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오직 나만이 마스터다-475화 (47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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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하는 한국 리그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리게 된 이번 롤챔스 스프링 시즌의 결승전은 개최측에서 참으로 많은 준비를 쏟아부었다.

그 사실을 가시적으로 증명하는 부분은 행사장 이곳저곳에 비치되어 있는 여러 이벤트들.

로드 오브 로드 챔피언들을 모방한 코스프레부터 시작해서 캐릭터 상품들까지 없는 거 빼고 다 있다.

뭐, 본래에도 다 하던 행사지만 규모와 질적인 측면에서 격이 달랐다.

한 마디로 오프게임넷 측에서 투자를 엄청나게 했다.

삼선 측에서 이곳 삼선 라이온즈 파크를 무료로 임대해준 덕분이랄까.

남는 자금을 확 쏟아부었다.

아니, 여력이 되는 선에서 일을 크게 벌려버렸다.

이번 스프링 시즌의 흥행에 오프게임넷에서는 도박에 가까운 투자를 했을 정도다.

그 보람이 벌써부터 고개를 들이밀기 시작한다.

"시청자 여러분, E-스포츠라고 들어 보셨나요? 에~? 들어본 적이 없으시다구요? 하지만 갤럭시 크래프트라는 이름은 한 번씩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현장에 나와 있는 이지혜 기자.

더불어 몇몇 취재진들이 현재 삼선 라이온즈 파크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다.

목적은 물어볼 것도 없이 취재다.

실제로 아나운서로 보이는 이가 카메라맨들과 함께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시민들에게 마이크를 건넨다.

"어머, 나 뉴스 나오는 거야?"

"이 여편네가 나이 값 못하고 주책은.. 쯔쯧."

취재 대상으로 선택된 아이 딸린 한 가족.

기자가 건네준 마이크를 건네 받은 아주머니가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의 허리를 꼬집으며 말을 잇는다.

못마땅하게 내뱉은 남편의 어조가 어지간히 신경을 거스른 모양이다.

"어머, 저희야 좋죠. 사실.. 게임이니 뭐니 잘 모르지만 보세요. 먹거리도 많고, 귀여운 인형옷들도 많아서 놀이공원 공짜로 온 느낌이라니까요? 특히 저 쥐새끼 앙증맞은 것 좀 봐. 오호호!"

아주머니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티몽 인형옷을 입은 아르바이트생이 아이들에게 풍선을 나눠주고 있었다.

이렇듯 이번 스프링 시즌 규모가 단순히 마니아층을 넘어 일반층까지 전파되도록 규모가 건실히 확충되었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일반인들이 꺼려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코스프레는 줄이고, 인형옷이라던지 캐릭터 상품이라던지로 컨텐츠 접근성을 크게 높였다.

취재가 붙어버린 이유기도 하다.

본래 공중파에서 E-스포츠를 취재하러 온다던지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선수들이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다, 하는 내용이야 가끔 나오지만 국내 대회는 아무리 흥해도 관심 외다.

방송 분량이 나와야 취재를 하지.

경기 내용이 아무리 재밌었다 해도 나이 지긋한 아저씨 아줌마들이 게임에 대해 알고 싶어 할까?

하지만 이렇게 지역 내 컨텐츠로 자리잡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경기장 주변에 간이 텐트들이 수십 개나 설치되어 있다.

로드 오브 로드 관련 컨텐츠 이외에도 가족이 즐길 수 있을 만한 거리들.

여러가지 먹거리와 간식들로 피크닉 분위기를 만끽하며 즐기기 딱 좋다.

"E-스포츠를 모르는 일반인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하나의 오락으로 다가가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쏟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실제로 현장에는 수많은 대구 시민들이 E-스포츠를 하나의 축제로 즐기고 있습니다. 저렇게 귀여운 쥐 친구가 나오는 게임이라면 저도 한 번쯤 즐기고 싶은데요? 그렇다면 과연 안 쪽은 어떨까요? 정말 놀랍게도 유료 티켓을 구매해 온 관중들의 수가 무려 3만을 넘는다고 합니다."

외곽 쪽의 취재를 완전히 마친 아나운서가 천천히 경기가 내부로 걸어갔다.

가는 길에는 더 안쪽에 자리 잡은 간이 음식점들과 응원도구 판매점들이 즐비했다.

이용객들도 상당히 많아 가는 길에만 몇 번 더 취재를 했을 정도다.

거기서 더욱 안 쪽에 들어가니 하나의 문이 보인다.

그 주위를 오프게임넷 마크가 떡하니 박혀있는 정규 복장을 입은 안내원들이 가로막고 있다.

본래라면 필히 티켓을 보여줘야만 지나갈 수 있는 장소지만.. 펜은 칼보다 강한 법!

취재 관계자로 보이는 이가 몇 마디 건네자 그 즉시 열려라 참깨다.

사전에 이야기가 오간 듯 해보였다.

그렇게 안으로 쭈욱 들어간 취재진은 한껏 놀랄 수밖에 없었다.

"와아~! 3만 명이라는 인파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되지 않았는데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니 정말 놀랍습니다. 이 넓은 경기장이 만석이 될 정도로 로드 오브 로드, E-스포츠의 열기가 뜨겁다는 거겠죠?"

자연스레 감탄사가 흘러나올 정도로 엄청난 광경이었다.

원형의 드넓은 구장을 사람들이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슬슬 경기가 시작하려는 듯 무대 중앙의 대형 스크린에서 게임 화면 송출된다.

아나운서는 몰랐지만 실제 경기는 아니고 지난 준결승전의 하이라이트로 양 팀을 소개하는 중이었다.

당연하게도 게임 내적인 내용은 관심 외.

이 정도 봤으면 볼 거 다 본 셈이다.

취재진은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할 현장의 관중을 찾기 위해 부단히 고개를 움직였다.

관중이 만 명단위로 있는 만큼 널리고 널린 게 사람이지만 아무나 할 수는 없다.

공중파 방송은 남녀노소 모든 대중들을 대변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젊은 여성층과는 만족스런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남친 따라, 재미삼아 구경 온 젊은 여성들은 많았지만 다 E-스포츠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눈치였다.

"안녕하세요. CBS의 이지혜 기자입니다. 혹시 취재 가능하실까요?"

경기장이 하도 부산스럽고 북적거려 통행이 제한됐다.

게다가 성비도 많이 무너져 있어 포기하려던 찰나.

혼자 관람을 온 듯 보이는 한 명의 젊은 여성이 가까스로 눈에 띄었다.

모자를 꾹 눌러 쓴 탓에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안 사요. 돈 없어요."

"……."

경기장이 시끄러운 탓에 말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걸까.

이쁘장한 목소리의 처자가 귀찮은 듯 잡상인 거부를 외쳐왔다.

취재진 측에서 몇 가지 설명과 협조를 하면 사은품을 주겠다, 이야기가 오간 끝에 다행스럽게도 인터뷰 수락을 받을 수 있었다.

젊은 아가씨가 어지간히 깐깐하다고 취재진들이 혀를 내둘렀을 정도다.

"오늘 현장에 오신 목적이 관람 맞으신지요? E-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되신 계기, 그리고 현장까지 먼 걸음 하신 이유 들을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을 찾기에는 이 근방 교통 정리가 너무 안돼 있다.

개인으로는 몰라도 카메라를 이끌고 돌아다닐 만한 곳은 아니다.

취재진은 인내심을 가지고 웬만하면 OK하자고 말을 맞췄다.

그런데.. 혹시 또 취재진을 골탕먹이려는 속셈인 걸까?

취재를 허락한 젊은 여성이 상당히 생뚱맞은 이야기를 던져왔다.

"게임은 그냥 제가 좋아해서 하는 거고요. 오늘은 제 남자친구 될 사람 우승 보러 왔어요."

말씨가 어찌나 곱고 선명하게 울리는지 이 시끄러운 경기장 안에서도 한 마디, 한 마디가 또박또박 들려온다.

목소리가 좋은 건 무척 좋은 일이지만..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영 이해가 안 간다.

앞말은 그렇다 치고 뒷말의 의도는 대체?

마음 같아서는 패스하고 싶지만 다른 취재 대상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간단하게 대답의 예시를 들어주기 위해서 가장 짬이 안되는 취재진 한 명이 걸음을 떼었다.

그러려고 했던 순간, 경기장 내부로 바람이 세차게 불어왔다.

그 바람에 모자 속에 가려졌던 그녀의 얼굴이 순간 드러났고..

방금의 광경을 카메라로 촬영한 취재진은 긴 말 없이 끄덕끄덕 OK사인을 내렸다.

.

.

.

* * *

삼선 게임단 산하의 두 팀이 접전을 펼친다.

본래라면 엄청나게 기뻐해야 하는 일임에도 서지훈 감독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오히려 어둡고 씁쓸하고 불쾌하게 굳어져 있었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회식 자리의 굴욕이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우.. 요즘 애들은 지 잘난 줄만 알아요.'

선수들은 물론 코치들도 전부 나가버린 텅빈 숙소 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팀 내부 권력의 상징이었던 감독실의 의자에 서지훈 감독이 못마땅한 듯 기대어 앉아있다.

속으로 씹어댔던 이들은 본디 삼선 블루 쪽의 몇몇 선수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레드도 더 이상 아군이 아니게 됐다.

지난 주말 이후, 감독은 삼선 레드와도 척을 졌다.

정확히는 배신을 당했다고 느꼈다.

'내가 네놈들을 어? 얼마나 키워줬는데! 이제 와서 라인을 바꿔 타기는..'

삼선 레드와 블루, 두 팀이 모두 결승전까지 가버렸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공적이지 않은가?

본래라면 구단주에게서 무언가 언질이 있어야 했다.

직접적으로 보너스를 준다는지.

뭐, 거기까지는 아니여도 비슷한 늬앙스를 내포한 이야기를 했어야 함이 옳다.

그런데.. 한 마디도 없다.

'분명히.. 무언가 있어.'

서지훈 감독은 자신이 프로판에서 오래도록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을 눈치라고 생각한다.

그 눈치에 의하면 누군가 자신에 대해 악담을 했다.

그것도 구단주에게 직접 말이다.

당연하게도 선수 한 명이 그런 간 큰 짓을 저질렀을 리는 없다.

소심한 코치 녀석은 더욱 그럴 리 없다.

남은 것은 다수가 한 번에 항의를 하는 것.

회식 자리에서 레드의 선수들이 한꺼번에 자리를 일어났던 일은 결코 우연히 아니다.

서지훈 감독은 마음속으로 이미 확신에 가깝게 굳었다.

'어떻게, 대처함이 옳을까….'

흘러가는 꼬라지를 보아하니 공적을 인정받긴 글렀다.

오히려 감독 자리가 당장에라도 잘릴 기세다.

우승과 준우승을 해버린 선수 열 명이 구단주에게 직접 탄원서를 쓴다면?

캥기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 서지훈 감독으로선 무지하게 곤란했다.

'서둘러서 다른 게임단의 자리를 알아볼까..?'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 일을 서둘러 해냈다고 해도 마찬가지.

애초에 이 업계는 바닥이 좁다.

안 좋은 소문이 퍼진다면 그대로 끝이다.

계약을 따낸다고 한들 파기될 가능성이 십 할이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길 어언 반 시간 가량.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서지훈 감독은 유레카를 외쳤다.

'그래! 내가 꼭 숙이고 들어갈 필요가 없잖아?'

역으로 판을 키워 버린다는 발상의 전환.

상사의 말이 전부인 평범한 회사에 근무했다면 전혀 먹히지 않았을 소리다.

하지만, 이 프로게이머 업계라는 곳은 기본적으로 개방돼 있다.

바깥 세간의 눈치를 필히 살펴야 한다.

전해 듣기로 이번 스프링 시즌은 역대급이라고 하더라.

그러한 설레발은 늘 있어왔지만 이번 경우는 진짜다.

무려 자신들 구단주보다 윗줄에 있는 삼선 본사 측에서 손을 썼다.

삼선 라이온즈 파크의 임대를 베풀다니?

자신들이 롤챔스를 대단히 주목하고 있다고 돌려 말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이말인 즉, 구단주보다 위라고 할 수 있는 이들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엄청난 기회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현장의 관중들도 역대 최대 규모라고 하니 더없이 알맞다.

판은 크면 클수록 좋다.

'어쩌면.. 내 인생에 다시 없을 대박 찬스일지도 몰라!'

생각을 곱씹어 볼수록 무지막지한 기회였다.

인생역전을 제대로 이루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하려고 하는 건 이거다.

'어느 쪽이 이기든, 나는 팀의 감독으로서 무조건 단상에 나갈 수 있지.'

삼선 레드와 척을 지든, 블루와 척을 지든 상관이 없다.

구단주에게 밉보이든 어떻든 잘리기 전까지 자신은 삼선 게임단의 감독이다.

누가 뭐래도 자신의 자리는 흔들리지 않는다.

팀 내 불화가 다소 있다고 한들 어쩔 거냐?

그걸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말하기라도 할 거냐?

하지만 자신은 떳떳하게 말할 수 있다.

삼선이 자신을 중심으로 얼마나 잘 화합이 되어 있는 팀인지 역설하는 거다.

그리고 감독으로서의 공로를 공식 석상을 통해 넌지시 말해버린다면..?

과연 구단주가 자신을 어찌할 수 있을까?

'크흐흐, 선수들을 스카웃하던 당시의 이야기부터 천천히 썰을 풀면 관심이 장난 아니게 모일 거야.'

물론 여기서 끝난다면 시간 벌기에 불과하다.

선수들 모두가 자신을 안 좋게 생각하는 한 문제는 언제고 불거질 테니까.

그러니까 조금 처량한 신세를 연기하면 된다.

본의가 아니었다고, 잘 하려다 보니 엉킨 거라고.

그러면서 선수들을 한 명, 한 명 구슬리면 끝난다.

사회 생활이라고는 프로게이머가 처음일 꼬맹이들이다.

한두 명만 자신의 편으로 만들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납득한다.

달콤한 말 몇 마디 던져주면 알아서 다 넘어오게 돼있다.

'그리고 이놈들로 한 번만 더 우승을 따낸다면.. 아니, 그럭저럭 선전만 해도 내가 감독으로 끝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반드시 알아 봐줄 테지.'

어쩌면 구단주, 못해도 그에 준하는 자리가 하나 떨어질 것이다.

서지훈 감독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흔들었다.

위기를 기회로 단박에 탈바꿈 해내다니.

자신이 떠올렸다고 하지만 무서우리만큼 훌륭한 대처능력이다.

그러니까 지금 가만 있을 수는 없다.

아무것도 안 하다가 경기 끝났을 때 짠하고 나타나면 위화감이 있지 않겠는가?

서지훈 감독은 빠르게 옷가지를 껴입고 감독실을 헐레벌떡 뛰쳐나갔다.

방금 전 떠올린 계획이 들어맞을 거라 굳게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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