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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71화 (47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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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한국 리그

거실 쇼파 앞 탁자 위에 여러가지 음식들을 늘여 놓은 모양새.

음식들 중엔 오늘 예은이 신경 써서 만들었다는 갈비찜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는 갈비찜은 조금 묵혔다가 먹는 편이 좋다.

간이 짭짤하게 배면서 고기도 부드러워지는 게 딱 취향이다.

아니, 입에 발린 말을 하기 위해서 둘러대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래서 일부러 늦게 오셔따?"

"술안주로 먹기에는 짭짤한 편이 낫다, 그런 뜻이지."

예은이 살짝 꼬인 혀로 술냄새를 풀풀 풍기며 딴지를 걸어온다.

아까의 앙금이 남아있다기 보단 최근에 약간 외로우시단다.

집에 있어야 할 누가 자꾸 밖으로 나간다며, 연습이랍시고 같이 안 놀아준다고 술김에 토로해온다.

이렇게 보면 은근히 귀여운 구석이 많은 녀석이다.

"짜샤, 이거 봄?"

"못 봄. 왜?"

술에 채기 시작하면 엉겨 붙어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쇼파 밑에 기대듯 앉아 있는 예은이 스마트폰을 꺼내 검지 손가락으로 쭈욱 밀어올렸다.

취기가 돌아서인지 힘이 과하게 실리긴 했다만 목적한 바는 이루어냈다.

"잉벤? 왜? 나 오늘 잘했잖아?"

"누가 못했대? 이거, 이거."

내가 말하긴 뭣하지만 오늘 플레이는 솔직히.. 쩔었다.

매드무비가 만들어질지 언정 틈 잡을 구석은 없을 텐데 무슨 일인지.

예은이 나에게 보여주고 했던 글은 자유게시판에서 열일곱 페이지나 뒤에 있었다.

'화제글도 아니고.. 웃긴 유머라도 찾았나?'

정말로 별 생각없이 예은의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글쎄, 깜짝 놀랐다.

내가 CLC의 Error선수가 아닌지 꽤나 면밀한 유추가 오갔다.

나름대로 댓글도 많고 조회수도 많은데 화제글은 아니었다는 점은 조금 의아하긴 하지만 그 뿐이다.

"그렇구만. 슬슬 안 터지나 했지."

"짜샤, 이게 누구 덕분? 이 못생긴 얼굴을 내가 메이크업 해준 덕분?"

예은이 내 검지와 엄지로 내 볼따구를 쭈욱 당겨온다.

딱히 아프진 않지만 못생겼다는 표현은 쪼오옴 반박하고 싶다.

누군 뭐, 예쁘면 얼마나 예쁘다고.

"양심 있냐?"

"그래, 너처럼 예쁜 애랑 살아서 햄볶는다."

살짝 짜증을 담아 머리를 격하게 쓰담쓰담 해주니 예은이 실실대며 웃는다.

그래, 유전자 축복 받아 태어나서 좋겠다.

참으로 부럽지만 이 녀석에게 있어서 외모는 어드밴티지가 아니다.

내가 예은의 인생에 알면 뭐 얼마나 알겠냐만은.. 이거 한 가지는 아마도 확실할 거다.

'원래 여자애들이 조금 그런 면이 있지.'

남자인 나로서는 사실 이해가 잘 안 가는 일이지만 눈과 귀 정도는 있다.

여자들 그룹에서 가장 이쁜 애는 둘 중 하나다.

여왕이 되거나, 따를 당하거나.

중간이 되는 일은 안타깝게도 없다.

같이 사는 입장에서 말하긴 뭣하지만 예은은 친화력이 적어서 전자는 아닐 거다.

물론 이 녀석이 당하고 살 성깔도 아니니 손해 보고 살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아마 외로웠겠지.

나한테 유난히 툴툴 대는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팀원들이 막 너 뒷담 까면 어째?"

"안 까 얌마. 걱정 붙들어 매."

잘잘못을 떠나서 회식 자리에 제대로 참석하지 못했다.

그 부분에 대해 예은은 못내 마음에 걸리나 보다.

자기 때문에 나중에 안 좋은 소리 듣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그 쪽에 있는 게 더 재밌는 거 아니냐고.

전자든 후자든 전혀 문제될 거 없다.

"난 너랑 마시는 술이 가장 맛있다."

"구래? 난 아닌데 히히."

꼭 한 마디를 안 진다.

져주려고 해도 거기서 후속타를 더 날려온다.

성격 참 배배 꼬여도 이만큼 꼬인 기지배가 있을까.

하지만 그런 부분도 포함해서 예은의 매력이다.

곱게 말하는 일은 없지만 은근히 신경 써 주는 게 참 좋다.

남녀 사이에서 항상 문제로 걸고 넘어지는 부분이 무엇이겠는가.

뚜렷한 잘못이나 말실수 때문보다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서가 가장 크다.

오래 사귄 커플들이 헤어지는 이유도.

연애 때는 그렇게나 알콩달콩 했었던 부부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이유도.

서로의 깊은 부분을 이해하지 못해서라 생각한다.

경험이 많지 않은 나지만, 결혼은 당연히 꿈도 꿔본 적 없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다.

만약 이 녀석과 이렇고 저런 사이가 된다면 적어도 관계가 틀어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저번에 말했던 상은 껌이랑 요 갈비찜이야?"

"뭐야, 갈비찜만 보여? 여기 깻잎 튀김도 있고, 갓 담은 봄동겉절이도 있고오~."

말로만 끝내진 않겠다는 듯 봄동을 손으로 하나 말아 내 입에 집어 넣어준다.

근데 이 녀석 술채가지고 힘조절이 전혀 안된다.

내 입가에 고춧가루 다 묻혔다.

'상다리 휠 정도로 맛있게 차린 저녁, 내가 늦어서 술안주가 됐긴 하지만 고마워, 고맙긴 해도..'

남자 마음에 솔직히 조금 다른 걸 바라기 마련 아니겠는가.

물론 더없이 충분하다.

예은이 준 껌도 소중히 종이로 고이 접어 잘 간직했다.

참 고등학생이나 할 발상이긴 해도 나중에 한 번 더 씹고 싶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우승하면 또 상 줄 거야?"

"그러엄! 왜, 바라는 거 있냐?"

예은이 음흉하게 웃어온다.

요놈, 요놈 너무 대놓고 밝히는 거 아니야? 딱 이런 느낌.

속내가 읽힌 것 같아 뜨끔 하긴 하지만 아직 말로 꺼내진 않았다.

나는 침착한 어조로 절대 티를 내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바라면 뭐.. 들어줘?"

"아니."

팔을 들어서 X자를 쳐온다.

단호한 거절의 의사.

이 녀석 정말로 나 놀려먹는 대에는 도가 텄다.

하지만 예은의 표정은 술에 취한 상태일 텐 데도 사뭇 진지하다.

'내 딴에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생각해서 꺼낸 말인데.. 혹시 나만 진지하게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너무 속이 빤히 들어다 보이게 말을 해 예은 쪽에서 곤란했던 걸지도.

그렇게 긍정적인 마인드르 가지기엔 내 멘탈이 단단한 편이 아니다.

나는 표면이 찰랑찰랑 할 정도로 가득 차있는 소주잔을 쭈욱 들이켰다.

쓰디쓴 액체가 식도에 쏟아지며 바보같이 마셔댄 김칫국도 같이 넘어간다.

그제서야 사고 회로가 제대로 돌아간다.

이거.. 까놓고 반쯤 차인 상황 아닐까?

눈물이 쏙 나오려고 하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런데 예은은 뭐가 그리 웃긴지 내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다.

그리고 내 곁에 바싹 붙어 콧방귀를 흥 껴온다.

아직 자신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기회는 줄게. 물론, 하는 거 봐서."

첫 말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어지는 말로 알아들었다.

둔감한 편인 나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스트레이트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확신이 잡힌다.

'사실.. 그동안 너무 기대만 했긴 해.'

연애라는 건 기본적으로 캐치볼이다.

서로가 계속 주고 받아야 한다.

일방통행인 커플의 말로는 정해져 있다.

내 쪽에서 전혀 볼을 안 던진 건 아니지만..

순서를 봤을 때 이번에는 내가 회답할 차례가 맞다.

다만, 직구를 던졌을 때 받아줄지 자신이 없어 끙끙 앓았다.

'언젠가 던져야 할 공이라면 준비가 됐을 때 던지자.'

직구라는 건 가장 빠른 투구 방식이다.

빠른 만큼 상대 쪽에서 본의 아니게 흘릴 가능성이 낮지 않다.

하지만 준비하고 받는다면 적어도 실수로 못 받을 가능성은 없다.

실수든 아니든 받지 않았을 때 속이 타들어가는 건 매한가지겠지만.

"혹시 엄청 허들 높은 거 바라는 건 아니지?"

"얌마, 작작 놀려라."

내 팔에 완전히 기댄 예은이 목 언저리를 손톱으로 꾸욱꾸욱 눌러온다.

무슨 글자라도 새기듯 집요하게.

가끔 보면 이 녀석, 내 머리 꼭대기에 있는 것만 같다.

딱히 싫은 건 아니니 괜찮지만.

.

.

.

* * *

준결승전은 평일에 한 번, 그리고 주말에 다시 한 번 치러진다.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스 리그 준결승전.

이미 평일, A조의 경기는 치러졌고 B조만이 결승전 진출팀을 가리기 목전이다.

오늘 삼선 레드와 SKY T1 K가 제대로 한 판 맞붙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준결승전 B조, 삼선 레드 대 SKY T1 K의 경기! 그 열기가 A조 못지 않게 훈훈하죠?>

<예, 현장에 나와주신 관중분들의 함성이 에너지가 되어 찌릿찌릿 울리네요. 그만큼! 오늘 양 팀의 선수들이 보여줄 경기가 기대가 된다는 의미일 겁니다.>

전범준 캐스터의 시작 선언에 강빈 해설위원이 또박또박 동조한다.

A조 못지 않다.

그러한 언급이 나온 이유는 A조가 기존의 강팀들로 구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윈터 시즌 결승전이 재현된 셈이니 더 설명이 필요할까.

그에 반해 B조는 신흥 강자.

일설로는 구와 신의 대결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이러한 대립 구도에는 조금 어폐가 있다.

그도 그럴 게 삼선 레드는 지난 윈터 시즌이 낳은 스타, 씨지맥이 포함된 삼선 블루의 형제팀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레드 쪽이 형뻘이었는데 아우 쪽이 지나치게 특출났다.

우승까지 해버린 브루 때문에 상대적으로 레드는 묻힌 감이 있었지만.

<우리가 바로 블루의 형이다, 비상의 준비를 하고 있는 삼선 레드! 우측에서 그 선수들이 입장합니다-!>

<신흥팀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지금까지 보여준 활약들은 기존의 강팀들 못지 않아요. 어쩌면 우리는 전설의 탄생을 현재 진행형으로 보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은준 해설의 비유는 조금 비약이 있긴 해도 지나치진 않다.

실제로 윈터 시즌에는 전설에 준한 활약을 보여준 씨지맥 선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스프링 시즌에서는 누가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는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삼선 레드도, SKY T1 K도 멤버들 하나하나가 출중하다.

새로이 주목 받는 선수들이 늘어난다는 건 E-스포츠 판이 앞으로 더욱 더 커져 나갈 것을, 성장 가치가 크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난데없이 튀어나온 우연의 산물들이라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삼선 레드는 지난 윈터 시즌에도 출전했으니까 그렇다 치고..

SKY T1 K 또한 지난 8강 경기에서의 인터뷰로 미루어봐 꽤나 오랫동안 팀의 구성을 갈고 닦았다.

기본기가 탄탄하다는 사실은 8강에서 증명해냈다.

시즌2에 롤드컵의 결승까지 갔었던 명실상부 한국 최강팀 중 하나인 얼밤을 잡아내며 화려한 데뷔를 알렸다.

<좌측에서 입장합니다. 삼선 레드에 맞서는 SKY T1 K! 두 팀 모두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전부 알만한 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어요?>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현재는 반도체 쪽으로 만 배는 더 유명하지만 그 시작은 삼선 슬리퍼였다는 사실, 아는 사람은 아는 신화적인 기업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학창 시절 한 번씩은 신어봤을 삼선 슬리퍼.

그 삼선 슬리퍼를 기반으로 규모를 급속히 키워 현재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대기업으로 자리 잡은 삼선이 E-스포츠 게임단을 꾸렸다.

더군다나 SKY T1을 후원하는 SKY도 만만치 않은 대기업 중 하나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로 가장 빛을 보고 있는 통신사.

한국의 하늘을, 한국 스마트폰 시장의 점유율이 절반에 이른다고 하니 그 위엄이 가시적으로 실감난다.

전범준 캐스터가 자신의 핸드폰도 SKY를 쓰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어왔다.

<그만큼 현재 로드 오브 로드, 새로운 E-스포츠의 물결이 현대 사회의 당당한 한 축으로 뿌리 내렸다. 세간의 관심을 반증하는 일례겠습니다.>

<진실로 고무되는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여러 대기업에서 나오신 관계자 분들이 이 자리를 함께 해주시고 있습니다. 큰 박수갈채 부탁드립니다!>

카메라가 관중석의 가장 앞측, 일명 관계자석이라 불리우는 일대를 느리게 훑고 지나간다.

양복을 빼입은 몇몇 인사들이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으며 카메라를 맞이한다.

상당히 사무적인 광경이지만 그들이 이 자리에 나타났다는 의미는 곱씹어봐야 하는 부분이다.

기업들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경쟁 관계.

어느 한 쪽이 무언가를 벌인다면 다른 쪽들도 뒤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E-스포츠, 고작 게임판이라는 사실이 상당히 걸리지만..

홍보 효과와 더불어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된다면 자신들도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소 늦게 발을 디디는 만큼 큰 불이 붙이리라.

<선수들이 세팅 작업에 들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 준비가 완료되는 즉시! 시작될 것을 약속드리며.. 잠시 광고 시간 가지겠습니다.>

<카메라로 이름 높은 대기업이죠?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부터 정말 친숙한 회사인데요. 올림푸스가 이번 스프링 시즌 롤챔스의 후원을 자처하였습니다.>

대기업 인사들을 소개하고, 협찬 시간으로 말을 잇는다.

구태여 되새겨보지 않아도 무슨 의미를 가진 진행인지 모를 정도로 어수룩한 관계자가 있을까.

해외 LCF의 엄청난 흥행이 한국 E-스포츠 판에 미쳐버린 나비 효과.

그 시발점이 될지 모를 스프링 시즌 준결승전 B조의 경기가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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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봐주시는 독자님들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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