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70화 (470/803)

470====================

성장하는 한국 리그

준결승전 A조의 경기가 끝난 직후.

아이러니하게도 잉벤에서는 현재 능욕이 한창이다.

인터넷에서 보면 정말로 흔히 있는 아이디 세탁.

한 녀석이 뻔하게 분탕질을 하다가 딱 걸려버렸다며 히히덕거린다.

─국뽕 빌런아! 부캐를 만들 거면 티 좀 안 나게 만들지ㅋㅋ

경기 끝난 타이밍에 정확히 어그로 끌면 타이밍이 너무 뻔하잖아^^

알겠냐?

어그로는 타이밍이야, 타이밍.

└8강 끝났을 때도 딱 이 타이밍에 어그로 끌었는데 무슨 연어마냥 돌아옴ㅋㅋ

└저.. 진짜 그 분 아니고요. 제 글 보시면 알겠지만 확실하게 타당한 근거가..

└네 다음 자칭 국뽕 빌런(아님)님ㅋㅋㅋㅋㅋ

└쟤 왜 자꾸 올마스터=에러갓설 밀어대냐. 컨셉?

└저런 애들 빼박 급식충에 롤 티어 브론즈, 실버ㅋㅋ

일주일 전, 삼선 블루 대 가짜에어 독수리의 8강 경기가 있었던 날.

경기가 끝난 직후 한 잉벤 유저가 글을 올렸다.

올마스터가 CLC의 Error선수 본인 같다고.

가지고 온 근거라고는 심증 뿐인 얼토당토 하지 않은 궤변이었다.

당연히 묻혔지만 꽥꽥 우겨대는 바람에 이틀 후 아주 잠시간 떡밥이 돌았다.

떡밥의 결론은 국뽕도 어지간히 해라.

무시를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고, 본인도 아닌가.. 주춤하는 것으로 사그라들었다.

그런데 또 나타났다.

─국뽕 빌런 엄청 끈질기네..

주저리주저리 뭔가 써온 글 그거.. 읽겠냐?

잉벤에서 3줄 요약 없는 글은 안 읽는다 몰라?

이제 좀 있으면 국뽕 빌런 본캐 와서 나 아님 이럼ㅋㅋ

└ㄹㅇ 패턴 정확함ㅋㅋ

└?? 저 학교 끝나고 지금 막 들어왔는데 뭔 일임?

└앙 급식띠! 역시나네.

└또 우연이라고 우겨 보시지ㅋㅋㅋ

올마스터가 Unknown Error라고 우겨대는 국뽕 빌런 두 명이나 나타났다.

어쩌면 혼자서 생쇼를 치는 걸지도 모를 일이지만.. 글이 올라왔다?

국뽕 빌런 2호가 주장하는 근거는 제법 그럴 듯했다.

길게 썼을 때는 눈이 안 갔는데 요약하니 의외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이었다.

─많은 분들이 세 줄 요약 원하셔서 남기고 갑니다.

1.점멸키 위치와 사용 아이템 위치.

2.서포터임에도 미드라이너의 성향이 두드러지는 플레이 방식.

3.본래 서포터를 잘 하지 않던 유저.

그 외에도 비슷한 느낌의 외모.

잠적하고, 다시 나타난 시기 등이 추가됩니다.

이 하나하나가 확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만한 실력의 선수가 갑작스레 땅에서 솟아났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Error선수 본인이 모종의 이유로 신분을 감추고 경기를 출전한다면 정확히 맞물립니다.

그라면 서포터로도 충분히 한국 리그에서 캐리가 가능하겠지요.

이러한 근거들을 바탕으로 저는 올마스터가 Error선수 본인이라 확신합니다.

마지막으로 국뽕 빌런님과 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네다국!

└깨알 같은 본인 실드ㄷㄷ

└니가 뭔데 확신씩이나 함ㅋㅋ

└근데 이거.. 제법 그럴 듯한데? 나만 그리 생각하나?

타이밍이 다소 안 좋았다.

만약에 국뽕 빌런이 아예 없었다면 순식간에 여론이 모아졌으리라.

분탕 종자라 의심을 받기 시작하니 그것부터 해명해야 했다.

하지만 글을 올린 본인은 거기까지는 관심이 없던 듯 위의 글을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이후로 국뽕 빌런 본인만 남아 나 아니다, 그런데 저거 솔직히 맞는 말 아니냐?

한참 떠들자 거의 어거지로 관심이 끌렸다.

안 좋은 쪽의 관심이었지만 사람 수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쪽 의견도 피어났다.

─국뽕 빌런인지 뭔지는 관심 없고 글 내용만 따져보건데.

꽤 그럴 듯하지 않아?

1번 점멸키는 몰라도 아이템 위치 보는 건 신박하다.

어떻게 저런 기발한 생각을 했지?

물론 그거 하나로는 많이 부족한데 나머지까지 감안하면 으음..

사람 의심을 섣불리 하는 건 안되는 일이지만 난 왠지 맞을 것 같다.

└뭐야 국뽕 빌런 3호임?

글쓴이-개솔ㄴㄴ

└나도 글쓴이 말에 동감함. 충분히 일리 있다.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은 근거 좀 가지고 말해라. 저 사람이 국뽕 빌런이든 아니든 간에 충분히 맞는 말만 했구만.

토론이 불거지자 이윽고 화제글에 올라갔다.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이 갑론을박.

한 가지는 확실했다.

국뽕 빌런 2호의 주장에 신빙성이 없진 않다.

오히려 곱씹어보면 곱씹어 볼수록.. 맞는 소리 같다?

서로 맞다, 아니다 싸우는 걸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밌으니 판은 계속해서 커갔다.

─올마스터랑 에러갓 사진 비교.jpg

내가 이쪽 분야 전문가라서 잘 암.

일단 포토샵으로 에러갓 메이크업 어느 정도 지워봤음.

다 지우는 건 무리였지만 어쨌든 놓고 보니 얼추 비슷함 ㅇㅈ?

다른 사람이라고 하면 할 말 수준인 것도 맞는데 여기서 확실한 증거.

다른 건 몰라도 사람이 귀 모양은 안 변함.

└오.. 님 좀 천재인 듯?

└체격이라던지 여러가지는 에러갓이 훨씬 다부지긴 한데.. 최근 올마스터도 몸집 좀 불어난 거 감안하면….

└이런 식으로 증거 하나하나 찾아서 누가 정리글 좀 써봐. 찾아 보기 귀찮다.

└캬아~! 떡밥 꿀잼ㅋㅋ 더들 해봐ㅋㅋㅋ

올마스터가 Unknown Error 본인이다..

지금껏 어그로라 무시되었던 이야기는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한 번 불이 붙자 멈추지 않고 그 기세를 이어나갔다.

이거 증거 아니냐?

두루뭉실 이야기만 해대도 조회수와 댓글이 팍팍 올라가니 이리도 재밌을 수가!

화제글에는 올마스터와 Unknown Error에 관련된 이야기들이 도배됐다.

하지만 너무 분위기를 탔던 것일까.

─안녕하세요. 잉벤 운영팀입니다.

현재 뜨거운 감자로 올라와 있는 화제..

말씀하시는 것은 괜찮지만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만큼 화제글에서는 배제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용에 불편드려 죄송합니다.

└뭐야, 올마스터 편들어주는 거??

└아니 왜 자유의 목소리를 막아대냐?

└이제 좀 재밌어 질라는데 운영진이 초를 쳐대네 ㅡㅡ

결국 보다 못한 잉벤의 운영자가 나서 화제글을 내렸다.

증거가 있고 없고를 떠나, 공인에 대해 왈가왈부 하는 것은 도를 넘었다는 사유였다.

아니, 잉벤이 원래 좀 그렇고 그런 곳이라는 거 모르지 않을 텐데 이제 와서 왜 선비 코스프레를?

운영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그럴 만도 했다.

어지간한 프로게이머도 아니고 Unknown Error.

그의 인지도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프로게임단에서 정식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도, 빼도 박도 못하는 확증이 나온 것도 아니니 적당히들 이야기해라.

화제 자체를 금지한 것은 아니었기에 자유게시판에서는 계속해서 이야기가 이어졌다.

물론 아무리 떠들어도 화제글을 못 가니 시들시들 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

하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고 확실하게 남아있었다.

.

.

.

* * *

3월이 완전히 지나고 4월에 들자 추위가 한물간 진짜 봄날씨가 다가왔다.

이 꽃샘 추위라는 게 참 골때려서 체감으로는 2월보다 3월이 더 추웠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는 왜 또 이리 추울까….'

집에 도착하니 분위기가 싸하다.

이유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집안 공기에서 달콤짭짜름한 식욕을 돋구는 음식 냄새가 감돈다.

결정적으로 예은이 입고 있는 앞치마가 전후사정을 나타내준다.

내가 곧장 집으로 향했다면 오후 여덟 시, 일이 있어 늦어도 아홉 시까지는 도착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도착할 시간을 대략 예상해서 식사를 준비해놨겠지.

그런데 그보다 한 시간 반이나 늦은 열 시에 와버렸다.

기껏 차려 놓은 식사가 전부 식었다.

예은의 입이 대빨 나온 것도 이해가 된다.

"손들어. 움직이면.. 죽는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수하.

팔짱을 낀 예은이 손가락으로 탁탁 팔을 두들기며 나를 째려본다.

뾰로통한 표정과 장난스런 농담을 던지는 것으로 미루어봐 아주 많이 삐진 거 같진 않다.

하지만 역시 그냥 넘어가기는 글러 보인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마님."

보초 서다 암구호를 주고 받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어디서 어떻게 주워들은 건지는 몰라도 요즘 여자애들 은근히 군대에 관심이 많긴 하다.

물론 문어와 답어를 정해둔 기억까진 없지만 이 정도야 센스 아니겠는가.

다행스럽게도 답어가 맞았는지 예은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그래서 왜 늦었어?"

그래도 아직 용서와는 거리가 멀다는 듯.

예은이 껌을 질겅질겅 신경질 나게 씹어대고 있다.

어떻게 둘러대는 것이 옳을까.

솔직히.. 예은이랑 머리 싸움해서 이길 자신이 없다.

"……그렇게 까먹고 말았습니다."

"좋아. 봐줄게."

최소한 30분.

음식 조리 시간 만큼은 잔소리를 들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쿨하게 용서해준다.

내가 말하긴 뭣하지만 예은의 입장에서 많이 화날 만도 했던 일이다.

이렇게 쉽게 용서해주니 되려 찜찜하다.

"바보, 나 그렇게 쫀쫀하지 않거든? 늦을 거면 말을 하고 늦으란 말이야."

예은이 툴툴대며 다가온다.

우리 마님은 내 생각 이상으로 이해심이 깊으신 모양이다.

정말로 한숨 덜기는 했지만..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데.

"..상, 준다고 했잖아."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하지만 기대가 큰만큼 실망도 커진다고 딱히 염두해두진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예은은 기억해주고 있었다.

예은의 두 손이 내 뺨을 감싸왔다.

'정말로 설마 하지만..'

묘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예은이 내 눈을 지긋이 바라본다.

이게 참.. 내가 아무리 이 녀석을 허구헌날 보고 산다고는 해도 적응한 거지, 익숙해진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어지간히 친화력이 좋은 몇몇 사람들은 예외일 수도 있지만 길거리에서 미인과 눈을 마주치면 부담스럽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여기에 해당했다.

예은과 어울리게 된 이후로는 어떤 여자도 평범녀로 보이게 됐다.

정작 본인인 예은은 도저히 평범하게 볼 수 없어서 문제지.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이 삼켜진다.

예은과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검은 은하수 같은 눈동자가 나를 빨아들인다.

로맨틱한 감상은 솔직히 못하겠지만.. 적어도 아름답다는 건 알겠다.

수분기를 머금은 눈망울이 초롱초롱 주위의 빛을 흡수, 반사한다.

흔들림이 있을 때마다 갖가지 방향으로 빛나대니 1초, 1초의 모습이 새롭다.

여성과 남성을 떠나 이 눈동자는 보석만한 가치를 가치고 있다.

이만한 아름다움에 익숙해진다니 당치도 않다.

"..눈, 감지 말아봐."

예은이 내 뺨을 붙잡고 그대로 접근해온다.

다소 키 차이가 나는 바람에 이대로면 닿지 않을 것 같다.

나는 허리를 조금 숙여 예은이 하려고 하는 짓에 어울려 줬다.

"윽, 술냄새."

"......"

술냄새에 대해서는 변명할 말이 없다.

고깃집에서 1차로 식사를 했다, 그런데 밥만 먹었겠는가?

입을 적시는 정도로는 한 잔씩 하기 마련이다.

부족하니까 2차, 3차를 가는 거고 원래 술자리라는 게 다 그렇게 연계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는 길에 껌이라도 하나 씹고 오는 건데.

하지만 예은은 고작 술냄새로 멈출 생각이 없는 듯 계속해서 거리를 좁혀왔다.

장난을 치는 건 아닌지, 의심될 만한 상황임에도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친다.

서로의 숨결이 닿기 시작하자 엄청나게 부끄러워진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나 얼굴 엄청나게 빨개졌겠지.

코가 닿을 지경이 되자 나는 꼬옥 눈을 감았다.

"눈 떠, 짜샤. 내가 잡아먹기라도 해?"

보통 키스라는 게 눈을 감고하지 않나.

억울함이 울컥 솟아 나온다.

이전에 사겼던 애인과 눈을 뜨고 키스한 적 있기는 하지만 장난스레 했지, 진지하게 하진 않았다.

언제 닿을지 몰라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상황은 감미로운 고문처럼 느껴진다.

실제 시간은 정말 1분도 지나지 않았을 텐데 멈춘 것만 같다.

약 50센티 남짓 하던 거리가 코앞까지 다가오고, 다시 입술과 입술 사이의 거리가 제로에 가깝게 단축되는 데에는 체감 시간으로 하루 남짓 흘렀다고 해도 믿겠다.

평소의 예은이라면 이대로 장난이었다면 내 엉덩이 툭 치고 끝내지 않을까.

예은과 나의 입술 끝이 아주 살짝, 닿은 것 같기도 하다..?

"그 껌 먹으면서 기다리고 있어봐. 나랑 한 잔 더 하자?"

키스랄까, 미묘하다.

예은이 씹고 있던 껌을 앞니로 살짝 깨물어 나에게 전달했다.

그 과정에서 입술은 확실하게 닿았다.

그것을 모른 척 하려는 건지, 예은은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서둘러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하, 빨리 도착했으면 조금 더 화끈한 상을 줬으려나.'

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며 단물이 다 빠진 껌을 질겅질겅 깨물었다.

날 기다리는 동안 한참은 씹었을 껌에는 이상하게도 은은한 단맛이 배어 나왔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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