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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
삼선 레드는 신생팀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만큼 완성도가 높다.
게임단이 얼마나 레드에 많은 투자를 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부분.
미드와 정글도 아마추어 시절부터 유명했지만 봇듀오도 상당하다.
그런데 어째선지 첫 판부터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아니 쓰렉귀.. 언제 라인에 돌아오는 거지? 경험치 안 먹나?"
삼선 레드의 서포터, 마차가 초조한 듯 외쳤다.
현재 게임의 흐름은.. 많이 이상하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답답함이다.
저 쓰렉귀 하나 때문에 게임이 점점 산으로 가고 있었다.
"이거 너도 돌아다니는 편이 낫지 않겠어?"
"나도 가고 싶은데 쏘냐잖아. 적어도 6레벨은 찍고 움직여야 해. 안 그러면 죽도 밥도 안돼."
원딜러 코볼트의 물음에 마차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라고 저 쓰렉귀를 따라다니고 싶지 않은 건 아니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걸린다.
쏘냐는 궁극기를 제외하면 이렇다 할 하드CC기가 없다.
대신 라인전의 견제력이 빼어난 편이지만..
하필이면 그 라인전을 져버렸다.
쓰렉귀와 헤이클린의 호흡이 장난 아니게 수준 높았다.
'그래도 6레벨까지 버틸 만했는데..'
한 번의 실수, 어쩌면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연히 무빙을 해서 피하려고 했지만 그조차도 예측당했다.
마치.. 얼밤이 자랑하는 서포터, 매일라이프를 상대했을 때의 기분이었다.
정말로 그때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다.
적 원딜러가 헤이클린이었던 탓에 구사일생했다.
크레이브즈나 미스터 포텐 같은 원딜러였다면 순식간에 갈려나갔으리라.
스펠이 빠지긴 했지만 덕분에 눈이 번쩍 떠졌다.
피부를 타고 흐르는 긴장감은 다시는 그랩을 허용하지 않을 거라 이야기해왔다.
문제는 상대가 그 이후로 자신에게 그랩을 던져오는 일이 없었다는 거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마차가 초조하게 6레벨을 기다리는 사이.
세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머리 위에 번쩍 떠지는 눈동자가 가리키는 의미는 하나였다.
"아…. 레드에 와드 박혀있었나 봐. 그래도 킬은 쓰렉귀가 먹었다."
팀이 정글러 아웃섹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웃섹이 레드를 먹는 도중, 불현듯 쓰렉귀의 선고가 날아왔다.
쓰렉귀 혼자 였다면 충분히 탈출할 수 있었겠지만 문제는 적팀의 미드라이너, 트와이스 페이크가 궁극기를 사용해 곧바로 연계했다.
레드 도마뱀을 잡느라 체력이 많이 달았던 아웃섹의 탈리반 3세는 킬과 버프를 둘 다 내줘야 했다.
'으.. 게임 진짜 답답하다.'
마차는 이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는 걸 모르지 않다.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쓰렉귀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따라 가봤자 할 것도 없고 6레벨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찍는 게 최선이다.
급박한 상황에서 나름대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 셈이지만 애초에 첫 단추를 잘못 뀄다.
쏘냐를 들고 라인전을 밀리면 안됐다.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상대가 헤이클린을 뽑아서 어쩔 수 없긴 했지만.. 분명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적에게 선 2레벨을 내준 이후로 라인을 쭉쭉 푸쉬당했다.
그러다가 한 번 끌리기까지 하니 그 이후로는 감히 딜교환을 할 엄두가 안 나더라.
끌렸을 때 어느 정도 아픈지 알아버리니 무서워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미드 미아핑이 조금 늦어버렸다.
숨어서 또 그랩을 노릴 거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크게 경고하지 않았던 자신의 실수다.
그렇게 미드가 한 번 말린 것은 손해긴 해도 충분히 돌이킬 수 있었다.
아군의 조합은 6레벨 이후의 시너지가 상당하다.
조합이 짜여진 시점에서 승리를 반 이상 확신했을 정도다.
그런데.. 삼선 블루에 용병으로 온 서포터, 올마스터가 게임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 버렸다.
"다들 멘탈 잡고, 마차는 신경 쓰지 말고 6레벨 최대한 빨리 찍어봐. 내가 보기에도 그게 최선이니까. 가능하면 라인전 압박 노려보고."
"우리 조합 좋아서 지금부터라도 실점 안 내주면 한타에서 뒤집고도 남아."
"내 스플릿 위주로 게임 천천히 풀어나가면 돼. 걱정하지 마차 키킥."
팀이라는 것은 운명 공동체, 한 명의 실수는 모두의 실수다.
훌륭한 팀일수록 서로의 잘잘못을 탓하지 않는다.
삼선 레드는 결성된 지 반년도 되지 않았지만 그 굳건함은 기존의 강팀들 못지 않았다.
그들이 이곳 결승전까지 올라오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팀원들이 나를 믿어준다. 지금부터라도 반드시..!'
이제 와서 아쉬움을 삼킨다고 한들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다.
알고 있지만,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고는 했지만 속이 타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렇게 봇라인에서 시간을 죽이는 사이에도 쓰렉귀가 계속해서 이득을 챙겨 나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경험치를 둘이서 나눠 먹는 봇라인의 특성상 시간이 많이 소요되긴 했다.
현재 5레벨 중후반대의 경험치.
앞으로 한 웨이브만 더 먹으면 6레벨에 도달한다.
쓰렉귀는 하도 로밍을 돌아다니느라 킬어시를 챙겼음에도 4레벨이다.
6레벨인 자신이 점멸센도로 이니시를 한 번 잘 열기만 한다면.
그것이 용으로까지 이어진다면 지금껏 보아온 손해를 전부 만회할 수 있다.
'그래, 충분히 가능해. 나 자신의 능력을 믿자.'
마차는 굳게 다짐했다.
중요하디 중요한 다전제의 첫 세트가 자신 때문에 안 좋은 흐름으로 가고 있음에도 팀원들은 한 마디 탓을 하지 않는다.
보답해야 한다.
평소대로만 하면 괜찮다.
설사 결과적으로 게임을 내주게 된다고 한들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딜교 한 번 빡세게 해 놓고 상점 가서 와드돌을 사오자.'
6레벨을 찍고 로밍을 다니기 전, 그 사전 작업으로 라인을 한 번 풀어야 한다.
크레이브즈와 헤이클린의 사거리 차이상 원딜러끼리 남게 되면 일방적인 견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더군다나 헤이클린은 혼자 라인을 먹은 탓에 레벨링이 우위다.
체력이라도 많이 깎아 놔야 동등한 선상에 설 수 있다.
뾰롱~♪
탕~!
쏘냐의 18번이라고 할 수 있는 Q견제, 용기의 노래와 그 효과로 강화된 평타가 헤이클린의 체력을 뜯어낸다.
타이밍을 정확히 맞춰 평타와 함께 쏘아낸 탓에 헤이클린은 피할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뒤늦게 쓴 투망 때문에 애꿎은 마나만 빠졌다.
자신의 체력도 다소 깎이긴 했지만 어차피 귀환해서 회복하면 그만.
만족스러운 딜교환에 살짝 미소를 머금은 마차는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런데.
키잉-!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위쪽 부쉬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쇠사슬이 자신을 꽁꽁 묶어맸다.
마차는 직감했다.
아, 망했구나 원딜이라도 살려야지.
그 최소한의 바램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슈루룩!
누군가가 쓰렉귀의 랜턴을 타고 코앞에 등장했다.
등장한 이는 궁극기를 넓게 깔아버리며 자신의 존재를 시원스레 과시했다.
다름아님 적팀의 정글러 이블퀸.
어둠의 침식에 먹혀 들어간 순간 쏘냐와 크레이브즈의 운명은 정해졌다.
─적에게 당했습니다!
앞선 딜교환에서 체력이 깎였던 마차의 쏘냐는 순식간에 찢어발겨졌다.
그래도 당하는 게 자신 혼자였다면 사정이 그나마 나았으리라.
어시스턴트를 챙긴 이블퀸이 광란의 춤을 재활성화하며 크레이브즈를 향해 달려들었다.
파락!
다행스럽게도 크레이브즈는 원딜러 중에서 가장 끈질긴 편이다.
침착하게 화약구름을 분사하며 대쉬기와 점멸을 적절히 사용하자 포탑 깊숙이 내뺄 수 있었다.
아슬아슬 했는데 패시브에 달린 방어력과 마법저항력이 요긴하게 작용했다.
그렇게 살아 돌아간 줄 알았는데..
─적 더블 킬!
아직 한 발 남았다.
빨간선이 크레이브즈의 미간을 향해 일직선으로 그어졌다.
헤이클린의 궁극기가 삼선 레드의 마지막 희망을 즈려밟았다.
.
.
.
* * *
쏘냐는 시즌2 때만 해도 가장 선호되던 서포터다.
글자 그대로 서포터라는 포지션이 가장 잘 어울리는 스킬 구성을 가졌다.
공격이면 공격, 힐이면 힐, CC기면 CC기.
이렇게 여러가지 다 가진 챔피언들은 되려 망한다.
대표적인 예로 스킬 하나하나만 따져보자면 OP인 귤선장이 있다.
하지만 쏘냐의 경우 시즌2 메타에 정말로 알맞았다.
라인전을 길게 가다가 한타로 마무리되는 것이 일반적인 게임 양상이었다.
그런데 견제형 서포터인 쏘냐는 그 라인전이 강하다.
견제형 챔피언들은 갱 당해서 한 번 말리면 답도 없다는 게 일반론이다.
그러나 쏘냐에 한해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힐 덕분에 라인전을 버티는 능력도 준수했다.
6레벨을 찍으면 넒은 범위의 광역 스턴기까지 배우는 팔방미인.
그렇게나 선호 받던 쏘냐가 메타가 변하면서 시대에 뒤쳐졌다.
'일반 스킬에 하드CC기가 전무하다.. 이것이 치명적인 단점이 작용했지.'
서포터의 대로밍 시대가 막을 올리면서 쏘냐의 픽률은 급감했다.
경험치를 나눠먹어야 하는 서포터는 궁극기를 배우는 게 한참 걸린다.
게다가 궁극기인 이상 쿨타임이 당연히 짧지가 않다.
쏘냐가 성장하는 사이에 다른 서포터들은 전라인을 돌아다니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현재 진행되는 게임 양상이 딱 그러하다.
키잉-!
나의 그랩이 2차 포탑을 끼고 라인을 받아먹던 쇈에게 적중한다.
곧바로 랜턴을 던져 말카림을 끌어오자 순식간에 2대1이다.
쇈은 도발을 사용해 도망가려 했지만 여의치 않다.
철썩!
쓰렉귀의 E스킬, 채찍 쓸기는 정말로 짜증나는 활용이 가능하다.
일부, 아니 대부분의 돌진기는 타이밍만 잘 맞추면 끊을 수 있다.
채찍 쓸기에 의해 도발이 끊긴 쇈은 마지막 희망이 사라졌다.
<숨을 곳은 없어!>
영겁의 감옥에 스쳐 느려진 쇈을 향해 말카림이 언월도를 사정없이 휘두른다.
이미 수 번의 로밍을 통해 성장 격차가 벌어진 상황이다.
삼종신기를 빠르게 완성한 말카림의 위력은 탱커조차 토막낸다.
─아군이 적을 처치했습니다!
삼선 CGVMAXIM님이 학살 중입니다!
한 번 주도권을 가져온 게임을 손쉽게 굳힐 수 있는 챔피언이 바로 쓰렉귀다.
명진이의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빠르게 와드돌을 구입한 나는 적 정글의 시야를 먹어버렸다.
안에 들어온다면 무조건 필킬.
들어오지 않으면 쳐들어간다.
방금처럼 멀리서 그랩을 맞히고 랜턴으로 아군 한 명 끌고 와서 다굴 치면 1킬이 뚝딱이다.
─아군이 포탑을 파괴했습니다!
탑라인의 2차 포탑이 허물어진다.
그랩을 맞게 되면 무조건 킬로 연결된다는 공포.
적팀의 수비는 소극적으로 변했고 미드와 탑라인의 2차 또한 차례로 철거된다.
여기서 바론까지 나간다면 상대는 더 이상 버텨낼 힘이 없다.
"온다, 온다. 여기서 전멸 시키면 게임 끝이야."
"올마형 그랩만 믿는다..!"
게임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하지만, 압도적인 유린도 필요하다.
다전제의 첫 세트가 가지는 의미가 대폭 올라간다.
바론을 가는 척 부쉬 안에 잠적하자 적팀이 와드를 지우며 슬금슬금 다가온다.
혹시라도 우리가 바론을 치는 건 아닐까 서두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근처에 오는 순간 싹 다 죽은 목숨이다.
키잉-!
쓰렉귀의 선고는 좌우 범위가 풀리츠크랭커보다 좁은 대신 거리 하나는 끝내준다.
그 끄트머리에 적팀의 정글러 탈리반 3세가 제대로 월척이다.
깃창만으로 부쉬 체크를 하려고 했겠지만 다가오는 타이밍을 정확히 노려 끌어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곳은 내가 다스린다..!>
탈리반 하나 잡는 걸로 만족할 리가 있을까.
점멸을 사용해 궁극기, 탈리반의 뒤에서 간을 보던 적팀들이 봉변을 당한다.
정오각형으로 펼쳐진 벽들이 둔화지옥을 구성한다.
눈치 빠른 크레이브즈가 벽이 세워지기 전에 탈출하려 하지만 어림없다.
철썩!
크레이브즈가 대쉬하는 타이밍에 맞춰 채찍을 쓸어버린다.
앞서 쇈이 걸렸던 것처럼 대쉬기가 끊기는 효과.
점멸은 남아있겠지만 성난 말카림의 돌진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쿠워어어어!
그림자의 습격이 떨어지며 크레이브즈가 순삭 당했다.
나머지 적들은 최대한 살아보기 위해서 뿔뿔이 흩어지지만 하나 깜빡했다.
적들의 머리 위에 껌뻑이는 눈동자가 그들의 위치를 낱낱이 알려준다.
한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마지막 전투를 끝으로 게임은 마무리된다.
"수고했어. 그런데 이거.. 나라면 멘탈 박살날만한 상황인데 쟤네 괜찮으려나?"
"레드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번 결승전도 우리가 가져가야 쓰겄다!
라인전 단계에서 킬을 너무 많이 잃었다.
봇라인만 터진 거라면 그나마 사정이 나았지.
세 라인이 전부 격차가 벌어지니 제아무리 아웃섹이라 한들 손쓸 도리가 없었다.
역갱을 치고 싶어도 나와 정글러 둘이서 움직이는 바람에 수적으로 열세.
정글까지 장악 당했으니 게임하기 적잖이 싫었을 거다.
'행여라도 감정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프로의 승부에서 봐주는 게 어딨겠냐만은 그래도 조금 심하긴 했다.
결승전 끝나고 단상 위에서 포옹이라도 한 번 해주자.
나는 일어나서 삼선 레드 쪽의 부스를 바라봤다.
그런데.. 정말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걸까?
삼선 레드의 코치가 헐레벌떡 부스 안을 뛰쳐나갔다.
->금일 1화 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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