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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가 캐리한다
지난 2시즌부터 꾸준하게 성과를 올리고 있는 팀.
안타깝게도 이번 시즌에는 단 하나도 살아남지 않았다.
자신들 불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신진팀이다.
심지어 대부분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마추어였던 이들이다.
딱히 꼬장을 피우는 건 아니라지만 자존심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프로게이머 선배로서 아직은 때가 아니다.
오늘의 준결승전에서도 제대로 훈육해주려 했건만.
'훈육해줄 대상을.. 잘못 고른 모양이야.'
불밤의 주장, 빅빠따맨의 표정이 심각히 굳었다.
비단 두 번째 세트를 패배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렇게나 호언장담했던 빅캡틴맨의 스펠 선택.
그리고 챔피언 선택까지 하나가 아니 두 가지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빅빠따맨은 컴퓨터 본체에 기대듯 세워둔 야구 방망이를 어루만졌다.
"아니 나는.. 스턴만 풀면 될 줄 알았어.. 미안해…."
그 모습에서 무언가 위기 신호라도 느낀 걸까.
구태여 묻지도 않았는데 빅캡틴맨이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해온다.
말을 곱씹어야 할 거다.
빅캡틴맨은 두 번째 세트 시작 전 자신 있게 말했었다.
상대가 어떤 이니시를 걸어도 클린즈로 풀어낼 수 있다고.
자신의 클린즈 반응 속도라면 라인전 뿐만 아니라 한타까지 전혀 문제 없다고.
그런데.. 한타는 커녕 라인전 단계에서 완전히 터져버렸다.
봇라인전이 성립되지 않으니 배티가 전라인을 돌아다니면서 뻥뻥 터트린다.
심지어 봇라인까지 뺑 돌아가서 곰돌이를 팍!
그렇게 배티가 15분이 채 안돼 5킬을 먹으니 적팀에 미드라이너가 두 명이더라.
게임 진행이 도저히 안될 수준이었다.
적어도 세 번째 판에서는 비슷한 참사가 절대 일어나면 안된다.
안되면 되게 한다.
팀의 사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빅빠따맨은 도가 텄다.
"다리가 없어도 게임은 할 수 있겠지."
빅빠따맨이 야구 방망이의 손잡이를 꽈악 쥐며 빅캡틴맨을 바라봤다.
나머지 팀원들은 고개를 돌리며 딴청을 피운다.
설마 아직 대회 진행 중인데 그렇게까지 할까.
하지만 본능적인 위기감이 먼저였다.
"그.. 치비르라면 충분히 사리면서 파밍할 수 있지 않을까? 라인 푸쉬 쭉쭉 하면 로밍도 못 가게 할 수 있어!"
위기에 처하니 두뇌 회전 속도가 300% 풀가동!
야구 방망이를 약 10cm가량 들어 올렸던 빅빠따맨은 다시 내려놓았다.
빅캡틴맨의 기지는 일단 부스 안에 평화를 찾아왔지만.
"치비르 요즘 안 좋지 않아?"
"야... 쉬잇!"
또다시 싸~ 해지는 분위기.
팀의 막내, 빅욕망맨이 눈치 없게도 정곡을 찔러왔다.
그의 말마따나 사실 치비르의 픽률은 저조해지는 추세다.
빅빠따맨의 오른손이 다시금 야구 방망이에 가까워졌다.
"나, 나 치비르 장인인 거 기억 안 나? 지난 시즌에만 500판이나 했는데?!"
필사적으로 외쳐댄다.
대충 둘러대는 말도 아니었다.
빅캡틴맨은 실제로 치비르 가장 잘하는 선수로 유명하다.
그 경험이 순간의 기지와 맞물리며 구사일생.
하지만 아직 모를 일이다.
과연 치비르를 하는 것이 옳은 선택일지, 아니면 단순한 생명 연장의 꿈일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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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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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지난 윈터 시즌의 롤챔스는 참으로 뜨거웠다.
이 기세가 조금만 더 이어진다면 한국이 세계 로드 오브 로드 판을 접수하는 건 아닐까?
한바탕의 봄꿈, 일장춘몽이었다.
세계라는 벽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북미의 롤챔스, 연이어 LCF까지 쐐기를 단단히 박아놨다.
꿈도 꾸지 마라.
LCF을 통해 해외가 보여준 거리감은 가히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좁혀지지 말란 보장은 또 없다.
이번 스프링 시즌은 그를 위한 첫 걸음.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준결승전 A조의 경기는 제대로 불이 붙었다.
<가짜에어 독수리를 위한 비장의 카드만이 아니었다, 배티 서폿의 진가가 여실히 들어났죠?>
<예,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라인전이 무척 셉니다. 그냥 센 게 아니라 혼자서 딜교환을 압도적으로 이겨 버려요. 과장이랄 것이 있을까요? 어머니는 강했다, 이번 게임에 한해서 서폿이 원딜보다 진실로 강했습니다.>
서포터는 흔히 어머니로 비유되곤 한다.
초중반에는 정말 쓸모가 없는 원딜러를 꾸역꾸역 먹여 살린다.
그 원딜러 성장해서 2코어, 3코어 결국에는 후반 한타를 지배한다.
정말 누가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잘 맞는 비유다만 한 가지.
어머니는 강하다고 또 누군가 말했다.
두 번째 세트에서 배티 서폿의 강함은 정말 말도 안됐다.
<저는 서포터가 원딜러를 원콤에 보내는 것 보고 기겁했습니다. 분명 풀피였거든요?>
<기괴해요 기괴해. 올마스터 선수에게 펼쳐지는 서포터는 서포터가 아닙니다. 서포터의 탈을 쓴 미드라이너에요. 배인이 그냥 깡딜에 죽었습니다.>
배티가 자꾸 돌아다니면서 다른 라인을 터트리자 랄라도 따라갔다.
혼자 남은 배인은 망한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파밍을 하며 후반을 바라봤다.
다행히도 토이치는 봇라인 1차를 부순 후 제 할 일 찾아 다른 라인을 간 상황.
본래라면 배인의 파밍을 막을 자는 없어야 했다.
그런데 배티가 단신으로 찾아왔다.
아무리 말렸어도 자신이 원딜, 그것도 배인인데 어딜 감히?
빅캡틴맨은 궁극기를 켜고 배티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곰돌이를 맞은 후에 칼같은 클린즈 반응으로 벽꿍 연계.. 완벽했습니다. 그런데 스턴을 푼다고 데미지가 안 들어가는 건 아니에요.>
<사실 친 것부터가 실수였어요. 마그마 실드의 반사 데미지가 배인의 3타보다 더 강력합니다. 이게 참 원래 빅캡틴맨만한 선수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전형적인 배인충이었죠.>
드립으로 한 소리겠지만 김은준 해설위원의 비유는 정확했다.
불현듯 앞구르기로 킬각을 노린다.
그리고 굴러가서 산화한다.
그야말로 완벽한 배인충의 본보기!
하지만 빅캡틴맨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보면 안된다.
원딜러와 서포터, 그것도 암살에 특화된 배인은 1대1에서 가장 강력한 원딜러 중 하나로 손꼽힌다.
은탄의 3타가 퍽퍽 터지면 탱커고 딜러고 간에 갈가리 찢긴다.
그래야 했지만.. 반사 데미지.
치는 쪽이 맞는 쪽보다 더 아프더라.
그 이후의 게임은 농락이었다.
괴이한 가면에 관통의 지팡이까지.
마법 관통력 아이템을 두루 갖춘 배티가 점멸의 쿨마다 무언가 한 가지를 확실하게 챙겨왔다.
처음에는 용을, 그 다음에는 2차 타워를, 바론과 억제탑도 하나하나 빼앗겼다.
심지어 5분마다가 아니다.
점멸의 쿨타임을 줄여주는 특성에 절감 업그레이드가 더해지니 쿨타임이 3분 남짓.
두 번째 세트는 배티 서폿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지배했다.
단순하게 이니시만 좋았던 거라면 해설자들도 이렇게나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게임을 끝나고 보니 배티 서폿의 딜량이 미드와 탑에 준하더라.
CS 하나 먹지 않고 라이너 급의 영향력을 선보였다.
깔끔한 이니시까지 감안한다면 서폿 배티의 캐리에 이견이 달릴 수가 없다.
이 놀라운 게임이 끝맺어진 후, 강빈 해설위원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쩌면.. 어쩌면 이지만 올마스터 선수에 의해 서포터의 캐리시대가 열리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을 해봅니다.>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궤변일까.
서포터는 어디까지나 캐리를 보조해주는 라인이다.
그것이 현 시대의 상식.
강빈 해설은 기존의 틀에 의문을 던진 셈이다.
물론 곱씹어볼 여지가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서포터는 지난 1시즌의 롤드컵때 처음으로 생겼다.
그 이후로 EU메타라고 불리우며 익숙해졌고 종국에는 정석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서포터의 의미는 도와주는 자, 캐리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생각이 깊어진다.
EU메타가 만들어낸 상식이라면.. 그 상식도 언젠가 무너질 수 있는 거 아닐까?
강빈 해설의 강소리는 언제나 조금 많이 생뚱맞기는 해도 아예 얼토당토한 헛소리는 아니다.
특히나 최근에는 맞는 빈도수가 높더라.
곱씹어볼 의미가 있다는 것에 김은준 해설위원도 크게 동조했다.
<서포터 캐리라는 게 지금까지는.. 딜러가 잘 성장하게끔 발판을 만들었다, 혹은 이니시를 잘 걸었다, 정도의 의미로 사용됐죠. 물론 매일라이프 선수처럼 예외 중의 예외는 있었습니다만..>
매일라이프의 풀리츠크랭커는 변수 만들기의 최강자였다.
제아무리 잘 성장한 딜러, 혹은 탱커라도 한 번 잘못 끌려 다섯 명에게 다구리 당하면 얄짤없는 법이다.
2시즌 때만 해도 매일라이프의 그랩에 당해 게임이 뒤집히는 광경이 흔하디 흔했다.
서포터 캐리의 전형적인 예.
그러나 어디까지나 서포팅으로 캐리한 경우다.
그마저도 선수들의 평균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그리고 그랩류 플레이에 당하지 않기 위한 대책이 세워짐에 따라 매일라이프는 풀리츠크랭커는 잘 먹히지 않게 됐다.
그 사실을 매일라이프 본인도 인지하여 이제는 대회 무대에서 잘 꺼내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어쩌면 필연적이게도 풀리츠크랭커 이외에는 게임 자체를 뒤집는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올마스터 선수가 매일라이프 선수보다 위다. 그런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라 플레이 스타일이 상이하다는 겁니다. 매일라이프 선수도 캐리형 서포터로 이름 높습니다만! 올마스터 선수는 그보다 더해요. 성장이 정말로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딜러가 캐리하게끔 도와주는 것도 일종의 캐리이긴 해도 실질적인 캐리라고 보기엔 힘들다.
그도 그럴 게 잘 키워준 딜러가 갖다 던진다면?
이니시를 환상적으로 걸었는데 아군이 뒤에서 손가락 쪽쪽 빨고 있다면?
도로아미타불, 서포터의 입장에선 답답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올마스터는 그간의 상식, 수동적이였던 틀을 집어던졌다.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게임을 입체적으로 본다.
라인전에 목 매달지 않고 마치 정글러처럼 이곳저곳 들쑤신다.
필요하다면 정해져 있는 서포터 아이템이 아닌 다른 아이템을 구입하기도 한다.
<제 예상이긴 합니다만.. 올마스터 선수는 분명히 오늘 준결승전을 대비해 무언가 새로운 카드를 더 준비해 왔을 것 같아요.>
<저도 전범준 캐스터의 말씀에 동감입니다. 지난 8강에서는 재밌는 챔피언을 두 개나 꺼냈단 말이죠? 5전 3선승제로 진행되는 오늘의 준결승전에서는 최소한 하나, 어쩌면 두 개까지도 가져왔을지 몰랍니다. 불밤의 밴카드가 남아나지를 않아요!>
새로운 방식의 캐리형 서포터가 출현함에 따라 경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삼선 블루 대 불밤의 준결승전.
불밤 측에서 작전 타임을 요청했던 바람에 잠시 지체되었지만 그것도 끝이다.
이제는 더 시간을 끌래야 끌 수가 없다.
각 게임단이 한 경기에서 요청할 수 있는 최대 시간은 15분이다.
방금 전 그 15분이 끝났고 경기는 칼같이 진행된다.
평소 이상으로 중요도가 부상한 밴픽 싸움이 막을 올린다.
<역시 이번에도 삼선 블루의 주요 픽들을 마크하고 가네요. 하지만 이번에는 쓰렉귀가 살았죠?>
<그 빈 자리를 배티가 메꿉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삼선 블루에서는 그냥 쓰렉귀 하면 그만이에요? 무언가 다른 한 수를 준비해온 것인지.. 아! 그렇네요. 자신들이 선픽이라는 이점을 백분 활용해냈습니다.>
의외로 흔하게 사용되는 전략이다.
상대의 중요 카드를 살려주는 척하다가 선픽의 이점을 살려 뺏어오는 것.
해설자들이 차마 예상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래도 설마?
다른 챔피언이면 몰라도 쓰렉귀다.
이 쓰렉귀는 난이도가 상당히 높아 아직까지도 솔랭에서 제대로 사용하는 유저를 보기 힘들다.
그나마 얼밤의 매일라이프 선수가 8강에서 괜찮은 활약을 선보였지만 그 뿐.
중계진들 사이에서 솔직하게 이야기 되기론 올마스터의 숙련도가 더 낫더라.
챔피언이 알려진 초기 단계인만큼 아직은 이른 카드다.
그런 쓰렉귀를 불밤에서 꺼내들었다.
만족스러운 수준일지.. 솔직히 아리까리하지만 연이어 구성되는 조합은 그러한 의구심을 종결하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치비르, 그리고 전기쥐까지! 확실합니다. 이번 게임에서 불밤은 돌진 조합으로 색깔을 굳혔어요!>
치비르는 중반 타이밍의 딜로스 때문에 현재는 잘 쓰이지 않는 원딜러다.
다른 원딜러들이 딜을 이만~~~큼 낼 때, 치비르는 이만~큼 밖에 못내니 자연스레 도태되었다.
하지만 돌진 조합에는 종종 섞여 사용되는데.. 빅캡틴맨이 이 치비르를 유달리 잘한다.
클린즈와 마찬가지로 스펠 실드의 반응 속도가 예술이다
더욱이 이속 증가에 의한 카이팅도 호평이 자자하다.
다소 부족한 딜은 팀원들이 공격적인 챔피언을 꺼내어 보충해주는 완벽한 돌진 조합.
안 그래도 시즌2부터 돌진 조합으로 명성이 자자한 불밤에 화룡점정이 제대로 찍힌 셈이다.
<불밤이 가장 자신 있는 조합을 꺼내 들은 만큼 보통 카드로는 맞받아치기 힘들 것 같습니다. 특히 배티도, 쓰렉귀도 봉인된 올마스터 선수로서는 힘을 쓰기가.. 어?>
전범준 캐스터의 말문이 잠시 막힌 것도 당연했다.
분명히 미드가 픽된 상황에서 두 번째로 나온 미드 챔피언.
배티로만으로는 부족했던 것일까.
올마스터가 다시 한 번 캐리형 서포터의 서막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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