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72화 (472/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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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한국 리그

무대의 좌측, SKY T1 K의 부스 안.

다섯 선수가 코치를 중심으로 손을 겹쳐 쌓았다.

김다균 코치를 시작으로 하나 되어 구호를 외친다.

""화이팅! 잘해보자!""

간략한 한 마디와 함께 일사분란 제자리로 흩어진다.

구호라는 것은 길면 늘어지기 마련.

왈가왈부 이야기를 늘여 놓을수록 찜찜함이 끈적해질 뿐이다.

구태여 명분을 이야기할 이유가 하나 없다.

프로게이머가 경기에 나가 최고의 성적은 거둔다.

이러저러 대의명분을 붙일 수 있긴 하겠지만.. 본질은 그냥 잘 나가기 위해서다.

팀으로, 어쩌고 하는 것은 구세대의 방식.

더욱이 싸움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지는 것도 좋지 않다.

복잡한 생각을 맡아주는 사람은 두 명이면 충분했다.

"이미 한 차례 설명했지만 첫 세트는 반드시 이기고 들어가야 해."

그 중 하나, 팀의 전체적인 지휘를 맡는 말하자면 참모격인 김다균 코치가 첫 세트의 중요도를 이야기했다.

다전제에서 첫 세트가 가지는 의미가 얼마나 깊은지.

갤럭시 크래프트를 보며 프로게이머의 꿈을 키운 SKY T1 K의 선수들은 모두 알았다.

그럼에도 김다균 코치는 역설한다.

오늘의 준결승전에서는 첫 번째 세트.

이기는 쪽이 마지막 승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상대도 당연히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우리가 더욱 많은 투자를 한다.'

삼선 레드도 자신들 SKY T1 K도 단순히 운 만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은 아니다.

결코 적지 않은 노력과 경험이 뒤받침 되었다.

그렇지만 그 경험이 충분한 수치라고는 말 못한다.

조별 리그, 혹은 8강 정도의 무대에서 초보적인 실수가 나올만큼 김다균 코치는 선수들의 훈련을 느슨하게 진행하지 않았다.

지난 해 말부터 빠듯하게 달려왔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조금 늦게 팀에 들어온 비행기, 병기 녀석이 다소 걱정됐지만 훌륭하게 적응해냈다.

'그러나 준결승부터는 압박감의 차원이 달라져. 미리미리 대비해 놓지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평소 하던 대로만 하자.

만약 무대 경험이 없는 일반 코치였다면 그렇게 떼웠을 것이다.

하지만 김다균 코치는 선수 출신이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갈 때 새로워지는 압박감을 느껴본 바가 있었다.

물론.. 그는 선수로서 조금 미달이었다.

갤럭시 크래프트 때도, 로드 오브 로드로 전향한 이후로도.

2류에 겨우 발을 걸친, 어쩌면 그대로 묻혀버렸을 흐름이 더욱 자연스러울 선수였다.

아니, 어쩌면 실패와 재능의 한계를 맛봤기에 더욱 뼈저리게 알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오직 대회 무대에서만 느껴 볼 수 있는 온갖 야시꾸리한 감정들.

결과적으로 2류에 머물렸다고 하나 데뷔할 시점만 해도 촉망받았던 김다균 코치다.

지금 부스 안에 있는 SKY T1 K의 선수들이 얼마나 싱숭생숭한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알지? 이번 경기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픽을 꺼낸다. E-스포츠에서의 다전제는.. 그런 거야."

김다균 코치는 군대에서 읽던 무협지를 떠올렸다.

읽은 책의 종류는 한두세네 가지가 아니었지만 비슷하게 벌어지는 사건이 하나 존재했다.

강호에서는 가진 바 힘의 3할을 숨겨라.

힘의 크기를 잘못 재고 덤벼온 적을 숨겨둔 비기로 쓱삭!

흔히 구명절초로 이야기되는 복선은 뻔하지만 사나이의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응, 현실에서는 전혀 적용 안돼.'

안타깝게도 무협과 현실은 전혀 다르다.

한 마디로 팀의 기세.

첫 세트에서 경기를 따낸 쪽은 자신감이 붙고, 진 쪽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갤럭시 크래프트 때도 영향이 꽤나 있었지만 팀 게임에서는 더하다.

첫 세트를 따낸 쪽이 최종적인 승리를 가져갈 공산이 높다는 둥,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상대방이 아군의 힘을 오측한다는 것도 크다.

전력을 다했던 힘이 평균적인 수치인 줄 알고 지레 겁을 먹어버린다.

즉, 기만 작전이 가능하다는 소리다.

상대팀의 공격적인 수를 사전에 제한시키며 아군의 행동 방향은 넓힐 수 있다.

여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해져 김다균 코치는 팀의 전력을 숨기지 않고 방출하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어쩔 수 없는 최선의 판단이지만..'

현재까지의 기세, 그리고 전력을 분석해봤을 때 자신들 SKY T1 K와 삼선 레드는 막상막하다.

어느 쪽이 어떻게 이겨도 이상하지 않다.

이번 경기에 악착같이 더 매달리는 쪽이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

김다균 코치는 그러한 결단을 내렸을 정도였다.

'어차피 결승전까지 시간은 충분히 있는 데다.. 이번 시즌이 끝나면 가치가 떨어지는 카드들 뿐이야.'

무협에서는 한 가지, 혹은 수 가지 무술을 갈고 닦아 대성을 목표한다.

그런 만큼 적에게 자신의 비기가 알려지면 파훼법도 덩달아 나오며 입장이 난처해진다.

하지만 로드 오브 로드에서 비장의 카드라 함은 매 패치마다 달라진다.

묵혔다가는 비료밖에 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진화하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도태될 뿐인 냉혹한 전장.

김다균 코치는 프로게이머에서 은퇴해 코치직으로 물러섰지만 그렇다고 전장이 달라진 건 아니다.

선수로서 못내 아쉬웠던 부분을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물러주지 않을 것이다.

선수 출신의 코치라는 이력은 팀의 전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하게 하는 데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줬다.

'김다균 30세 무직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인터넷에서는 코치로서의 전향, 말도 안되는 모험 아니냐?

곧 백수가 될 운명이다ㅋㅋ 떠들어댔지만 결국 이곳까지 올라왔다.

그들의 콧대를 싸악 눌러주기 위해서라도 김다균 코치는 눈을 부릅뜨고 상대팀의 픽을 주시했다.

.

.

.

* * *

얼마 전 술김에 고백 비스무리한 부분까지 가버렸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연습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됐다.

정말로 어떻게든 바락바락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아니고.

'얼굴 보기가 민망해..'

말실수냐, 아니냐를 따진다면 아닌 쪽이다.

솔직히 술이 더해준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이게 참, 지를 거면 결승전 전 날에 했어야 했는데..

결승전까지 시간 더럽게 안 간다.

나를 볼 때마다 예은이 히죽 웃어오는 것도 적잖이 신경 쓰인다.

'이럴 땐 무시하는 게 상책이지.'

피하려고 해봤자 어차피 집구석 안이다.

나는 가능한 무심한 표정으로 거실 쇼파에 앉아 롤챔스를 보고 있다.

내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있자 예은 쪽에서 말을 걸어왔다.

삼선 레드와 SKY T1 K, 어느 쪽이 이길 것 같냐고 놀리듯 묻는다.

"어느 쪽이 올라오는 게 우승 확률이 높은 것 같니?"

크히히, 얄밉게 웃으며 내 옆구리를 찔러온다.

예은도 그날 상당히 취해 있었기에 혹시 기억이 가물가물하진 않을까.

기대해봤지만 분명히 아니다.

직접 물어볼 용기는 없지만 행동과 언행을 보건데 100% 빼박이다.

"글쎄.. 삼선 레드 아닐까?"

"뭐야, 웬 일? 오늘은 안 갈리네."

예은이 아쉽다는 듯 휘파람을 분다.

아무래도 또 내기를 하려고 했었나 보다.

이전에 승자 맞추기 내기에서 몇 번 당했던 기억이 있다.

뭐, 그때는 긴가민가 해서 실수했지만 오늘만큼은 나도 진지하다.

'확신이 서는 수준은 아니긴 해도 삼선 레드 쪽에 조금은 더 마음이 가.'

많은 것이 변했다.

본래 내가 알고 있던 2013년의 스프링 시즌과 현재는 전혀 다르다.

일단 삼선 레드와 SKY T1 K는 만날 일이 없었다.

반대 쪽의 라인을 타고 올라가 한 쪽은 준결승전에서 떨어지고 다른 한 쪽을 우승을 했다.

단 한 번도 서로가 마주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하는 한 가지 사실.

삼선 레드가 본래 이번 스프링 시즌의 우승팀이었다.

'고작 그런 거라면 더 고민을 하고 말을 했겠지만.'

SKY T1 K는 전력이 꽤나 강화됐다.

구체적으로는 미드라이너인 테이커의 챔피언 폭이 상당히 다채로워졌다.

리픈 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많이 손을 대고 있는 모양.

프로게이머로서의 성장력에 가속도가 붙었다.

미역슨 때도 그랬지만 어떻게 내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변화가 이루어진 듯하다.

안 그래도 강력한 SKY T1 K의 전력이 더욱 굳건해졌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는 삼선 레드도 마찬가지다.

'사실 더한 건 이쪽이지. 무려 아웃섹이 추가됐는데.'

어떠한 사건 이후로 영원한 고통의 수레바퀴에 갇히게 되었을 그의 운명.

그 사건이 한 번 비틀어지자 순풍에 돛 단 듯 일사천리다.

그렇게나 염원하던 다대기와 팀을 짜게 됐다.

현재 삼선 레드의 전력은 내가 알던 미래에서 스프링 시즌의 우승팀이었을 적, 그 이상이다.

"칫, 그럼 첫 세트 승패는? 그것도 삼선 레드야?"

"왜 또 나를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냐.."

예은은 누가 올라갈지 보다는 그저 나를 이기고 싶나 보다.

너 짱먹어라 그냥.

한 마디 했더니 하는 소리가 가관이다.

"그치만 내 돈으로 시키는 치킨은 맛이 없단 말이야."

"..괜찮으니 시키세요. 그리고 많이 드세요. "

어처구니 없어 나도 모르게 비꼬듯 말했는데 개의치 않는 듯 냅다 치킨집에 전화를 건다.

기본적으로 음식을 해먹는 일이 많지만 치킨만은 예외다.

본인 주장으로는 시켜 먹는 쪽이 절대로 맛있단다.

"두 마리 시켰어. 생맥주도 달라고 했고. 나 잘했지?"

"그래, 그래 잘했다. 맛나게 먹고 토실토실 쪄라."

뭐라 들어도 만족스러운 상황인지 배시시 웃으며 내 옆자리에 다시 앉는다.

사실 조금 쪘으면 하는 건 진심이다.

날씨가 풀림에 따라 집에서는 얇은 옷차림을 하는 경우가 많은 예은.

밖에서는 입을 일 없을 반바지 차림으로 다니면 상당히 곤혹스럽다.

살 좀 쪄서 몸매 좀 망가뜨려라.

그런 건 당연히 아니고 오히려 반대다.

살짝 통통해지는 편이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여성은 마르기만 한 것보다 살집이 있는 편이 좋더라.

굉장히 아저씨스러운 발상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이해가 된다.

어째서 인지는 몰라도 이 녀석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지만 말이다.

'치킨도 두 마리씩이나 시켜 대고 아직 성장기라 그런가?'

예은이 워낙 먹성이 좋아서 한 마리만 시키면 부족하다.

내가 예은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덜 먹는 거지 이래 봬도 잘 먹는 편이다.

그래도 평소에는 오바라며 두 마리는 안 시키는데 오늘은 롤챔스 날이니 그러려니 한다.

<미드, 정글이 싸움이 굉장히 뜨겁습니다. 막상막하 기울어질 듯 기울어지지가 않아요.>

<이렇게 손에 땀을 쥐는 경기는 정말로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두 팀 모두 오늘을 위해 칼을 제대로 갈고 왔습니다.>

경기의 상황은 팽팽하다.

어느 한 쪽으로 쉽사리 기울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그래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미안하지만.. 원딜러의 수준은 삼선이 SKY보다 한 단계 위야.'

선수의 실력을 등급으로 매기는 건 실례다.

어디까지나 내 속으로 하는 뒷담 비스무리한 거다.

나는 삼선 레드의 코볼트 선수가 SKY T1 K의 꿀꿀이보다 기량이 앞선다고 생각한다.

'딱히 나한테 졌다고 저평가 하는 건 아니고.'

지난 해 아마추어 리그 LCL 16강에서 나는 꿀꿀이 선수와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능욕을 좀 하긴 했지만 그것과는 일절 상관이 없는 판단이다.

꿀꿀이가 못한다기 보단 코볼트 선수가 조금 많이 잘한다.

이미 라인전에서부터 CS격차가 사소하게 벌어졌다.

무난하게 성장을 한다면 코볼트 선수가 꿀꿀이 선수보다 한타에서 많은 딜을 넣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는.. 한타의 구도가 완전 정신 없어질수록 더더욱 심화된다.

'코볼트는 그런 선수니까.'

일반적으로 원딜러들은 한타에서 딜링 포지셔닝을 어느 정도 상정해둔다.

이쯤에서 딜링을 하는 게 안정적이면서 많이 넣을 수 있겠지.

머릿속에 구상을 해놓지만 코볼트는 조금 지 멋대로 한다.

날아오는 칼날과 화살을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총알을 쏴재끼는 인파이트 원딜러.

물론 안 맞는다는 게 아니라 덜 맞으며 더 쑤셔 박는 거다.

끽! 하면 억! 하고 죽는 종잇장 체력의 원딜러 특성상 본래라면 있을 수 없는 경우다.

그럴 텐데 가진 바 능력을 백분 활용해 이러한 줄타기를 가능케 한다.

적어도 프로 레벨에서 이를 실현하는 원딜러는 내가 알기로 두 명밖에 없다.

'양 팀의 선수들이 공격적인 만큼 한타는 반드시 난전이 되겠지.'

상황이 긴박해질수록 코볼트의 능력은 빛을 발한다.

곧 라인전이 끝나고 용 앞에서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진다.

침을 꿀꺽 삼키며 언제 걸릴지 모를 대치 구도를 바라보는 가운데..

현관 앞에서 치킨을 받아온 예은이 신나서 달려왔다.

"히히. 여기 치킨집 시키면 엄청 빨리 갖다 주고, 아저씨가 서비스도 왕창 준다? 이게 다 누구 덕분?"

감자 튀김을 서비스로 받았다며 좋아라 자랑한다.

외모 예쁜 거 이용 안 한단 말 취소.

지 필요할 때는 여우처럼 활용한다.

'그건 그렇고, 다음부턴 배달 오면 내가 받아와야겠다.'

이런 게 뭐라고 질투가 다 난다.

그렇다고 안 먹을 건 아니지만.

나는 따끈따끈 갓 튀긴 치킨을 한 점 베어 물며 TV화면을 바라봤다.

곧 시작될 첫 번째 용한타의 결과는 승패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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