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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가 캐리한다
역카운터라는 것이 있다.
챔피언의 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에 저질러버리는 바보같은 실수다.
안타깝게도 솔로랭크에서는 빈도수가 잦다.
특히 자칭 장인이라고 떠들어대는 장인충들이 많이도 해댄다.
<탑라이너님! 상대 네네톤이에요. 발렐리아 꺼내면 안돼요.>
<저 발렐리아 1천판 빡고수임ㅋㅋ 저만 믿으셈.>
장인이란 단어가 참 묘해서 없던 신뢰도 만들어버린다.
검색해봤을 때 승률이 낮지 않으면 더더욱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과가 좋으리란 보장은 없다.
<정글러 갱 안 옴? 상대 네네톤인데ㅅㅂ 상성도 별론데 정글까지 차이나네!>
<픽창에서는 이긴다면서;; 최소한 솔킬 따이기 전에 부르시던가.. 네네톤 괴물 만들어 놓고 부르면 어쩌자는 거지;>
이런 경우가 정말로 허다하다.
하지만 대회에서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뭐선픽을 박고 카운터 당하는 거야 종종 나오지만 그 반대.
프로 선수가 멍청하게 역카운터 챔피언을 픽 하겠는가?
전략&전술엔 딱히 관심 없는 이른바 피지컬파 선수들도 솔로랭크에서 들은 게 있어 일자무식은 아니다.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를 고스톱으로 딴 게 아닌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설사 실수로 짚지 못했다 하더라도 다른 선수들이나 코치진들이 한 마디 해준다.
그래야 하겠지만.. 이번 경우는 아마 쓸데없이 넓은 챔프폭이 안 좋게 작용했을 게 분명했다.
"올마스터.. 생각보다 별 거 아닌데?"
불밤의 서포터, 빅욕망맨이 가소롭다는 듯 비웃었다.
두 번째 세트에서 배티를 공격적으로 상당히 잘하길래 긴장했지만 역시는 역시였다.
자신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게임에서의 실력, 그리고 단합력.
물론 그런 부분도 있겠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건 적응력이다.
솔로랭크와 대회 무대는 다르다.
그 어떤 때에도 평균 이상을 해내는 항상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저격밴에 챔피언 좀 뺏겼다고 울상이 돼서 제멋대로 픽을 하다니.
가소로워도 이렇게 가소로울 수가 없다.
"또 비슷한 딜챔피언을 하려는 듯한데 한참은 물렀어."
"그러게, 저거 파훼법이 나온지가 언제야."
빅캡틴맨의 말에 빅욕망맨이 깊게 수긍한다.
올마스터가 새로이 꺼내온 챔피언인 조아라.
시즌2 중반기에 나온 조아라는 서포터로서 이미 낱낱이 연구되었다.
실제로 잠시간 대회 경기에서도 모습을 드러냈으니 당연하다.
꽤나 강력한 견제로 이름을 날리긴 했지만 다 옛날 일이다.
너프도 많이 된 데다가 결정적인 한 가지.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공략법이 제대로 나왔다.
"나 발화들었으니까 2렙 킬각.. 알지?"
"알다마다, 이번에야 말로.. 후, 어쨌든 잘해보자."
원딜러로서의 자존심 이전에 원초적인 위기감.
빅캡틴맨은 라인전을 반드시 이겨야 했다.
최소한 반반은 가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이를 해낼 수 있는 여건은 완벽하게 갖춰졌다.
올마스터가 꺼내든 서폿 조아라의 약점은 바로 집중 점사.
견제류 챔피언이 으레 그렇듯 몸이 종잇장이다.
두 번째 세트에서야 베티의 스턴 때문에 꿈도 못 꿨지만 조아라는 다르다.
조아라가 던져오는 논타겟스킬을 점멸로 쿨하게 씹은 후 CC기를 걸면 순삭이다.
그것을 행하기에 쓰렉귀는 적절한 챔피언이었다.
이미 반쯤 이겼다는 생각에 빅욕망맨은 방긋 웃으며 라인에 도착하자마자 견제를 퍼부었다.
'이 쓰렉귀는 평타 견제가 엄청나게 강력해.'
기를 모아서 한 대씩 찰싹! 쳐주기만 해도 짭짤하더라.
올마스터의 플레이를 보고 배우기는 했어도 원래 프로판이 다 그렇다.
누군가 했으면 따라 쓰는 사람들도 나오기 마련이다.
빅욕망맨은 솔직히 쓰렉귀 숙련도가 아직 부족했지만 평타 짤짤이 정도는 여반장이었다.
그런데 조금.. 아니, 많이 문제가 생겼다.
콰득!
평타 한 대 치려던 빅욕망맨은 호되게 얻어맞았다.
바닥에서 가시가 올라오며 토이치와 조아라가 평타 세례를 퍼붓는다.
우여곡절 끝에 한 대 치기는 했지만 생각만치 달지도 않았다.
"왜 이렇게 얻어 맞고 왔냐.."
"조아라 사거리가 길다는 걸 까먹었어.. 근데 생각보다 약하네 쓰렉귀?"
조아라의 평타 사거리는 원딜러의 평균보다 살짝 긴 575.
그것만이었다면 딜교환에서 엄청난 손해를 보진 않았을 거다.
분명히 한 대 쳐서 되돌려줬는데 조아라의 체력은 예상했던 것보다 덜 달았다.
솔로랭크에서 했을 때는 분명 괜찮았는데.. 기분 탓인지 느낌이 묘하다.
"뭐야, 쟤 또 시작 아이템으로 두란링 사왔네. 라인전 세게 가려고 작정했나 보다 쟤."
"아, 그래서 그런가? 그거 감안해도 조금 단단한 거 같은데.. 어쨌든 2렙 찍고 킬각 노려보자."
아무래도 조아라는 장시간 픽이 되지 않던 챔피언이다.
낯설어진 만큼 기억이 약간 틀릴 수도 있는 노릇이다.
딜교환처럼 세심한 부분은 정확히 기억하는 것이 도리어 이상하다.
어차피 2레벨을 찍은 순간 라인전은 이긴 거나 다름이 없다.
치비르는 라인 푸쉬도 좋으니 자신들이 2레벨을 먼저 찍을 게 확실하다.
픽을 뺏겨 버린 상대는 심정도 엄청 복잡할 테니 이번 세 번째 세트의 승기는 반 이상 넘어온 셈이다.
'그런데 왜 이리 불안하지..'
주어진 상황은 명백히 유리한 흐름으로 나아가고 있다.
실제로 라인 푸쉬의 정도를 봤을 때 자신들이 적어도 1초는 빠르게 2레벨을 달성한다.
뒤늦게 2레벨에 도달한 적들이 대응을 취한다고 해도 물몸인 조아라는 죽고 시작한다.
이는 조아라 서폿이 완전히 묻혀버린 결정적인 이유.
자신이 준비한 전략에 빈틈은 분명 없을 텐데도 빅욕망맨은 어째서인지 모를 초조함에 휩싸였다.
.
.
.
* * *
게임의 흐름은 역시나 예상대로.
체력이 깎인 쓰렉귀가 자연 회복을 기다리지 않고 포션을 빨아댄다.
2레벨을 찍은 후에 곧장 이니시를 걸 속셈이라는 게 빤히 읽힌다.
그 사실을 나보다 한 발 늦게 캐치한 헬멧이 불안한 듯 외쳐온다.
"저희 그냥 빼는 게 낫지 않을까요? 2레벨 늦을 거 같은데.."
"됐으니까 그냥 쳐. 나 믿고."
쓰렉귀까지 가세하며 노골적으로 라인 푸쉬의 스퍼트를 올려온다.
상대도 당연 천천히 진행하고 싶었겠지만 속셈을 파악해낸 내가 라인을 같이 밀었다.
마음이 조급해진 상대가 약간 실수를 해온 셈이지만 모른 척 해주기로 했다.
'구태여 싸움을 걸어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물론 다소 늦기는 할 거다.
상대가 치비르를 꺼낸 이상 라인 푸쉬 속도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으니까.
여기에 서포터가 미니언 막타를 뺏을 정도로 살기등등하니 2레벨이 약간 늦는 거야 어쩔 수 없다.
티링!
평타 한 대 차이로 먼저 레벨업을 한 상대팀.
아니나 다를까 이니시를 걸어온다.
누구에게 배운 건지 그랩-점멸을 시도한다.
'미니언이 가로 막고 있는데 그랩을 사용하다니.. 너무 뻔하잖아?'
자신이 썼던 기술에 당해줄 멍청이라 생각했다면 사람 잘못 봐도 한참 잘못 봤다.
나는 쓰레쉬가 그랩을 던져오는 타이밍에 정확히 맞춰 맞점멸을 사용했다.
타이밍이 한 번 어긋나자 완전히 넘어오는 주도권.
나와 헬멧의 토이치도 이제 2레벨이다.
티링!
봇라인 2대2의 교전에선 원딜러를 치는 게 정석이다.
하지만 그것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
앞점멸로 진입해온 상대는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주제 모르고 덤벼오는 상대를 툭! 밀어 강에 빠뜨려준다.
콰득!
1레벨에 쓰렉귀를 견제했던 조아라의 Q스킬, 가시 지옥이 적을 뜯어낸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나는 스킬이 사용된 자리에 씨앗을 하나 심었다.
쑤욱!
조아라의 W스킬, 식인식물의 씨앗.
스킬을 사용한 자리에 심으면 순식간에 자라나 꽃 피운다.
자라난 꽃은 근처의 적을 물어 뜯는다.
촥!
촥!
나와 토이치, 그리고 식인식물의 협공이다.
쓰렉귀의 체력은 순식간에 깎여나간다.
그래도 소기의 목적을 포기할 생각은 없는지 나에게 발화를 걸며 채찍으로 후려 갈긴다.
이에 빅캡틴맨의 치비르가 앞점멸을 하며 호응한다.
타랑, 탕!
수준급의 원딜러다운 자연스러운 평캔이다.
부메랑까지 더해진 치비르의 순간 딜링은 상당히 위협적이다.
조아라같은 마법사 챔피언들은 녹아나야 정상.
그런데 상대의 생각만큼 내가 빨리 죽어주지를 않는다.
'방어룬특 조아라라고 들어는 봤나.'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조아라는 원래부터 서포터로 종종 쓰이던 픽이다.
최근에야 한물 간 느낌이지만 시즌2 중반기에는 정말 많이도 쓰였다.
물몸이라는 단점이 부각된 이후로 픽률이 급감하긴 했지만.
'하지만 이렇게 룬과 특성으로 체력과 방어력을 올려주면 쉽게 안 죽지.'
공격력을 희생한 셈이 되긴 해도 그럴 만한 값어치가 있는 선택이다.
내가 생각 이상으로 단단한 탓에 쓰렉귀는 미련을 남기고 떠나간다.
─퍼스트 블러드!
적을 처치했습니다.
식물과 발화의 데미지 덕에 킬은 내가 챙겼다.
하지만 점사를 받은 나의 체력도 온전치 못한 상황.
치비르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꾸역꾸역 들어와 마지막 평타를 후려 갈겼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그 대가로 치비르는 토이치에게 목숨을 헌납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첫 단추가 잘못 꿰여도 어지간히 잘못 꿰였다.
그랩-점멸의 실패도 실패지만 생각 이상으로 내가 빨리 안 죽었다.
작전대로 됐다면 설사 그랩을 못 맞혔어도 치비르는 살았을 텐데.
이제 와서 땅을 치고 후회한다고 한들 늦었다.
봇라인에서의 첫 번째 교전은 아군의 압승으로 끝이 났다.
"조아라가 원래 이렇게 단단한 챔피언이었나? 신기하네.. 형이 하는 건 이상하게 다 OP같아.."
"원래 잘하는 사람이 하는 건 다 좋아 보이는 법이야 짜샤."
헬멧의 의문은 당연하다.
원래라면 마관룬이 들어갈 자리에 방어력룬이 들어가고, 특성도 수비 쪽에 거의 올인하다시피 했다.
단단하지 않다면 오히려 곤란하다.
물론 착각해서는 안된다.
다른 서폿 챔피언으로 이짓거리를 했다면 본래의 특색만 깎아먹는 셈이다.
방어력에 투자한만큼 딜링 능력이 떨어지니 당연한 이치.
하지만 조금 특이하게도 조아라에게는 방어룬특이 훨씬 효율적이다.
찰칵!
나는 퍼블을 먹은 돈으로 체력 수정을 구입했다.
솔직히 말해서.. 딱히 와드돌을 빠르게 가려는 건 아니고 탱템으로서의 용도다.
조아라 서폿은 단단함을 기반으로 견제력을 강화하는 조금 특이한 형태의 서포터다.
'조아라의 진짜 딜은 스킬이 아니라 식물이니까,'
라인에 도착하자 이번에는 상대도 사리겠다는 듯 수비적인 행태를 취해온다.
견제형 서포터인 조아라가 설마 룬특을 단단하게 들고 왔을 줄이야.
뒷통수를 맞은 기분이겠지만 그만큼 내 견제가 약할 테니 버틸 만할 거다.
상대는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로 라인전을 진행하려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번지수 잘못 알아봤다.
툭.
콰득!
치비르에게 평타를 날리며 가시지옥을 선사한다.
빅캡틴맨은 자랑하는 반응 속도로 스펠 실드를 사용해 막았지만 끝나지 않는다.
불뚝 솟아난 식인식물이 물어 뜯는다.
그것도 주위의 미니언을 무시한 채 올곧게 말이다.
'방어룬특의 조아라가 라인전에서 괴랄한 이유는 바로 이 평타 견제 때문이지.'
평타 짤짤이에 의존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식물은 조아라가 공격하는 대상을 우선적으로 타겟팅한다.
그러나 상대가 스킬을 회피했다면 가까운 주위의 미니언을 때리게 된다.
인공지능이란 게 원래 좀 멍청하지 않은가.
하지만 내가 평타를 같이 때려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식물은 똑똑하게 치비르를 찾아내 공격한다.
물론 이렇게 되면 내가 쓰렉귀와 적 미니언 공격에 노출되는 셈이지만 단단하다.
단단해서 체력이 많이 달지를 않는다.
그에 비해 치비르의 체력은 뭉텅뭉텅 깎여나간다.
툭.
콰득!
일련의 견제를 반복한다.
가시지옥까지 맞는다면 정말 지옥이 따로 없고.
안 맞아도 식물과 내 평타가 집요하게 괴롭힌다.
배티와 배인의 사거리 차이가 75였던가.
안타깝게도 조아라와 치비르의 사거리도 똑같이 75 차이다.
이래 봬도 조아라는 평타 사거리가 꽤 긴 축에 속하는 챔피언이니까.
"봇라인 또 탈탈 털고 있네.. 형, 그냥 제가 와드돌 살게요. 형 하고 싶은 대로 맘껏 하세요.."
"어, 어..그래. 그래주면 고맙고?"
나의 와드 구입에 대해 반쯤 포기한 명진이가 감탄스러운 듯 말해온다.
순수한 감탄이라기 보단 살짝 어이상실이 섞여 있다.
와드를 안 사고 라인전을 지거나, 갱에 당해준다면 야속하겠지만 난 털고 있으니까.
그것도 적이 갱호응을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아예 탈탈탈.
또다시 갱킹이 온다면 갱승으로 밖에 이어지지 않을 흐름이다.
이러한 경험, 두 번째 세트에서 한 번 해봤을 거다.
흘러갈 미래를 슬슬 눈치챘는지 빅캡틴맨의 부메랑 파밍에 처량함이 묻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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