난 이후였다.
에이, 주장 말 조금 안 듣는다고 별일 있겠어? 상팔년도 군대도 아닌데.
정말로 별 생각없이 따라간 자신을 향해 빅빠따맨은 이렇게 말했다.
원래 인간이란 동물은 게으르다고, 하지만 앞으로는 그럴 일 없을 테니 안심하라고.
그날 담배를 한 대 태우는데엔 유달리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약 두 시간이 가깝게 소요되었던 사건.
다시는 떠올리기도 싫은 순간을 회상해낸 빅태양맨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차라리 실수해서 욕을 먹는 게 낫지..
주장과 다시 담배를 피러 가는 일만은 죽도록 사양이었으니까.
"이, 일단 걸었어! 근데 나 점사 당해서 죽을 것 같아요!"
어둠의 침식은 광역 마법 피해와 함께 둔화 효과까지 딸려있다.
여기에 더해 한두인의 예지까지 퍼엉-! 터트리자 주위의 적들에게 둔화가 중첩된다.
빅태양맨이 이블퀸으로 할 수 있는 최상의 이니시.
그 대가로 상대팀에게 아주 몰매를 맞아야 했다.
하지만 빅태양맨의 희생은 의미가 없진 않았다.
치지지지직!!
불밤의 탑라이너, 빅불꽃맨이 정확한 타이밍에 달려들었다.
전기쥐가 백만볼트를 내뿜으며 주위의 적을 감전시킨다.
감전된 적은 기절하며 막대한 마법 피해를 입는다.
진입 타이밍을 잡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제대로 들어가기만 한다면 한타를 지배하는 챔피언이 바로 전기쥐다.
이게 다 자신이 잘 걸고, 잘 버텨줬기 때문이다.
빅태양맨은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신이야 곧 죽기는 하겠지만 한타의 결과는 승리겠지.
마지막 결정타를 받고 키보드에서 손을 떼려던 빅태양맨의 귀에 믿을 수 없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
빅빠따맨의 한 마디에 서포터인 빅욕망맨의 랄라가 궁극기를 사용했다.
거대화로 빅태양맨의 이블퀸을 슈퍼세이브 해냈다.
'아니.. 이게 웬일이래?'
이런 게 게임에서 쌓이는 우정이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타는 아군의 우세.
덕분에 이블퀸은 어시스트를 하나 주워 먹게 됐고 W스킬, 광란의 춤 쿨타임이 돌아왔다.
광란의 춤을 재사용한다면 이 전장에서 살아 돌아갈 수 있다.
빅태양맨은 눈시울 뜨거운 감동을 받았지만.
"박아."
뒤로 내빼려던 찰나, 빅빠따맨이 또다시 오더를 내렸다.
그 의미를 아주 잠깐 곱씹은 빅태양맨은 마우스의 커서를 반대 방향으로 향했다.
그러면 그렇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 짤 생각이었구나..
애초부터 살아 돌아갈 희망은 갖지 않는 게 옳았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빅태양맨이 필사적으로 이니시를 걸고, 마지막까지 몸을 태워낸 덕일까.
한타는 확실하게 불밤의 승리로 끝났다.
정확히는 2 대 4의 교환.
원딜러와 미드가 살은 불밤은 바론 백작까지 챙길 수 있었다.
이후로 흘러가는 게임의 흐름은 명명백백.
잡아낸 승기를 놓칠 정도로 불밤은 설렁설렁한 팀이 아니었다.
바론 버프를 바탕으로 억제탑을 하나, 아니 둘이나 파괴해냈다.
"이대로 봇 억제탑까지 돌려 깎으면 이긴 거.. 같죠?"
승패의 붕기점이 된 한타에서 제 역할을 했으니 눈치보지 않고 발언을 해도 되겠지.
빅태양맨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지금의 상황은 누가 봐도 자신들 불밤의 승리가 확정적이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일까?
빅빠따맨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문제의 뉴페이스는 아직 나오지도 않았다. 설레발들.. 치지 마라."
8강에서 가짜에어 독수리를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선보인 삼선 블루의 새로운 서포터.
올마스터가 출전하지 않은 판의 승리라는 사실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슬슬 기분이 풀렸겠구나 생각했던 팀원들의 마음이 다시금 내려 앉으려던 찰나.
팀의 원딜러 빅캡틴맨이 자신에게 비장의 한 수가 있다면서 너스레를 떨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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